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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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능력.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단어를 일을 감당해 낼 힘이라고 정의한다. 능력의 의미를 쪼개서 살펴보자. 감당또는 감당하다는 어떤 일을 맡아서 능히 해내는 것(또는 견디어 내는 것)을 뜻한다. ‘의 사전적 의미는 다양하다. 이 중에서 능력이라는 단어에 가장 부합하는 의미가 있다. 개인이나 단체를 통제하고 강제적으로 따르게 할 수 있는 세력이나 권력.


우리는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능력이 있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사람은 능력이 별로다’, ‘능력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회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제대로 찍히면 무능력자가 된다. 더 이상 성과를 내지 못해서 동료들이 쌀쌀맞게 대하면 무능력자는 일을 그만둔다. 무능력자로 판정받은 이 사람은 자괴감을 들게 하는 무능함과 그걸 곱게 보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동료들은 일을 그만둔 무능력자 뒤에서 수군거린다. “쯧쯧, 저 사람, 뭘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만두는구나. 다른 곳에 가서 잘 할 수 있을까?” 어떤 일을 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거나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스스로 그만둘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개인의 신중한 결정마저도 무능력자의 전형적인 행동으로 본다. 그리고 무능해서 일을 포기한 저 사람이 과연 다른 일도 잘 할 수 있을까라면서 약간의 조롱이 섞인 걱정도 한다.


무능력자를 하대하는 사람들은 평소에 일을 잘하는 편일까? 물론, 남들에게 인정받는 능력자라면 무능력자가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조언과 충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무능력자를 무시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사람 대다수는 본인 스스로 능력자라고 생각한다. 잘한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너무 형편없는 것도 아닌, 평범한 수준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자신은 어떤 일이든 능숙하게 잘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좋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생각보다 위력이 강하다. 그것은 상황에 따라 개인이나 사회 집단을 통제하는 ‘힘이 된다. 이러면 능력자는 개인이나 사회 집단을 마음껏 주무르는 이 된다. 반면에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해도 사람들에게 일단 욕부터 듣는 무능력자는 이다. 우리 사회에서 능력은 한 사람의 수준을 가늠하는 평가 기준이다. 자신과 상대방이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비교하고 싶은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갑을 관계는 과연 바람직할까?


공정하다는 착각에 제2의 제목이 있어야 한다면, 능력주의라는 착각으로 붙여주고 싶다. 이 책을 쓴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은 능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meritocracy)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능력주의란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물질적 보상을 해주는 사회 체계를 의미한다능력주의를 믿는 사람들은 뭐든지 열심히 하면 노력의 결실이 나올 것이며, 그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능력주의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은 현실과 정반대다. 저자는 타고난 재능, 근면, 정당한 자격 등 개인적인 요인보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 대물림되는 특권과 특혜 등 비능력적 요인이 신분 상승에 더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수많은 사례와 연구를 통해 증명해 보인다저자는 능력주의에 대한 지나친 경도가 지속하면 학벌주의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능력주의는 계속 굴릴수록 점점 커지는 눈덩이와 같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학위가 없는 사람은 무능력자로 규정되며 이들의 노력과 사회적 기여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특히 대학 학위가 없는 정치인들이 정계에 진출할 수 있는 문은 좁아진다. 능력주의를 지향하는 고학력 정치인들이 정계를 차지하게 된다면, 능력 중심 시장주의에 기반을 둔 정책을 내세운다. 고학력 정치인들은 대학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사회적 불평등이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고학력 정치인들의 엘리트 의식에 실망한 대중은 능력과 노력만 강조하는 정책에 불만을 느낀다. 민심을 읽지 못한 고학력 정치인들의 정책 실패는 국수주의와 편 가르기를 조장하는 대중주의(populism)에 불을 붙인다. 작은 눈덩이로 시작된 능력주의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다.


능력이라는 게 뭔가 있어 보이고 특별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능력주의 중심 사회에서 능력자는 성공한 자’, ‘인생의 승리자’, ‘자수성가형 부자로 주목받는다. 하지만 저자는 능력과 능력자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능력주의의 어두운 이면을 걷어낸다. 그러면서 스스로 노력해서 성공했다고 믿는 사람들의 인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자수성가형 인물을 우러러보는 사회일수록 노력했는데도 성과가 나오지 못한 사람들의 입지는 줄어든다. 그 사람들은 실패자’, ‘무능력자로 분류된다. 저자는 능력주의에서 나온 오만을 경계한다. 능력자가 오만해지면, 자신의 성공을 자화자찬하게 되며 성공의 또 다른 요인인 우연과 행운을 외면한다.

