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마거릿 미첼(Margaret Mitchell)의 소설 원작으로 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일 것입니다. 19세기 말 미국 남북전쟁으로 인해 격동에 휘말린 여인 스칼렛 오하라(Scarlett O’Hara)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작품이죠.

 

 

 

 

 

 

 

 

 

 

 

 

 

 

 

 

 

 

 

* [안 읽었어요!] 마거릿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열린책들, 2010)

 

 

 

 

이 영화에서 스칼렛의 하녀로 나왔던 해티 맥대니얼(Hattie McDaniel)은 흑인배우 최초로 아카데미상(제11회, 여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영화에서 그녀는 개성 넘치는 하녀 연기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 영화가 개봉된 1940년대에도 인종차별이 공공연히 존재했습니다. 그녀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레트 버틀러(Rhett Butler) 역을 맡은 클라크 게이블(Clark Gable)은 맥대니얼이 시상식에 나오지 못한다면 자신도 시상식에 나오지 않겠다고 보이콧 선언을 했습니다. 결국, 논란 끝에 두 사람 모두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었고 사이좋게 여우조연상과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습니다. 맥대니얼은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상 최초로 참석한 흑인배우라는 기록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맥대니얼은 할리우드에서 연기 활동을 펼치면서 하녀 역 위주로 캐스팅됐습니다. 일부 흑인들은 그녀가 하녀 연기만 한다면서 비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연기를 비판한 흑인들은 하녀 연기가 흑인에 대한 편견 낳을까 봐 염려했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오스카상의 영예를 얻은 뒤에도 하녀 역할이나 단역 연기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녀 역할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을 하면서 자신이 맡은 배역을 소화했습니다.

 

 

 

 

 

 

 

 

 

 

 

 

 

 

 

 

 

 

* 강준만 《교양영어사전 2》(인물과사상사, 2013)

 

 

 

맥대니얼이 연기한 하녀의 애칭은 ‘매미(mammy)입니다. ‘mammy’는 ‘mommy(엄마)’의 남부 방언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 아주 좋지 않은 뜻을 가지고 있어요. 이 단어의 의미를 기억하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지난주 목요일에 쓴 글[1]에 ‘mammy’의 의미를 소개했습니다. 미국 남부는 흑인차별이 극심했던 지역이고 아직도 흑백 인종차별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mammy’는 미국 남부의 백인 가족 밑에서 일하는 흑인 하녀, 흑인 유모를 경멸적으로 부르는 혐오 표현입니다.

 

 

 

 

 

 

 

흑인 하녀, 유모 대부분은 뚱뚱한 흑인여성이었습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명장면 중 하나는 하녀(해티 맥대니얼 분)가 오하라(비비안 리 분)의 코르셋을 죄는 장면입니다. 코르셋은 허리를 가늘게 만들어 상대적으로 가슴을 더 풍만하게 보이기 위한 여성 전용 보정 속옷입니다. 흑인 하녀가 오하라의 코르셋을 죄는 장면은 날씬한 백인 여성의 몸을 우월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뚱뚱한 흑인 유모에 대한 편견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읽고 있는 중이에요]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9)

 

 

 

《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9) 3장은 흑인여성의 한정적인 노동(하녀, 유모, 가모장[家母長])에 덧씌워진 백인 중심 시각과 분석을 해제하여 흑인여성의 노동을 재해석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4장은 유모, 가모장, 흑인여성을 억압하는 통제적 이미지(controling images)의 사례들이 나옵니다. 앞서 언급했던 ‘mammy’가 바로 흑인여성을 억압하는 통제적 이미지가 만들어낸 단어라 볼 수 있습니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는 ‘제제벨(jezebel)‘후치(hoochie)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제제벨은 성경 열왕기 편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7대 왕 아합(Ahab)의 왕비입니다. 성경에서 제제벨은 성적으로 문란한 ‘악녀’로 묘사됩니다. 제제벨은 흑인 창녀, 공격적인 성격을 가진 흑인여성을 부르는 단어로 사용되었고, 제제벨이 가진 의미를 그대로 이어온 혐오 표현이 후치입니다.

