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매매(human trafficking)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인신매매의 초기 형태는 전쟁에 패한 나라의 군인이나 여성이 승전국의 노예가 되는 경우였다. 패전의 대가를 노동력으로 계산해 치른 것이다. 전쟁은 역사적으로 남성이 일으켰지만, 살아남아 그 피해를 온전히 떠안는 것은 여성이었다.

 

 

 

 

 

 

 

 

 

 

 

 

 

 

 

 

 

 

* 수전 브라운밀러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오월의봄, 2018)

* 호메로스 《일리아스》 (도서출판 숲, 2015)

* 에우리피데스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 (도서출판 숲, 2009)

 

 

 

전쟁에서 여성은 전리품으로 취급된다. 군사주의는 여성을 제멋대로 선취하고 여성을 ‘인간’이 아닌 ‘상품’으로 인식하면서 착취했다. 전쟁 때마다 되풀이됐던 적군의 사기를 누그러뜨리려 상대편 여성을 납치하고 성폭행하는 일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집단 강간을 통해 패전국의 남성은 자국 여성을 보호하지 못한 수치심을 느끼며 승전국의 남성은 이들을 ‘정복했다’는 일종의 승리감에 도취한다. 여성을 짓밟은 고대 군사주의의 실상을 보여준 작품이 에우리피데스(Euripides)『트로이아 여인들』이다. 에우리피데스는 트로이가 멸망한 이후에 트로이 왕비 헤카베와 딸 캇산드라,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에게 덮친 비참한 운명을 그리고 있다. 트로이가 함락되자, 트로이 왕가의 여인들 모두 승자의 노예가 되어 뿔뿔이 흩어진다. 헤카베는 오뒷세우스의 여종으로, 캇산드라는 아가멤논의 첩으로, 안드로마케는 아킬레우스의 아들의 첩이 된다. 헬레네는 고대 영웅들만큼이나 유명한 여성이지만, 그녀는 남성 영웅들의 세계를 장식한 ‘트로피’에 불과하다. 트로이 전쟁의 가장 큰 명분은 납치된 헬레네를 되찾는 것이었고, 헬레네와 직접 관련이 없는 국가들은 각자의 승리와 전리품을 얻어내고자 했다.

 

 

 

 

 

 

 

 

 

 

 

 

 

 

 

 

 

 

 

 

 

 

 

 

 

 

 

 

 

 

 

 

* 마디스 레디커 《노예선》 (갈무리, 2018)

* 김진묵 《흑인 잔혹사》 (한양대학교출판부, 2011)

* [절판] 벤자민 콸스 《미국 흑인사》 (백산서당, 2012)

* 장 메이에 《흑인노예와 노예상인 : 인류 최초의 인종차별》 (시공사, 1998)

 

 

 

근대에 들어서는 아프리카 등지의 흑인이 미국이나 유럽의 노예가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주로 강제 매매 형태였다. 유럽과 신대륙을 점령한 백인 노예상인들에게 흑인 노예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안겨준 살아있는 ‘상품’이었다. 흑인 인신매매가 이루어지는 가장 큰 목적은 노동력 확보였다. 따라서 남자 노예의 몸값이 훨씬 높았다. 여성 노예들이 백인들의 성적 노리개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 게일 루빈 《일탈》 (현실문화, 2015)

* 니키 로버츠 《역사 속의 매춘부들》 (책세상, 2004)

* [절판] 번 벌로, 보니 벌로 《매춘의 역사》 (까치, 2002)

 

 

 

