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페미니즘 독서 모임 레드스타킹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여성과 과학 탐구》 두 번째 읽기 모임(2022년 7월 23일, 카페 스몰토크) 후기.
[레드스타킹 7월에 읽은 책]
* 임소연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여성과 과학 탐구》 (민음사, 2022)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여성과 과학 탐구》 두 번째 읽기 모임이 한 주 연기되는 바람에 독서 분량이 늘어났어요. 원래 읽어야 할 범위는 4~6장이었어요. 여기에 세 장이 더 추가되어 9장까지 읽어야 했습니다. 4장은 한때 과학이 주목하지 못한 태반의 역할을 중심으로 임신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5장은 임신과 태아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아버지의 역할을 살펴봅니다. 6장은 난자 냉동 기술의 실태와 한계를 소개합니다. 7장과 8장은 여성 차별을 조장하는 인공지능 기술과 로봇 기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논합니다. 9장은 진화론을 옹호하면서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비판해온 페미니스트 진화론자들의 업적을 보여줍니다.
* 찰스 로버트 다윈, 장대익 옮김 《종의 기원》 (사이언스북스, 2019)
* 찰스 로버트 다윈, 김관선 옮김 《종의 기원》 (한길사, 2014)
* 장바티스트 드 파나피외 《가볍게 꺼내 읽는 찰스 다윈》 (북스힐, 2020)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은 들고 다니기 편한 책이라서 저는 틈만 나면 이 책을 여러 번 읽었어요. 계속 읽어 보니 아쉬운 대목이 한두 개 보였어요. 저자는 9장에서 ‘진화론에 호의적이지 않은 페미니스트’라는 통념을 반박하기 위해 ‘1세대 다윈주의 페미니스트’를 언급합니다(134~136쪽). 1세대 다윈주의 페미니스트는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의 저서 《종의 기원》에 나온 진화론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 편은 신이 7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고, 최초의 인간 아담(Adam)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은 외로운 아담을 위해 그의 갈비뼈로 최초의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이름 없는 여자는 선악과를 먹은 죄로 아담과 함께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쫓겨나기 직전에 아담은 여자에게 ‘하와(Ḥawwāh)’라는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하와는 ‘생명’을 뜻하는 히브리어입니다. 유럽인들은 세상과 인간을 신의 창조물로 보는 성경 속 내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 오래된 믿음을 뒤흔들어놓은 책이 바로 《종의 기원》입니다. 다윈은 이 책에서 인간과 동물이 하나의 조상 종에게 나와서 어떻게 진화했는지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면서 설명합니다.
《종의 기원》을 읽은 페미니스트들은 진화론을,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보는 성경의 권위에 맞설 수 있는 지적 무기로 받아들였습니다.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클레망스 루아예(Clémence Royer)는 《종의 기원》을 자국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루아예는 진화의 개념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진화론에 열광한 남성 지식인들처럼 진화를 ‘진보’와 같은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우주지감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4월에 읽은 책]
*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공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 (디플롯, 2021)
* 다니엘 S. 밀로, 이충호 옮김 《굿 이너프: 평범한 종을 위한 진화론》 (다산사이언스, 2021)
*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 (사이언스북스, 2009)
* 앤 커, 톰 셰익스피어 공저, 김도현 옮김 《장애와 유전자 정치: 우생학에서 인간게놈프로젝트까지》 (그린비, 2021)
* 김호연 《유전의 정치학: 강제 불임에서 나치의 대학살까지》 (단비, 2020)
* [품절] 앙드레 피쇼 《우생학: 유전학의 숨겨진 역사》 (아침이슬, 2009)
다윈이 생각한 진화는 모든 종이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종은 다른 종과 협력하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공진화). 그는 자연이 점점 더 좋아지는 쪽으로 발전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루아예를 비롯한 일부 진화론자들은 진화가 ‘강한 자만 살아남도록’ 작동된다고 믿었습니다. 또 다윈의 의도와 완전히 다른 적자생존식 진화론을 강조하면서 사회 전체에 적응하려고 했습니다. 진화에 잘 적응한 강한 자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거죠. 그들은 진화에 적응하지 못해 밀려난 존재를 ‘신체적으로 약하고 열등한 자’로 규정했습니다. 그런 존재의 등장을 막거나 제거하는 사회 정책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진화의 개념을 오용한 진화론자들은 우생학 전파에 동참했습니다.
루아예는 우생학적 관점으로 《종의 기원》을 해석했고, 자신만의 견해를 《종의 기원》 프랑스어 번역본에 추가했습니다. 다윈은 루아예가 번역한 《종의 기원》을 읽다가 크게 실망했습니다. 루아예는 우생학과 관련된 구절과 참고문헌이 삭제된 2판 번역본을 내놓았지만, 다윈의 분노를 달래지 못했습니다. 다윈은 다른 프랑스인 번역가에게 《종의 기원》 번역을 맡겼습니다.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의 저자 임소연은 여성이 ‘진화론의 오랜 친구이자 비판자’였다고 주장합니다(134쪽). 글쎄요, 저는 우생학에 열광한 페미니스트들은 진화론의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읽기 모임에 꾸준히 참석한 분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책의 한계가 하나둘씩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저자가 각 장의 글에서 다룬 주제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아서 아쉽다는 평이 있었습니다. 책은 총 열두 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열두 편의 글은 원래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아무래도 지면상 한계 때문에 저자가 길게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자는 ‘과학은 여성의 친구’임을 여러 차례 강조합니다. 글에서 드러난 저자의 태도가 일방적으로 독자에게 가르치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느껴졌다는 분이 있었습니다.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은 ‘과학과 페미니즘’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방대한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한 책이긴 합니다만, 이 책 한 권만 읽고 주제를 갈무리할 수 없습니다. 이 책에 다루지 못한 내용이 남아 있거든요. 따라서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은 비판적인 읽기가 필요한 책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