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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트림 물리학 - 수식 없이 읽는 여섯 가지 극한의 물리
옌보쥔 지음, 홍순도 옮김, 안종제 감수 / 그린북 / 2022년 1월
평점 :
평점
2.5점 ★★☆ B-
《수학 없는 물리》라는 물리학 교재가 있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수학 없는 물리》 번역본은 12판이다. 제목만 믿고 이 책을 고른 사람들은 십중팔구 수학을 싫어할 것이다. 이 책에도 각종 수식이 나온다. 《수학 없는 물리》의 원제는 ‘Conceptual physics’다. 원제를 우리말로 그대로 옮기면 ‘개념적 물리학’이다. 《수학 없는 물리》를 쓴 폴 휴잇(Paul G. Hewitt)은 자신의 책으로 물리학을 공부하려는 독자들에게 수식을 외우는 것보다 물리학의 개념을 먼저 이해하라고 당부한다. ‘Conceptual physics’의 국역본 제목을 바꿀 수 있다면, 나는 ‘수학보다 물리’라고 붙여주고 싶다.
수식이 아예 나오지 않는 물리학 교재가 이 세상에 단 한 권이라도 있을까? 수학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 책을 간절히 원하겠지만, 그런 책으로 공부하면 광범위한 물리학의 세계에 접근할 수 없다. 수학 없는 물리학은 효모가 들어가지 않은 빵이다. 수학이라는 효모가 있어서 물리학은 점점 부풀어 올라 다양한 분야의 학문(응집물질물리학, 반도체 물리학, 핵물리학, 천체물리학 등)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어제 나온 따끈따끈한 과학책인 《익스트림 물리학》의 부제는 ‘수식 없이 읽는 여섯 가지 극한의 물리’다. 부제를 믿지 마시라. 여기도 수학 용어와 수식이 나온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수식은 물리학을 거들 뿐이다. 어려워서 이해가 되지 않으면 제쳐도 된다. 《익스트림 물리학》은 수식을 건너뛰면서 읽는 과학책이다. 중국의 과학 강사 옌보쥔(严伯鈞)은 수학이라는 장벽 앞에 두려워서 물리학에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저자는 수학 공식을 이용하지 않고도 물리학을 명백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물리학을 설명하기 위해 수식 대신에 사용한 도구는 극한적 사고(limit thought)다. 극한적 사고란 조건 변수를 극한으로 설정해 놓고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이론에 비추어 추론하는 일이다. 극한적 사고는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과 비슷하다.
조건 변수를 극한으로 설정하면 물리적 현상들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특수상대성이론을 이해하려면 물체를 빛의 속도와 가까울 정도로 아주 빠르게[극쾌(極快, the fastest)] 운동하도록 설정해야 한다. 우주의 범위를 크게 봐야지[극대(極大, the largest)]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일반상대성이론의 핵심 개념인 ‘휘어진 시공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운동하는 물체의 질량을 아주 무겁게 만들면[극중(極重, the most massive)] 시공간의 휘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원자가 만물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원자는 입증 불가능한 존재였고, 과학자들은 원자를 부정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를 보여주지도 않고, 실제로 있다고 주장만 하는 원자론자들의 말이 이상하게 보이는 건 당연하다. 다행히 과학이 발전하면서 미시적 세계[극소(極小, the tiniest)]가 주목받기 시작했고, 원자의 존재가 입증되었다. 미시적 세계에 대한 인식 없이는 원자를 이해할 수 없다. 온도를 아주 높게 하거나[극열(極熱, the hottest)], 반대로 절대 0도까지 온도를 많이 낮추면[극냉(極冷, the coldest)] 특별한 물리적 현상이 생긴다.
《익스트림 물리학》을 펴낸 출판사는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 ‘그린북’이다. 출판사는 《익스트림 물리학》이 기본이 부족한 이공계생들을 위한 책이라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이 책은 학생들이 읽기 편하지 않다. 《익스트림 물리학》에는 73명의 위대한 과학자, 47가지 물리학 원리와 정리, 25개의 물리 실험과 사고실험, 44가지 물리학 이론과 541개의 물리학 · 수학 개념이 나온다. 그런데 적지 않은 인명과 용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만든 색인이 없다. 색인이 있으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고도 용어를 단번에 찾을 수 있다. ‘색인 없는 책’은 마음 가는 대로 아무 데나 골라 읽는 자유를 억압한다.
책의 역자는 과학 비전공자다. 물리학 교사가 책의 감수를 맡았지만, 책 곳곳에 미흡한 점이 여러 개 보인다. 특히 용어의 의미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은 내용이 있다.
여기에서 v는 은하가 멀어지는 속도, D는 은하 사이의 거리, H는 허블 상수이다. 허블 상수는 약 70km/(s·Mps)이다. 파섹(pc)은 거리의 단위로 3.26광년이다. (121쪽)
파섹은 ‘우주공간에서의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다.
