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르인의 사막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3
디노 부차티 지음, 한리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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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이탈리아의 작가 디노 부차티(Dino Buzzati)국내 독자들에게 생소한 이야기꾼이다그를 세계문학사 계보에 포함한다면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사이의 중간에 있어야 한다. 부차티는 첫 번째 소설 산악순찰대원 바르나보을 발표한 이후인 1934년에 카프카를 탐독하기 시작했다1940년에 발표한 타타르인의 사막카프카의 환상성이 반영된 소설이다


카프카의 이야기 속에 세워진 환상적 세계는 한 번 들어가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출구 없는 미로와 같카프카의 미로는 거대한 톱니바퀴 같은 관료주의가 작동하는 사회 속에 있다카프카의 미로에 갇힌 작중 인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묘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시도하고, 거기에 순응하는 것이다카프카의 미완성 소설 의 주인공 K는 불가사의한 성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 마을에 머문다. 그는 미로 같은 마을에 스스로 들어간다. 타타르인의 사막의 주인공 드로고 중위도 K처럼 답답한 현실을 마지못해 받아들인다드로고 중위는 자신의 첫 부임지인 바스티아니 요새에서 국경 너머의 사막을 지킨다요새에 오래 근무한 군인들은 사막에 있는 타타르인들이 국경을 넘어 침공할 거라고 믿는다. 그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요새에서 타타르 부대와의 전투를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경계 근무를 한다


실체가 불분명한 보이지 않는 적’은 군인들에게 두려움과 헛된 희망을 동시에 심어준다군인들에게 타타르인은 요새를 방어하기 위해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다. 전쟁은 요새에서 인생을 허비한 군인들이 무공을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따라서 군인들은 인생에서 좋은 때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249)’고 확신한다. 그들은 망상에 가까운 확신을 포기하지 못한 채 타타르 부대의 선제 공격을 기다린다.


요새의 군인들을 희망 고문하는 기다림은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상케 한다베케트는 자신을 포스트 카프카로 생각했으며 고도를 기다리며는 인간의 부조리한 면모를 부각한 작품이다고도를 기다리며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카프카K와 부차티의 드로고처럼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누군지 알 수 없는 고도(Godot)를 기다린다. 이 네 사람은 기다리기만 하는 행위에서 오는 초조함과 두려움을 잊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이들은 타인에게 말 걸기를 시도한다. K는 마을 사람들에게, 드로고는 동료 군인들에게,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서로에게 말을 건다. 타인과의 대화는 매일 일어나는 평범한 상황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기다리는 인물들은 무의미한 대화를 하면서까지 자신들이 살아있음을 확인한다그들은 불확실한 세계에서 점점 사라지는 삶의 의욕을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대화를 시도한다아이러니하게도 카프카, 부차티, 베케트의 주인공은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실체 없는 목표를 기다린다그들에게 기다림은 삶의 절반이자 살아있음을 증명해주는 고통의 징표


타타르인의 사막은 카프카와 베케트의 작품과 공통점이 있다. 세 사람은 설명하기 힘든 환상을 이해하려는 작중 인물들의 기다림을 묘사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디노 부차티는 부조리 문학을 대표하는 두 거장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있어야 할)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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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21-03-28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십수년 전 카프카스의 어느 곳에 갔었던 기억을 상기시키시는군요..찬란한 눈, 안개, 드넓은 산야...기억이 옳다면, 다시 체험하기 어려운 그곳...유일한 기쁨의 기억..

Angela 2021-03-31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그렇군요. 부차티 처음 알았지만, 베케트 좋아하니까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