시대가 변하면서 대중이 인식하는 인신매매의 형태도 달라진다. 19세기 미국과 유럽의 반 매춘 활동가들은 ‘매춘을 목적으로 한 인신매매’를 비판하면서 매춘과 인신매매를 사회악으로 규정했다. 금욕과 도덕주의를 강조했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매춘부들은 멸시의 대상이었다. 이때만 해도 성병에 걸린 매춘부를 수용소에 강제로 보내게 한 성병 방지법이 있었고, 국가는 매춘부에게 일방적으로 성병 검사를 강요했다. 스위스 출신의 목사 토마 보렐은 강제 매춘의 실상을 보고하는 책을 펴냈는데, 그의 책은 <유럽의 백인 노예>라는 제목으로 미국에 소개됐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에서도 매춘과 인신매매 반대 여론이 형성되었는데, 미국의 반 매춘 활동가들이 사용한 수사적 비유가 바로 ‘백인 노예’였다. 그들은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 특히 유대인을 인신매매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인신매매 공포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불안과 혼란의 기운이 와전되며 거대한 분노의 줄기로 증폭됐다. 요즘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는 ‘난민 공포’의 형성 과정과 유사하다. 불확실하거나 심지어는 조작된 유언비어(가짜 뉴스)가 난민들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심을 자아내듯이 ‘백인 노예’는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미국인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줬다. 반 매춘 활동가들은 유언비어를 이용해 인신매매와 매춘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페미니스트였던 무정부주의자 엠마 골드만(Emma Goldman)과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게일 루빈(Gayle Rubin)은 각각 『The White Slave Traffic(백인 노예 매매)와 『The Traffic in Women(여성 거래)』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전자는 1910년에, 후자는 1975년에 나왔다. 이 두 편의 논문의 공통점은 제목에만 있는 게 아니다. 골드만과 루빈이 논문에서 주장한 내용도 비슷하다. 두 사람은 인신매매와 매춘의 개념을 왜곡하면서 혼용하는 반 매춘 활동가들의 입장에 반대한다. 루빈에 따르면 인신매매의 위험성을 강조하여 매춘을 공격하는 방식은 매춘부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부여할 수 있다. 그리고 매춘이 ‘성노예를 강요하는 인신매매’로 오해하기 쉽다. 아이러니하게도 매춘을 비난하는 반 매춘 활동가들의 입장은 도덕적 보수주의자들의 입장과 만나게 된다. 루빈은 이 두 세력의 기묘한 만남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골드만은 백인 노예 담론을 비판하면서 성 도덕주의자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여성의 성적 자유를 옹호했다. 그러면서 매춘부의 입장을 존중했다.

 

 

 

 

 

 

 

 

 

 

 

 

 

 

 

 

 

 

 

* 이소희 엮음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8)

 

 

 

골드만과 루빈의 입장은 지금도 여전히 급진적이다. 왜냐하면, 매춘 또는 성매매(혹은 성 노동)를 둘러싼 페미니즘 내부의 오랜 논쟁에 기름을 부을 만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성매매 여성들은 ‘피해자’인가, ‘노동자’인가? 자발적 성매매를 허용해야 하는가? 성매매방지특별법에 따르면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행한 자를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지금도 어디선가 은밀하게 성매매를 시키는 인신매매 조직이 있을 거고,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근절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성매매방지특별법을 생각한다면 루빈의 입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성매매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매매 합법화 정책이 인신매매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매매에 반대하면서도 성매매 여성의 인권 보호에 힘쓰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그러나 일부 성매매 여성들은 자신들을 ‘피해자’로 바라보는 페미니스트들의 동정ㅈ적인 시선에 반대한다. 자신들을 ‘성노동자’ 또는 ‘성판매 여성’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피해자 위치의 성매매 여성’ 담론은 성을 판매하는 여성을 적극적인 경제활동 주체, 즉 노동자로 인식하지 않는 한계가 있다. 어떻게 부르는가, 누가 부르느냐는 문제는 중요하고 민감하다. 이름 자체로 존재가 가시화되기도, 은폐되기도 한다. ‘창녀’, ‘갈보’, 그리고 ‘걸레’는 성판매 여성을 ‘순결하지 않고, 불결한 존재’로 만드는 차별적인 표현이다. 매춘 또는 성매매 대신에 ‘성 노동’, ‘성판매’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여성들도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여전히 성매매에 대한 입장이 불명확하다. 한때 성매매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나 루빈의 의견을 살펴보니 너무 섣부른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성급한 일반화는 복잡한 여성 문제를 단순하게 만든다. 또 여성 문제에 관련된 당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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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7-21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에서 남자 노예(흑인)의 몸값을 그의 치아 상태를 보고 정한다는 대목을 보고 놀란 적이 있어요.
같은 사람끼리 어떻게 그런 취급을 할 수 있는 건지 경악할 일이에요.

cyrus 2018-07-23 17:13   좋아요 0 | URL
흑인노예는 ‘상품’이었어요. 노예상인들이 노예를 고를 때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치아와 눈동자였어요. 노예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거예요. 노예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은 노예의 몸 구석구석 살폈습니다. 노예 입장에선 수치스러운 일이죠.