지구 자전의 영향 때문에 지표면에 있는 전향력(Coriolis force, 코리올리의 힘, 물체가 떨어질 때 휘어지는 힘-옮긴이)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179쪽)
전향력의 의미를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렇다. ‘회전하는 물체의 표면 위(자전하는 지구의 지표면)에 있는 물체가 수직 방향으로 떨어질 때 휘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힘’이다. 전향력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체의 방향이 휘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걸까? 왜냐하면 전향력은 회전하는 물체에 의해서 생기는 실재의 힘이 아니라 ‘가상의 힘’이기 때문이다. 전향력을 ‘물체가 떨어질 때 휘어지는 힘’으로 대충 설명하면, 독자는 전향력이 실제로 일어나는 힘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갈릴레이의 자유낙하 실험은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갈릴레이가 피사의 사탑 꼭대기에 서서 무거운 쇠공과 가벼운 나무 공을 들고 두 개를 동시에 떨어뜨렸더니 무거운 쇠공과 가벼운 나무 공이 같이 떨어졌다는 내용이다. 이 실험을 통해 낙하하는 물체의 속도는 질량과 관계없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181쪽)
갈릴레이 위인전에 꼭 언급될 정도로 유명한 실험으로 알려졌지만, 갈릴레이는 피사의 사탑에 올라 자유낙하 실험을 한 적이 없다.
힉스 입자(Higgs boson)는 만물에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이다. 질량이 없으면 중력도 있을 수 없다. 중력이 없으면 천체가 형성될 수 없다. 항성도, 행성도, 지구도, 생명도 생겨날 수 없다. 힉스 입자가 만물에 질량을 부여하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계도 존재할 수 있다. 이는 서구 종교계에서 주장하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라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이 때문에 힉스 입자는 ‘신의 입자(The God Particle)’로 불린다. (463쪽)
힉스 입자의 별칭인 ‘신의 입자’는 미국의 물리학자 레온 레더만(Leon M. Lederman)과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 딕 테레시(Dick Teresi)가 함께 쓴 책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레더만은 처음에 자신의 책 제목을 ‘Goddamn Particle(빌어먹을 입자)’로 정했다. 책이 나올 당시에 힉스 입자는 발견하기 힘든 입자였고, 힉스 입자를 찾아서 검증하는 일은 물리학자들 앞에 놓인 난제였다. 그러나 출판사 측은 ‘빌어먹을 입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Goddamn’을 ‘God’로 수정했다. 힉스 입자의 역할은 세상을 만든 창조주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힉스 입자는 신 그 자체다’라는 오해는 금물이다. 유신론자는 과학사를 새로 쓴 LHC(대형강입자충돌기)의 힉스 입자 발견에 숟가락을 얻지 말기를. 바뀐 책 제목 때문에 실제로 기독교 인사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힉스 입자가 신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근거라면서 김칫국을 마신 적이 있었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알
* 123쪽
우주에는 대기층이 없어서 허블 우주 망원경은 대기층의 교란을 받지 않고 더 많은 빛과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주1]
[주1] 원서는 2020년에 발간되었다. 그래서 허블의 뒤를 이을 차기 우주 망원경에 대한 언급이 없다. 1990년에 발사된 허블 우주 망원경은 총 다섯 번의 정비를 받으면서 관측기기가 교체되었다. 2021년 12월 25일에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이 발사되었다. 제임스 웹(James Webb)은 NASA 제2대 국장의 이름이다.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에 허블보다 집광 면적이 넓은 반사경이 장착되었는데 허블이 관측할 수 없는 아주 먼 우주공간과 적외선 영역을 관측할 수 있다.
* 133쪽
빅뱅 이론은 1927년 벨기에 천문학자인 조르주 르메르트(Georges Lemaître)가 처음으로 제시됐다.[주2]
[주2] 조르주 르메트르는 가톨릭 사제이기도 하다. 2018년에 개최된 국제천문연맹 총회에서 우주 팽창을 주장한 르메트르의 업적이 인정받아 ‘허블의 법칙’에서 ‘허블-르메트르 법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하지만 허블과 르메트르보다 먼저 우주 팽창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사람은 러시아의 수학자 알렉산드르 프리드만(Alexander Friedmann)이다. 1922년에 프리드만은 자신의 이름이 붙은 ‘프리드만 방정식’을 이용한 우주 팽창 모델을 제시했지만, 1925년에 사망하는 바람에 그의 업적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 266쪽
아인슈타인: 나는 자네(플랑크)처럼 젊지 않아.[주3]
[주3] 막스 플랑크(Max Planck)는 1858년에, 아인슈타인은 1879년에 태어났다. 아인슈타인은 자신보다 21살 많은 대선배인 플랑크에게 반말할 수가 없다.
* 295쪽
플랑크상수(Plank constant) [주4]
[주4] 철자 오류, → Planck constant
* 377쪽
우라늄-235는 14세 개[주5]의 중성자를 가진 방사성 동위원소임.
[주5] ‘143개’의 오자. 143개의 중성자가 있어 원자 질량이 235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