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왕의 사회학 - 지방 청년들의 우짖는 소리
최종렬 지음 / 오월의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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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을 나와서 다녀본 직장이라는 게 대학교 행정실에 계약직으로 일한 것과 지금 다니는 기계제품을 판매 · 설치하는 회사이다.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고 싶어도 이직할 곳을 찾기가 만만치 않고, 잘못하다간 정말로 오갈 데 없는 백수가 될까 봐 두렵기도 하다. 청년 실업에 대한 뉴스를 들을 때면 남 일 같지 않다.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은 말이 실업이다. 거기에 지방대 출신은 취업 전선에서 가장 불리하다는 말까지 들으면, 따뜻한 말 한마디 정도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청년 실업도 서러운데, 지방대 출신이라고 해서 이 사회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너무 서글프다.

 

지방대 재학생과 졸업생, 학부모를 심층 면접하여 분석한 복학왕의 사회학(오월의봄, 2018)을 다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맙소사! 지방대생이 행복하게 살려면 뭘 해야 하는 거야?” 게으른 것도 아니고 다들 열심히 살려고 고군분투를 하는데도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지방대생의 삶이 왜 이 지경이 됐나.

 

복학왕의 사회학은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최종렬 교수의 논문을 보완한 책이다. 논문 제목은 복학왕의 사회학: 지방대생의 이야기에 대한 서사 분석이다. 복학왕은 매주 수요일 네이버에 연재 중인 웹툰이다. 지방대 생활의 사실적인 모습을 묘사해 호평을 받고 있다. 저자는 지방대에서 10년 이상 가르치면서 만난 청년들이 웹툰에 나온 지방대생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연구를 진행했다. 저자는 6명의 지방대 재학생과 17명의 지방대 졸업생, 그리고 지방대생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묻고 얻은 답변을 분석했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없는 지방대생의 서사를 새롭게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그래서 저자는 감정을 제대로 들어주는 상대가 없다는 점에서 지방대생을 소수자로 본다. 특정 지역, 특정 학교에 국한된 현상의 구조를 전체 지방대 학생에게 적용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위험은 분명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일반화된 경험적 사실을 도출하는 것이 연구의 주된 의도가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다.

 

누군가는 지방대생을 생존 경쟁에서 낙오된 패배자라고 말한다. 또는 지방대라 부르지 않고 지잡대(지방의 잡스러운 대학)라고도 부른다. 주로 지방대생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자조적인 속어로, 패배주의를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다. 사회학자 김홍중은 오늘날 청년층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생존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들을 각자도생에 익숙한 생존주의 세대라고 불렀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시선으로는 지방대생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질문한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학생들은 한결같이 가족과 함께 평범하게 사는 것을 행복의 가치로 삼았다. 이들에게 생존은 가족 안에 머물면서 생활하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는다. 그들은 공부, 입시, 스펙 경쟁 속에서 처지고 낙오했던 쓰라린 경험을 겪었거나 이미 그 경험을 하기 전에 위축되어 있다. 그래서 어차피 도전해도 실패한다고 체념하면서, 그런 자신의 모습에 대해 겸연쩍어한다. 저자는 적극적으로 자기계발을 하지 않는 지방대생의 감정 상태를 성찰적 겸연쩍음이라고 표현한다. 생존을 위한 자기계발 의지보다 가족의 행복을 위한 자기보존 의지가 강할수록 행복을 위한 목표를 높게 잡지 않는다. 자신과 가까이에 있고, 얼마든지 자주 만날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도 평범한 행복을 추구하기에 실패로 귀결되는 도전을 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이러한 주변 환경에 익숙한 학생들은 가족 밖, 더 나아가 지방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저자가 만난 지방대생들의 행동 양식은 적당주의 집단 스타일로 요약된다. 지방대생뿐만 아니라 지방대 졸업생, 부모들 대부분은 적당히 돈을 벌고, 적당히 즐기면서 가족과 함께 사는 소소한 일상을 꿈꾼다.

 

그렇다면 지방대생은 어떻게 하면 가족지방이라는 이중 울타리에 벗어날 수 있을까? 지방대생들이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도록 대학과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을 해야 한다. ‘대학생활을 즐겨라!’라는 말조차 쉽게 꺼내기 힘든 지금의 지방대는 기운이 팔팔한 자유로운 영혼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자기 세계에 갇힌 무기력한 영혼들이 캠퍼스를 배회한다. 저자는 미적 체험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는 것이 가족주의에 벗어나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대학이 미학적 폴리스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단번에 이해하기 힘든 용어를 쓴 것에 약간 불만이 있다. 왜냐하면, 용어 자체에 인문학적 향기가 물씬 풍기고 책을 접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일부 독자는 저자가 문제 해결 대안으로 제시한 미학적 폴리스개념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저자가 제시한 미학적 폴리스는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교육 기관을 뜻하지 않는다. 새로운 타자들을 만나 상호 작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저자의 대안이 이상적이지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지방대생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히 자기 세계에 갇힌 채 살아가는 지방대생들이 있다.

 

복학왕의 사회학을 읽고 한동안 마음이 부대꼈다. 지방대 졸업생의 위치에 서서 대학교에 일하는 동안 다양한 모습의 지방대생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취업에 번번이 실패해서 졸업을 유예하는 친구들, 이러한 반복되는 실패에 지쳐버린 친구들, 그리고 주변 친구들이 겪은 상황을 지켜보고 나서 지레 겁먹어 도전을 꺼리는 친구들. 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은 금방 나오지 않겠지만,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지방대생들의 목소리를 사회 전체에 울릴 수 있는 공적인 서사 형태로 듣는 일이다. 이 일은 책상에 앉아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귀 기울여 듣는 작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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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1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8-22 11:51   좋아요 1 | URL
대구에 일자리가 줄어들면, 지방경제가 침체될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자본도 줄어들어요. 이러니까 대구가 서울이나 다른 지방에 비해서 문화 공간이 부족해요. 특히 서점과 책방! 지역에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으면 문화에 대한 지역주민의 관심도 단순해져요. 그래서 대구에 오래 살면 보수적인 집단 분위기를 쉽게 벗어나지 못해요.

syo 2018-08-21 18: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왜 눈물이 나지?? ㅠ_ㅜ

cyrus 2018-08-22 11:53   좋아요 0 | URL
이 책을 보면서 대학생 시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저도 얼른 취직해서 소박하게 지내면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마음가짐도 보수적인 환경이 만들어 낸 생각이었어요.

감은빛 2018-08-21 2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방대 졸업생이라 공감이 많이 가네요.
아마도 저 역시 시민단체 활동가라는 직업을 택하지 않았다면,
기나긴 실업의 늪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거라는 생각을 가끔해요.
활동가가 아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저자의 대안은 별로 대안으로 느껴지지 않는군요.

한편으로 저는 대학이 너무 많고,
대학을 나와도 딱히 인생에 도움될 것이 없는
그러니까 대학 다니면서 대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입시 학원의 연장처럼 단순히 각종 자격증과 스펙 쌓고,
고시 준비하는 그런, 굳이 대학생이 아니어도 될 활동을 대학에서 하는 것이 문제다 싶어요.

대학입시와 대학생활과 취업준비까지 쓸데없이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 여겨요.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뭔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혹은 잘 하는 것을
통해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특히 요즘처럼 뭐든 찾아보면 다 알 수 있고,
요즘 젊은 분들처럼 뭐든 척척 잘 하는 사람들이라면 말이죠.

cyrus 2018-08-22 11:57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이 책의 저자가 내세운 대안이 ‘대학만능주의’로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