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무서운 그림 - 명화 속 숨겨진 어둠을 읽다 무서운 그림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세미콜론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이 색깔 있는 텍스트(text)라면 그것을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 작품이 어느 시대에 그려졌고, 화가가 어떤 기법을 사용했는지 알아보는 일은 그림을 보는 감상자에게 의미가 없다. 물론 작품과 관련된 지식은 그림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림을 읽기 위한 열쇠가 단 한 개만 있는 게 아니다. 미술관의 큐레이터(curator)는 그림을 어려워하는 감상자에 다가가 그림의 열쇠가 무엇인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러나 미술 지식을 공부하지 않고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 그림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해설 방식에 동조하지 말고 자신만의 느낌과 감각으로 그림을 읽으면 된다. 그러면 큐레이터가 미처 알지 못한 그림의 열쇠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그림 읽기라면 그것이 오독과 편견에 물들어 있어도 괜찮다. 오히려 오독과 편견 없이는 그림을 보는 행위 자체가 있을 수 없다. 그림을 보려는 감상자를 방해하는 것은 감상자의 편견이 아니라 상식이 돼버린 그림의 해설이다.

 

신 무서운 그림 명화 속에 숨어 있는 으스스한 진실을 들려준 무서운 그림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전문적인 미술 해설서가 아니다. 저자가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그림 저편에 숨어있는 무서운 이야기를 머리와 마음으로 읽어내는 미술 에세이다. 머리로 그림을 읽는 일은 작품에 담긴 의도, 작가의 삶, 시대 배경을 하나하나 알아 가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으로 그림을 읽는 일은 감상자의 속내 깊은 시선을 그림에 투영하는 것이다. 저자가 그림 속에 발견한 무서운 이야기가 진실이 아닐지라도 그것을 틀렸다고 비난할 수 없다. 미술 전문가도 편견으로 그림을 볼 수 있으며 언제든지 오독할 수도 있다.

 

워낙 유명한 책이니 책 소개는 여기까지만 하고, 이 책에 고쳐야 할 내용과 새로 덧붙이고 싶은 내용(이 책에 대한 나만의 주석)을 언급하겠다.

 

다음 인용문은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가 학창 시절에 겪은 교통사고에 대한 상황을 설명한 내용이다.

 

 

 인생을 바꿀 만큼 큰 사고를 겪었다. 열여덟 살 때였다. 젊은 연인들이 탄 버스가 노면 전차와 충돌해 찌부러졌던 것이다. 뒷날 그녀는 이렇게 썼다. “기묘한 충격이었다. 둔하고 완만한.” 하지만 그때 부러진 버스의 손잡이 기둥은 의자에서 내팽개쳐진 프라다의 몸을 황소를 찌르는 투우사의 검처럼꿰뚫어, 그녀의 옷은 마치 파도에라도 휩쓸린 것처럼 벗겨졌다. 목격했던 연인은 이렇게 썼다. “프리다는 알몸이었다. (‥…)아마도 도장공이었던 것 같은데 (‥…) 한 승객이 갖고 있던 금가루가 든 자루가 찢어지면서 프리다의 피투성이 몸에 금가루가 흩뿌려졌다.”

  금가루에 덮여 번쩍이는 나체의 이미지는 얼마나 강렬한가!

 

(110)

 

 

칼로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프리다에 칼로가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장면이 슬로모션 기법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 영화에서도 크게 다친 칼로의 모습이 나오는데, 상의가 약간 위로 올라갔을 뿐 칼로는 알몸 상태가 아니었다. 연인의 목격담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조금 과장되었거나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버스와 전차가 충돌하면서 일어난 진동의 힘이 토네이도에 맞먹는 정도가 아닌 이상 옷이 완전히 벗겨지진 않는다.

 

 

 나치즘이라는 괴물이 유럽을 덮쳤다. 히틀러가 프랑스를 침공한 것이다. 샤갈은 옷만 겨우 챙겨서 아슬아슬하게 뉴욕으로 도망쳤다. 그의 나이 쉰네 살 때였다. [중략]

 종전 후 몇 년이 지나 파리로 돌아간 샤갈은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661)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은 러시아 유대인 출신의 화가이다. 그는 1910년에 프랑스에 갔다가 러시아로 돌아왔고, 1922년에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화가 활동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37년에 인민전선[]은 샤갈에게 프랑스 국적을 부여했다. 따라서 종전 후에 프랑스로 돌아온 그가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는 내용은 사실과 맞지 않다.

 

 

 단테의 유려한 운문 묘사는 누구나 짐작하듯 연옥과 천국보다 지옥 편이 압도적으로 생생하고 풍성하다. 덕분에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978~1827),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 1832~1883),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 같은 후세 화가까지 모두 지옥 편을 그렸고, 입구의 지옥문(“이 문을 지나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은 오귀스트 로댕의 청동 작품으로 결실을 맺었다. (우에노의 일본 국립 서양 미술관 앞에 전시되어 친숙하다.)

 

 

(767)

 

 

내가 읽은 책은 초판 1쇄다. 책에 들라크루아가 태어난 연도가 잘못 표기되어 있다. ‘1978’ ‘1798’의 오자다. 이 문장에 내 주석을 덧붙이자면, 사실 우리나라에도 로댕의 지옥문진품이 있다. 전 세계에 있는 지옥문은 프랑스 로댕미술관 앞에 있는 작품을 포함해서 모두 7점이다. 그중 한 점은 한국에 있는데 1999년에 개관한 플라토 미술관(구 로댕 갤러리)에 상설 전시되었다. 그러나 미술관이 2016년에 폐관되면서 현재 해당 작품은 호암미술관으로 이전되어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라파엘 전파는 아카데미에 반대하며 라파엘로 이전의 초기 르네상스 예술을 이상으로 삼았다.

 

(13130)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19세기 중엽 영국에서 일어난 예술 운동으로 중세 예술과 초기 르네상스 예술을 이상으로 삼았다.

 

 

 이 그림이 주는 충격은 강렬한 건지도 모른다. 일견 단순한 구도 속에 헤로인의 얼굴이 자리 잡고 있다.

 

(19182)

 

 

여주인공을 뜻하는 ‘heroine’헤로인으로 발음하기 때문에 헤로인히로인둘 다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약을 뜻하는 헤로인(heroin)과 혼동하기 쉽다. 국립국어원은 이와 같은 문제점을 반영해 2016년 외래어 심의회를 통해 ‘heroine’히로인으로 표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 1930년대 후반 파시즘과 전쟁의 위기에 처하여 결성된 반파시즘 세력의 연합 전선.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0-01-21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운 그림이 새로운 버전으로 나왔나 보네요.

서구의 옛날 동화나 그림들이 가진 상징들은
살벌하지 싶습니다.

그나저나 헤로인은 대박이네요 :>

cyrus 2020-01-27 19:43   좋아요 0 | URL
처음 보는 그림 몇 점 있어서 읽어볼 만했어요. ^^

moonnight 2020-01-21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예전에 읽은 책인 줄 알았더니 새롭게 나왔나보네요@_@; 꼼꼼한 주석 감사합니다^^ 제가 읽었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거에요 분명 ㅎㅎ;;;;;

cyrus 2020-01-27 19:45   좋아요 0 | URL
제가 좀 TMI를 지나치게 많이 말하는 성격이라 주석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