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작가 디노 부차티(Dino Buzzati)는 괴물이나 유령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존하지 않는 환상 세계를 창조했다. 그래서 부차티의 환상적인 이야기는 카프카(Franz Kafka)의 세계를 떠올린다. 카프카의 세계는 상식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일상이다. 부차티와 카프카의 작품을 비교해보는 독서를 해보면 좋겠지만, 국내에 번역된 부차티의 작품 수가 많지 않아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 디노 부차티 《타타르인의 사막》 (문학동네, 2021)
작가들이 인정한 ‘숨은 걸작’으로 평가받는 부차티의 대표작 《타타르인의 사막》(Il deserto dei Tartari, 1940)과 다음에 후술할 그의 장편소설 한 편이 번역된 게 전부다. 《타타르인의 사막》의 주제는 ‘부조리한 기다림’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젊은 군인은 국경 근처의 요새에 배치되어 사막을 지킨다. 요새의 군인들은 타타르인의 침공을 기다린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타타르인이 침공할 거라는 그들의 믿음은 불안감과 희망이 뒤섞인 납작한 일상을 작동하는 기제(mechanism)가 된다.
* [품절] 프랑수아 레이몽, 다니엘 콩페르 《환상문학의 거장들》 (자음과모음, 2001)
부차티는 단편소설도 썼는데, 이 작품들이야말로 카프카의 세계에 근접한 이야기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부차티의 단편소설 세 편이 《환상문학의 거장들》에 언급되어 있다. 책에 언급된 단편소설은 『층계의 꿈』(Paura alla Scala, 1948), 『무슨 일이 일어났다』(Qualcosa era successo, 1949), 『승강기』(L’ascensore, 1962)다. 무너지는 계단(『층계의 꿈』), 땅속으로 무한히 들어가는 승강기(『승강기』), 폐기된 역에 도착한 기차(『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불안감을 유발하는 불확실한 현상이다.
《환상문학의 거장들》에 당연하게도 부차티의 대표작 《타타르인의 사막》도 소개되었는데, 소설 제목이 ‘타르타로스의 사막’으로 잘못 번역되었다(241쪽). 타르타로스(Tartaro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하 감옥이자 그곳을 지배하는 나락의 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신을 모독한 인간은 타르타로스에 갇힌다. 그곳은 한 번 갇히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심연의 공간인데, 어떻게 보면 《타타르인의 사막》의 요새는 현실에 있는 타르타로스, 즉 좀처럼 탈출하기 힘든 거대한 감옥인 셈이다.


《타타르인의 사막》은 국내에 유일하게 번역된 부차티의 소설이 아니다. ‘디노 부자티’라는 이름으로 《꽃을 피우지 못하는 화분》(창우사, 1986)이 출간된 적이 있다. 이 소설의 원제는 ‘어떤 사랑(Un amore, 1963)’이다. 《꽃을 피우지 못하는 화분》은 부차티가 초기 작품들에서 보여준 환상성을 탈피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1965년에 영화화되었다.
* [품절] 토머스 핀천 《중력의 무지개》 (새물결, 2012)
부차티의 또 다른 장편소설 ‘시칠리아에 곰들이 쳐들어왔어요(La famosa invasione degli orsi in Sicilia, 1945, 《타타르인의 사막》 번역본에 표기된 제목은 ‘시칠리아의 유명한 곰 습격 사건’)’는 새물결 출판사가 기획한 ‘문학의 우주’ 시리즈 중의 한 권으로 출간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출간 소식이 나오지 않고 있다. 결국 ‘문학의 우주’ 시리즈는 단 한 편의 작품만 나온 채 ‘페이퍼 플랜(paper plan)’이 되고 말았는데, 그 작품은 바로 어마어마한 분량과 무시무시한 가격으로 독자들에게 충격과 분노를 선사했던 토머스 핀천(Thomas Pynchon)의 《중력의 무지개》(Gravity’s Rainbow, 1973)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