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우스(St. Anthony)는 ‘사막의 성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수도승이다. 젊은 안토니우스는 마태복음에 기록된 부자 청년에 대한 설교를 들은 뒤 처음으로 성령의 뜨거운 기운을 받았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사막에 들어가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다.
* [품절]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 《사막의 안토니우스》 (분도출판사, 2015)
* 아타나시우스 《성 안토니의 생애》 (은성, 2009)
온갖 종류의 유혹과 환영이 안토니우스에게 나타나 그를 무너뜨리려 하였다. 그는 이런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아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사막으로 옮겨갔다. 10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안토니우스는 사막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그는 단 두 번 은둔처를 벗어났다. 첫 번째는 311년 알렉산드리아에서 일어난 박해로 유죄 판결을 받은 죄수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는 아리우스 파(Arianism)와 논쟁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예수의 신성(神聖)을 부인한 아리우스 파에 맞서 싸우던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of Alexandria)를 도와 교회의 정통 교리를 수호했다. 아타나시우스는 안토니우스의 생애를 기록했고, 그가 쓴 성인 전에 영향을 받은 젊은 성도들이 사막에 찾아왔다. 안토니우스와 그를 따르는 성도들은 사막에 모여든 제자들에게 금식과 기도와 자선에 관해 가르쳤다. 최초의 수도원은 사막에서 시작되었다.
*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 《악의 쾌락 변태에 대하여》 (에코의서재, 2008)
* 로이 포터, 미쿨라시 테이흐 엮음 《섹슈얼리티와 과학의 대화》 (한울아카데미, 2001)
안토니우스는 금욕과 고행, 그리고 청빈한 생활을 중시했다. 그는 하루 한 끼만 먹었고, 배가 고플 때는 맹물을 잔뜩 퍼마셨으며, 빈 동굴 무덤에서 거지처럼 웅크리고 잠을 청했다. 일정 기간 간격으로 친구들이 마른 빵을 가져다준 덕분에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오늘 우리의 기준으로 안토니우스의 생활을 보면 극단적인 금욕에 가까운 고행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시 중세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마음속의 욕념을 깨끗이 비워 버리는 방법이다. 안토니우스뿐만 아니라 여러 종파의 수도승, 신비주의자들은 마음속에 층층이 남아 있는 잡다한 악덕의 모습을 기도 속에서 훌훌 털어버림으로 마음을 정화하고자 했다. 이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 고통을 받아들여 자신의 삶을 믿음에 일치시키기 위해 예수를 따르고자 노력했다. 그리하여 육신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고행을 실천했다. 고행자들은 자발적으로 십자가의 고통에 참여하려고 때로는 자신의 몸에 채찍질을 가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육신에 직접 고통을 가하기도 했다. 소박한 종교적 반성에서 시작한 채찍질 고행은 마조히즘(masochism)의 이상 현상에 휘말려 미친 듯 인기를 끌게 된다. 중세 말기에 와서 자기 파괴적 고행 방식은 이단으로 규정 받기 시작했고, 채찍질 고행은 악마의 행위와 동일시되었다.
정신분석학자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Elisabeth Roudinesco)는 자신의 책 《악의 쾌락 변태에 대하여》 (에코의서재, 2008)에 중세의 극단적인 고행 문화를 소개하면서 인류의 도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섹슈얼리티와 과학의 대화》 (한울아카데미, 2001) 2장(『사디즘, 마조히즘의 역사, 언제 어떤 행동이 사도마조히즘이 되는가』)은 사디즘(sadism)과 마조히즘의 용어 성립에 대한 통념을 깨는 글이다. 여기서 말하는 통념이란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19세기 근대 성과학의 등장과 함께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사도마조히즘은 ‘병리적인 형태’가 아니라 인류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원초적 본능이다. 《섹슈얼리티와 과학의 대화》도 중세 고행자들의 마조히즘을 근거로 내세워 ‘고통으로부터 느끼는 쾌락’을 누리는 문화가 오래전부터 만연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중세 고행자들은 사드 후작(Marquis de Sade)이 태어나기 전에 마조히스트로 살고 있었던 셈이다.
※ Trivia
《섹슈얼리티와 과학의 대화》 서론 15쪽에 괴테(Goethe)의 작품명이 언급되어 있다. ‘괴테의 사고력 실험소설 『선택적인 유사성(Elective Affinities)』’이라고 적혀 있는데,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린가 했다. 우리말로 옮긴 작품명에 영문명이 안 적혀 있었다면 작품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Elective Affinities’는 18세기에 나온 화학 용어인데 물질의 결합을 일으키는 힘을 뜻한다. 과학에 조예가 깊은 괴테는 이 과학적 개념을 빌려 인간의 관계를 묘사한 《친화력》이라는 소설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