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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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준비가 됐는데 어디를 가도 내가 모자라대요.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박기영의 노래 『취.준.생』 중에서)

 

 

 

 

등용문(登龍門)은 출세의 문을 뜻한다. 중국 황하(黃河) 상류에 급류가 흐르는 협곡이 있다. 협곡 이름은 용문이다. 물살이 어찌나 센지 그곳을 거슬러 올라가는 데 성공한 잉어는 용이 돼 승천한다는 전설이 있다. 그런데 용문을 오르지 못한 잉어는 뭐라고 부를까? 용문에 오르려고 도전하다가 바위에 이마를 부딪쳐 상처를 입고 하류로 떠내려가는 잉어들을 ‘점액(點額)이라 한다. 점(點)은 상처를 입는다는 뜻이고 액(額)은 이마를 뜻한다. ‘점액’은 출세의 문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요즘 잉어는 멀리 황하까지 가지 않더라도 매일 등용문을 오른다. 오염 내성이 강한 잉어지만 수질 악화와 서식처 파괴 등 매일 용문보다 험한 길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경기불황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출세의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외국 연수를 다녀오고 자격증을 따고 성형수술까지 해도 원하는 직장 구하기가 낙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이나 어려운 시대가 됐다. 개천에서 때때로 잉어도 나오고 용도 나오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 희망조차 없다. 부모 돈이 곧 실력이요, 능력인 세상에서 부모의 경제적 뒷받침이 없으면 꿈을 실현하기 어렵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똘똘 뭉친 사회에선 이미 출발선부터 지각인 사람들이 많다. 매일 차근차근 등용문에 올라가봤자 ‘금수저들’의 세계에서 사다리가 걷어치워 지기 일쑤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마치 계급주의 사회처럼 이른바 ‘신의 직장들’이 지나치게 주목받으면서 역주행을 하고 있다. 그 중심에 ‘공채(공개 채용)가 있다. 청년들은 너도나도 대기업 ·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맨다. 장기 불황에 비정규직 일자리가 넘쳐나자 ‘안정적 고용’에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첫 직장을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으로 출발하면 평생 그 바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게 청년들의 인식이다. 공모전은 높은 상금과 인턴 등 실무 경험의 혜택까지 누릴 기회를 부여해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러나 공모전 경쟁률이 점점 더 높아지면 대학생들은 경력자들과 경쟁해야 한다. 공모전의 ‘전(展)’을 ‘싸울 전(戰)’으로 써야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기자 출신 소설가 장강명의 책은 사람들의 생각과 관심사, 현실을 반영한다. 《표백》(한겨레출판, 2011)은 모든 틀이 이미 다 짜여 있는 세상, 그 구조 속에서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된 오늘날의 젊은 세대를 ‘표백세대’라 칭하며 자살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반어적인 상황을 그린 소설이다. 《한국이 싫어서》(민음사, 2015)는 현실적 이유로 한국을 떠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대중과 평단에서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댓글 부대》(은행나무, 2015)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의 댓글 조작을 통한 선거개입에서 모티프를 얻어 쓴 소설이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나온 첫 르포르타주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 2018)동시대의 현실과 호흡하는 그의 글쓰기와 궤를 같이한다. 이번에 그는 문학상과 공채 제도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들여다본다. 2년 넘게 작가는 공모전을 운영하는(운영하지 않는) 출판사 대표 및 담당자, 작가 그리고 작가 지망생 등 문학 공모전과 채용 시스템의 현실에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장강명은 한국 공채 문화를 ‘지망생들의 세계’, ‘합격자의 세계’로 바라보면서 대학 입시, 기업 공채 제도, 자격증 시험 등으로 확장한다. 이 공채 문화를 계급사회를 조장하는 ‘한국만의 방식’으로 규정한다. 책은 한국 공채 문화의 현실의 면면을 쓸쓸하지만,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한국 공채 문화의 문제점은 ‘승자’ 그룹(‘등용’, ‘합격자의 세계’)과 ‘패자’ 그룹(‘점액’, ‘지망생들의 세계’)으로 분화시키는 무한 경쟁과 성과(성적) 중심주의다. 자격증과 공모전, 그리고 공무원 시험은 ‘무한 경쟁’이라는 사회의 파고 속에 있는 한 척의 구명보트와 같다. 모든 구직자가 아귀다툼으로 올라타면 구명보트는 당연히 뒤집힐 수밖에 없다.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경쟁의 금을 넘어선 합격자들은 ‘용(龍)’이 되지 못한다. 어중이떠중이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철밥통’을 지키기 위해 인맥과 파벌을 보험으로 삼고 있어서다. 엘리트의식, 권위주의, 패거리주의에 찌들어 있는 곳이 ‘합격자의 세계’이다.

 

장강명은 ‘문학공모전’ 수상경력이 화려하다. 그러나 그는 문학공모전도 ‘일종의 채용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의 등단 문화와 공채 문화 사이에 비슷한 점이 많다. 점수 또는 성과로 합격(당선)과 불합격(낙선)으로 나누고, 합격자 또는 당선자는 ‘그들만의 세계’의 구성원이 된다. 합격자는 우월감을 느끼고, 불합격자는 열등감을 많이 느끼면서 등용에 재도전한다. 이렇게 합격의 권위가 만들어 낸 울타리에 갇힌 사람들은 자신이 이룬 일을 자랑하기 위해 ‘간판’을 내세운다. 우리는 과대평가된 간판과 권위를 맹목적으로 신뢰한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간판을 차지하기 위해 ‘바늘구멍’ 같은 공채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취업 및 시험 준비에 매달려서 극도로 예민해진 사람들은 ‘용과 같은 괴물’로 변할 수 있다. ‘고시오패스(고시생과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를 뜻하는 소시오패스의 합성어)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실력과 능력을 갖추면 누구나 원하는 직장에 취업할 수 있으니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라는 말이 의미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이 책, 《당선, 합격, 계급》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합격의 권위’와 ‘간판’은 노력보다 배경이 더 중요하다는 불신을 낳게 한다. 시험 결과로 인생의 당락이 결정되는 한국은 ‘공채의 나라’이다. 특권과 차별이 용인된 공채의 나라에 사는 청년들은 꿈을 꾸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공채 문화가 ‘불공평한 생존 방식’임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등용’은 문제가 많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계급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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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8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19 15:26   좋아요 1 | URL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일하는 게 힘들어 보였어요. 이제 좀 적응했다 싶었는데 인사발령이 나면서 새로운 곳에서 일하게 됩니다. 또 힘든 고생을 하게 되죠.

북다이제스터 2018-06-18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지 척^^

cyrus 2018-06-19 15:27   좋아요 1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