 

저자는 버락 오바마(Barack Obama)와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등의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의 엘리트 의식과 오만이 대중 친화적인 정책을 만들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공화당의 고학력 정치인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는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유발하는 발언을 하여 화제의 인물로 급부상했고, 저학력 노동자 출신 미국인의 표심까지 얻는 데 성공했다. 공정하다는 착각은 이변의 대선 결과를 낳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힐러리 클린턴의 오만과 이를 이용한 도널드 트럼프의 대중주의적 공약을 다시 보게 만든다. 따라서 공정하다는 착각은 내년에 있을 다음 대선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때 이른 교훈을 준.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어느 대선 후보에게 표를 줄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엘리트 의식을 벗지 못해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공약을 내건 후보와 엘리트 의식을 비난하면서 민심을 단번에 사로잡는 공약을 내건 후보 중에 우리는 누구에게 표를 줘야 할까. 차악을 선택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따라서 지금부터 고민해도 이르지 않다.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으면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을 믿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명문대에 다니는 학생들은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서 이 자리에 왔다고 생각한다. 능력자의 오만은 보수적인 기성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치적 성향과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누구나 오만해질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에 좀 더 검토해야 할 내용이 있다. 샌델은 2018년에 나온 중국과 미국의 세대 간 이동성에 대한 세계은행의 자료 등을 근거로 내세워 중국이 미국보다 아메리칸 드림이 실현하기 쉬운 국가라고 주장한다.


 

 중국에서는 부자와 빈자 모두 소득 수준을 개선했다. 그 사이에 미국은 소득 수준 개선이 대부분 상류층에 집중되었다. 1인당 국민소득에서는 미국이 아직 중국을 훨씬 앞서고 있지만 오늘날 중국 젊은이들은 그 부모 세대보다 부유하다. 더 놀라운 점은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국의 소득 불평등 수준이 미국과 엇비슷하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중국은 이제 미국보다 세대 간 이동성 정도가 높다. 이는 기회의 땅이라는 미국이 중국보다 밑바닥에서 위로 올라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130~131)


 

샌델은 이 사실을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알려줬는데, ‘미국이 최고라고 믿으면서 자라온 학생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샌델의 주장에 대한 중국통의 입장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중국에는 관시(관계)’ 문화가 견고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학벌과 지역의 연줄의식, 기업의 집단주의 문화가 여전히 강한 편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빈부 격차는 중국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 당국도 자국의 빈부 격차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작년에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책 자본과 이데올로기가 중국에 출판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중국 출판사는 해당 책에 언급된 자국의 불평등 문제를 삭제해달라고 피케티에게 요구했다. 피케티는 출판사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중국에서 출판되지 못했다. 출판사는 출간이 성사될 수 있도록 계속 논의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도 깜깜무소식이다.

 







Mini 미주알고주알

 



1

 

 

 

 

 

 

* 248

 

 대학들은 현대사회의 기회 배분 시스템을 주도하고 있다. 고소득 직업과 명예로운 지위로의 여정에 있어 관문 역학[]을 하는 학위를 발급하기 때문이다.

[원문]


 Colleges and universities preside over the system by which modern societies allocate opportunity. They confer the credentials that determine access to high-paying jobs and prestigious positions.

 


[] 역할의 오자.





 

2

 

    

 

 

 

* 308

 

 능력주의 시대는 노동자들에게 더 악랄한 상처를 입히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의 존엄성을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시험 점수를 잘 따고 대입 시험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브레인을 칭송하면서, 인재 선별기는 능력주의적 학력이 없는 사람들[] 시궁창에 빠트렸다. 그것은 학력이 낮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하는 일은 돈 잘 버는 전문직업인들의 일에 비해 시장에서 별 가치가 없어요. 공동선에도 별 기여를 하지 않죠. 당연히 사회적 인정이나 명망도 별로 따라붙지 않아요.” 그것은 시장이 승자에게 퍼붓는 과도한 보상을 정당화함과 동시에 비대졸자 노동자에게 던져 주는 쥐꼬리 만한 보상도 당연시했다.

 

 

 

[] 사람들은에서 은 보조사다. ‘이 아니라 로 써야 한다. 그래야 문장이 자연스러워진다. “인재 선별기는 능력주의적 학력이 없는 사람들 시궁창에 빠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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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1-09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뉴스에 오르내리는, 교수들의 자녀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부모의 자녀들이 어떤 특혜를 받았는지를 잘 알 수 있어서, 열심히만 하면 된다, 라는 말은 우리를 기만할 뿐, 사실은 돈 있고 백 있어야 좋은 자리를 차리할 수 있다는 게 현실이죠.

이 리뷰 보고 제 책에도 두 군데 오자를 고쳐 놨어요. ㅋ 감사 ^^

cyrus 2021-01-11 10:37   좋아요 0 | URL
맞아요. 페크님이 언급한 내용이 책에 나옵니다. ^^

북프리쿠키 2021-01-09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능력˝이라는 신화로 얼마나 공정성을 해쳐왔는지~저도 이 책 꼭 읽고 싶어 도서관 대출 예약해두었어예~ ^^

cyrus 2021-01-11 10:38   좋아요 1 | URL
저는 운이 좋아서 도서관의 신간 도서 책장에 꽂혀 있는 걸 빌렸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