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없는 곳자연은 황폐하다.

 

윌리엄 블레이크천국과 지옥의 결혼』 지옥의 잠언’ 중에서, 서강목 옮김 -





The Haunter of the Dark러브크래프트(H.P. Lovecraft)가 죽기 한 달 전에 완성된 마지막 작품이다. 소설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이 쓴 일기 내용을 토대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프로비던스(Providence)에 거주하는 공포소설 작가 로버트 해리슨 블레이크(Robert Harrison Blake). 그는 아무도 살지 않은 음산한 교회에 호기심을 느낀다. 교회 건물에 들어간 블레이크는 지하실을 조사하다가 상자를 발견한다. 그가 열어본 상자 속에 빛나는 트라페조헤드론(Shining Trapezohedron)’[주1]이라는 정체불명의 물체가 있다. 블레이크의 일기에 그 물체와 관련된 구절이 있다. 상자 속 물건을 응시함으로써 어둠 속의 손님(The Haunter of the Dark)을 깨워 버렸다.”[주2] 블레이크는 상자를 열어본 일이 분명 잘못됐음을 인지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대구 장르문학 전문 책방 <환상문학> 여름 호러 독서 모임 선정 도서]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김지현(아밀) 옮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크툴루의 부름 외 12》 (현대문학, 2014)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정진영(정탄) 옮김 러브크래프트 전집 1》 (황금가지, 2009)




로버트 H. 블레이크는 러브크래프트와 편지 교류를 할 정도로 친분 있는 작가 로버트 블록(Robert Bloch, 로버트 블로흐)을 모티프로 한 인물이다. 로버트 블록은 별에서 찾아온 자(The Shambler from the Stars, 1935)라는 단편소설에서 선배 작가 러브크래프트를 모티프로 한 인물을 등장시켰다주인공은 무명 작가로, 뉴잉글랜드 출신의 신비주의적 몽상가(mystic dreamer)’로 묘사된다. 러브크래프트는 뉴잉글랜드 출신이며 생전에 무명 작가였다. 러브크래프트는 블록을 위한 후속작 The Haunter of the Dark를 썼다. 러브크래프트는 로버트 블레이크를 잔인하게 죽임으로써 (소설에서) 자신을 죽인 후배 작가를 향한 존경심을 드러냈다그래서 러브크래프트 전집 1에 수록된 The Haunter of the Dark제목은 러브크래프트의 의도가 반영된 누가 블레이크를 죽였는가문단으로부터 러브크래프트 문학의 계승자로 인정받은 블록은 1950년에 또 다른 후속작 The Shadow from the Steeple(첨탑의 그림자)를 발표했다.


로버트 블레이크가 로버트 블록과 연관된 가공인물이라는 사실은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에 열광하는 독자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블레이크가 화가라는 사실을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거나 혹은 아예 모르는 듯하다. 소설에 분명히 로버트 블레이크는 신화, , 공포, 미신에 전념했던 작가이자 화가(For after all, the victim was a writer and painter wholly devoted to the field of myth, dream, terror, and superstition)로 언급된다꿈과 신화에 매료되어 상상하기를 좋아한다는 점. ‘비현실적인 세계를 소설과 그림으로 묘사하기를 열정적으로 추구했지만, 결국 환영에 시달리다가 미쳐버린 점. 이러한 로버트 블레이크의 기이한 삶과 별난 성격은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를 떠올리게 한다.
















* 윌리엄 블레이크, 서강목 옮김 블레이크 시선(지만지, 2012)

* [절판] 윌리엄 블레이크, 김종철 옮김 천국과 지옥의 결혼(민음사, 1990)

 




윌리엄 블레이크와 러브크래프트를 이어주는 공통점이 많다. 시를 썼다. ‘미치광이소리를 들을 정도로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두 사람의 작품들은 동시대인들에게 비웃음을 샀거나 무시당했지만, 죽은 이후에 재평가받았다



































* 아당 비로, 카린 두플리츠키 미술관에 가지 전에: 리 보는 미술사, 르네상스에서 아르누보까지(미술문화, 2022)

 

* 노승림 예술의 사생활: 비참과 우아(마티, 2017)


* 나카노 교코, 이연식 옮김 무서운 그림 2: 매혹과 반전의 명화 읽기(세미콜론, 2009)

 

* 데이비드 블레이니, 강주헌 옮김 낭만주의(한길아트, 2004)




윌리엄 블레이크는 어린 시절부터 천사를 실제로 봤다고 말했을 정도로 영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가 쓴 글과 제작한 판화의 공통 주제는 꿈과 신화다. 자신의 영적 체험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비현실적인 현상과 세계를 묘사했다. 블레이크의 그림에 원근법은 없으며 인물 형태도 단순하다. 그림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어둡고, 기괴하고, 우울한 편이다.


















