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인권으로 한 걸음 - 가해자를 만들지 않는 성교육을 향하여
엄주하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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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부모는 자녀와 ()을 터놓고 대화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성을 가르치는 일을 내키지 않아 하는 부모들이 있다. 아이가 성교육을 받으면 벌써 성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콘돔의 용도를 알려주는 나름 진취적인 부모도 있겠지만, 과연 이들이 사용법이나 주의사항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했는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청소년은 일반 콘돔을 살 수 있다(여성가족부는 돌출형 콘돔과 사정지연 콘돔을 남성용 여성 성기 자극 기구로 분류하여 청소년 유해 물품으로 지정했다). 청소년도 성적 존재이므로 성관계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콘돔을 왜 써야 하는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골라야 몸에 해롭지 않은지 등에 대해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콘돔이 성인용품이라는 인식은 여전히 만연하다. 어른들은 콘돔이 술이나 담배처럼 19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팔면 안 되는 물품이라고 생각한다. ‘너희들은 콘돔을 쓰기에는 아직 어려’, ‘사리분별 못하는 나이라서 안 돼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청소년의 성관계에 대한 반감일 테고, 설사 그게 아니었더라도 콘돔이 청소년 유해 물품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청소년의 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남아 있다. 이렇다 보니 청소년을 무성(無性)적인 존재로 보는 경향이 있다. 성 자체를 부끄러워하고 위험하게 생각하는 인식은 청소년을 성적 존재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청소년을 성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교사나 학부모는 성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성교육은 청소년들에게 순결을 강조하는 명목상의 성교육이었다. 성교육 교사들은 여학생들에게 성폭력을 예방하는 차원으로 해서는 안 될 행동들을 가르쳐주었다. 구시대적인 성교육을 받은 여학생들은 성적 의사 결정을 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며 자신이 성적 존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반면 남학생들은 성교육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포르노에 익숙한 남학생들은 성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교육을 받지 못한 남학생은 자신의 성적 행동이 타인을 위한 존중인지 아니면 타인을 파괴하는 폭력인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 성교육에 대한 남학생들의 저조한 반응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한 성교육 교사들은 가해자 되지 않기교육, 즉 성폭력을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는다.

 

성 인권으로 한 걸음은 부실한 성교육의 실태와 성교육을 외면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학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성 인권 교육을 하고 있는 초등학교 보건 교사다. 성 인권에는 성적으로 보장받을 권리성적으로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성적으로 보장받을 권리는 자신의 몸에 대해 긍정하고, 자신의 성적 느낌과 반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권리이다. ‘성적으로 침해받지 않을 권리는 성별이나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성적으로 괴롭힘을 받지 않을 권리, 성폭력과 성매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권리 등을 아우른다. 성 인권 교육은 남녀가 서로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배워야 할 윤리 교육이자 사회성 교육이다. 성 인권 교육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성을 존중하는 법을 알려준다.

 

저자는 청소년을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는 주체로 인정하는 성 인권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로써 저자는 청소년의 성이 당당하고 주체적이며 아름답고 유쾌한 것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날 때 아이들은 부끄럽고 은밀한 성이 아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성을 배울 수 있다.

 

