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바람을 맞으며 레이첼 카슨 전집 1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 에코리브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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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바닷바람을 맞으며(Under the Sea-Wind)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이 쓴 책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한 사람이 문장으로 빚어낸 생생한 자연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1941년에 나온 바닷바람을 맞으며는 카슨이 쓴 첫 번째 책이자 바다 3부작의 시작을 알린 책이다. 전업 작가가 되기 전에 카슨은 해양 생물에 관한 라디오 원고를 주로 썼다. 홍보용 소책자에 실린 카슨의 글을 눈여겨본 미국 어업국(Bureau of Fisheries, 우리나라의 해양수산부와 같은 행정기관) 소속 직원(카슨의 직속 상사)은 그녀에게 대중 매체에 실을 만한 글을 써보라고 격려했다. 평소에 바다와 해양 생물에 관심이 많았던 카슨은 자신의 강점을 살려서 바다를 주제로 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 책이 바로 바닷바람을 맞으며이다.


바닷바람을 맞으며에 가장 비중 있게 나온 해양 생물은 갈매기, 고등어, 뱀장어다. 카슨은 책을 쓰기 위해 바다에 직접 가서 해양 생물들을 관찰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를 유심히 보면 카슨의 정확한 관찰력이 만들어낸 문장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문장들을 읽으면 마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필자가 이 책을 ‘자연 다큐멘터리라고 말한 이유가 있다



 고기를 잡기 위해 다시 강으로 돌아간 물수리는 수면 가까이로 급강하해 날갯짓을 하며 발을 강에 담갔다. 발톱에 묻은 물고기의 점액을 닦는 것이다. (93)

 

 어부들이 두 번 정도 그물을 더 거둔 후 만조가 되었다. 이윽고 물고기를 잔뜩 실은 배들이 돌아갔다. 회색 바다를 배경으로 흰 모래톱에서 날아온 갈매기 무리가 해변의 물고기를 잔뜩 먹었다. 갈매기들이 먹이를 놓고 싸움을 벌일 때 작고 검은 깃털을 지닌 새 두 마리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녀석들은 해변의 좀 더 높은 곳으로 물고기를 가져가 먹어치웠다. 그들은 해변 언저리에서 먹이를 찾아다니는 고기잡이까마귀로, 죽은 게나 새우 등 바다의 부산물을 먹고 살았다. 해가 지자 숨어 있던 구멍에서 나온 달랑게 군단이 해변에 남겨진 물고기의 마지막 잔해마저 깨끗이 해치워버렸다. 그보다 먼저 모래벼룩이 모여들어 고기의 사체를 나름의 방식으로 재생하느라 바빴다. 바다에서는 아무것도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무엇 하나가 죽으면 다른 하나가 산다. 생명의 중요한 요소가 계속해서 끝없는 순환을 이어가는 것이다. (104)

 

 

[원문]

 After the fishermen had made two more hauls and then, as the tide neared the full, had gone away with laden boats, a flock of gulls came in from the outer shoals, white against the graying sea, and feasted on the fish. As the gulls bickered among themselves over the food, two smaller birds in sleek, black plumage walked warily among them, dragging fish up on the higher beach to devour them. They were fish crows, who took their living from the edge of the water, where they found dead crabs and shrimps and other sea refuse. After sundown the ghost crabs would come in legions out of their holes to swarm over the tide litter, clearing away the last traces of the fish. Already the sand hoppers had gathered and were busy at their work of reclaiming to life in their own beings the materials of the fishes’ bodies. For in the sea, nothing is lost. One dies, another lives, as the precious elements of life are passed on and on in endless chains.



