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 나이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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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다. 끔찍한 사건이 삶을 파고 들어왔다. 그리고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졌다. 몸도 마음도, 심지어 사랑까지도. 이별과 죽음은 예상했던 것일지라도 언제나 기습처럼 심장을 찌른다.

 

사야카는 사물에 말 거는 신기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과거에 일어난 불행한 사건 때문에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그 사건 이후로 그녀의 왼손 엄지손가락은 펴지지 않는다. 그녀에게 어린 딸 미치루는 사별한 전 남편 사토루의 빈자리를 덮어주고 위안을 주는 존재이다. 어느 날, 사야카에게 옛 연인 이치로의 편지가 찾아온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서커스 나이트는 의문의 편지와 함께 시작된다. 이치로는 왜 사야카의 집 마당에 자라는 히비스커스 나무가 있는 곳을 파려고 하는 걸까? 이 나무는 뜨겁게 사랑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된 이치로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사토루라는 이중의 상실에 처한 사야카가 풀어내야만 하는 수수께끼이다.

 

외로움, 정신적 상처, 그리고 죽음을 이야기했던 요시모토 바나나. 이번 신작 서커스 나이트에서 그녀는 기억을 매개로 사람들의 슬픔과 외로움을 그렸다. 이 작품에서도 바나나는 상처와 치유를 이야기하지만 무게 중심은 상처보다는 치유 쪽에 가 있다. 이번 작품에서 그녀는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아우르고 있는 서로의 관계와 인연 속에서 잊힌 추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등단 때부터 신비주의에 심취했던 바나나는 상실의 상처, 그 슬픔을 이겨나가는 신비스러운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왔다. 사야카는 사토루가 심은 히비스커스 나무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포용하면서 죽음을 긍정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얻는다. 히비스커스 나무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소소한 삶의 일부분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삶의 거친 물살 속에 휩쓸려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행복한 기억이 새겨진 조각이다. 사야카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고 상처를 입으면서도 히비스커스 나무를 통해 과거와 현재, 자신과 세계를 포용하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용기와 힘을 얻는다. 바나나는 치유의 힘을 지닌 자연에 향한 경외감을 사뭇 진지하게 표현한다.

 

사야카에게 기억이란 자신이 살아오는 동안 함께 성장하면서 고통을 안겨주며 때로는 위로하고 행복을 선사하는 절친한 친구 같은 것이다. 작가는 그녀의 입을 빌려 슬프지만 즐거운 추억[]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통과 행복의 순간이 뒤죽박죽 엉켜있는 추억은 마음의 상처를 헤집어 쑤시지만, 한편으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약이 된다.

 

서커스 나이트가 주는 느낌은 이러하다. 무언가 부족한 듯하면서도 무언가 꽉 찬 느낌. 바나나는 독자들이 느긋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썼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독자들을 가르치려 들지는 않으며 서정적이지만 신파는 아니다. 그녀의 작품이 늘 그렇듯이 소설은 삶에 대한 진지한 교훈을 전달하기보다는 인물들이 과거의 아픔을 회복하는 과정을 사분사분하게 보여준다. 독자들이 서커스 나이트를 읽으면서 평소 잊고 있었던 섬세한 감정의 움직임을 다시 느꼈으면 좋겠다. 한 번쯤 인생의 짐이 무거워 질 때 이 책을 접하게 되면 왠지 모를 공감과 함께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질 수 있다.

 

 

 

[주] 《서커스 나이트》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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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20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한권 읽은것같아요 사이러스님 역쉬 글이~

cyrus 2018-07-21 13:10   좋아요 0 | URL
줄거리를 너무 많이 언급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책의 가장 중요한 장면만 골라 언급했습니다. ^^;;

카알벨루치 2018-07-21 13:30   좋아요 0 | URL
전 요즘 스포노출에 대해 신경을 끄고 글을 적는데...이랬다 저랬다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