 

 

 

 

 

 

 

 

 

 

 

 

 

 

 

 

 

 

* 장 메이에 《흑인노예와 노예상인》(시공사, 1998)

 

 

 

이성애 남녀의 결혼과 가족이 사회의 기반이라고 여기는 미국 백인 중심의 젠더 이데올로기는 흑인여성의 유급 가사노동과 무급 가사노동을 이해하는 데 불리한 분석 틀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녀와 유모는 가족을 위해 일을 하면서 임금을 받는 직업입니다. 그러나 하녀와 유모가 된 흑인여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흑인 하녀와 흑인 유모는 ‘백인 노예주’를 위해 일하는 ‘노예’였습니다. 슬프게도 흑인여성의 자식들은 부모처럼 노예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백인 노예주, 특히 목화 농장을 경영하는 백인 농장주들은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목화를 대규모로 재배해 많은 소득을 올렸습니다. 그러려면 값싼 노동력이 필요할 것이고, 일하는 남성 노예를 사들이는 대신에 출산능력이 있는 여성 노예를 통제합니다. 미국은 1808년부터 노예 매매를 금지하는 법이 통과되었어요. 이때부터 노예의 가격은 폭등하기 시작했고, 목화밭에서 일할 수 있는 흑인 노예를 구하기가 어려워졌어요. 흑인여성은 자신의 불행한 삶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출산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노예주들은 흑인여성의 출산을 독려하기 위한 유화책을 내세웁니다. 임신한 흑인여성에게 힘든 일을 부과하지 않았고, 아이를 많이 낳는 흑인여성에게 보너스를 지급하기도 했습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여성을 출산의 도구이자 통제,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남성 중심의 관점은 남성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 구조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로 활용되어왔습니다.

 

 

 

 

 

 

 

 

 

 

 

 

 

 

 

 

 

* 마커스 레디커 《노예선 : 인간의 역사》(갈무리, 2018)

 

 

 

흑인여성은 가족생활에 필요한 수입을 확보하기 위해서 백인 가족 밑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하녀 연기를 많이 했다고 해서 흑인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을 때 해티 맥대니얼이 뭐라고 말했던가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녀 역할’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녀와 유모는 낮은 임금을 받는 직업이지만, 흑인여성들이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하는 불가피한 직업입니다. 하지만 흑인여성들도 집안일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닙니다. 백인 가족이 생물학적 결합(결혼)으로 형성된 혈연 중심의 공동체라면, 흑인 가족은 혈연을 초월한 공동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흑인은 출신지가 다르고, 핏줄이 다른 동료도 ‘형제’이자 ‘자매’인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입니다. 가족의 범위를 확대한 흑인들의 유대감은 비인간적인 노예제도에 저항하는 집단의식입니다. ‘바다 위의 거대 감옥’이나 다름없는 노예선에 끌려 온 흑인 노예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비관했지만, 언젠가는 행복을 누릴 것이라는 희망의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 옆에는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동료 노예가 있었습니다. 출신지와 언어는 달라도 흑인 노예들은 서로를 믿고 의지했고,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노예선의 역사를 연구한 마커스 레디커(Marcus Rediker)는 노예선에 갇힌 흑인 노예들이 ‘흑인 공동체’를 구성하여 자생력과 저항 의지를 키우는 과정을 주목했습니다. 그는 동료를 가족처럼 여기는 친밀한 관계를 ‘뱃동지(shipmate)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동료애’가 강한 흑인여성들은 자기 자식뿐만 아니라 이웃 또는 친구의 자식들까지 함께 돌봅니다. 이러한 공동체적 육아 방식에서 흑인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큽니다. 그런데 백인 사회학자들은 흑인 공동체 속 흑인여성의 역할을 ‘가족 내 여성의 권력’으로 해석했고, 이를 ‘가모장’ 명제로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가모장’을 페미니즘이 비판하는 ‘가부장’과 동일하게 볼 수 없습니다. 가모장 명제는 흑인가족의 특징을 설명하기에 불충분한 개념입니다. ‘동료애’와 ‘가족애’가 결합된 흑인 가족에는 누군가가 가족 구성원을 통제하는 이데올로기가 작동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유모’와 ‘가모장’은 흑인여성을 이중으로 통제하는 이미지입니다. 유모는 백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착한’ 흑인여성을, 가모장은 남편의 권력을 거세하는 ‘나쁜’ 흑인여성을 상징합니다. 이 두 가지 통제적 이미지는 흑인여성의 주체성을 지워버립니다. 이 과정에서 흑인여성의 섹슈얼리티도 강력하게 통제됩니다. 따라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백인 가부장 및 이성애 중심 사회의 시선을 거부하고 흑인여성의 주체성을 확보하는 ‘힘 기르기’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 다룬 흑인여성 문제들이 마치 ‘흑인여성만의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이 책에 나오는 흑인여성 억압의 문제는 ‘모두의 문제’입니다. ‘모두’라는 이 명사에는 우리나라 여성도 포함됩니다. 여성의 주체성을 지우는 여성 혐오는 여성을 ‘좋은 여자’와 ‘나쁜 년’의 이분법으로 구분합니다. 할 말 다 하는 여성,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 등은 어딘가 문제가 있고, 피하고 싶은 여자로 묘사됩니다. 대신 남성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는 수동적인 여성은 남성들로부터 사랑받는 여자로 묘사되고, ‘성적 대상’으로 취급받습니다. 이런 이분법적 편견에서 여성 혐오가 태동합니다. 이러한 억압의 기제들이 어떻게 여성의 삶과 권리를 실질적으로 제한하고 옥죄어 왔는가를 폭로하고 투쟁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상이 바로 페미니즘입니다. 우리는 황인종, 즉 백인에 의해 유색인으로 분류되는 집단이면서도 흑인이나 동남아인을 백인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차별합니다. 흑인과 동남아인을 무시하는 차가운 시선들,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유색인 여성들의 직업, 그리고 다문화 가정을 위한 복지제도를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 이 모든 문제가 흑인여성의 억압의 양상과 얼마나 밀접히 맞닿아 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흑인 페미니즘은 흑인여성에게만 한정되는 특정한 사상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1] [보이지 않는 사람들] 2018년 5월 17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10096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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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5-24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개념 클라크 게이블이네.
그러니 저 시대에 클라크가 적지 않은 파워를
가졌다는 말도 되겠네.
나중에 흑인을 비호했다고 구설수에 오를만도 하잖아.
어쩌면 목숨까지도 위태로울 수 있지 않았을까?

