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문화 - 현대 경제의 지적 기원
조엘 모키르 지음, 김민주.이엽 옮김 / 에코리브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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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진보한다’는 명제를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역사의 진보나 발전의 방식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입장이 갈린다. 《역사란 무엇인가》(까치, 2015)로 유명한 카(E. H. Carr)는 역사의 진보를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시간을 하나로 통합하는 총체적인 진보로 해석한다. 프랑스 아날학파를 대표하는 페르낭 브로델은 전통적 역사학이 단기적 시간 속에 매몰된다는 점을 비판하며 장기지속, 중기지속, 단기지속이라는 시간의 세 층위에 따라 역사를 바라봤다. 물론, 역사의 흐름은 단선적이지 않다. 역사를 살펴보면 우연한 사건이 역사의 큰 물결을 변화시킨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역사는 너무나도 변화무쌍하고, 복잡하다. 루이 알튀세르의 말을 빌리자면 역사는 ‘예견할 수 없는 길’이다.

 

‘사후 확증 편향(Hindsight Bias)’라는 용어가 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한 다음에는 그 일이 사실로 인상에 강하게 남고 그 결과, 사전에 예측한 일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처음에는 그런 결과가 나올 줄 전혀 몰랐으면서도 사건이 지난 뒤에 우리는 자신이 처음부터 그런 결과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역사는 어느 문명보다도 번성한 유럽 문명을 중심으로 기록된 역사다. 그래서 서양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유럽 문명의 경제적 번영이 처음부터 예견된 일인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유럽을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만든 원동력, 즉 진보의 힘에 부러워한다. 또 진보적인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유럽 지식인들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가 하고 감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점에 따라 역사는 다르게 보인다. 유럽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도 마찬가지다. ‘유럽은 이렇다’라는 해석이 어떤 이에게는 서구중심주의로 비칠 수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서구중심주의 비판론으로 비칠 수도 있다. 경제사학자 조엘 모키르《성장의 문화》(에코리브르, 2018)는 ‘세계의 패권’을 차지한 유럽의 역사적 배경에 주목한다. 저자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유럽은 언제 세계의 패권을 차지했을까? 어째서 중국은 유럽처럼 세계의 패자로 군림하지 못했을까?” 저자는 유럽 패권의 역사, 그중에서도 유럽 문명이 가장 자랑스러운 전성기로 믿어 의심치 않는 근대 초기(1500~1700년) 경제 성장의 역사‘문화’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파헤친다.

 

서구 역사가들은 유럽이 특유의 합리성과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근대 자본주의를 ‘발명’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모키르는 1500년부터 1700년까지 2백 년의 유럽사를 분석해 새로운 결론을 제시한다. 그는 근대 초기 유럽의 경제 발전에 기여한 문화적 토대는 ‘계몽주의’라고 말한다.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소수의 엘리트 계층이었다. 그들은 과학과 기술 등 ‘유용한 지식’에 관심을 가졌으며 인류의 무한한 진보를 꿈꿔왔다. ‘국경을 초월한 사랑’이 있듯이 지식애(知識愛)도 국경은 무의미하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공유했고, 유용한 지식이 활용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저자는 아이디어가 공유되는 초국가적 네트워크를 ‘편지 공화국’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진보가 가져다주는 혜택을 누리려면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오늘날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세상을 만들려는 개혁자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혁신을 거부하는 그 시대 사람들이 바라본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별종’에 가까웠다. 모키르는 이 ‘소수의 별종’을 가리켜 ‘문화적 사업가(Cultural Entrepreneurs)’라고 말한다. ‘문화적 사업가’는 현 체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도전 정신이 강하다. 이 책에서 모키르는 유럽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대표적인 문화적 사업가로 프랜시스 베이컨아이작 뉴턴을 꼽는다.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형성된 ‘유럽 특유의 문화’는 문화적 사업가들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모키르는 경제 번영이라는 성공적인 결과를 필연이 아닌 ‘우연’이라고 말한다. 근대 유럽이 번영하게 된 데에는 여러 시기적 요건들이 맞아떨어졌다. 종교개혁 이후 각각의 종교들은 자신들의 교리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해 교육 홍보에 열을 올렸다. 예수회 같은 일부 종파는 유용한 지식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이렇게 경쟁적으로 교육을 가르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대중이 유용한 지식에 접근하는 기회가 늘어난다. 그러므로 ‘성장의 문화’를 단순히 우연적인 현상으로 보면 안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문화가 유럽의 운명 자체를 바뀌게 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문화가 만든 번영’을 이해하려면 복합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성장의 문화》는 경제학 방법론과 문화진화론 방법론 등을 이용하여 근대 유럽의 번영기를 다채롭게 접근하여 분석한다.

 

그렇다면 다시 저자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왜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 되지 못했을까? 중국은 유용한 지식에 대한 믿음, 지식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인적 네트워크 등과 같은 개방적인 문화적 풍토가 생기지 않았다. 중국도 유럽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교육 수준이 높았고 발전 가능성이 높은 나라였다. 중국은 번영의 열매가 자라나는 지식의 씨앗을 가지고 있음에도 제대로 발아할 수 있는 환경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과 유럽과의 수준 격차는 벌어졌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지식은 긴밀하게 연관돼 있고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문화적 사업가는 신선도 좋은 지식을 갈구했고, 그것을 경제적 이익을 증진하는 데 사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변화가 두려운 사회는 문화적 사업가의 활동을 막는 규제를 강화한다. 중국이 우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정체되고 만 것은 바로 현 체제에 순응하려는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도 그런 편향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성장의 문화》가 보여준 역사의 교훈은 ‘예견할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미래사회의 희망적 모델이 될 수도 있고, 닮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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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4-19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역사가 진보한다는 명제를 부정합니다. ㅎㅎ
심지어 진보나 발전을 거부합니다. ^^
아마 저만 아닐걸요. ^^

cyrus 2018-04-20 11:42   좋아요 1 | URL
저도 북다이제스터님의 생각과 같습니다. 진보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믿는 것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