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은 대체로 불길한 느낌을 만들어주는 색이다. 밝은 분위기와 정반대로 칙칙하다. 그렇지만 몇몇 화가는 검은색이 최고의 색이라면서 추켜세웠다. 르누아르(Renoir)는 화려한 색채로 행복한 일상과 젊은 여성을 주로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검은색을 잘 안 쓸 것 같은 그가 검은색을 색의 여왕이라고 했다. ‘무색(無色)’이라 하면 투명한 흰색을 떠올린다. 하지만 르누아르 이전에 활동한 화가들은 검은색을 무색으로 여겼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이 보기에 검은색은 빛이 없는 상태일 뿐이다. 그걸 색이라고 봐야 할 이유가 없었다. 검은색을 무시한 화가들의 생각이 틀린 건 아니다. 물리학적 관점에서 보는 검은색은 색의 부재이기 때문이다.

 














 

* 헤일리 에드워즈 뒤자르댕 검정: 금욕과 관능의 미술사(미술문화, 2021)

 

 


검은색에 대한 인식은 문화에 따라 다르다. 또 시대가 변할수록 검은색의 상징도 달라졌다. 해시태그 아트북(hashtag art book)’ 시리즈 첫 번째 책인 검정: 금욕과 관능의 미술사는 검은색은 그저 어둡기만 한 단색이라는 편견을 깨뜨린다. 검은색이 권력과 우아함을 상징하는 색으로 여기던 시대가 있었다. 차분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검은색을 썼다. 검정은 고대 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검은색이 품어온 다양한 시각적 해석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프리즘(prism)이다. 우리는 예술적 프리즘에서 나온 검은색에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미국의 화가 제임스 휘슬러(James Whistler)는 그림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다. 검은색도 마찬가지다. 검은색은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런데 이 예술적 프리즘에 흠집이 있다. 그 흠집이란 오역과 오류다. 먼저 오역부터 언급해본다

 


 휘슬러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런던과 파리를 오가며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어머니가 미국에서 발발한 시민전쟁을 피해 그의 집에 왔을 때, 그는 매우 긴장했다고 한다. (38)

 

시민전쟁은 남북전쟁(Civil War)’의 오역이다.

 

80쪽 왼쪽 부분에 상징주의’가 무엇인지 간략하게 설명한 글이 있다. 글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상징주의는 1876에밀 졸라가 귀스타브 모로의 작품을 상징주의자의 작품이라고 명명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상적이고 염세적인 미학을 추구했던 상징주의 작가들은 몽상과 심령, 잠재의식에 심취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구스타프 클림트, 오딜롱 르동, 귀스타브 모로, 페르낭 크노프, 제임스 앙소르, 스테판 말라르메, 조리스 카를 위스망스 등이 있다. (80)



에밀 졸라(Emile Zola)는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는 인간의 삶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하여, 있는 그대로 묘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에밀 졸라 실험소설 외(책세상, 2007)




졸라의 논문 실험소설은 자연주의 문학의 등장을 알린 알린 선언문이다. 이 책에서 졸라는 자연주의 작가라면 상상력이 아닌 현실 감각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랬던 그가 공상을 중시한 상징주의를 인정한 작가라고? 졸라가 이 내용을 보면 졸라 어리둥절하겠는데. 본인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으니까.



















* 조이스 카를 위스망스 거꾸로(문학과지성사, 2007)


 


상징주의라는 명칭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장 모레아스(Jean Moréas). 그는 1886년에 상징주의 선언(Le Symbolisme)을 발표하면서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이론적 지도자가 된다.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를 상징주의자로 평가한 사람은 조이스 카를 위스망스(Joris-Karl Huysmans). 재미있는 사실은 상징주의자 위스망스가 문단에 등단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 자연주의자 에밀 졸라다. 위스망스는 모로의 작품들을 상당히 좋아했다. 위스망스의 대표작 거꾸로의 주인공 데 제셍트(Des Esseintes)는 고독한 탐미주의자다. 그는 모로의 그림 두 점을 사들인 다음, 매일 밤 모로의 그림을 보면서 몽상에 잠긴다.







* [절판]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 상징주의 미술(열화당, 1987)

 

 


국내에 상징주의 미술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미술평론가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Edward Lucie-Smith)상징주의 미술이 전부다. 스미스는 이 책에서 상징주의 문학을 졸라와 같은 소설가로 대표되는 고압적인 자연주의에 대한 항거(58)’라고 평가한다. 상징주의 미술1987년에 나온 책이라 절판되었고, 알라딘에 등록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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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4-03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 책 예전에 미니님 리뷰로 봤었는데 또 보니 반갑네요~! 검정색이 불길한건 까마귀 때문일까요? 😅 검은색이 부재 라고 볼 수도 있지만 또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니 예술은 신비한거 같아요~~!

전 그래도 옷 살때는 검정색을 즐겨삽니다 ㅋ

cyrus 2022-04-09 10:57   좋아요 2 | URL
저 같은 패션 테러리스트는 검은색 옷을 선호해요.. ㅎㅎㅎㅎ 검은색 옷만 있으면 다른 색깔의 옷을 고를 필요가 없거든요.. ^^;;

Angela 2022-04-04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검은색 수트 시크해요~ㅎ

cyrus 2022-04-09 10:57   좋아요 1 | URL
검은색 정장에 잘 어울리는 남자를 보면 부럽습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