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 오웰 《코끼리를 쏘다》 (반니, 2019)
* 조지 오웰 《영국식 살인의 쇠퇴》 (은행나무, 2014)
* [품절] 조지 오웰 《코끼리를 쏘다》 (실천문학사, 2003)
먼저 ‘블레어’가 어떻게 살았는지 살펴보자. 1922년에 블레어는 ‘인도 제국 경찰’이라는 직함으로 버마(미얀마)에 발령을 받아 근무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곳에서 정의와 윤리에 어긋난 영국 제국주의의 실상과 제국주의에 무력하게 굴복하는 식민지 사람들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자신의 일에 회의감을 느낀다. 버마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소재로 쓴 소설이 《버마 시절》(열린책들, 2011)이다. 《제국은 없다》 (서지원, 2002)라는 제목이 붙여진 번역본도 있다. ‘제국은 없다’라는 제목이 원작의 제목(‘Burmese Days’)과 판이하게 다르지만 오웰이 제국주의의 허상을 고발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의역에 가까운 제목(‘제국은 없다’)도 오웰의 의도를 잘 전달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버마 시절》과 같이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두 편 정도 고르자면 『코끼리를 쏘다』와 『국가는 어떻게 착취되는가: 버마에서의 영국제국』이 있다. 전자의 에세이는 가장 유명한 글이므로 줄거리 소개는 생략하겠다. 직접 읽어보시길 바란다. 『코끼리를 쏘다』는 ‘제국은 없다’라는 말을 떠오르게 하는 명문이다. 이 글은 5월에 나온 오웰의 에세이 선집 《코끼리를 쏘다》(반니, 2019)와 《나는 왜 쓰는가》에 수록되어 있다. 『국가는 어떻게 착취되는가: 버마에서의 영국제국』은 1929년에 발표된 글인데, 블레어가 ‘오웰’이라는 필명을 본격적으로 쓰기 전에 쓴 글이다. 그는 이 글에서 식민지 사회에 깊숙이 침투한 제국주의의 은밀한 음모를 고발하면서 대영 제국과 식민지국의 관계를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비유하면서 설명한다. 이 에세이를 읽으면 《버마 시절》에 등장하는 버마인 우 포 킨(U Po Kyin)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우 포 킨은 영국 제국에 호의적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제국주의 체제에 순순히 따르는 인물이다. 오웰은 버마에 우 포 킨과 같은 원주민과 관리, 지식인들이 많아지면 서방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 여론을 형성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인도 제국 경찰을 그만둔 블레어는 글을 쓰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블레어는 파리의 빈민가를 전전하면서 생활했고, 영국의 런던으로 건너가서도 궁핍하게 살았다. 이 시기에 블레어는 빈곤에 허덕이는 하층계급의 삶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파리와 런던에서 밑바닥 생활 체험을 소재로 쓴 첫 번째 작품이 바로 1933년에 발표된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문학동네, 2010)이다. 이때부터 블레어는 그 유명한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쓰는가》에 수록된 『스파이크(The spike)』는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을 위해 쓰인 단편적인 소고(小考)이다. ‘스파이크’는 영국의 빈민 수용소를 뜻하는 속어다. 오웰은 스파이크의 허술한 관리 실태를 고발하면서 빈민을 위한 복지 문제에 소극적이고 무관심한 사회를 비판한다.
* 조지 오웰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 (한빛비즈, 2018)
* 조지 오웰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이론과실천, 2013)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블레어는 전업 작가인 ‘조지 오웰’로 살아가게 된다. 오웰은 사회주의자로서 스페인 내전(1936~1939)에 참전했지만, 그곳에서 스탈린(Joseph Stalin)의 독재 체제에 순응한 소련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을 옹호하는 좌파의 태도에 크게 실망한다. 이때부터 오웰은 전체주의로 변질한 소련식 사회주의와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영국 좌파들의 행보를 비판하는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그가 원한 사회주의는 노동자가 중심이 되어 계급을 철폐시키는 민주적 사회주의였다. 그는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빈곤 노동자들을 잔혹하게 탄압하는 스탈린의 이주 정책에 분노했고, 스탈린의 이주 정책에 의해 쫓겨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인들을 지지했다. 《더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 (한빛비즈, 2018)과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이론과실천, 2013)는 오웰의 정치적인 입장이 분명하게 드러낸 글들이 수록된 에세이(글의 장르를 좀 더 명확히 말하면 ‘평론’이다) 선집이다.
