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종교인들은 종교를 믿음과 구원이라는 추상적 개념보다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 등 구체적 종교 형태를 통해 이해한다. 이들은 각 종교 신도의 생활과 경전 내용을 통해 종교의 의미를 유추하기도 한다. 대부분 종교는 보수적이다. 왜냐하면 종교는 과거의 전통을 지키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수의 종교인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데 요청되는 비판의식을 거부하고, 이전 것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종교는 비판적 사유가 작동되는 것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더 이상 변화하기를 거부하는 행보를 보이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종교 내 ‘성차별’ 문제는 오랫동안 비가시화되어 왔다.
워마드에 천주교의 성체(聖體)를 훼손한 사진이 올라와 큰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밀떡에 주황색 글씨로 낙서가 되어있고, 일부가 불타 검게 그을려 있는 사진이 문제였다. 천주교에서 성체는 현존하는 예수의 몸을 가리킨다. 성체를 훼손하는 행위는 예수를 직접 모욕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부 워마드 회원들은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는 사라져야 한다면서 천주교뿐만 아니라 기독교, 이슬람를 조롱하는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731/pimg_7365531661970359.png)
이슬람교 경전 코란을 불태우는 사진이 게시되면서 또 다른 논란이 일었던 바 있다. 해당 사진은 실제 경전을 소각하는 장면을 찍은 것이 아니다. 또 워마드 회원이 직접 코란을 불태워 찍은 사진도 아니다[주1]. 그러나 이 게시물을 올린 회원은 ‘이슬람 바퀴벌레’라는 표현으로 이슬람과 남성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지금도 워마드에는 종교를 비하한 게시물이 남아 있다.
워마드의 성체 훼손 논란에 대해서 혹자는 천주교가 워마드의 자극적 행동에만 지적할 것이 아니라 종교 내 성차별 문제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런 의미에서 각 종교계도 성차별 문제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종교 내 성차별 문제를 들여다 볼 때 반드시 피해야 할 오류가 있다. 종교가 여성을 차별하고, 혐오한다는 주장이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공통으로 가부장제적 전통을 지니고 있다. 성경이나 코란에 보면 여성은 남성보다 수동적이고 열등한 존재이며 동시에 파괴적인 성적 에너지의 소유자로 간주하여 남성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 통제돼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
“신이 부여한 특권에 따라, 남성은 여성에 대한 권위를 지닌다. 여자의 부정행위가 의심될 때는 훈계하라. 여자를 가두고 매질하라.”
(코란 4장 43절[주2])
“정숙한 옷차림을 한다.” (디도데 전서 2장 9절)
“바지나 청바지가 아니라 원피스나 치마를 입는다.”
(신명기 22장 5절[주3])
기독교와 이슬람에는 여성 억압을 정당화하는 교리나 규율이 있다. 그렇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교리를 전파하고, 여성을 무시하는 종교는 사라져야 하는가? 그리고 예수와 무함마드는 성차별주의자인가? 그들은 ‘남자’라서 조롱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워마드는 종교를 모욕하는 행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과연 이게 ‘극단적’이어도 충분히 의미 있는 ‘여성 운동’이라고 볼 수 있을까?
기독교와 이슬람을 ‘여성 혐오 종교’로 규정하고, 더 나아가 예수와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워마드의 행동은 논증적으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그리고 여성 권리 신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양한 전략’을 선택할 수 있는 여성운동의 특성상 워마드의 종교 비하는 전략적으로 문제가 있다.
* 에마 골드만 외 《그곳에 가면 다른 페미니즘이 있다》 (르몽드코리아, 2018)
* 레이첼 헬드 에반스 《성경적 여성으로 살아 본 1년》 (비야토르, 2018)
‘기독교와 이슬람은 여성 혐오 종교’라는 주장은 누구나 동의한다. 여성을 차별하는 내용이 있는 경전의 구절 몇 개만 찾아내면 종교의 문제점을 언급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의 문제점만 지나치게 부각하면 여성을 동등하게 바라본 경전의 해석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게 된다. 성경, 코란 등 종교 복음서는 여성 차별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왔지만, 그 속에 훌륭한 업적을 남긴 여자 성인(聖人), 여성 신도를 찬양하는 구절도 있다. 경전이나 복음서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전승되고 공유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가부장적 권력을 쥐고 있는 남성 종교인들은 여성을 높이 평가한 구절들이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삭제했다. 그리하여 기독교, 이슬람 내 여성 신도들은 경전의 구절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 엄익란 《금기, 무슬림 여성을 엿보다》 (한울아카데미, 2015)
* [절판] 하이다 모기시 《이슬람과 페미니즘》 (프로네시스, 2010)
이슬람 페미니스트 아스마 바를라스(Asma Barlas)는 이슬람 문화권에 있는 여성 차별의 원인을 코란에서 찾지 않는다. 그녀는 무슬림 여성을 동등하게 대하라고 강조한 무함마드의 계시를 왜곡하고, 차단한 남성 종교인 및 학자들의 가부장적 권력이 무슬림 여성 차별을 강화한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주4].
비무슬림 또는 비무슬림 학자들은 경전의 편파적인 해석을 무시한 채 이슬람과 코란 자체가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원인이라고 비난한다. 이러한 ‘편견’은 반이슬람주의라는 탈을 쓴 극우 세력을 결집하게 만드는 서사로 작용한다. 이슬람을 비하하고, 코란을 불태우려는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몇몇 워마드 회원의 주장은 반이슬람 · 반난민 정서와 맞닿아 있다. 따라서 종교와 난민을 배척하는 워마드의 발언은 페미니즘 방식의 언어라고 보기 어렵다.
종교 내에 쉬쉬하고 있는 여성 차별 및 성폭력 문제는 종교적 차원의 문제를 넘어선 사회적 문제이다. 남성 중심, 가부장적으로 해석되고 전달된 경전은 평등의 관점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 그러면서 경전이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질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종교 내 성차별 문제는 남성 종교인의 절대적 권위와 위계 구조를 문제 삼아야 근절할 수 있다. 종교 자체를 ‘여성 혐오’의 온상으로 생각하는 워마드의 극단적인 입장은 종교 내 페미니즘 운동의 노력을 축소하는 부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워마드는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은 잘못 찾았다.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종교 내 성차별 문제를 어떻게 근절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주1] 워마드 회원이 코란을 직접 불태운 것이 아니라 과거 외국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사진을 가져다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구글이나 유튜브를 검색하면 동일한 사진과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워마드 회원 “코란 불태웠다” 게시물에 발칵…외국 사진 재탕 확인 “휴우~”], 동아일보, 2018년 7월 11일)
[주2] 앙리 텡크, 『신은 여성 혐오자인가?』, 《그곳에 가면 다른 페미니즘이 있다》, 151쪽, 르몽드코리아, 2018.
[주3] 레이첼 헬드 에반스, 《성경적 여성으로 살아 본 1년》, 179쪽, 비아토르, 2018.
[주4] 엄익란, 《금기, 무슬림 여성을 엿보다》, 60~62쪽, 한울아카데미,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