* [절판]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공포 문학의 매혹(북스피어, 2012)




내성적인 성격의 러브크래프트는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만 지냈다. 집과 그곳에 있는 책들은 러브크래프트에게는 지상 낙원이었다. 러브크래프트는 왕성한 독서를 통해 집 밖 세상을 이해했고, 이를 토대로 자신만의 시선이 반영된 소설을 썼다. 러브크래프트는 특이하고 난해한 윌리엄 블레이크의 글과 그림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가 쓴 공포 문학의 매혹은 러브크래프트 본인의 독서 편력으로 구축된 공포 문학 개론서. 이 책에 러브크래프트가 생각하는 공포 문학의 정의와 공포 문학 작가들의 계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러브크래프트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혼돈에 빠진 환영이 영국식 기괴한 이야기의 전형 중 하나라고 언급한다. 환영은 러브크래프트가 소설 속 인물을 설정할 때 자주 쓰는 개념이다. The Haunter of the Dark의 로버트 블레이크처럼 다른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 주인공들도 처음에 불가사의한 현상과 물체에 호기심을 느낀다. 하지만 위험한 호기심은 그들을 혼돈에 빠뜨려 파멸로 이르게 한다. 계속되는 환영에 혼란스러워하다가 끝내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인다.






윌리엄 블레이크

벼룩 유령

1819~1820년경




생전에 혹독한 평가를 받은 윌리엄 블레이크는 낭만주의 문학과 낭만주의 미술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시인 겸 화가로 평가받는다. 블레이크의 시선은 눈앞에 있는 현실로 향해 있지 않았다. 그가 보고 싶은 것은 일상 너머 상상, 즉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세계다






























* 단테 알리기에리,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신곡(민음사, 2007)

* 존 밀턴, 윌리엄 블레이크 · 귀스타브 도레 그림 실낙원(CH북스, 2019)




몽상가 블레이크는 단테(Dante Alighieri)신곡과 존 밀턴(John Milton)실낙원에 매료되었다. 블레이크는 신곡실낙원삽화 제작 작업을 착수하지만, 신곡삽화만은 완성하지 못했다. 블레이크의 삽화는 글자로 된 텍스트와 과장된 상상력이 절묘하게 결합한 작품이다. 블레이크는 삽화를 통해 자신만의 지옥, 연옥, 천국, 에덴동산을 새로 만들었다.

 

러브크래프트의 묘비명은 I’m Providence(나는 프로비던스)”. 외로운 몽상가가 죽을 때까지 품에 안은 프로비던스는 원래 을 뜻한다. 러브크래프트는 크툴루 신화의 모태를 만든 신이라면 윌리엄 블레이크는 천국과 지옥을 다시 만든 상상력의 신이다.






[1] 빛나는 트레피저헤드론(정진영 옮김, 황금가지). 우리말로 번역된 명칭은 빛나는 부등변다면체.

 

[2] 김지현 옮김, 어둠 속의 손님중에서,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크틀루의 부름 외 12(현대문학, 2014),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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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8-15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영화는 봤나?

cyrus 2023-08-21 20:43   좋아요 1 | URL
안 봤어요. 제목만 알아요.. ㅋㅋㅋㅋ

stella.K 2023-08-21 20:47   좋아요 0 | URL
내 그럴 줄 알았지.ㅎㅎ
꼭 봐라. 명작이다.

cyrus 2023-08-21 20:48   좋아요 1 | URL
드디어 저도 넷플 계정이 생겼어요. 그 영화 있으면 볼께요. 오랜만에 영화 리뷰를 써볼까 생각 중이에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