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에게 노란 집은 개인 작업실이 있는, 그런 단순한 거처가 아니다. 빈센트는 노란 집에서 자신과 친한 동료 예술가와 함께 생활하면서 작업하길 원했다. 1888년 빈센트는 아를(Arles)에 있는 노란 집에 네 개의 방을 빌렸고, 폴 고갱(Paul Gauguin)을 초대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은 시시때때로 부딪혔다. 그해 1223일 빈센트는 정신 발작을 일으켜 고갱과 다툰 끝에 면도칼로 자기 귀를 잘랐다.


빈센트는 본인의 충동적인 성격과 주관이 뚜렷한 작업 방식을 충분히 이해할 줄 아는 넓은 포용력을 가진 화가를 만났어야 했다. 그러면 노란 집은 예술이 일상화된 멋진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노란 집이 마음에 든 빈센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살 수 있고, 숨 쉬고, 명상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

















* 멀리사 와이즈 글, 케이트 루이스 그림 예술가가 사는 집: 지베르니부터 카사아술까지 17인의 예술가와 그들이 사는 공간(아트북스, 2021)




대부분 예술가는 빈센트처럼 자신만의 노란 집을 꿈꾼다. 자신의 예술적 아이디어를 마음껏 실험할 수 있으면서도 다른 예술가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원한다예술가가 사는 집은 예술가의 개성과 창작 열정이 가득한 집의 내부를 글과 그림으로 소개한 책이다이 책의 공동 저자는 직접 예술가의 집을 방문했는데 한 사람이 그곳에 관한 이야기를 썼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집 안 풍경을 관찰하면서 그렸다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지거나 크게 달라진 예술가의 집은 정확히 재현하기 힘들다. 그런 경우에는 남아 있는 사진과 각종 기록을 참고하면서 그렸다고 한다.


이 책에 빈센트의 노란 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글쓴이와 그린 이는 빈센트의 미적 감각이 반영된 노란 집의 내부 분위기를 묘사하기 위해 빈센트가 동생 테오(Theo van Gogh)에게 보낸 편지를 참고했으며 편지글을 인용하기도 했다.



 “오늘 아침에 해가 뜨기 한참 전부터 창문으로 샛별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시골을 보았다. …… (샤를프랑수아) 도비니와 (앙리) 루소가 한 일이 바로 그것이다.”  


(빈센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예술가가 사는 집151)



빈센트는 바르비종 화파(École de Barbizon)를 존경했으며 그들의 화풍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바르비종은 파리 근교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이 마을 근처에 퐁텐블로(Fontainebleau) 숲이 있다. 이 숲의 경관과 시골 풍경에 매료된 화가들은 이곳에 정착해 그림을 그렸다. 그들을 가리켜 바르비종 화파라고 부르는데, 가장 대표적인 화가가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빈센트가 편지에 언급한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Charles François Daubigny) 역시 바르비종 화파에 속한 화가다.


빈센트는 편지에 도비니와 함께 루소를 언급했다. 예술가가 사는 집에 인용된 편지글에는 앙리 루소(Henri Rousseau)’라고 표기되어 있다. ‘루소라는 성을 가진 유명한 프랑스인 두 명이 있다.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와 앙리 루소다. 장 자크 루소는 너무나도 유명한 사상가라서 여기서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앙리 루소는 세관원 출신의 화가다.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열대 지방의 풍경을 상상해서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앙리 루소라고 표기한 사람이 책의 저자인지, 아니면 책을 번역한 역자인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빈센트가 언급한 루소는 앙리 루소가 아니다. 성이 ‘루소’인 화가가 또 있다. 그 사람은 바로 테오도르 루소(Théodore Rousseau)테오도르 루소는 바르비종 화파의 지도자로 평가받는 화가다.


















* 빈센트 반 고흐, 정진국 옮김 고흐의 편지(펭귄클래식코리아, 2011)




편지글이 쓰인 정확한 날짜는 나오지 않지만, 빈센트가 생 레미(Saint Rémy)에 있는 정신병원에 있을 때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펭귄클래식 시리즈로 나온 고흐의 편지 2에 생 레미 시절에 쓴 고흐의 편지가 실려 있다. 188995일 또는 6일에 동생에게 보낸 고흐의 편지에 테오도르 루소를 포함한 바르비종 화파의 화가들이 언급된 내용이 있다.



 엉뚱한 일도 일어났어. 마네트 살로몽[주]에 현대미술에 관한 토론이 실렸는데, 어떤 화가와 또 한 사람이 무엇이 남게 될지이야기하면서 풍경화가들이 남을 거라고 하더구나. 이런 관점이 어느 정도는 입증된 셈이지. 이미 코로, 도비니, 뒤프레, 루소, 밀레는 풍경화가로 인정받고 있잖아.

 

(고흐의 편지 2179)



카미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는 바르비종 화파로 분류되지만, 그는 바르비종에 정착하면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며 풍경화뿐만 아니라 신화나 역사적인 일화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쥘 뒤프레(Jules Dupré)는 테오도르 루소와 친했던 바르비종 화파의 일원이다. 그러나 살롱 전에 여러 번 고배를 마신 테오도르 루소는 뒤프레가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을 정도로 명성을 얻게 되자 그와 절교했다.



















* 재원 편집부 엮음 카미유 코로(재원, 2005)

* [절판] 뱅상 포마레드 코로(창해, 2002)
































* 유니온아트 엮음 세계인이 사랑한 불멸의 화가 20: 장 프랑수아 밀레 자연과 농부(봄이아트북스, 2021)

 

* [절판] 김성진 엮음 인물로 보는 서양 미술사: 바르비종 미술(서림당, 2016)

 

* [절판] 전하현 바르비종과 사실주의: 바르비종 들먹여 뜬 7개의 별과 2개의 해(생각의나무, 2011)

 

* [절판] 노성두 외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 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들(아트북스, 2005)

 

* [절판] 즈느비에브 라캉브르 외 밀레(창해, 2000)




코로와 밀레를 포함한 바르비종 화파를 깊게 다룬 책이 많지 않다. 몇 권 있긴 한데, 현재 절판된 상태다.





[주] 프랑스의 소설가 공쿠르 형제(Goncourt Frères)가 쓴 소설. 책을 즐겨 읽은 빈센트는 공쿠르 형제의 작품을 좋아했는데, 공쿠르 형제가 쓴 소설책이 있는 정물화를 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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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ummii 2022-06-04 05: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절판 찾는 묘미^^b

cyrus 2022-06-05 18:54   좋아요 2 | URL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을 가지고 있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ㅎㅎㅎㅎ

얄라알라 2022-06-04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 새벽배송으로 받은 알라딘.책상자 속에.앙리루소 티셔츠가 있었는데.cyrus님.글에서.한번.더 만나고 가네요^^

cyrus 2022-06-05 18:56   좋아요 1 | URL
제가 좋아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 앙리 루소예요. ^^

mini74 2022-06-04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면 바르비종파 그림들 , 밀레그림을 고흐가 많이 모사했네요. 고흐도 속하고 싶었던걸까요 아니면 바르비종과 비슷한 화파를 고갱과 만들고 싶었던 걸까요 절판된 책들 읽고싶어요. 도서관 검색이라도 해봐야겠어요. *^^*

cyrus 2022-06-05 19:00   좋아요 1 | URL
빈센트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이해해 줄 동료 화가들을 만나고 싶었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