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신론자다. 비(非)종교인이다. 종교에 대해 잘 모른다. 어린 시절, 내게 불쑥 다가와서 교회에 다녀보라면서 전도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신이 어쩌고저쩌고 말하는 그들이 이상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 위인전을 읽고 나서 적은 독후감은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한 글이었다. 당시에 썼던 감상문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나는 교회가 싫어요!”
인간과 유인원은 같은 조상에게서 진화된 종(種)이라고 주장한 다윈. 종교는 다윈의 진화론을 반기지 않았다. 성직자들은 만물을 창조한 신이 설 자리가 없어 보이는 진화론을 비난했다. 종교를 미워한 나는 다윈이 무지하고 편협한 종교에 괴롭힘을 당하는 위인이라고 믿었다.
과학과 종교. 이 두 단어를 한자리에 모아놓으면 대부분 사람은 제일 먼저 ‘갈등’과 ‘충돌’을 떠올린다. 과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한 손에 성경을 들고 다니면서 창조론을 주장하는 종교인들을 비난한다. 종교인들은 기적과 천국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을 싫어한다. 그들 중에는 종교를 비판하는 과학자들이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와 같은 ‘전투적 무신론자’에 속한다고 인식한다. 종교인이 과학자들을 싫어하면 과학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과학을 외면하는 종교인들을 싫어하면 종교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과학자와 종교인들은 과학과 종교 사이에 커다란 ‘갈등의 벽’이 세워져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분리의 역사’가 아닌 ‘상호보완의 역사’였다는 관점이 주목받고 있다. ‘과학책방 담다’의 두 번째 큐레이션 주제는 ‘과학과 종교 톺아보기’다. 국어사전은 ‘톺아 보다’의 뜻이 ‘샅샅이 살피다’라고 말한다. 과학과 종교를 톺아보는 일은 과학과 종교에 오랫동안 달라붙은 ‘편견’을 씻어내는 일이다. 과학과 종교를 둘러싼 ‘편견’의 대표적인 예가 앞서 언급한 ‘과학과 종교의 갈등 관계’이다.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편견이 지속되면 또 다른 편견을 낳는다. 과학의 입지가 줄어든 중세를 ‘암흑시대’로 규정하는 관점 역시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오해해서 생긴 편견이다.
* 로널드 L. 넘버스, 코스타스 캄푸러키스 엮음, 김무준 옮김 《통념과 상식을 거스르는 과학사: 뉴턴에서 멘델까지, 과학을 둘러싼 역사적 오해들》 (글항아리사이언스, 2019년)
* [절판] 로널드 L. 넘버스 엮음, 김정은 옮김 《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 (뜨인돌, 2010년)
과학이 종교보다 우위에 서 있는 학문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종교의 부정적인 면을 바라본다. 이러면 과학과 종교가 서로 만나면서 발전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보지 못하게 된다. 《통념과 상식을 거스르는 과학사》와 《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라는 두 권의 책의 집필에 참여한 역사가와 과학철학자들은 ‘과학과 종교의 갈등 관계’와 ‘중세는 암흑시대’라는 상식이 ‘잘못된 통념’이라고 입을 모아 주장한다.
* 토머드 딕슨, 김명주 옮김 《과학과 종교》 (교유서가, 2017년)
《과학과 종교》는 과학과 종교, 두 분야 모두 생소한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입문서다.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과학과 종교 관계는 ‘갈등’ 또는 ‘조화’로 너무나도 쉽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진화론 대 창조론’과 같은 과학과 종교가 충돌한 역사적인 사례를 분석한 이 책은 과학과 종교가 만나는 지점에 ‘정치적 이해 관계’도 작용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과학 대 종교’라는 이분법적인 관점은 과학과 종교가 복잡하게 얽힌 관계를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 바이올렛 몰러, 김승진 옮김 《지식의 지도: 일곱 개 도시로 보는 중세 천 년의 과학과 지식 지형도》 (마농지, 2023년)
* 김주연 《김주연의 철학사 수업 2: 고중세 그리스도교 철학》 (사색의숲, 2022년)
* 움베르토 에코, 이윤기 옮김 《장미의 이름》 (열린책들, 2009년)
중세는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어둡지 않았다. 중세에도 과학이라는 학문이 있었다. 《지식의 지도》는 고대 그리스의 과학 지식을 보존하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연구한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지적 풍토를 주목한 책이다. 이 책은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유럽 학문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실을 보여준다.
중세 영국의 신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자인 로저 베이컨(Roger Bacon)은 실험을 통해 지식이 옳은지 아닌지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험과학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강조한 학자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윌리엄은 자신의 스승이 로저 베이컨이라고 언급한다. 《김주연의 철학사 수업 2: 고중세 그리스도교 철학》에 로저 베이컨의 철학을 자세하게 소개한 내용이 나온다.
* 도널드 R. 프로세로, 류운 옮김 《화석은 말한다: 화석이 말하는 진화와 창조론의 진실》 (바다출판사, 2024년)
《화석은 말한다》는 화석과 같은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잔뜩 널려 있는데도 이를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창조론자들을 반박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과학을 이해하는 종교’의 긍정적인 사례들도 언급한다. ‘진화론을 이해한 종교’가 있었기에 진화론 연구가 발전되었다. 현재 활동 중인 고생물학자들 대다수는 기독교인이다. 이들은 종교적 교리와 별개로 반복된 실험을 거쳐서 나온 결과를 가지고 연구한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관한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내가 고른 책들에 담긴 모든 지식은 오류 가능성이 있다. 정설에 반하는 증거가 나오면 정설을 의심해 보고 검증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실행하는 학문이 바로 ‘과학’이다.
[과학책방 담다]
2021년 4월 21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5476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