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에 관하여 -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 것
피터 카타파노.로즈마리 갈런드-톰슨 지음, 공마리아.김준수.이미란 옮김 / 해리북스 / 2021년 8월
평점 :
평점
4점 ★★★★ A-
도쿄올림픽 폐막식 중계를 맡은 모 방송국 아나운서의 마무리 발언이 잔잔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아나운서가 ‘도쿄 비장애인 올림픽’이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은 장애인과 대비되는 단어로, 장애 경험이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장애 경험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예기치 못한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장애인이 된 사람이 있고, 비장애인으로 살아가다가 장애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장애’는 장애인들에게만 해당하는 특정 단어가 아니다. 하지만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삶을 잘 모른다. 장애인을 불운한 사람, 일거수일투족 누군가로부터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야하는 사람, 또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상과 거리가 먼 사람들로 치부한다. 이러한 편견들은 장애인을 ‘살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로 바라보게 만든다. 비장애인은 ‘정상인’의 동의어가 아니다.
아나운서의 발언이 대중이 생소하게 여겼던 ‘비장애인’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를 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모른다. 패럴림픽 경기를 중계하는 아나운서가 메달을 딴 선수들을 ‘장애인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영웅’으로 칭송한다면 이런 부분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장애인 영웅 만들기’는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생산한다. 능력과 성공을 중시하는 사회는 열심히 노력한 끝에 자신의 한계(장애)를 극복한 장애인들에게 환호를 보내지만, 그러지 못한 장애인은 노력이 부족해서 실패한 존재가 된다. 비장애인은 신체적 · 정신적 손상이 있는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오히려 장애를 극복하라고 주문하는데 이것은 장애인에게 이중 억압이 된다.
“우리 없이 우리에 관하여 말하지 말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 이 말은 장애인 인권 운동을 상징하는 구호다. 비장애인은 장애를 겪으면서 살아가는 방식이 어떤 것인지 모르면서 마치 그들을 잘 안다는 식으로 말해왔다. ‘비장애인’이 패럴림픽 개최 기간에만 자주 거론된 특별한 단어가 되지 않으려면 비장애인은 장애와 장애인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우리에 관하여》는 다양한 빛깔의 스펙트럼처럼 이루어진 장애인들의 삶과 감정들을 보여주는 프리즘과 같은 책이다.
책 제목의 ‘우리’는 앞서 언급한 구호에서 따온 것이다. 이 책은 『뉴욕 타임스』 오피니언 시리즈 “장애(disability)”에 실린 60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으며 학자, 시인, 예술가 등이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이 책의 서문은 《한낮의 우울》(민음사, 2021)의 저자 앤드루 솔로몬(Andrew Solomon)이 썼다. ‘들어가며’를 쓴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Rosemarie Garland Thomson)은 장애학을 연구하는 학자다. 두 사람 모두 오피니언 집필진에 포함되었다. 이 책에 신경과 전문의 올리버 색스(Oliver Sacks)의 글도 있다. 제목은 “오청(Mishearing)”이다. 이 글은 그의 책 《의식의 강》(알마, 2018)에도 실려 있다.[주]
글쓴이들은 장애와 관련된 경험담과 장애에 대한 느낀 점을 진솔하게 들려준다. 그들은 비장애인 중심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고충을 털어놓지만, 장애를 치료해야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닌 ‘필연적인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과도하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장애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은 일상 가까이에 있는 장애와 장애인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안대’이자 ‘색안경’이다.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은 장애를 ‘누구나 마주하게 될 과업’이라고 말한다. 이 과업은 내가 겪을 수 있고, 내 주변의 가족이나 친구가 겪을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잘살려면 장애 경험을 풍요로운 삶의 원천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 관하여》는 낯설고 두려워해서 잘 보이지 않던 장애와 장애인을 또렷하게 보이도록 해준다.
[주] 책 말미에 글쓴이들을 간략하게 소개한 부록이 있다. 부록에 색스의 글이 ‘더 타임스’에 처음 발표되었다고 적혀 있다(435쪽). 글의 출처는 ‘더 타임스’가 아니라 ‘뉴욕 타임스’다. 더 타임스는 영국의 일간지 ‘런던 타임스(The Times of London)’의 약칭이다. 색스의 글은 뉴욕 타임스 2015년 6월 5일 자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