AgalmA 2018-07-22 19: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성매매를 성노동으로 환치해 이미지 세탁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몸 내가 어쩌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말한다면 내 장기매매도 허용해야죠. 내 장기 자유 결정권!
매춘 행위는 성적 자유, 자기 결정권을 내세울 사안이 아닙니다. 그것을 사고자 하는 남성(더러 여성도?)들의 욕망에 기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기 어려워요. 우리가 생각하는 노동을 통해 얻는 자기 성취, 만족, 가치가 대부분의 성매매에서 얼마나 나올 수 있는지. 생활의 어려움 등을 호소하며 노동으로 봐 달라고 한들 매춘으로 금전적 이득을 보려는 게 옹호할 만한 것일까요. 그것을 둘러싼 카르텔, 폐해가 부정적인 건 또 어쩌고요. 사회를 위해 도움이 되는 점을 강조한다 해도 그건 타인의 욕망을 채워주는 착취적인 복속이 있지 않나요. ‘자기 자유‘라는 말이 무색하죠. ‘상품‘이 되고 ‘전리품‘이 된 역사의 변종이 될 뿐입니다. ‘연예계 스폰서‘ 같은 걸 보세요. 더러 호스피스적으로 장애인들을 위한 성매매도 있지만 예외적 상황이 전체를 포괄하기도 옹호하게 만들기도 어렵습니다.

저는 지금 도덕이나 윤리를 강요하려는 게 아니라 성매매 저변에 깔린 건 무시하고 ‘노동‘이라는 표면만 보라는 논점을 가진 이들에 불만이라 한 마디 남겼습니다.

cyrus 2018-07-23 17:38   좋아요 1 | URL
저도 성매매가 범죄로 악용되고, 변질되는 것에 우려합니다. 저는 트랜스젠더 여성을 여성운동에 배제하는 쉴라 제프리스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녀의 성매매 반대 입장에 찬성합니다. AgalmA님이 말씀하셨듯이 제프리스는 장애인을 위한 성매매도 반대합니다.

그런데 성매매 종사 여성 전체를 불법적인 존재로 규정하면, 이에 따른 문제점도 생깁니다. 노동시장에 소외된 여성(가정폭력을 겪은 여성, 미혼모, 나이 든 여성) 및 성소수자들은 생계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종사합니다. 그들을 ‘범죄인’으로 취급한다면 생계에 타격을 받습니다. 그들은 성매매를 그만 두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창녀’, ‘범죄자’로 한 번 낙인찍히면 일자리를 얻을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 성매매 대신에 ‘성노동’, ‘성 판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성매매 자체를 반대하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성매매 문제는 성매매 자체를 없애면 끝낼 수 있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성매매 문제를 논할 때마다 성매매 여성의 목소리는 배제됐습니다.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성매매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galmA 2018-07-26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장기 매매 이야기를 한 게 우스개 비유로 가져온 건 아닙니다. 장기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내세우는 게 경제적 사정입니다. 진짜 오죽하면 대체하기 어려운 장기까지 팔까 싶기도 하죠.
성 매매 경우도 이게 아니면 어렵다는 문제를 늘 가져 오는데요. 다른 일을 배우도록 사회 지원을 받아도 성매매로 다시 돌아가는 경우 많죠. 사회적 멸시나 비판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다른 걸 할 수 있는 선택의 문제가 더 크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한 번 시작하면 그 상태로 돌아가기 쉽다는 말입니다. 이런 악순환, 대물림이 진짜 문제죠. 물론 세부적이고 개인적인 여러 문제를 다 알 수 없는 문제지만 생계를 내세워 너무 쉽게 혹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건 아닐까요. 극도의 가난에 내몰린 사람들을 보조할 사회적 기반이 약한 건 인정합니다. 그러니 이런 여러 문제 때문에 공창제 같은 의견도 나오는 것일 테고요. 문제를 해소할 여러 사회적 기반 조성이 되어야지 성매매 찬성쪽으로 가는 건 쉬운 선택입니다.
자발이냐 비자발이냐 개인의 자유로 돌리는 것도 너무 편한 논리입니다. 내 의지로 다른 이들의 성욕을 채워 주고 돈을 받는 게 말은 되지만 전면적 공감과 수용을 이끌 논리는 아니니까요. 상부상조가 이럴 때 쓰라는 말은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