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 BBC가 방송하고 이종필이 해설하다
스티븐 호킹 지음, 이종필 옮김/해설 / 동아시아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노벨상은 죽은 사람에게 상을 주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수상 후보에서 제외된다. 다만, 생전에 수상자로 지명된 경우에는 사후에도 상을 받을 수 있다. 두 달 전에 영면한 스티븐 호킹은 노벨상을 받을 수 없게 됐다. 그는 이론 물리학자이다. 그의 이론이 대부분 현재 기술로는 검증할 수 없다. 언젠가 이론이 입증되어도 사후 수상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는 노벨상을 탄 여느 물리학자 이상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가 대중으로부터도 인기를 한 몸에 받게 된 것은 블랙홀의 연구를 통해 우주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한층 깊게 만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불치병으로 전신이 마비된 가운데서도 과학자로서의 탐구 정신을 끊임없이 불태운 집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킹은 20대부터 루게릭병을 앓으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적 같은 생명력으로 온 힘을 다해 우주의 근원을 밝히려 노력해왔다.

 

호킹이 일반 독자를 위해 쓴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까치, 1998)를 읽어도 우주의 비밀에 대한 복잡한 생각은 쉽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책이 과학서적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책이지만, 또한 사놓고 가장 많이 읽지 않은 책이라는 평가처럼 가볍게 펼칠 수 있는 내용은 아니기 때문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가 남긴 말이다. 야구를 비롯한 다른 스포츠는 물론 우리 인생도 끝까지 최선을 다할 때 극적인 반전이 있는 멋진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책을 이해하기 어려워도 독서를 포기하면 안 되고, 책 한 번 읽었다고 해서 잘 안다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 발병 이후에 뛰어난 업적을 이룬 호킹처럼 포기하지 않는 한 인생도 독서도 그 끝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모든 끝은 시작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호킹의 생전 모습을 볼 수 있는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동아시아, 2018)을 읽음으로써 다시 한번 우주에 대한 이해에 도전할 수 있다.

 

이 책은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호킹의 BBC 리스 강연을 정리한 것이다. 강연록은 전문 용어와 수식의 사용이 거의 없을 정도로 분량은 가볍게, 내용은 알차게, 그림을 더해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다. BBC 뉴스 과학편집자 데이비드 슈크먼이 호킹의 설명에 대한 보충 설명을 추가했고, 이종필이 밀도 있는 심화 해설을 덧붙였다. 강연 제목이 예사롭지 않다. ‘블랙홀은 털이 없을까’, ‘블랙홀은 흔히 블랙홀이 칠해져 있는 것처럼 검지 않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블랙홀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검은 구멍’이다. 그런데 블랙홀은 이름과는 달리 검지 않다. 또, 무조건 집어삼키기만 하는 천체도 아니다. 블랙홀은 엄청난 중력으로 주변의 물질을 모두 빨아들인다. 블랙홀에 한 번 흡수되면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다. 블랙홀 주위에는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고 불리는 경계가 있다.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에 들어간 물질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 블랙홀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존 아치볼드 휠러“블랙홀은 털이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

 

