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책]방
EP. 22
희곡 가게 ‘인스크립트’
2023년 12월 9일 토요일
스마트폰 화면에 뜬 인스타그램 광고 대부분은 불필요한 정보다. 하지만 책방 광고는 좋아한다. 내가 많이 팔로우한 계정은 책방이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은 다른 지역에 있는 책방 관련 광고를 내게 보여준다.
6월 24일 토요일은 서울 독서 모임 <달의 궁전> 정기 모임 날이었다. 금요일 새벽에 책을 읽다가 잠깐 인스타그램을 확인했다. 책방 광고 하나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토요일 오전 10시에 ‘희곡 전문 서점 <인스크립트>(Inscript)가 처음으로 문을 연다는 광고였다. 특정 분야의 책만 파는 책방을 운영하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소설보다 더 안 팔리는 희곡 전문 서점이 생기다니. <인스크립트>가 어떤 곳인지 호기심이 생겼다. 이 서점을 차린 주인장이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책방 주인장은 아마도 연극 공연 일에 종사한 분일 거로 예상했다.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인스크립트>로 갔다.
<인스크립트>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다. 희곡뿐만 아니라 영화 관련 서적도 판다. 서점이 활짝 열기 전에 이미 연희동에 도착했다. 처음 와본 동네라서 서점 주변 골목을 걸었다. 아침을 먹지 않아서 배가 고프긴 했지만, 서점에 대한 호기심이 식욕을 누그러뜨렸다. 10시가 되자마자 서점으로 향했다. 나는 희곡 전문 서점 <인스크립트>에 첫 번째로 방문한 손님이 되었다.
<인스크립트> 주인장은 젊은 부부다. 부부는 날 처음 만났을 땐 대학로에서 연극 공연을 보러 다닌다고 소개했다. 그래서 나는 두 분이 희곡 읽기와 연극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하는 마니아인 줄 알았다. 사실 부부는 연극 배우였다. 어쩐지 부부의 외모가 출중했다. 그날 이후로 서울에 가면 무조건 <인스크립트>에 들렀다. 서울에서 추석 연휴를 만끽했던 기간에도 <인스크립트>에 갔다.
* 이예본, 임선영, 윤소정 외 《2023 봄 작가, 겨울 무대 희곡집》 (지만지드라마, 2023년)
[책 소개] 신춘문예 희곡 부문 등단 신진 극작가 9명의 작품 수록. 이예본의 『제로쉴드제로』는 기후 변화로 인해 지구가 황폐해지고, 거주지가 사라진 2053년을 배경으로 한 희곡이다. ‘제로쉴드’는 기후 ‘열대화’ 시대에 상용화된 공기 청정기의 이름이다. ‘제로쉴드’가 없으면 사람은 숨을 쉴 수 없다.
남은 모든 날 중에 오늘이 가장 맑은 날씨일지도 몰라.
(이예본, 『제로쉴드제로』 중에서,
《2023 봄 작가, 겨울 무대 희곡집》 수록)
서울 날씨가 제대로 미쳤던 지난주 토요일, 마지막으로 방문한 책방이 <인스크립트>였다. 책방에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고, 남편이 책방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진지한 대화를 나누면서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대화 주제는 희곡과 연극이었다. 요즘 연극 감상문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배우로 활동 중인 책방 주인장에게 연극 감상문 쓰는 방법을 물어보고 싶었다. 그분은 내가 책을 좋아하니까 공연을 보고 느낀 것을 책 내용과 연관해서 써보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연극 감상은 결국 보는 사람이 느끼는 것이라서 있는 그대로 써도 된다고 했다.
남편 주인장이 내게 희곡 두 권을 추천했다. 포르투갈 극작가 티아구 호드리게스(Tiago Rodriguese)의 《소프루》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의 《태양과의 대화》(이계성 옮김, 미디어버스, 2023년)다.
* 티아구 호드리게스, 신유진 옮김 《소프루》 (알마, 2023년)
《소프루》는 포르투갈어로 ‘숨’을 뜻한다. 이 희곡의 주인공은 프롬프터(prompter)다. 프롬프터는 무대 뒤에서 배우를 위해 대사를 불러주거나 알려주는 사람이다. 남편 주인장의 설명에 따르면 외국에는 전문 프롬프터가 많이 활동하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극작가로 알려지기 전에 프롬프터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점점 프롬프터가 사라지는 추세란다. 《소프루》의 프롬프터는 마지막 숨을 모조리 내쉬는 듯한 심정으로 연극과 함께 살아온 과정을 말한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태국의 영화감독이다. 《태양과의 대화》는 챗GPT와 함께 만든 희곡이다.
* 이오진 《연애사》 (자큰북스, 2015년)
* 나탈리 사로트 《아무것도 아닌 일로》 (지만지드라마, 2023년)
* 콤 드 벨시즈 《너 자신이 돼라》 (지만지드라마, 2022년)
남편 주인장이 추천한 희곡 두 권과 내가 고른 희곡 세 권을 샀다. 《소프루》를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완독(나에게만 적용되는 완독의 조건에 서평 쓰기가 포함되어 있다. 책을 다 읽었어도 책에 대한 견해를 담은 글을 쓰지 않았으면 안 읽은 거로 간주한다)하지 않은 상태라서 책 사진만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