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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페미니즘×민주주의
정희진 외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5월
평점 :
최근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요구되고 있지만,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견고한 분야에선 여전히 여성의 사회 참여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페미니즘 논의가 주목받으면서 이전보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요소는 많이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여성은 동등한 존재로서가 아닌, ‘남성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는 인식 역시 뿌리 깊게 남아 있기도 하다. 따라서 제도적인 측면에서 여성의 권리가 많이 신장하였다고는 하나, 여전히 남성보다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를 비롯해 고용조건 개선, 권익 · 지위 향상 등 아직도 해결해야 할 많은 현안이 남아 있다.
여성의 지위를 높이고 사회참여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정치에의 참여가 특히 중요하다. 하지만 여성 공천 할당제는 선거 공천 때마다 매번 반복돼 왔던 문제이지만 실제로 현실화하지는 못했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시도지사 후보로 등록된 이 중 여성은 6명에 불과했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한 여성 후보는 35명이다.[1] 6·13 지방선거는 집권 여당의 압승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여성의 자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은 광역단체장에 여성을 공천하지 않았고, 기초단체장도 고작 11곳에 후보를 내 7명이 당선됐다. 선거 과정에서도 여성 후보들을 향한 ‘혐오’의 시선은 일상화돼 있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녹색당 신지예 후보의 선거 벽보를 한 남성이 훼손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남성은 페미니스트 후보가 당선되면 남성의 일자리가 빼앗길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선거 벽보를 훼손했다고 진술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젠더는 일상생활부터 국가정책, 사회운동, 지식사회에 이르기까지 가장 첨예한 논쟁 주제 중 하나다. 페미니즘을 모르면 인간과 사회 현상을 온전히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기존의 남성 중심적 문화를 비판하고 있다. 문제는, 미투(#MeToo) 이슈에 대한 상반된 반응에서 보듯이 젠더 이슈 인식이 남녀에 따라 극심한 격차를 보인다는 점이다. 여성 문제 인식에 대한 남성들의 문화 지체 현상은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당선되었는데도 왜 우리 사회에 변화가 없을까. 젠더 이슈는 정치에서 늘 주변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 문제를 다른 사회적 문제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는 인식은 우리나라 정치권의 젠더 감수성(gender sensibility) 수준을 보여준다.
이번에 나온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X민주주의》 교유서가, 2018)는 오랜 가부장적 권위주의로 얼룩져왔던 한국의 민주주의와 정치적 지형을 7명(정희진, 권김현영, 손희정, 한채윤, 서민, 손아람, 홍성수)의 페미니즘 시선으로 바라본 책이다. 지난해에 열린 <한겨레21> 페미니즘 강연 내용을 엮은 것이다. 정희진은 가부장제 사회의 남녀 관계를 ‘톰과 제리’로 비유한다. 톰과 제리는 한쪽이 불행해야 한쪽이 행복해지는 적대적 모순 관계이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어울리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고양이 톰이 ‘남성’, 생쥐 제리가 ‘여성’이라고 한다면 남성과 여성은 섹스하는 적대적 모순 관계이다. 남녀는 서로 사랑하고 결혼해서 가족을 구성할 수 있지만, 힘과 위계질서에 의해 유지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힘들고 불행한 삶에 직면한다. 그렇기 때문에 젠더는 정치적 문제가 된다. 젠더는 경험상 개인적이고, 사소한 문제일지 몰라도 그것의 생성과 작용은 결코 개인적이지만은 않다. 페미니스트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The personal is political)”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정희진은 문재인 정부의 유일한 약점이 ‘젠더’라고 지적한다. 문재인 정부는 민주주의와 ‘촛불 혁명’을 시대정신으로 해서 집권했다. 하지만 일부 진보세력은 여성 문제, 성소수자 문제를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남성 연대의 도덕적 우월감은 여 · 야, 보수 · 진보 할 것 없이 공고하다. 진보 정권도, 보수 정권도 그랬다. 젠더 이슈는 뒷전이다. 쟁점화가 안 되고 별 필요 없는 것처럼 그냥 묻혀버린 것이다. 권김현영은 80년대 민주 세력이었던 ‘40대 서울 남성 연대’가 한국 사회의 기득권이 되면서 젠더 이슈를 외면했다고 진단한다.
페미니스트 문화비평가 손희정은 ‘남성 검사(檢事)’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국영화가 드러낸 왜곡된 남성성과 남성연대를 분석한다. 한국영화에 등장하는 검사는 도덕성과 정의감을 지킬 줄 아는 모범적이고 훌륭한 남성으로 묘사된다. 불합리한 사회의 모순에 대항하는 정의감을 가졌고, 음모론을 파헤치는 ‘시민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영화 속 남성 검사는 ‘나만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나르시시즘이 반영되어 있다. 이 뻔뻔한 남성의 나르시시즘은 자신을 사회의 중심으로 내세우고 ‘다른 문제’, ‘다른 목소리’를 배제한다.
보수 정치인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발언을 하나의 정책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고, 당사자인 성소수자들은 모욕감과 위화감을 느끼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도 성소수자의 인권은 계속 ‘나중으로’ 밀리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은 인권의 보편성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특수성에 의해 ‘나중의 일’로 치부된다. 한채윤(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은 성소수자 차별 및 혐오를 합리화하는 종교(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와 정치의 정경유착에 주목한다. 법학자 홍성수는 혐오표현을 소수자집단에 대한 혐오에 근거해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혐오표현은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이 감정 차원을 넘어 현실 세계로 드러난 문제이다. 홍성수는 혐오표현의 문제에 대응하고 해결할 길을 찾는 것은 민주 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라고 말한다.[2]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도는 한 사회의 시민의 눈높이와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나타낸다. 어느 나라의 민주주의든 그 성숙도는 여성과 소수자를 대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한국의 페미니스트 7인은 일상의 여성 문제와 성소수자 문제를 우리 사회 최대의 정치적 상황으로 여긴다. 그들의 이러한 사유는 정치와 민주주의를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과학자의 비판 정신과 결부돼있다. 그들이 끝도 없는 의문부호를 던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젠더 권력은 왜 현실 정치로 사소화되는가(정희진)”, “왜 남자들은 여성혐오를 하면서까지 여자들을 침묵시키려고 하는가(서민)”, “대중문화 속 여성은 왜 수동적일까?(손아람)” 결국엔 날 선 질문들의 끝을 독자에게 겨눈다. 남성만 진보가 아니고 여성과 성소수자와 수많은 다양한 목소리들이 진보를 말했다. 우리는 사실 미완의 민주주의가 작동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X민주주의》는 그간 남성, 가족, 이성애 중심의 ‘정상 시민’이 주도한 운동에 머물렀던 민주주의의 외연을 넓혀줄 것은 물론 넓게는 페미니즘 및 성소수자 운동에서 사적인 생활 영역과 공공 영역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실마리를 준다.
[1] 「6‧13 지방선거 여성 정치인 유리절벽 여전…광역·지자체 장은 남성 중심」 (여성소비자신문, 2018년 6월 25일)
[2] 홍성수의 강연 내용은 그의 저서 《말이 칼이 될 때》(어크로스, 2018)에 나온 내용과 거의 흡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