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간 되게되게 결혼이 하고 싶었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김치부침개!! 그러니까 평일의 어느날 저녁, 퇴근하여 거의 집 앞에 이르던 나는, 엄청나게 김치부침개가 먹고 싶어진 거다. 엄마가 집에 계셨다면 엄마 김치부침개 해줘~ 라고 할텐데, 엄마는 평일 내내 복직한 여동생의 집에 가 계신 상황. 하아- 퇴근하고나서 김치부침개를 할 의욕 같은 게 내겐 없어...누가 해주는 거 먹고 싶어..하는 생각을 하게 된거고-부침개를 해본 적이 없다는 건 일단 무시하자-, 그러자 퍼뜩, 이럴때 엄마가 집에 없으니 시어머니라도 있었으면...하게 된거다. 뭔가 나이 지긋한 분이 해주셔야 제맛일 것 같은 느낌적 느낌? 그러자 머릿속에서 잽싸게 상상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런 거.


[다락방의 120가지 그림자]라는 소설을 써서 빅힛트를 시킨 나는 더이상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될만큼 돈이 넉넉해서 더이상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되는데, 그러다가 고액연봉을 받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나는 직장에 안다녀도 이미 돈이 많은 사람이므로 남편이 출근한 뒤 소파에 누워 잉여잉여 하다가 퍼뜩 김치부침개가 먹고 싶어지고, 그래서 그리스에 여행간 시아버지 덕에 혼자 계신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님~ 저 김치부침개좀 해주세요, 막걸리는 제가 사갈게요, 지금 출발합니다~' 라고 하는 거다. 그리고는 걸어서 한시간 가량 거리에 있는 시어머니 댁으로 걸어간다. 부침개랑 막걸리를 많이 먹을 거니까 그 전에 칼로리 소모를 좀 해야 하므로. 여튼 그렇게 한시간 가량을 걸어 시어머니 댁 앞에서 막걸리를 두 병 사가지고는 들어가, 시어머니가 해주는 김치부침개를 맛있게 먹는거다. 그렇게 우리는 막걸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서로의 연애사를 털어놓고 술에 취한다. (어쩐지 [남자의 부드러움]이란 소설이 떠오르는 군). 막걸리 두 병으로는 우리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수 없어 아쉬워하던 찰나, 시어머니는 내게 말한다.


얘야, 이럴 때를 대비해 니가 우리집 냉장고에 호가든 쟁여놓지 않았니, 그걸 마시자꾸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우리는 또 호가든을 따라가지고는 엄청 퍼마시는 거다. 나는 이미 유빅컵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고액 연봉자 남편에게 전화한다.


이보시오 서방, 내가 지금 많이 취했소. 그리고 당신 어머님 댁에 있으니, 퇴근길에 들러 나를 픽업해가시오.


고액 연봉자 남편은 퇴근길에 나를 픽업하기 위해 들렀는데 내가 완전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했고, 그래서 125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나를 등에 업는다. 이쯤은 업을 수 있지, 새털처럼 가벼운 여자, 하면서. 휘파람을 불면서. 크- 아름다운 스토리. 그러나 현실에서 나는 10개의 그림자도 가진 적이 없고, 돈도 없고, 직장이 아니면 굶어야 하고, 고액 연봉자 남편도 없고, 시어머니도 없고....김치부침개는...어디로?? 어디에서??



주말에 집에 오신 울엄마, 나의 엄마가 김치부침개 해줬다. 



아, 그래서 오늘의 요리가 김치부침개냐고 하면 그건 아니고, 무려 <LTE 잡채> 가 되시겠다.



[오늘 뭐먹지?]에서 성시경 생일 에피소드가 재미있다는 칠봉이의 말에 부러 1,200원이나 주고 굿다운로더 받아서 보게됐는데, 그때 나온 게 LTE 잡채다. 불을 전혀 쓰지 않고 15분 내에 완성 가능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오, 불을 쓰지 않아? 그래서 나는 유심히 봐뒀고, 또 다 본 뒤에는 나도 한 번 해보리라, 하고는 재료나 순서 등을 메모해 두었다. 자, 이제 내가 한 요리가 나가신다!!



우선, 잡채를 하기 위한 기본 재료를 셋팅한다. 소고기를 준비하면 좋겠지만, 늘 요리를 망치는 나인지라, 망치고난뒤 소고기까지 버리기는 좀 거시기하므로, 일단 처음 만들어보는 잡채에 있어서만큼은 가장 기본적인 재료를, 고기 없이 준비하기로 한다. 표고버섯, 양파, 당근, 시금치다. 당면은 진작에 물에 넣어 불려두고 있다. 많이 불리면 불릴수록 좋다는데, 나는 한 세 시간 불려둔 것 같다.




그리고 양념장을 만든다. 간장과 설탕의 비율은 2:1 이라고 되어있던데, 그러면 내게는 너무 달 것 같아서 나는 일단 간장을 무조건 막 따른 다음에 설탕을 한 숟가락 넣었다. 그리고 다진마늘, 참기름, 후추를 넣는다. 그렇지만 나는 후추를 넣었던가 안넣었던가...여튼 그렇게 섞어서 양념장을 만든다.




