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오늘 고전 읽기 모임에 안 오려고 했었다. 한 주에 한 번 플라톤(Plato)의 대화편을 읽고 있다. 오늘이 플라톤 대화편 읽기 마지막이다. 1월 고전 읽기 모임의 대미를 장식하는 대화편은 《향연》이다. 글은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2년 차]
* 플라톤, 천병희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 (도서출판 숲, 2012년)
* 플라톤, 강철웅 옮김 《향연》 (아카넷, 2020년)
《향연》을 다 읽긴 했다. 그런데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제에 대해 내가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향연》의 주제는 ‘사랑’이다.
* 플라톤, 강철웅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명》 (아카넷, 2020년)
오늘 모임에 참석한 분들은 플라톤 특유의 긴 문장을 눈으로 따라가느라 힘들었지만, 그래도 사랑에 대한 향연 참석자들의 견해 일부에 공감한다고 했다. 나도 이 향연에 껴서 사랑에 대한 내 견해를 밝히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연애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 또한 지혜라고 했다(《소크라테스의 변명/변론》). 연인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서로 다른 내 삶과 연인의 삶이 포개진 채 살아보면 사랑이라는 감정 상태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러면서 내 몸과 정신이 건강해지는 연애관이 정립된다. 연애 경험이 없는 사람이 사랑을 논할 자격이 없다는 건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연인을 만나 사랑을 몸과 마음으로 느껴보지 않았으면서 사랑은 이렇다 저렇다고 말하는 태도는 솔직하지 못하다. 난 아직 사랑을 모른다. 나의 무지함을 알고 있어서 오늘 모임에 참석해야 말지 고민했다.
소크라테스는 ‘사랑꾼’이다. 그는 자신과 성격이 정반대이자 정념에 쉽게 사로잡히는 알키비아데스(Alkibiades)를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사랑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었다. 그는 전쟁터에서 다친 알키비아데스를 구출했다. 동료 장군들은 전쟁 승리에 기여한 공로로 알키비아데스가 상을 받아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소크라테스의 용기에 감탄한 알키비아데스는 장군들에게 정작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소크라테스라고 건의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상을 양보한다(《향연》 220e, 천: 368쪽). 이 대목은 소크라테스의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연인의 자존감을 높여 주는 사랑꾼다운 모습이기도 하다.
* 아몬드 단거, 장미성 옮김 《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 철학자의 탄생》 (글항아리, 2022년)
플라톤의 대화편은 소크라테스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한 사람의 생애를 정확하게 기술하기가 어렵다. 여전히 소크라테스는 수수께끼에 가려진 철학자다. 비록 가설이지만, 《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는 사랑 앞에서 진지한 소크라테스를 보여준다. 소크라테스는 ‘못생긴 외모’에 ‘육체적 욕망을 경계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노년기에 들어선 소크라테스의 모습만 보고 있다. 《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대화편과 기타 문헌들을 근거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소크라테스’를 새롭게 복원한다. 젊은 소크라테스는 행동이 민첩한 군인이었고, 레슬링 선수였고,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했고, 연인을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 플라톤, 이기백 옮김 《크리톤》 (아카넷, 2020년)
* 플라톤, 전헌상 옮김 《파이돈》 (아카넷, 2020년)
그동안 나는 《크리톤》과 《파이돈》에 묘사된 소크라테스의 견해를 따져가면서 읽었다. 《크리톤》에서 자신의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소크라테스가 나약해 보였다. 《파이돈》의 소크라테스는 영혼이 불변하다고 주장하면서 눈에 보이는 현상인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향연》을 읽었을 땐 그의 말을 묵묵히 듣기만 했다. 만약 플라톤이 《향연》에 부제를 달았다면 이렇게 썼을 것이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향연에 들어오지 마라.’ [주] 운이 좋게도 사랑을 진지하게 논하는 자리인 《향연》에 나는 한 수 접고 들어갈 수 있었다. 짧든 길든 연애를 하고 난 후에 다시 《향연》에 참석하고 싶다. 과연 그날이 올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주] 플라톤이 세운 학교인 아카데미아(academia)의 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다만, 이 기록의 출처가 플라톤이 살았던 시대가 훨씬 지나고 나온 거라서 실제로 있었던 문구인지 불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