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과 다른 지역의 미투(#MeToo) 운동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한 달 전과 비교하면 미투 운동 열기가 조금 가라앉은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곳인 대구는 이제야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틀 전에 JTBC를 포함한 대다수 언론이 ‘경북대 미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이 뉴스가 일파만파로 커지자 경북대는 법과 학칙에 따라 엄정히 조사하겠다고 공식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경북대가 피해자의 요구사항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지만, 본격적으로 진상조사가 이뤄진 것에 대해서는 아주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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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에 권김현영 님이 또 한 번 대구에 오셨어요. 월요일에 있었던 ‘레드스타킹 꽃페미 강연’에 이어서 두 번째인데요,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과 대구여성주의그룹 ‘나쁜 페미니스트’가 공동 주최한 강연에 나섰습니다. 강연 제목은 「미투 이후,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강연 장소는 ‘꽃페미 강연’이 열렸던 곳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안 갈 수가 없죠. 한 주에 유명 인사를 두 번 보게 될 줄이야. 금요일 강연에 저를 포함한 레드스타킹 멤버 세 명이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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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날 강연 후기를 쓸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강연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거로 판단했고, 결국 후기를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레드스타킹 공식 인스타그램’에 금요일 강연 내용을 정리한 '공식 후기'가 있습니다. 링크 가져왔으니 참고하세요.
https://www.instagram.com/p/Bhy8uZ6HYht/?taken-by=feminism_talk
저는 주말에 집 아니면 헌책방, 도서관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요.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해요. 그런데 저만의 놀이 상대는 따로 있어요. 그 놀이 상대는 누구인지 말 안 해도 뭔지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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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대구 동성로에 있는 중앙파출소 앞 광장에 미투 집회가 열렸습니다. 미투 집회가 시작하기 전에 저는 레드스타킹 멤버들을 일찍 만났습니다. 그분들과 같이 대구 청년 커뮤니티 활성화 프로젝트 ‘다모디라’ 지원서를 작성했어요. 그런데 제가 한 건 딱히 없어요. 행사 관련 아이디어를 내는 일은 정말로 힘든 일입니다. 처음부터 이 일을 준비한 분들이 대단하고 존경스럽습니다.
오후 2시부터 지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6시에 지원서 작성을 완료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난 후에 미투 집회에 참가했습니다. 이날 집회에 특별한 분을 만났어요.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꾸리에, 2016)을 번역한 여성주의 상담가 김민예숙 님을 만났습니다. 레드스타킹 멤버들은 김민예숙 님과 함께 사진을 찍어요. 사진은 ‘레드스타킹 공식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볼 수 있어요.
집회가 끝나고 카페에서 밤 11시가 될 때까지 멤버들과 대화를 나눴어요.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책에 없는 페미니즘’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가 몰랐던 것들이 아주 많았어요. 젠더 감수성(gender sensibility)이 떨어지는 운동권 남성들의 실체도 알았습니다. 이 글을 보고 있을 알라디너 중에 진보주의자가 많을 거예요. 지금은 등을 돌렸겠지만, ‘나꼼수’를 지지했던 분들이 많은 거로 압니다. 모든 남성 진보주의자들이 그렇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여성을 차별하고,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남성 진보주의자들이 있습니다. 페미니즘을 ‘진보적인 사상’으로 보기 어려워요. 페미니즘에도 ‘보수’가 있고요, 성 소수자 운동에 뛰어드는 진보주의자라고 해서 페미니스트인 건 아니에요. 페미니즘은 단수의 형태로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상의 폭이 엄청 넓고 복잡해요. 그리고 페미니즘은 책에 있는 내용으로만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유동적이에요. 저는 요즘 ‘책 밖의 세상’에서 움직이고 있는 페미니즘을 알고 싶어요. 눈과 머리가 아닌 피부로 페미니즘을 느끼고 싶어요. 레드스타킹을 알지 못했다면 저는 ‘책 속의 세상’만 바라보면서 페미니즘을 혼자서 공부하고 있었을 거예요. 미투 집회가 있는 주말에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을 저의 모습을 상상하면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부끄러워요. 이제는 말과 말이 서로 부딪히는 현장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혹시 제 글을 보고, “멋있다!”, “훌륭하다” 식의 칭찬하는 어조의 말씀을 댓글로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칭찬받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게 아니고요, 제가 경험하면서 느낀 것들을 그대로 썼을 뿐입니다. 기록 안 하면 잊어버려요. ‘칭찬받는(칭찬 받기를 원하는) 남자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그냥 ‘남자’입니다. 레드스타킹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남자 페미니스트의 역할’에 대한 글을 발견했어요.
남성 페미니스트들의 역할 :
여자들한테 와서 박수 받으려고 하지 말고 남성연대 안에서
‘내부 고발자’가 되어라!
페미니스트는 남성을 주체로 하고 여성을 타자로 위치 짓는 사회구조와 특정 인물을 비판합니다. 그리고 여성 차별 및 혐오를 조장하고, 주입하는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페미니즘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은 여성(페미니스트가 아닌데도)이 남성을 비판하면 ‘남성 혐오’로 몰아가는 것 같습니다. 남성 연대를 비판하는 ‘내부 고발’은 ‘남성 혐오’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 관습을 만드는 성차별적 권력 구조의 병폐와 심각성을 남성들에게 알리는 것이 '내부 고발'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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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저는 외출을 합니다. 카페 스몰토크에서 《과학혁명의 구조》(까치, 2013) 독서 모임이 있어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오랜만에 ‘진짜 재미없는 책’을 읽었어요. 이번 기회에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