난 중학교 때 책으로 읽고 영화로도 봤는데
재미는 있는데 책이나 영화나 흑인을 대변하기 위한 건 아닌 것 같고,
그냥 미국 역사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소설은 아닌가 해.
모르지. 다시 읽으면 또 다른 관점이 보일런지.ㅋ

cyrus 2018-05-24 16:45   좋아요 1 | URL
클라크 게이블이 최고의 배우였다고 해요. 오스카상 보이콧 선언 이후에 KKK가 게이블에게 협박 편지를 보냈대요. 그런데 이 행적만 봐서는 그가 흑인 민권 운동에 관심 있는 배우라고 단정할 수 없어요. 확실한 건 게이블과 해티 맥대니얼은 정말 친한 사이였어요. 해티가 세상을 떠났을 때 게이블이 장례식에 참석했어요.

백인 여주인공이 나오는 백인 여성 작가의 소설과 흑인 여주인공이 나오는 흑인 여성 작가의 소설을 비교해보고 싶어요. 마거릿 미첼의 소설도 독서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데 과연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

페크(pek0501) 2018-05-26 17: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중2때 학교에서 단체 관람하러 가서 처음 보았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는지 몰랐음을 깨닫는 스칼렛에 대해 참 이상했어요. 어떻게 그걸 모를까 하고요. 그땐 제가 어렸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던 거죠.
지금은 모를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할 뿐만 아니라 너무 잘 알지요.

예전에 페미니즘으로 본 소설, 이라는 제목 같은데(확실치 않네요.) 그 책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뭐든 분석적으로 보면 다르게 보이는 걸 경험했거든요. 결국 역사라는 것도 승자(또는 강자)의 기록이라는 결론에 닿을 수 있는데... 우리는 패자(또는 약자)의 시각으로도 볼 필요가 있으므로 양쪽에서 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겠더라고요.

cyrus 2018-05-28 11:45   좋아요 1 | URL
요즘 흑인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제가 그동안 백인 중심의 시각으로 서양문학과 역사, 페미니즘 논제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흑인여성의 목소리를 ‘피해자의 목소리’가 아닌 ‘생존자의 목소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도 새로이 알게 됐어요. 흑인여성은 자신들을 통제하는 백인 중심 사회에 맞서서 끊임없이 저항했지만, 백인 학자들은 단지 ‘흑인’이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들의 주체적인 면모를 보지 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