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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멸종의 지구사 - 생명은 어떻게 살아남고 적응하고 진화했는가 ㅣ 오파비니아 25
마이클 J. 벤턴 지음, 김미선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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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45억 살의 지구는 다섯 번이나 죽을 뻔했다. 지구가 죽으면 지구에 뿌리내려 이파리를 펼친 모든 생명체도 죽는다. 과학자들은 시름시름 앓고 있던 지구가 혼수상태에 빠진 순간을 ‘대멸종(mass extinction)’이라고 부른다. 지구가 의식을 잃었을 때 많게는 수백만 종의 동식물이 한꺼번에 멸종되었다. 생물의 대량 멸종이 일어난 시기는 오르도비스기 말(末, 4억 4400만 년 전), 데본기 말(3억 7200만 년 전), 페름기 말(2억 5200만 년 전), 트라이아스기 말(2억 100만 년 전), 백악기 말(6600만 년 전)이다.
공룡, 포유류, 조류, 곤충들보다 뒤늦게 지구에 뿌리내린 인간은 지구를 못살게 구는 유일한 존재다.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은 다른 동식물에게도 피해를 주는 불한당이다. 뒤늦게 지구의 소중함을 알게 된 인간은 지구가 더 이상 아프지 않길 바란다. 그러나 지구는 오래전부터 아팠고, 여전히 아파한다. 현재 지구가 앓고 있는 병은 ‘지구온난화’다. 온실가스는 지구온난화를 일으킨다. 지구가 온실가스로 완전히 뒤덮이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지구의 온도는 태어날 때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지구가 건강했을 때도 온도는 올라갔다. 이때 당시 지구는 무럭무럭 성장하는 청소년이었고, 인간은 태어나지 않았다. 지구는 태양에서 나오는 열을 받아들이고, 그 열의 일부를 대기 밖으로 방출한다. 그런데 온실가스는 지구에 내뿜는 열을 흡수한다. 이러면 지구는 온실가스라는 아주 뜨거운 이불을 덮고 있는 상태가 된다. 추위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불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구는 이불 밖에 있어야 한다. 이불 속에 있는 지구는 위험하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인해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계속 올라간다. 해수면 온도도 올라가는데, 바다에 사는 수많은 생물은 갑자기 뜨거워진 바닷물에 적응하지 못해 살아남지 못한다. 온실가스에 이산화탄소가 많이 들어 있다.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태우면 이산화탄소가 생긴다. 결국 온실가스를 얇게 하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지구가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화석연료를 포기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지구가 아프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생물 종 절반이 빠르게 멸종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면 지구는 또다시 의식을 잃을 수 있다. 인간은 운 좋게도 다섯 번이나 쓰러진 지구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 맞닥뜨릴지 모르는 ‘여섯 번째 대멸종’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대멸종의 지구사》는 고생물학자가 지구를 대신해서 쓴 ‘지구 투병 일지’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J. 벤턴(Michael J. Benton)은 예전에 《대멸종》(류운 옮김, 뿌리와이파리, 2007년)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다. 《대멸종》이 페름기 말 대멸종에 초점을 맞춘 책이라면 《대멸종의 지구사》는 5대 대멸종을 소개한다. 5대 대멸종 중에 제일 유명한 것은 백악기 말이다. 이 시기에 중생대를 지배했던 공룡이 사라졌다. 지구의 대기권을 뚫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했다. 정면으로 소행성과 부딪힌 지구는 치명상을 입었다. 우주에서 온 폭탄은 지구에 뿌리내린 공룡을 폭살시켰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지구는 통증보다 심한 쓰라린 후유증에 시달렸다. 소행성과 충돌하면서 발생한 엄청난 양의 미세먼지는 대기를 어둡게 뒤덮었다. 미세먼지가 지구에 들어와야 할 태양 빛을 차단하는 바람에 지구 온도는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식물의 광합성이 중단되면서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졌다. 빛이 부족하면 바다에도 악영향을 준다. 광합성을 하면서 살아가는 식물성 플랑크톤의 개체 수가 줄어들자, 그들을 먹고 사는 해양생물 종들도 멸종했다. 고생물학자들은 5대 대멸종을 주목한다. 그들은 대멸종 시기에 일어난 기후 변화와 생물 다양성 감소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여 지구온난화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유추한다. 과학자들은 안다. 지구가 아프면 일어나는 이상 고온 현상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처가 난 피부에 새살이 돋는다. 지구가 겪은 대멸종은 ‘성장통’이다. 지구는 괴로운 아픔을 툭툭 털어내고, 자신의 상처투성이 몸에 생태계가 다시 자라날 수 있게 힘썼다. 생명체가 뿌리뽑힌 지구의 땅과 바다 위에 새로운 생명체들이 나타나서 뿌리를 내렸다. 대멸종 이후에 새로운 종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긴다. 지구가 마지막으로 아팠던 백악기 말 대멸종 이후에 본격적으로 포유류가 지구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공룡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포유류의 번성도 없었을 테고 인간은 나타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대멸종의 지구사는 생명의 멸종과 진화가 맞닿아 있는 지구의 역사를 보여준다. 인간은 역사가 된 지구의 투병 일지를 언제든지 읽을 수 있다. 지구의 투병 일지에는 지구가 크게 아팠을 때 기후가 어떻게 변했는지, 그리고 대멸종으로 인해 무너진 생태계가 어떻게 회복되었는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지구는 다섯 번의 아픔을 겪으면서 스스로 성숙해졌다. 지구가 아픈 만큼 인간도 정신 차리고 성숙해져야 할 텐데‥….
<cyrus의 주석>
* 101쪽
연체동물, 갑각류, 곤충, 어류, 개구리 같은 냉혈동물[주]은 몸부림치다가 죽는다. 이외르겐센과 동료들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변온동물[주]은 수생과 육생 모두 지구온난화와 함께 열 스트레스가 상당히 증가할 위험이 있고, 증가하는 이 열 스트레스는 지역 규모에서, 그리고 지구가 1도 더 온난화할 때마다 눈에 띄게 두드러질 것이다.”
[주] 변온동물은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지 못한다. 그래서 외부 환경의 온도에 맞춰서 체온을 조절한다. 변온동물의 구 명칭은 ‘냉혈동물’인데, 동물은 피를 차갑게 해서 온도를 조절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는 냉혈동물이라는 용어를 잘 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