하지만 카슨은 당시 1940년대의 기술과 지식만으로는 해양 생물의 참모습을 독자에게 전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부지런하게 바다를 산책하면서 세밀하게 관찰했지만, 개인의 능력만으로 거대하고도 깊은 바다 세계의 풍경을 독자들에게 실감 나게 전달하기에 역부족이었다따라서 지금까지 알려진 바다와 해양 생물에 대한 지식과 비교해서 책을 읽으면 정확성이 떨어진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아마도 그녀가 이 책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바로 뱀장어의 성장 과정을 설명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해양 생물연구소에 일했을 때 뱀장어를 관찰하고 연구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뱀장어가 어떻게 사는지, 어디서 알을 낳는지 등에 대해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카슨은 뱀장어 이야기를 어떻게 썼을까? 그녀는 당시로선 새로운 방식으로 글을 썼다. 카슨은 지식으로 채워지지 않은 해양 생물의 삶에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그녀의 상상력에서 잉태된 해양 생물들은 흡사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 동물을 의인화한 표현 방식은 지식의 정확성을 요구하는 과학적 글쓰기에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카슨이 재구성한 해양 생물들의 이야기는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게 만든 이분법적 구도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이분법적 구도의 창시자 데카르트(Descartes)는 의심하는 인간의 영혼만을 주체로 간주하고, 동물을 생각과 영혼이 없는 객체로 밀어 넣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에서 유일하게 등장한 인간은 고등어를 잡는 어부다. 그러나 이 어부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 중 가장 높은 자리에 군림한 자연의 정복자가 아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에 묘사된 어부는 생존을 위해서 바다로 뛰어든 하잘것없는 동물이며 바다 생태계 속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개체이다.


자연 속의 동물을 소재로 한 동물문학을 논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된 작품은 파브르 곤충기시튼 동물기. 두 책 모두 각각 곤충과 동물의 생태 연구에 기반을 둔 문학 작품이다. 바닷바람을 맞으며파브르 곤충기시튼 동물기에 견줄만한 동물문학 작품이다. 바닷바람을 맞으며는 과학과 문학, 이 두 세계를 가로지른 카슨의 글쓰기가 돋보인 수작이다. 침묵의 봄이 카슨의 유일한 대표작이 될 수 없다. 그녀가 남긴 모든 책은 자연을 향한 따사로운 애정과 치밀한 관찰이 만나서 생긴 결실이다.








Mini 미주알고주알

 

 


1

 

 

* 117~118

 가장 심한 학살은 밤 시간 동안 일어났다. 넓은 하늘 아래 바다에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찾아왔다. 그날 밤 작은 플랑크톤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수로, 그만큼이나 밝은 정도로 늘어났다. 빗살해파리, 화살벌레[1], 새우, 해파리[2], 물벼룩, 메두사[2], 투명한 날개를 자랑하는 고둥 무리가 수면 가까이 올라와 어두운 밤 속에 반짝거렸다.

 

[원문]

 It was the nights that had seen the greatest destruction. They had been dark nights with the sea lying calm under a wide sky. On those nights the little stars of the plankton had rivaled in number and brilliance the constellations of the sky. From underlying depths the hordes of comb jellies and glassworms[1], copepods and shrimps, medusae of jellyfish[2], and translucent winged snails had risen into the upper layers to glitter in the dark water.

 

[1] glassworm(유리벌레): Chaoborus(각다귀의 일종)의 유충. 화살벌레와 유리벌레는 서로 다른 개체이다.

 

[2] 해파리는 여러 가지 형태(플라눌라 유생폴립스트로빌라에피라메두사)로 변하면서 성장하는데, 어느 정도 다 자란 해파리를 메두사라고 한다. 그러므로 해파리메두사를 마치 서로 다른 개체인 것처럼 따로 쓸 필요가 없다. 원문에 나온 ‘medusae of jellyfish’는 해파리를 뜻한다.






