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일은 파이 데이. 파이는 그리스 문자 π이며 원주율을 뜻하는 수학 기호다원주는 원의 둘레를 뜻한다. 원주에서 원지름을 나누면 원주율이 나온다. 원주율은 끝이 없는 값이다. 3.14로 시작해서 숫자가 계속된다. 근삿값인 3.14가 원주율이다. 수학자들은 3.14와 숫자가 같은 314일을 원주율을 기념하는 날로 정했다.


1년이 12개월이 아니라 20개월이라고 상상해 보자. 우리는 1년이 금방 지나간다고 하소연한다. 시간이 빠르다. 다음 달이면 5월이다. 달 수가 많아지면 나이 한 살 먹는 속도가 덜 빠르게 느껴질까? 갑자기 궁금하긴 한데,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해서 상상의 나래를 ‘1년은 20개월’, 딱 여기까지만 펼치겠다.


1년이 20개월인 세상에서 ‘1729은 파이 데이와 더불어 수학자들을 위한 특별한 날이다1729.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는 수다. 하지만 이 네 자리 숫자는 수학자들에게는 뜻 깊은 수다1,729의 숨은 의미를 꿰뚫어 본 수학자가 라마누잔(Srinivasa Ramanujan)이다라마누잔은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수학자다.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라마누잔은 스스로 수학을 공부했으며 복잡한 수식을 공책에 적어 가면서 계산했다
















* 로버트 카니겔, 김희봉 옮김 수학이 나를 불렀다: 인도의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사이언스북스, 2000)




라마누잔은 자신이 직접 풀어서 증명한 수식과 정리들을 편지에 써서 영국의 수학자들에게 보냈다그의 비범한 능력이 영국에 알려지지만, 오만한 제국의 수학자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드프리 하디(Godfrey Harold Hardy)는 생각이 달랐다. 당시 하디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하디는 생소한 증명 방식에 흥미를 느꼈고, 인도 청년을 영국으로 초청한다. 하지만 라마누잔은 단 한 번도 인도 밖으로 떠나본 적 없는 힌두교 신자였다. 우여곡절 끝에 라마누잔은 영국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라마누잔은 하디와 함께 연구했고, 하디는 그의 후견인을 자처했다. 그러나 영국은 여전히 오만했으며 유독 라마누잔에게 쌀쌀맞게 구는 제국이었다. 라마누잔은 채식주의자여서 영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다. 영국의 쌀쌀한 날씨는 라마누잔을 괴롭혔다. 몸은 얼어붙어 있어도 정신만은 건강한 상태를 유지했다. 수학을 좋아하는 열정은 수식과 기호로 가득한 라마누잔의 삶이 차갑게 식지 않도록 데워 주었다.
















* G. H. 하디, 정회성 옮김 어느 수학자의 변명: 수학을 너무도 사랑한 한 고독한 수학자 이야기(세시, 2016)




몸이 허약해진 라마누잔은 병원에 입원했고, 자주 병문안을 온 하디와 수학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었다. 하디는 병원에 가기 위해 타고 온 택시 번호가 ‘1,729’였다고 말했다. 하디는 1,729를 평범한 택시 번호라고 했지만, 라마누잔은 매우 흥미로운 수라고 생각했다1,729서로 다른 두 개의 수를 세제곱 해서 더하는 방법이 두 가지인 가장 작은 수1,729를 눈여겨본 라마누잔에 대한 일화는 하디의 자서전 어느 수학자의 변명에 나온다. 수학자들은 1,729 하디-라마누잔 수또는 택시 수(Taxicab number)라고 부른다.

















* 스토 야스시, 전종훈 옮김 《최소한의 수식으로 이해하는 우주의 수학》 (플루토, 2024)


* 콜린 스튜어트, 오혜정 옮김 《숫자로 끝내는 수학 100: 100개의 숫자로 이해하는 수학!》 (지브레인, 2016)




1,729가 유명해지면서 라마누잔은 천재 수학자로 알려지게 된다. 그는 또 원주율을 구하는 수식을 발견했는데, 여전히 수학자들은 그가 어떻게 수식을 생각했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일본의 천체물리학자 스토 야스시(須藤 靖)의 책 우주의 수학에 라마누잔이 증명한 원주율 구하는 식이 나온다. 스토 야스시는 이 책에서 수식이 아름답다고 예찬하면서도 라마누잔이 풀이한 수식은 복잡해서 아름다움이 느끼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그러면서 라마누잔의 천재성을 극찬한다. 지금도 남아 있는 라마누잔의 공책에 온갖 수학 공식과 정리들이 채워져 있다. 수식을 푸는 과정이 생략된 채 결과만 적혀 있다. 라마누잔은 힌두교에 숭배받는 나마기리(Namagiri)라는 여신이 꿈속에 나타나 수학을 가르치고, 잠에서 깨고 나면 여신이 알려준 것을 공책에 적는다고 했다.


택시 수 1,729와 여신이 가르쳐준 것을 받아 적었다는 공책들. 라마누잔의 비범한 능력을 강조할 때 항상 언급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과학자의 천재성만 보여주는 과학의 신화화는 과학을 연구하는 과정 중에 발생되는 일들(측정 오류, 예상하지 못한 변수 등)을 생략한다. 미발표된 라마누잔의 공책은 총 네 권이다. 네 권의 공책 속에 한 번도 발표된 적이 없는 공식들이 있다고만 알려졌는데, 잘못 증명된 공식들도 포함되어 있다.


라마누잔은 1,729가 특별한 수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라마누잔의 공책에 1,729를 계산한 기록이 있다. 라마누잔은 자신이 직접 푼 계산 방식을 기억하고 있어서 하디에게 1,729를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1,729를 하디-라마누잔 수라고 부를 수 없다. 영국의 천문학자이자 과학 해설자 콜린 스튜어트(Colin Stuart)의 견해에 따르면 1657년에 수학자들이 1,729를 연구한 기록이 남아 있다. 1,729특별한 수’일 뿐, ‘특별한 수학자의 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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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4-22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마누잔. 낯설지가 않네. 언젠가 이 사람 전기영화를 본적이 있는 거 같은데 제목이 생각이나질 않는다. 영화 괜찮았는데.

cyrus 2024-05-01 20:14   좋아요 0 | URL
영화 제목이 <무한대를 본 남자>예요. ^^

stella.K 2024-05-02 09:59   좋아요 0 | URL
아, 맞아. 무한대를 본 남자! 너도 봤나?

cyrus 2024-05-04 11:26   좋아요 0 | URL
영화 안 봤어요. ^^;;

카스피 2024-04-23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마누잔 이분 저도 어느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너무 일찍 돌아가셨더군요

cyrus 2024-05-01 20:16   좋아요 0 | URL
네, 만약 라마누잔이 오래 살았다면 가우스와 오일러에 견줄만한 천재 수학자로 알려졌을 거예요. 영화 제목은 <무한대를 본 남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