성 인권 교육은 문란한 성 문화를 조장하는 교육이 아니다. 실제로 누군가가 겪고 있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현실에 대한 교육이다. 이제 아이들은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 ‘성관계는 어떻게 해요?’라는 그런 뻔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부모라면 자녀가 콘돔을 어떻게 써요?’, ‘남자친구가 자꾸 내 몸을 만지려고 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성교육 전문 교사가 되지 않더라도 어른이라면 아이들을 위해 올바른 성에 대해 가르칠 줄 알아야 한다. 성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그 자체로 비뚤어진 성 개념만 아이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먼저 자신의 성에 대한 가치관과 태도를 점검해본 뒤에 부족한 지식을 채우고, 잘못된 관념을 바로잡는 노력부터 선행해야 한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포르노를 보기 때문에 괜찮아’, ‘혼전 성관계는 무조건 안 된다’, ‘이성 친구는 나중에 사귀어도 된다는 식의 어설픈 교육은 성에 대한 편협한 생각을 아이들에게 심어줄 뿐이다. 사실 성 인권 교육을 배워야 할 사람은 어설프게 성교육을 받고 자란 어른들이다. 성 인권 교육을 배워야 하는 적당한 시기는 따로 있지 않다. 성 인권 교육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타인의 성을 소중히 여기도록 해주는 교육이기 때문에 누구나 배워야 한다. 성 인권으로 한 걸음은 나와 타인의 성을 올바르게 사랑하고 싶은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함께 읽어야 하는 책이다.

 

 

 

 

 

Trivia

 

 

*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성적 존재에게 태어나는 순간부터 요구되는 성도덕적 규범들을 제대로 알려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조절하며 좌절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31)

 

성적 존재로라고 고쳐 쓰면 문장이 어색하지 않다.

 

    

 

* 기독교, 불교, 힌두교 등 종교에서도 여자가 신이 된 경우는 없었고 오히려 여성은 불경의 존재에 가까워 배척받고 천대받았다. (130)

 

힌두교에 여신이 있다. 이들을 데비(Devi)라고 부른다. 힌두교 남신은 데바(Deva)라고 한다.

    

 

 

* 어떤 여성은 미러링 방법으로 만약 남성이 생리를 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보자고 했다. 그리고 남성이 월경을 했다면 지금과는 반대로 월경이 신성시되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154)

 

어떤 여성의 정체는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이다. 그녀가 주장한 내용은 저서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현실문화연구, 2002)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서정윤사랑한다는 것으로에는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여 너의 곁에 두려 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라는 문장이 나온다. 존재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다. 또 사랑 못지않게 이별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이별 또한 자신에게 맞는 상태를 찾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225)

 

서정윤은 베스트셀러가 된 시집 홀로서기를 쓴 시인이다. 2008년에 대구 영신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 중에 남학생을 골프채로 체벌했다가 징계받았다. 이듬해에 그는 영신중학교로 전근했는데 2013년에 해당 학교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해임 처분을 받았다. 그 후 서 씨는 교단을 떠났다. 저자가 성 인지 감수성이 없는 서 씨의 시구를 인용하는 것은 책의 주제에 맞지 않다. 중쇄를 찍을 때 서 씨의 시구를 뺐으면 한다.

    

 

 

*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일본은 전쟁의 죽음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군인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1916년 공창제를 선포하였으며, 이것이 점차 확대되어 부작용의 하나로 생긴 것이 일본군 위안부. (286)

 

위안부를 적을 때 작은따옴표(예시: 일본군 위안부’)를 붙여 써야 한다. ‘위안이라는 단어는 일본군을 위한 자발적인 참여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일본군 위안부의 실체를 거부하는 국내 및 일본 극우 세력의 입장과 유사하다). 그래서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여주기 위해 작은따옴표를 쓴다.

    

 

 

* 291쪽 오자: 네델란드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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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7-01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재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cyrus님이 말하는 성인권부분까지 성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성교육은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교육이 이루어지고 교육내용도 많이 좋아졌죠. 딱 하나 아직까지 안되는 부분은 실제로 콘돔을 어떻게 쓰는가하는 실용적인 부분인데 학교 성교육이 여기까지 하기에는 아직 용기도 학부모의 인식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아요.

cyrus 2020-07-02 10:03   좋아요 0 | URL
성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과 인식의 범위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넓어지고 있는데, 어른들은 아이들의 반응에 못 따라오고 있어요. 그래서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성교육을 예전에 자신들이 배운 그 내용과 같다고 생각해요. 성교육은 매번 업데이트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어른들이 교육 방식의 변화를 못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에요.

2020-07-19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