2

 

 

* 240(용어 설명중에서)

 

심해저[1]


 대륙붕의 가파른 경사면에 둘러싸인 대양 속 깊은 곳의 지형[1]. 심해저의 바닥[1]은 넓고 황량한 평원으로, 보통 깊이는 3킬로미터 정도[2]에 달한다. 때로 8~9킬로미터에 이르는 계곡이나 협곡이 자리하기도 한다. 심해저의 바닥은 깊고 부드러운 무기물 진흙과 바다 생물체의 사체로 덮여 있다.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항상 온도가 낮은 상태를 유지한다.[3]

 

[원문]

 The central deeps of the ocean, enclosed by the steep walls of the continental slope. The floor of the abyss is a vast and desolate plain, lying, on the average, about three miles deep, with occasional valleys or canyons dropping off to depths of five or six miles. The bottom is covered with a deep, soft deposit composed of inorganic clays and of the insoluble remains of minute sea creatures. The abyss is wholly without light and is uniformly cold.

 

 

[1] 심해저는 오역이다. 카슨이 직접 쓴 용어 해설(glossary)’에 제일 먼저 나오는 단어가 ‘abyss’, 심해(수심이 깊은 바다). 심해저(deep sea bottom, deep-sea floor) 또는 심해저 평원(abyssal plain, abyssal floor)은 수심 2000m 이상의 심해의 밑바닥(심해 지형)을 말한다. 그리고 심해저의 바닥은 동의어가 반복된 어색한 표현이다. 심해저의 (, floor)’는 밑바닥을 뜻하는 한자어다. 올바르게 쓰면 심해의 바닥(The floor of the abyss)’이다.

 

[2] 3마일(three miles)km로 환산하면 4.8km이다.

 

[3] 심해는 수심 2,000m 이상의 바다로, 빛과 산소가 거의 없고 온도는 낮은 대신 압력이 매우 높다. 하지만 심해라고 해서 무조건 수온이 낮은 건 아니다. 심해저에 화산처럼 지구 내부의 지열로 뜨거워진 물(수온이 300가 넘는다)과 연기(주로 황화수소가 들어 있다)를 분출하는 열수분출공(熱水噴出孔, hydrothermal vent)이 있다. 이 주변에 있는 생물들은 고온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므로 심해가 항상 저온 상태로 유지한다고 볼 수 없다. 열수공 주변의 수온은 엄청 뜨겁기 때문이다


카슨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심해에 생명체가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해양생물학자인 카슨은 심해에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책인 바닷바람을 맞으며에 심해생물의 생태를 소개했다. 그러나 그녀의 책에 등장한 심해생물들은 저온(또는 고온)과 고압에 적응하기 위해 괴상한 모습으로 진화한 개체에 가깝기보다는 수심이 깊지 않은 바다에서도 사는, 평범한 모습의 개체이다


카슨은 심해 지형에 대륙붕과 대륙사면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960년대 말에 해양과학자들은 열수분출공이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카슨은 1964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그녀는 열수분출공의 존재를 몰랐을 수 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인 1977년에 심해 유인잠수정 앨빈(Alvin)호가 처음으로 열수분출공을 확인했다. 카슨이 건강해서 좀 더 살아있었으면 열수분출공에 흥미를 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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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20-12-12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슨의 책은 과학책이기에 앞서 문학적이죠. 그는 문학적 감수성으로 과학서를 쓴 작가로 기억될 겁니다. 그 유명한 침묵의 봄도 보면 문학적 표현력이 돋보이는 책이었죠.ㅎㅎ

cyrus 2020-12-13 10:35   좋아요 0 | URL
카슨과 같은 ‘문학적 감수성으로 과학책을 쓰는 작가’가 또 나올 수 있을까요? 제가 잘 몰라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 카슨과 같은 작가가 누구 있는지 떠오르지 않아요.

레삭매냐 2020-12-12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레이철 카슨에 꽂혀 일단
책들을 사 모으긴 했으나...

여전히 읽지 못하고 있네요.

내년에나 만나 보게 될 수 있을지.

cyrus 2020-12-13 10:36   좋아요 0 | URL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되면 안 읽을 수 없게 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