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 한길 히스토리아 14
필립 지글러 지음, 한은경 옮김 / 한길사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134710,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의 항구 도시 메시나에 열두 척의 배가 들어왔다. 이 배에 탄 선원들은 이미 전염병에 걸려 있었고, 갑판 곳곳에 주검들이 널려 있었다. 메시나 당국은 선원들이 항구에 내리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미 중국에서 시작된 전염병의 위력을 소문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헛수고였다. 배가 떠나면서 전염병은 해상 무역 길을 지나면서 유럽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흑사병이 죽음의 창을 휘두르면서 유럽 정복에 나선 것이다.

 

유럽인들에게 흑사병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이 병은 유럽 인구 절반의 생명을 앗아가 신이 내린 형벌로 간주할 정도였다. 유럽인들은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감염됐는지도 모른 채 죽어갔다. 하룻밤 자고 나면 흑사병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전염됐고, 이를 차단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

 

흑사병의 영향력에 대해서 역사가들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시기가 언제인지는 여러 의견이 있을 것이다. 19세기에 흑사병을 주제로 한 연구 논문들이 나오긴 했으나 정설이라고 보기 어렵다. 흑사병(The Black Death)이라는 단순한 제목이 붙여진 책은 1969년 영국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중세사가도 아니고, 전염병 전문가도 아니다. 저자는 자신을 아마추어 학자라고 언급하면서 그저 즐겁게이 책을 썼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그는 출판사에서 15년 이상 편집자로 일한 경력이 있다. 저자는 흑사병에 관한 당대 유럽인들의 기록과 후대 역사가들의 연구 논문에 나온 내용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썼다.

 

이 책에 저자는 흑사병이 유럽 전역에서 확산하는 과정과 그 원인을 먼저 설명하고, 흑사병이 영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다룬다. 저자는 책의 구성이 다소 산만하게 보일 수 있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래도 피상적이고 방대한 내용을 균형 있게 서술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이 책이 나온 지 50년이 넘었다. 반세기가 지나면서 이 책에 나온 정설들은 반박되거나 수정되었을 것이다. 국내 번역본도 나온 지 십 년 넘었고, 지금은 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 책의 진가를 무시할 수 없다. ‘친구와 술은 오래될수록 좋다라는 말이 있다. 꼭 모든 책이 그런 건 아니지만, 오래될수록 좋은 책도 있기 마련이다. 흑사병은 그런 책이다. 전염병의 공포가 전 세계를 배회하고 있는 이 시국에 읽기 적절한 책이다. 전염병은 잊을 만하면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1969년에 나온 흑사병을 지금 읽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소설 페스트(La Peste)는 전염병의 공포와 이를 극복하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한 걸작이다. 카뮈의 소설에 가려져서 그렇지 보카치오(Boccaccio)데카메론(Decameron)도 흑사병이 휩쓸고 있던 당시의 사회상을 잘 보여준 작품이다. 그러나 전염병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은 한계가 있다. 작가는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려고 전염병이 확산하는 과정을 더 암울하게 묘사하거나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설정을 넣기도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전염병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독자들이 생길 수 있다. 역사책을 읽으면 소설 읽기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흑사병은 인간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의 위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전염병이 유럽 사회와 경제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도 살핀다.

 

영국에 흑사병이 퍼지면서 수많은 대학 교수와 학자들이 사망했다. 이로 인해 라틴어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부족해졌고, 라틴어를 직접 영어로 옮기는 일이 늘어났다. 흑사병 시대는 서양 공통어가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흑사병 시대 이후 종교에 대한 중세 유럽인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교회는 흑사병을 신의 분노라고 주장하면서 교인들의 죄악을 강조하기만 했다. 중세 유럽인들은 매번 충고에 가까운 설교만 늘어놓는 교회에 실망했고, 기성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새로운 교단에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전염병으로 인해 영국의 장원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농노들의 수가 줄어들자 경작하지 않은 땅이 많아졌고, 그런 땅을 소유한 영주들은 농노의 이동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 후로 농민들의 반란이 증가했고, 장원제 붕괴와 영주 세력의 몰락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흑사병이 없었더라면 14세기 후반 영국과 유럽의 역사는 매우 달랐을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와 같은 삶의 방식은 지주와 농민 모두에게 버려야 할 짐이었다. 삶의 질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흑사병은 유럽을 초토화한 전염병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역사를 움직이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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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0-04-01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사병이 없었다면 뉴턴의 중력이론도 늦게 탄생했겠죠!!!

cyrus 2020-04-02 08:04   좋아요 0 | URL
맞아요. 흑사병이 과학의 역사까지도 바꾼 셈이네요. ^^

레삭매냐 2020-04-01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설적으로 대통령이나 국가권력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재택근무를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능하게 만들
었다는 뉴스를 본 것 같습니다.

유럽의 인구 감소는 무엇보다 신분
제 사회에서 사람의 중요성을 자각
하게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의 삶이 어떻게
바뀌게 될 지 궁금하네요.

그나저나 이런 책들은 왜 다 절판
이 되는지...

cyrus 2020-04-02 08:09   좋아요 0 | URL
흑사병과 관련된 역사책이 더 있는지 알아봤는데, 생각보다 많지 않았어요. 우리나라가 코로나에 크게 한 번 데였으니 전염병의 역사에 관한 책이 나올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