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식인 - 서구의 야만 신화에 대한 라틴아메리카의 유쾌한 응수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7
임호준 지음 / 민음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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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사순절(四旬節) 기간에는 예수의 행적을 생각하며 고기를 먹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 사순절은 ‘40일’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으며 부활절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의 기간을 일컫는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사순절은 예수의 삶을 묵상하는 기간이자 경건의 훈련을 하는 경건한 기간이다. 카니발(carnival)은 사순절을 앞두고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며 즐기는 기독교 전통 축제이다. 카니발이란 말은 ‘육식 금기’를 뜻하는 라틴어 ‘carne vale’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가면과 화려한 복장을 하고 카니발에 참여할 수 있어 이때만큼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평등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은 시끌벅적한 축제처럼 보이는 카니발에서 인간의 깊은 내면을 열어 보여주는 유용한 열쇠를 찾아냈다. 인간은 질서에 순응하여 살면서도 동시에 전복을 꿈꾼다. 바흐친에 의하면 카니발은 인간의 이런 이중적 면모를 가장 잘 드러내는 문화 현상이다. 카니발은 해방된 삶이다. 카니발 기간에는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모든 것이 무질서 상태가 된다. 보통의 삶에 제약을 가하던 모든 금기와 구속이 일시적으로 제거된다. 카니발은 ‘거꾸로 뒤집힌 세상’이다. 모든 금기가 제거된 카니발에서는 거꾸로 된 논리, 반대로 된 논리가 상식을 제압한다. 왕이 거지가 되고, 거지는 왕이 되며, 성직자는 모독당하고 광대는 추앙받는다. 권위는 추락하고 금욕주의는 조롱당한다.

 

사람이 인육을 먹는 풍습을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라 한다. 이 용어는 과거 식인 풍습이 있다고 알려진 서인도제도의 카리브 인들을 가리키는 스페인어에서 유래됐다. 15세기경 서인도제도에 처음으로 가본 스페인 정복자들은 카리브 인들이 인육을 먹는다고 믿었다. 스페인의 후원을 받아 바하마 제도에 도착한 콜럼버스(Columbus)는 항해 일지에 카리브 해 식인종의 존재에 대해 언급했다. 역사적으로 사람이 인육을 먹는 행위는 여러 가지 이유로 행해졌다. 주술 혹은 미신이나 종교에 의해 인육을 먹으면 특별한 힘이나 현상이 나타나거나 먹은 사람이 생전에 갖고 있던 힘을 이어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먹을 것이 부족했을 때 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는 경우도 있다.

 

서구인들은 자신들의 우월성을 유지하려고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설정했다. 그러면서 아메리카 원주민의 풍습과 신앙은 ‘야만인’의 특성으로 알려졌고, 서구인들의 상상력에서 나온 ‘식인종 신화’는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고, 식인종은 야만인의 표본이 되었다. 야만인은 문명인에게 길들지 않은 존재를 지칭했다. ‘식인종 신화’는 야만인들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즐거운 식인》은 문명인들이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식인 풍습을 ‘카니발’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라틴아메리카의 ‘식인주의’를 소개한다. 식인주의. 국내에서는 생소한 용어이지만, 1920년대 브라질에서 처음 시작된 저항 예술을 설명하는 데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개념이다. 식인주의는 라틴아메리카의 주체적인 문화적 정체성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모더니스트들은 식인주의를 내세워 식인종 신화에 맞서 유쾌하게 응수했다. 야만인 담론, 식인종 신화가 유럽인의 문명 우월주의를 부각하기 위해 식인 풍습을 ‘혐오 행위’로 보게 했다면, 식인주의는 유럽인의 시각이 반영된 식인 풍습을 라틴아메리카인들이 즐기는 ‘축제 행위’로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바흐친이 확인한 ‘카니발’의 특징과 비슷하다. 라틴아메리카의 식인주의는 서양 문화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골라 먹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식인주의 운동은 유럽 문화를 씹고, 뜯고, 맛을 보면서 소화해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자산으로 만들려는 문화 운동이다.

 

라틴 아메리카인들에게 있어서 식인주의는 모든 민중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자유와 평등한 웃음이다. 라틴 아메리카 지성인들은 식인주의 운동을 통해 유럽 식민주의적 권력의 억압과 위선을 깨부수고, 자신이 속한 세계에 생성과 갱생의 기운을 불어넣으려고 했다. 카니발은 유럽 기독교 문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흐친이 현재까지도 살아있다면 유럽을 ‘씹어대고 배설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카니발 문화를 보면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그는 카니발에 주목한 책을 다시 썼을 것이다.

 

 

 

 

※ Trivia

 

* 11쪽

어떨결에 → 얼떨결에

 

 

* 39, 40쪽

1943년 → 14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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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8-12-07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흥미롭군요. 일단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cyrus 2018-12-08 08:20   좋아요 0 | URL
라틴아메리카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

2018-12-07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08 08:39   좋아요 0 | URL
기독교, 이슬람교는 중동에서 시작됐어요. 서로 다른 면이 많지만, 조금은 비슷한 면도 있어요. ^^

페크(pek0501) 2018-12-08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복과 지배는 어느 쪽에서 보느냐,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거역할 수 없는 진리가 있지요. 모든 인간은 존중 받아야 한다는 것.

오자를 잘 밝혀 놓으셨네요.

cyrus 2018-12-09 16:08   좋아요 0 | URL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 현상은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평가가 달라질 수 있어요.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진리는 절대 진리죠.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