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출판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동물농장》 번역본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직접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절판된 책과 아동용 책까지 포함하면 50권은 족히 넘을 것이다. 《동물농장》은 1945년 8월 17일 영국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이 출판된 날 이틀 전에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제는 항복했지만, 해방된 지 일 년 만에 조선은 두 갈래의 길 앞에 서게 됐다. 분단의 길이냐, 통일 정부 수립의 길이냐. 결국 미국과 소련의 분단 정책에 의해 조선은 두 개로 나누어졌다. 공산주의 사회를 비판한 우화로 해석된 《동물농장》은 미군정 해외정보국의 지원을 받아 1948년 우리나라에 출판되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농장》 번역본으로 알려져 있다.
* 조지 오웰, 김기혁 옮김 《동물농장.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문학동네, 2010)
* 조지 오웰, 도정일 옮김 《동물농장》 (민음사, 1998)
매년 《동물농장》 번역본이 한두 권씩 나온다. 작년에는 무려 8종의 《동물농장》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동물농장》 번역본은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가 번역한 민음사 판본이다. 지난달 독서 모임 선정 도서가 《동물농장》이라서 이번에는 ‘문학동네’ 판본(김기혁 옮김)을 읽었다. 두 판본의 출간 연도를 비교하면 12년이나 차이가 난다. 민음사 판본의 초판 출간연도는 1998년이고, 문학동네 판본은 2010년에 출간되었다. 세월의 차이가 느껴지는 만큼 번역 문체를 읽었을 때도 뚜렷한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다.
* 조지 오웰, 김옥수 옮김 《동물농장》 (비꽃, 2017)
농부 존스(Jones)가 운영했던 동물농장의 원래 이름은 ‘Manor farm’이다. ‘manor’는 중세 유럽 봉건 체제에 유지된 토지 소유 형태, 즉 ‘장원(莊園)’을 뜻한다. 이 단어를 ‘매너’라고 읽어야 하는데 도정일 교수는 ‘메이너’라고 썼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민음사 판본은 2010년에 출간된 71쇄인데, ‘메이너 농장’이라고 적혀 있다. ‘비꽃’ 판본(김옥수 옮김)에는 ‘장원 농장’이라고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매너 농장’이라고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직역하게 되면 《동물농장》의 우화적인 요소가 반영된 ‘Manor farm’의 의미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동물 중에 ‘모제스(Moses)’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까마귀가 있다. 어떤 번역본은 ‘모세’라고 되어 있다. 이 녀석은 인간의 손에 길들여져 집에서 사는 까마귀다. 오웰은 이 까마귀를 가리켜 ‘tame raven’이라고 썼는데, 해석하면 ‘길들여진 (큰)까마귀’다.
그런데 민음사 판본은 ‘집 까마귀’, 문학동네 판본은 ‘길들인 갈까마귀’라고 되어 있다. 두 단어 모두 ‘tame raven’의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아마도 도정일 교수는 인간의 집에서 서식하는 까마귀라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집까마귀’라는 단어를 썼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집 까마귀(house crow)’라는 이름을 가진 까마귓과에 속하는 새가 있다. 집 까마귀(house crow)와 까마귀(raven) 모두 까마귓과에 속한 새라고 해서 같은 까마귀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두 새의 학명이 다르므로 서로 다른 종이다.
* 에드거 앨런 포, 손나리 옮김 《까마귀》 (시공사, 2018)
* 에드거 앨런 포, 윤명옥 옮김 《포 시선》 (지만지, 2017)
* 에드거 앨런 포, 김경주 옮김 《애너벨 리》 (민음사, 2016)
* 에드거 앨런 포, 공진호 옮김 《에드거 앨런 포우 시선: 꿈 속의 꿈》 (아티초크, 2014)
‘raven’을 ‘갈까마귀(jackdaw)’로 번역하는 것도 오역이다. ‘raven’은 우리나라에서는 ‘큰 까마귀’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까마귓과에 속하는 개체 중에서 가장 크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유명한 시 ‘The Raven’가 우리나라에서는 ‘갈까마귀’로 잘못 번역되었고, 수정되지 못한 채 이렇게 오랫동안 알려지는 바람에 ‘raven은 갈까마귀’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 조지 오웰, 권진아 옮김 《동물농장: 어떤 동화》 (시공사, 2012)
* 조지 오웰, 박경서 옮김 《동물농장》 (열린책들, 2009)
‘길들인 까마귀’라고 번역된 《동물농장》은 ‘열린책들’ 판본(박경서 옮김)과 시공사 판본(권진아 옮김)이 있다.
포의 시 제목에 대해 첨언을 하자면, ‘까마귀’라고 번역되어 있는 포의 시집은 두 종이 있으며 ‘시공사’(손나리 옮김)와 ‘아티초크’ 출판사(공진호 옮김)에 나온 것이다. 반면 나머지 출판사의 시 선집들의 번역가들은 여전히 ‘갈까마귀’를 고수하고 있다. 시인 김경주가 번역한 민음사 판본의 시 선집에는 ‘갈가마귀’라고 되어 있는데, ‘갈까마귀’가 정확한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