※ 오웰이 직접 쓴 서문 두 편 모두 수록된 번역본
* 조지 오웰, 안경환 옮김 《동물농장》 (홍익출판사, 2013)
* 조지 오웰, 권진아 옮김 《동물농장》 (시공사, 2012)
* [품절] 조지 오웰, 최희섭 옮김 《동물농장》 (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 『언론의 자유』만 수록된 번역본
* 조지 오웰, 김재희 옮김 《동물농장 외》 (서연비람, 2019)
※ 우크라이나 판 서문만 수록된 번역본
* 조지 오웰, 임종기 옮김 《동물농장》 (아로파, 2015)
* 조지 오웰, 박경서 옮김 《동물농장》 (열린책들, 2009)
《동물농장》은 소련 소비에트 체제의 전체주의 실태를 우화 형식으로 풍자한 소설이다. 원래 오웰은 이 소설을 위한 서문을 직접 썼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영국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추축국에 맞서기 위해 소련과 연합을 맺었고, 그 이후로 영국 사회 내에서 스탈린에 대한 비판을 삼가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영국 좌파들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오웰은 《동물농장》을 출판해줄 출판사를 찾지 못해 난항을 겪어야 했다. 어려움 속에 《동물농장》은 출판되었지만, 이 소설을 쓰게 된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낸 서문은 끝내 출판하지 못했다. 《동물농장》 서문 원고는 오웰이 세상을 떠난 후에 발견되었고, 이 서문은 『언론의 자유』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오웰은 스탈린의 이주 정책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 인들을 위해 ‘우크라이나 판 《동물농장》 서문’도 썼다. 비록 친필 원고는 분실되었으나 다행히 우크라이나어로 된 《동물농장》 서문은 남아 있었고, 이 글을 다시 영어로 번역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두 편의 서문은 에세이로 보기 어려우나, 오웰이 에세이에서 보여준, 치밀하면서도 간결한 ‘정치적 글쓰기’가 얼마나 뛰어난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편의 서문을 읽어보면 오웰이 진심으로 추구했던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대부분 사람은 《동물농장》만 보고, 오웰을 ‘반공주의자’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가 쓴 에세이를 먼저 읽었더라면 오웰에게 실례가 될 수 있는 그런 잘못된 평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웰이 직접 쓴 두 편의 서문이 수록된 《동물농장》 번역본이 많이 나와야 한다. 생각보다 오웰의 서문이 들어있는 《동물농장》 번역본이 많지 않다. 서문 한 편만 수록된 번역본들도 있다. 《동물농장》을 번역한 역자들의 해설이 오웰의 정치적 글쓰기가 무엇인지 잘 설명하고 있지만, 해설만 가지고는 ‘에세이 작가로서의 오웰’이 낯설게 느껴지는 독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대부분 독자는 《동물농장》 해설을 접하면서 ‘아, 오웰이 에세이도 썼구나’하고 생각만 할 것이고, 또 어떤 독자는 ‘정치색이 너무나도 강한 나머지 작가의 편견이 남아있는 에세이’라고 오해하면서 오웰의 에세이를 간과할 수 있다. 게다가 그가 ‘좌파’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에세이를 꺼리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독자들이 늘어난다면 조지 오웰과 소설과 에세이가 잘못 읽혀질 수 있는 위험성이 높아진다. 오웰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그의 글을 읽으면 그의 글쓰기 의도와 전혀 다른 엉뚱한 해석을 낳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