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글을 어렵게 쓰기로 유명한 페미니스트 철학자이다. 혹자는 그녀의 글이 읽기 힘들다는 이유로 그녀의 이론을 연구할 가치가 없다고 무시한다. 하지만 버틀러가 글을 어렵게 쓰는 이유가 있다.

 

 

 

 

 

 

 

 

 

 

 

 

 

 

 

 

*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문학동네, 2008)

* 주디스 버틀러 젠더 허물기(문학과지성사, 2015)

 

 

 

 

 

 

 

 

 

 

 

 

 

 

 

 

 

 

 

 

 

 

 

 

 

 

 

 

 

 

 

 

 

 

 

 

 

 

 

 

* 조현준 주디스 버틀러 읽기(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6)

* 조현준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정체성 이론(한국학술정보, 2007)

* 사라 살리 주디스 버틀러의 철학과 우울(앨피, 2007)

* 조현준 젠더는 패러디다(현암사, 2014)

* 조현준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커뮤니케이션북스, 2016)

* 김은주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봄알람, 2017)

* 조현준 쉽게 읽는 젠더 이야기(행성B, 2018)

 

 

 

버틀러는 명료하면서도 확정적인 문체에 느껴지는 권위성을 경계한다. 권위적인 문체는 진리를 뚜렷하게 드러나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이론도, 글도 간결하고 명료하게 쓸수록 좋다.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이라는 철학 명언에 따르면 어떤 사실 또는 진리에 대한 설명들 가운데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불필요하게 복잡한 설명은 면도날로 잘라내야 한다. 하지만 진리를 명확하게 선포한 권위적인 문체가 하나의 규범으로 자리 잡으면 또 다른 진리(를 설명하는 문체)가 나올 가능성을 방해한다.

 

버틀러는 권위적인 문체가 반복과 인용을 통해서 규범이 되고, 더 나아가 규범은 권력이 된다고 말한다. 그녀는 글로 표현된 자신의 입장이 규범과 권력으로 작동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문장을 어렵게 쓴 것이다. 오컴의 면도날을 쥔 사람들은 버틀러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녀의 글을 잘라내려고(무시하려고) 할 것이다. 그들은 오컴의 면도날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이해하기 힘들고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진리의 문체를 이론이나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단순하고 명료한 글이나 진리가 진실이라고 주장하면서 면도날을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그들의 행보는 권위적이면서도 폭력적이다. 오컴의 면도날을 쥔 자들은 버틀러의 글에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그녀의 글에 어디부터가 불필요한지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버틀러의 글쓰기 방식은 때론 폭력이 될 수 있는 오컴의 면도날을 조롱하고 저항하는 탈권위적인 글쓰기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녀의 글이 읽기 어렵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읽기 힘들고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힘든 글은 버틀러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페미니스트들도 난감하게 만든다. 버틀러는 지금도 학계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며 칼럼과 책을 쓰고 있다.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않은 버틀러의 책 몇 권이 있다. ‘레드스타킹 페미니즘 스쿨전임 강사로 초빙된 전혜은 선생님의 증언에 따르면 어떤 역자가 번역을 착수했으나 끝내 출판하지 못한 버틀러의 책이 있다고 한다.

 

 

 

 

 

 

 

 

 

 

 

 

 

 

 

 

* [품절] 주디스 버틀러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인간사랑, 2003)

 

 

 

버틀러의 글과 책은 젠더와 퀴어를 연구한 사람이 번역해야 한다. 젠더와 퀴어에 문외한 역자가 버틀러의 글에 손을 대면…‥. 어떻게 되는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그 최악의 사례를 보여준 책이 있으니 그 책은 바로 절판된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인간사랑)이다. 원제는 <Bodies That Matter>이다. 이 책은 젠더 트러블(문학동네)젠더 허물기(문학과지성사)를 이어주는 중요한 버틀러의 전기 저작이다. 이 세 권의 책은 섹스와 젠더, 그리고 섹슈얼리티에 대한 버틀러의 논의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그러나 전혜은 선생님은 이 책을 최악의 번역본이라고 언급했다. 버틀러 전공자가 확인 사살’을 했으니 번역본을 읽을 필요가 없고, 중고 책을 사지 않아도 된다.

 

필자는 조현준 교수가 쓴 주디스 버틀러 읽기(여성문화이론연구소),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정체성 이론(한국학술정보), 젠더는 패러디다(현암사)를 사서 읽었다. 이것 말고도 버틀러의 사상을 간략하게 정리한 책들 몇 권이 나와 있으나 그 책들에 너무 의존해서도 안 된다. 여기서 자세히 밝힐 수 없지만, 버틀러의 문장을 오독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과 버틀러가 책에서 언급한 개념을 잘못 설명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 문제의 내용을 밝힐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수업 내용을 지식재산권을 가진 전혜은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내가 함부로 인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페미니즘 스쿨에서 배운 버틀러와 관련된 내용은 전혜은 선생님이 쓰고 있는 책에 나올 예정이다.

 

주디스 버틀러에 대한 개론서 중에 읽을 만한 것을 추천하라고 하면, 나는 그 부탁을 정중히 거부할 것이다. 나는 잘 모르겠다. 책을 여러 번 봐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개론서도 어렵다. 개론서는 버틀러에 입문한 독자와 버틀러를 많이 공부한 독자들이 잠깐 기댈 수 있는 임시 보조대일 뿐, 영원히 그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든든한 지지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개론서가 읽기 어렵다고 해서 읽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건 아니다. 일단 시도해봐라. ‘버틀러 혼자 읽기버틀러 독학보다는 버틀러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전공자라든가 버틀러를 공부한 대학원생과 함께 읽는 것이 훨씬 더 낫다. 버틀러의 책은 혼자서 맨땅에 헤딩을 하는 심정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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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2019-09-24 1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어려운 문장이라도 그 속에 다채로운 사상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거겠죠. 중언부언으로 번잡하고 애매함만 있는 거면 결국 사상이 빈곤한 거고요.

cyrus 2019-09-25 16: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다채로운 사상이 들어있는 문장은 어려워 보여도 계속 읽어 보면 이해할 수 있어요.

페크pek0501 2019-09-25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이유로 어렵게 쓰는 사람도 있군요. 저는 확신할 수 없거나 자신 없는 글을 쓸 때 ~~ 한 것 같다, 라든지 ~~ 라고 생각한다, 로 씁니다. 내 생각이 맞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죠.
어떤 때는 ‘사견‘이라고 덧붙이기도 하죠. ㅋ

cyrus 2019-09-25 16:13   좋아요 0 | URL
저도요. 어떤 의견을 말할거나 글로 쓰기 전에 신중해야 돼요. 정말로 애매한 내용은 언급을 안 하려고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