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은 전쟁이 일어날 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구미에 사는 동생이 한 달째 대구에 오지 못하고 있다. 자주 만날 수 없다 보니 동생이 매일 한 번 영상통화를 한다. 어젯밤에 동생한테 영상통화가 왔다. 동생의 영상통화가 오면 부모님이 참 좋아하신다. 영상통화 중에 동생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집에 페스트 있어?”

 

 

나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갑자기 집에 흑사병이 있느냐고 물어보지?’라고 생각했다. 나랑 같이 영상통화를 하고 있던 부모님은 페스트의 의미를 뭔지 몰라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 나는 웃으면서 , 페스트는 전염병이야. 집에 페스트가 퍼졌으면 우린 벌써 죽었지라고 말했다. 동생은 페스트, 몰라? 요즘 되게 유명하던데?”라고 말했다. 나는 그제야 동생이 말한 페스트의 의미를 깨달았다. 동생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소설 페스트가 내 방에 있는지 물어본 거였다‥….

 

영상통화가 끝난 후에 나는 동생에게 카뮈의 책이 내 방에 있다고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페스트는 민음사 판이 아니라 책세상 출판사에서 나온 검은색 표지의 양장본으로 된 카뮈 전집이다.

 

 

 

 

 

 

 

내가 페스트를 사진 찍어 카톡 메시지로 보냈더니 동생은 재미없게 생겼어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흥미 5이라고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재미없게 생겼다‥…. 예전에 달궁 독서 모임에 참석했을 때 누군가가 카뮈 전집 양장본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분은 앞표지에 권수를 나타내는 붉은색 숫자가 너무 크게 나왔다고 지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분의 말씀이 옳았다.

 

그나저나 전염병에 대한 공포와 관심이 커지면서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찾는 독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올해의 책은 페스트가 되지 싶다. 이방인번역 논쟁 이후로 오랜만에 사람들이 카뮈에 관심을 보인다. 이쯤 되면 카뮈 전집을 가지고 있는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여전히 카뮈에게 확 끌리지 않는다. 이방인반항하는 인간을 읽어보긴 했다. 하지만 그가 쓴 책을 읽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이것을 글로 정리하기가 어렵다. 카뮈는 책 좀 읽어본 독자들 사이에서 워낙 유명한 작가라서 그의 책에 대한 독자 리뷰가 꽤 많이 있다. 나름 독창적인 생각과 해석이 담긴 리뷰를 쓰고 싶어도 못 쓰겠다. 내게 카뮈는 정말 어려운 작가다.

 

나는 당장 카뮈의 페스트를 읽고 싶지 않다. 카뮈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식을 때 읽으려고 한다. 나는 항상 책을 읽으면 뒷북(book)친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카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코로나19가 확산하지 않았어도 올해는 카뮈를 읽어야 하는 해라는 점은 분명하다.

    

 

 

 

 

 

 

나는 페스트말고 흑사병을 읽고 싶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가 코로나19와 동생 때문에 이 책에 눈길을 주게 되었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심야에 흑사병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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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0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20 23:52   좋아요 0 | URL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어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연약하고 한편으로는 똑똑하지 않아요. ^^;;

stella.K 2020-03-20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그래. 요즘 부쩍 페스트가 읽고 싶어졌어.
책 잘 생겼구만.ㅋ

근데 어제 중고샵 다녀왔지? 어떻디? 괜찮나?

cyrus 2020-03-20 23:56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점에 사람이 꽤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서점에 사람이 많이 온 것에 놀라지 않았어요. 제가 놀란 것은 서점 안에 있는 책상이었어요. 책상 위에 손 소독제는 없었어요. 계산대에 손 소독제가 있었어요.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필요한 시기에 손님들이 책상에 앉지 못하도록 알라딘이 조치를 취해야 했어요.

페크pek0501 2020-03-22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페스트>를 재밌게 읽었었어요. 그래서 다 읽은 뒤에 밑줄 친 곳을 몇 번이나 본 적도 있어요. 요즘 다시 읽는다면 실감날 것 같습니다. 사색적인 문장이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cyrus 2020-03-23 22:23   좋아요 0 | URL
카뮈의 <페스트>가 재미있는 책이었군요. 내년 독서모임을 위해 이 책을 추천해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