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의 브랜드 슬로건은 컬러풀 대구(Colorful Daegu)입니다.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도시 이미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현재의 대구는 레드 아일랜드(red island)입니다. 대구가 보수 정당의 텃밭이 된 이후로 매력 없는 지역이 됐습니다. 지역의 정치색이 다양하면 좋을 텐데 대구는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정치색이 강합니다.

 

 

 

 

 

지난주 토요일(623)10회 대구퀴어문화축제가 동성로 일대에서 펼쳐졌습니다. 축제 슬로건은 퀴어풀 대구(Queerful Daegu)입니다. ‘컬러풀 대구에서 따온 것으로 다양성을 상징합니다. 퀴어 축제는 인간으로서 자긍심을 가진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축제입니다. 퀴어 축제는 성소수자만의 축제가 아닙니다. 게이도, 레즈비언도, 트랜스젠더도, 무성애자도, 그리고 이성애자도 함께 어울려 춤추고 노래 부르며 놀 수 있는 축제입니다. 이런 게 바로 진짜 컬러풀 대구입니다.

 

저는 올해 처음으로 퀴어 축제에 참가했습니다. 저 혼자 간 게 아니라 레드스타킹 멤버들과 함께 갔습니다.

 

오후 1시부터 부스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부스에 가면 퀴어 관련 굿즈를 구입할 수 있고, 퀴어 문화에 관한 정보를 담은 자료를 접할 수 있습니다. 부스 행사에는 타 지역 퀴어문화축제 진행위원회(서울, 전주, 부산, 제주), 대구 지역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경북대학교, 영남대학교, 대구대학교, 계명대학교), 국가인권위원회, 주한미국대사관, 구글(Google),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50여 개의 단체가 참여했습니다. 구글은 퀴어 축제를 후원하는 대표적인 기업입니다. 구글은 작년부터 AI 알고리즘을 이용해 인종 차별 발언 · 성소수자 혐오표현을 검색 결과에서 안 보이게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퀴어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자긍심의 퍼레이드입니다.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동성로 일대를 행진하는 행사입니다. 그런데 동성애와 퀴어 축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퍼레이드 행사를 막는 바람에 4, 50분 정도 지연되었습니다. 다행히 축제 참가자들과 동성애 반대 단체 회원들과의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당초 예정된 경로를 벗어났지만, 경찰의 보호를 받으면서 긴 행렬이 이어졌고, 대구시청을 지나게 됐습니다. 대구시청 앞에 장애인협약 요구를 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던 장애인단체 회원들을 만났습니다.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축제 참가자들을 열렬히 환영했고, 성소수자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혔습니다.

 

자긍심의 퍼레이드가 종료되고,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중앙무대에서 애프터 파티가 열렸습니다. 참가자들이 클럽 음악에 맞춰 춤추고 노래 부르는 행사입니다. 저는 클럽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제대로 즐기지 못했지만, 확실히 퀴어 축제가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축제라는 걸 느끼게 됐습니다.

 

대다수 사람은 동성애는 에이즈(AIDS, 후천성 면역 결핍증)의 원인이라고 여깁니다. 이러한 생각은 동성애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합니다.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보수 기독교인, 보수 시민단체가 주장한 시대착오적인 동성애 반대론이 사실인 것처럼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퀴어 축제가 음란한 축제라고 주장하면서 반대합니다.

 

퀴어 축제 반대 세력은 야한 옷을 입은 변태성욕자들이 성소수자를 위한 축제라는 명목으로 성적 욕구를 발산한다고 주장합니다. 선정적이고 퇴폐적인 퀴어 축제가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합니다. 모두 다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그리고 퀴어 축제는 음란한 축제가 아닙니다. 가슴과 성기가 보일 정도로 야한 옷을 입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탱크탑, 짧은 치마를 입은 축제 참가자들이 있었지만, 야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성적 행위를 암시하는 행동을 하면서 불쾌감을 유발하는 사람들도 없었어요.

 

동성애 반대 단체들은 남자며느리 NO, 여자사위 NO’, ‘동성애 독재 반대’, ‘돌아와 줘, 기다릴게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과 셔츠를 입고 축제 진행을 방해했습니다. 그들은 참가자들이 행진할 때마다 계속 줄줄이 따라와 피켓 시위를 하였습니다. 무례하게도 평화의 소녀상받침대 위에 올라가서 동성애 반대 피켓을 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몰상식한 추태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눈치챘는지 금세 달아나 버렸습니다.

 

우리나라에 하비 밀크(Harvey Milk) 같은 성소수자 정치인들이 한 명도 나오지 않은 마당에 동성애 독재 반대를 외치다니 이건 너무 비약이 심합니다. 동성애 결혼 합법화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모든 동성애자가 결혼한답니까? 동성애자를 결혼을 해야 하는 이성애자인 것처럼 분류하는 생각은 동성애자에 대한 무지를 보여주는 인식입니다. 이성에게 끌림을 느끼는 동성애자가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과연 그들이 무조건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를 만나 결혼하면서 살아갈까요? 우리나라에 동성애 결혼 합법화가 이루어져도 비혼을 결심하는 동성애자가 있을 거고요, 결혼해도 육아를 선호하지 않는 동성애자도 있을 거예요. ‘남자며느리 NO, 여자사위 NO’ 문구는 동성애자의 삶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의미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 2017)

 

 

동성애 반대 세력은 동성애를 성적 지향의 하나로 보지 않고, ‘질병으로 규정합니다. 그러면서 동성애자가 치료를 받으면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미 70년대부터 동성애는 질병이 아닌 거로 판명 났습니다. 국제질병원인분류인 DSM-5ICD-10와 세계정신의학회의 성명서는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고, 치료받을 필요가 없으며 동성애자를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의학적 법적 상식에 기반을 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동성애 전환치료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미국 근본주의 보수 기독교 집단에서조차 극단적인 주장으로 취급되고 있다. 그 예로 2013년 미국의 탈동성애 운동단체인 엑소더스 인터내셔널(Exodus International; 동성애 전환치료 시행)이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과오에 대해 사과하는 글을 발표하고, 공식적으로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그러니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제발 동성애자에게 전환치료를 절대로 권하지 마세요. 그들이 전환치료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도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일입니다.

    

 

 

 

 

 

 

 

 

 

 

 

 

 

 

* 홍성수 말이 칼이 될 때(어크로스, 2018)

 

 

외국의 퀴어 축제가 열리면 보수, 진보 이념에 상관없이 퀴어 축제가 열리는 지역의 시장(市長)이 참가해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연설을 한다고 합니다. 부럽습니다. 이번에 재선에 성공한 권영진 대구시장은 대구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쯤이면 유세 중에 다친 꼬리뼈[*]가 완쾌되었을 것 같은데, 안 나오셔서 유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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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5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26 08:23   좋아요 1 | URL
대구에도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대구퀴어축제가 서울퀴어축제 다음으로 가장 오래됐습니다. 부산, 제주는 작년에 1회 축제가 개최되었어요.

레삭매냐 2018-06-25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끝의 할리우드 액션 배우 저리가라할
정도의 메소드 연기를 실연해 주신 분이
등장해서 깜딱 놀랐네요...

cyrus 2018-06-26 08:26   좋아요 0 | URL
시장님이 유리몸이라서 대구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