1975년에 호킹은 입자들의 정확한 위치와 속도를 측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를 도입하여 소립자들이 빛보다 더 빨리 이동하기 때문에 블랙홀은 일정한 비율로 빛과 입자를 방출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되면 블랙홀은 검다고 말할 수 없다. 입자와 복사파를 내보내는 블랙홀은 질량을 잃게 되고 더욱 작아진다. 결국, 블랙홀은 줄어들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호킹은 ‘호킹 복사’라고 불리는 현상을 근거로 블랙홀이 사라지면 그 속에 들어간 물질의 정보도 사라져서 확인할 길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호킹은 자신이 주장했던 이론을 스스로 뒤집었다. 그는 블랙홀에 빠져들어 간 물질의 정보는 방출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호킹은 블랙홀은 빨아들인 모든 것을 결코 완전히 파괴하지 않으며 블랙홀 안으로 들어간 정보를 바깥에서 확인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방출된 물질의 정보를 통해 블랙홀의 과거를 확인할 수 있고, 미래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말을 거의 할 수 없으며 눈꺼풀과 세 손가락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었던 스티븐 호킹. 생존은 그 자체로 ‘기적’이다. 보통의 루게릭병 환자는 발병 후 3년을 넘기지 못한다. 그러나 호킹은 50년이 넘게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우주론과 블랙홀의 비밀을 푸는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가 되었다. 호킹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노벨상을 받지 못해도 호킹은 위대하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을 가장 잘 보여준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의 연구 업적뿐만 아니라 살아생전 보여준 집념과 의지는 인류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5-03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03 19:50   좋아요 0 | URL
호킹의 이론은 검증되지 않아서 노벨상 수상 자격 조건에 맞지 않아요. 호킹 본인도 그 사실을 알더군요.. ^^;;

캐모마일 2018-05-03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라길래 비전공자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겠거니 했는데, 훑어보다 그냥 제자리에 놓고 왔었어요....ㅜㅜ 스티븐킹 박사 타계 뉴스 접하고 살까 말까 망설이다 그때 기억나서 그냥 뒀네요. 그나마 이 책은 방송 강연을 묶은 책이라 한번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책소개 감사드립니다.

cyrus 2018-05-04 16:55   좋아요 1 | URL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이 <시간의 역사>보다 읽기 쉽습니다. 분량이 아주 얇아요. <블랙홀>을 읽고 난 뒤에 <시간의 역사>, <호두껍질 속의 우주>를 읽으면 될 것 같아요. 저는 <호두껍질 속의 우주>를 읽다가 포기한 적이 있어요. ^^

AgalmA 2018-05-04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벨물리학상 수상에 대해선 너무 단정하신 듯^^;
호킹 복사가 입증되면 노벨물리학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53~54페이지 확인바랍니다/)
˝노벨물리학상은 이론이 ‘시간에 의해 검증‘되었을 때 수여됩니다.˝

생존한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주긴 하지만 사후 수여한 사례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매우 중대한 발견일 경우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http://www.sciencetimes.co.kr/?news=%EC%97%AD%EB%8C%80-%EC%84%B8-%EB%B2%88%EC%A7%B8-%EC%82%AC%ED%9B%84-%EB%85%B8%EB%B2%A8%EC%83%81-%EC%88%98%EC%83%81%EC%9E%90
그래서 호킹도 자신의 이론이 입증되면 노벨물리학상 받을 거라고 기대했지요. 과연 언제 증명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만;

cyrus 2018-05-04 22:11   좋아요 1 | URL
호킹이 노벨상 수상 여부를 언급한 연도가 2016년이었고, 그 당시 그는 살아있었어요. 지금도 그가 살아있다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어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ㅎㅎㅎ 호킹이 고인이라서 수상이 불가능할 거로 생각했는데, 호킹 복사가 최대한 빨리 검증된다면 예외로 받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결국, 노벨 위원회의 결정에 맡길 수밖에 없는데 아마도 호킹 복사가 검증되면 호킹에게 노벨상을 주자는 여론이 생길 것 입니다.

올해는 노벨 문학상 시상식이 열리지 않는다고 하네요. 스웨덴 한림원 미투 운동 여파가 있어서 올해 연기하고, 내년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 2명을 선정한다고 합니다.

AgalmA 2018-05-04 22:15   좋아요 0 | URL
호킹은 자기가 살아 있을 때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상태였잖습니까ㅜㅜ;
미투 운동이랑 노벨상 수여가 무슨 관계가 있다고 연기까지;;; 그렇담 올해는 노벨상 수상으로 갑작스레 읽고 싶고 읽어야 할 책이 한꺼번에 늘어나는 일이 없어 좋긴 한데 내년으로 밀릴 뿐이라면 그 또한 걱정이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