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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믹 커넥션 - 우주에서 본 우리 ㅣ 사이언스 클래식 35
칼 세이건.제롬 에이절 기획, 김지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8년 8월
평점 :
“그들은 어디에 있는 거지?”
외계 생명체의 존재 여부를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말이다. 우주 어딘가에 우리와 같은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까.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는 이 문제를 토론하던 중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그들 모두 어디에 있는 거지?” 페르미가 방정식 계산을 해보니 우주에는 무려 100만 개의 문명이 존재해야 한다는 가설이 도출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외계 문명이 있다면 왜 아직 외계 생명체가 인류 앞에 나타나지 않은 걸까. 지금껏 외계 문명의 신호가 수신된 적은 없다. 페르미의 의미심장한 질문은 이론상으론 외계 문명이 존재하지만, 실제론 볼 수 없다는 ‘페르미의 역설’로 알려졌다.
만약 외계 생명체들이 태양계에 근접해 지구를 바라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때에도 우리가 믿는 것처럼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유일한 생명체가 사는 축복받은 별일까. 그들이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본다면 지구는 작고 보잘것없는 변방 행성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끝없이 넓은 우주의 한편에 놓인 창백한 점에 불과한 지구라는 별에 사는 존재일 뿐이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은 우주에 티끌처럼 외롭게 떠 있는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명명했다. 공허하며 침묵만 감도는 우주. 외계 생명체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그는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SETI)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1972년 세계 최초의 목성 탐사선 파이오니어 10호(Pioneer 10)를 발사했을 때 세이건이 한 일은 인간(남성과 여성)의 모습과 태양계 속 지구의 위치 등이 그려진 명판을 싣는 것이었다. 이 명판에 새겨진 메시지는 외계 생명체에게 보내는 지구인의 자기소개서다. 이후 세이건은 TV 시리즈 <코스모스(Cosmos)>로 ‘대중 과학자’로 자리매김했다. 천문학을 쉽고 감동적인 언어로 설명한 <코스모스>는 과학의 문외한들을 지구 밖으로 초대했다. 그만큼 과학의 경이와 신비를 일반 대중에게 널리 퍼뜨린 사람은 없었다.
사실, 세이건은 <코스모스>에 출연하기 전부터 이미 스타였다. 파이오니어 10호가 목성을 향해 탐사 궤도에 오른 뒤 이듬해 세이건이 쓴 《코스믹 커넥션(The Cosmic Connection)》은 출간 첫해에만 50만 부가 팔렸다. 《코스믹 커넥션》은 TV 시리즈 <코스모스>의 프로토타입(Prototype, 초기형)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도 《코스모스》에서 볼 수 있는, 섬세하고 감성적이면서 정곡을 찌르는 세이건의 문체가 흐르고 있다. 출간된 지 40여 년이 지났고, 그사이 수많은 과학의 진전이 있었지만 《코스믹 커넥션》의 매력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대중적이면서도 문학적인 세이건의 문체는 온갖 과학 지식과 소소한 경험을 종횡으로 엮어 우주라는 거대한 주제를 명쾌하면서도 알기 쉽게 독자들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책은 1970년대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성과였던 파이어오니 호와 매리너(Mariner) 호 우주 탐사 계획을 바탕으로 화성, 금성의 실체를 소개한다. 그밖에도 우주를 떠돌던 먼지가 의식 있는 생명이 되는 과정, 외계 생명체의 존재 문제 등 우주에 대해 인류가 알게 된 것들, 알게 된 과정들, 그리고 알아야 할 것들을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책을 관통하는 것은 ‘우주의 위치에서 바라본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7년 뒤에 나올 《코스모스》가 이 질문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인간은 우주 일부이다. 그러므로 우주와 인간은 근본적으로 연결돼 있다. 인간은 가늠할 길 없는 우주라는 무한 공간의 부속일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유독 우주에 대해 알려고 한다. 우주를 알아가는 것은 인류 필연의 과정이자 필수적인 일이다. 이 과정을 통해 세이건은 인류가 무한한 우주 속에서 그만큼 나약한 존재임을 상기시켜주는 동시에 겸손함을 일깨운다.
우리의 지구 중심주의에는 일상적인 편리함이 있다. 우리는 여전히 지구가 돈다기보다는 태양이 뜨고 진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우리는 여전히 우주가 우리의 편의를 위해 돌아가고 있다고, 그리고 우리만이 살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우주 탐사는 약간의 겸손함도 가져다주리라. (pp. 136)
지구 중심주의에 벗어나 우리의 위치를 우주에 이동시켜 ‘나’를 포함한 전 인류를 내려다본다면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책에는 우주에 다른 생명이 있을 것을 확신하는 그의 마음이 절절하게 녹아있다. 그는 금성을 지구화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낙관적으로 전망했으며 은하 어딘가에 있을 선진 외계 문명은 블랙홀을 이용해 우주를 이동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과거에 있을 법한 상상이 이렇게 재미있게 읽힐 수가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즐거움의 하나이다. 비과학적인 가설과 상상은 그냥 웃어넘기자. 세이건은 누구보다 외계 생명체의 흔적을 열심히 좇았으면서도 늘 회의주의적 칼날은 놓지 않았다. 그는 점성술을 비판했고, 고대 인류에게 문명을 안겨준 외계 생명체가 존재했다는 주장(초 고대 문명설)을 부정했다.
《코스믹 커넥션》은 외계 생명체에 대한 탐사 프로그램의 의미를 다시 차분히 인식하게 되면서 동시에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수필 같은 책이다. 그의 명쾌한 논리, 그리고 그것에 덧붙여 그의 글을 읽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그의 진솔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이 책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이 책을 딱딱한 과학책의 범위를 벗어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주를 사랑하는 수필가다운 면모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