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에 반대한다 이후 오퍼스 7
수잔 손택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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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평점


4점  ★★★★  A-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프랑수아즈 사강 -

 


항상 출근하기 전 오늘 읽어야 할 책들의 목록을 마음속에 새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읽고 싶은 새로운 책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두 손이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마음은 책 밭에 가 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침에 만든 도서 목록은 온데간데없다.

 

정지돈의 소설집 인생 연구를 다시 읽기 전에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를 먼저 읽었다. 나는 책 속 문장이나 묘사를 해석하는 일을 즐기는 편이다. 그게 내 독서 방식이며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책 읽는 일상을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할 때마다 해석에 반대한다에 실린 동명의 글을 찾아서 읽는다.

 

일요일에 내가 쓴 <안젤라를 이해하기 위하여>인생 연구에 수록된 소설 <우리의 스크린은 서로를 바라본다> 속 주인공 안젤라를 해석한 글이다. 손택은 해석의 근본적인 임무를 번역 작업으로 비유한다. 독자는 작품, 즉 책을 읽는 순간 번역자인 동시에 해석자가 된다. 안젤라는 사실 이런 사람이다, 정 작가는 안젤라의 수수께끼 같은 삶을 관찰하듯이 묘사하여 독자들에게 인간적이지 않은 비인간적존재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독자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분석해서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우리는 작품을 해석하는 일 또한 독자가 할 수 있는 창조적인 활동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해석이란 작품을 적극적으로 읽기 시작하면 작가가 작품 속에 숨겨놓은 메시지를 열심히 찾아서 발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택은 이처럼 작품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해석에 반대한다. 그녀가 비판하는 해석의 문제점이란 작품 속 내용의 진정한 의미를 확인하거나 내용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에 길든 해석자는 자신의 임무가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독자를 위한 일이라고 인식한다.

 

책을 읽고 난 후 서평이나 독후감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독자에서 해석자로 변신한다. 하지만 내가 해석하면서 도출한 결론이 항상 옳다고 여기지 않는다. 독법(讀法)이 독법(毒法)이 돼선 안 된다. 손택은 의미 찾는 일에만 골몰하는 해석 행위를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해석을 무용한 행위로 보지 않는다.

 


 해석 자체도 분명히 평가받아야 한다. 어떤 문화적 맥락에서 보면 해석은 해방 행위다. 거기서 해석은 수정하고 재평가하는, 죽은 과거에서 탈출하는 수단이다. (25)


 

<안젤라를 이해하기 위하여>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쓴 모든 글은 수많은 책을 읽고 해석한 것들을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내 글은 죽은 과거에 쓴 것이며 평가받아야 할 대상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편견의 색안경을 제대로 벗지 못해 책을 잘못 읽을 수 있다. 내 글에 사실이 아닌 가짜 정보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책 읽는 해석자로 살아갈 것이다. 내가 지향하는 해석자는 단순히 책을 읽고 해석하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책을 해석해서 정리한 내 글을 지우고, 다시 고쳐 쓰는 사람이다. 나는 내 해석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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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13 0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는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삽하나 2023-07-09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로그 제목 + 리뷰 제목/메시지에 로큰롤 스피릿이 충만하네요!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