자, 이렇게 준비가 되었으니 전자렌지에 넣을 수 있는 그릇에 당면을 넣고 표고버섯을 넣고 양념장을 넣은 뒤 한 번 섞어준다. 이때 양념장은 백프로 넣는 게 아니라 70프로정도 넣어주는 게 좋다. 그리고 그 위에 양파와 당근을 얹는다. 양파와 당근은 수분이 많으므로 일부러 맨 위에 얹는 것. 그렇게 셋팅한 뒤 랩을 씌워 전자렌지에 넣고 5분간 돌린다.




그 후에 그릇을 빼내 조물조물 해주고 그 위에 시금치를 얹어서 다시 2분30초간 전자렌지에 넣어 돌린다. 그리고 꺼내서는 아까 남겨둔 30프로의 양념장을 넣어 조물조물 해준다. 그러면 잡채 완성!!



자, 맛은 괜찮다. 먹을만하다. 다만, 전자렌지로 만든 거라 뻑뻑하다. 건조하다. 당근과 양파를 더 넣던가 아니면 양념장을 만들때 물을 조금 섞어 양을 많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남은 양념장을 다 넣어도 뻑뻑해..건조해.. 그렇다고 그냥 물을 넣자니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어쨌든 건조해서 후루룩 입안에 들어가진 않았지만....뭔가 매끄럽지 못해 지들끼리 서로 붙어있는 면발들이긴 했지만....그간 내가 도전한 요리들 중 가장 나은 맛을 보였다. 남동생도 '괜찮네' 라고 했다. 오늘의 요리는 괜찮은 요리였다. 훗. 다음엔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자신 있는 요리를 하나 가질테닷!! 그것은 잡채가 될것이닷!!!!!



암튼 양념장 다 부어 좀 짭짤한 잡채를 안주 삼아 나는 그날 저녁, 와인을 마셨다. 울랄랄라





건배!!



부침개 대신 엘티이잡채. 오늘의 요리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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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5-04-22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치부침개 먹고 싶네요 ㅎㅎ 다락방님의 120가지 그림자편 시어머니와 남편 좋네요 저는 어제 사랑과 전쟁을 봤더니..ㅋㅋㅋ

다락방 2015-04-22 09:26   좋아요 0 | URL
상상은 늘 아름다운 법이죠.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인가봐요. ㅋㅋㅋㅋㅋ

웽스북스 2015-04-22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잡채 후기 여깄었구나!!!! ㅋㅋㅋㅋ

다락방 2015-04-22 10:42   좋아요 0 | URL
네, 여기에. 오늘 아침에 작성 완료. ㅋㅋㅋㅋㅋ
이거 잡채맛 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웽스북스 2015-04-22 10:43   좋아요 0 | URL
잡채에서 잡채맛이 나다니!!! 대단해요 ㅋㅋㅋ

다락방 2015-04-22 10:47   좋아요 0 | URL
짱이죠! 무려 잡채 맛이 나는 잡채인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와 2015-04-22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데!!!! 잡채라니.... .하아.. 너무 먹고 싶다.. 미치겠네..... ㅎㅎㅎㅎㅎㅎ


전자렌지 돌리는걸 후라이팬으로 바꾸면 3배는 더 맛있을거야.

다락방 2015-04-22 10:58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당연히 그럴것 같긴 한데...내가 하면 또 망칠까봐 겁나서 말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잡채 안좋아하는데 요리 하니까 좋더라고요. ㅋㅋㅋㅋㅋ

Mephistopheles 2015-04-22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름 급한대로 오X기라는 회사에서 나오는 3분 잡채도...그럭저럭 먹을 만은 해요...

아니 그런데....

김치 부침개때문에 결혼을 하고 싶다니... 암튼 예측 불가능 다락방님이십니다.

다락방 2015-04-22 16:36   좋아요 0 | URL
김치 부침개는 제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말이지요 ㅋㅋㅋ 이것도 언젠가 한 번 날잡고 해봐야겠어요. 그리고 오늘의 요리 페이퍼 써야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개 2015-04-22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챔기름을 조금 뿌렸으면 덜 뻑뻑했을텐데요 ㅋㅋ

점심을 먹으면서 댓글을 쓰고 있는데
왜 배가 고픈건지 킁 ㅠ..ㅠ

다락방 2015-04-22 16:37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칠봉이가 참기름 얘기도 했는데 이미 절반 이상 먹은 뒤라 그냥 먹었어요. ㅎㅎㅎ

아 갑자기 다시 맛있게 만들어서 잡채 먹고 싶네용. ㅋㅋㅋㅋㅋ
아 .. 아무개님 댓글 읽으니까 배고파 ㅠㅠ

단발머리 2015-04-22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티이 잡채 감동적이예요. 저, 잡채는 한 번도 안 해 봤어요. 다락방표 잡채 도전해볼까봐요.

위에 오타있어요.

125 킬로그램에 육박하는.... 45 아니구요? 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5-04-22 16:37   좋아요 0 | URL
레서피는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와요, 단발머리님. LTE 잡채라고 치면 신동엽과 성시경이 한 레서피 나올거에요. ㅋㅋㅋㅋㅋ


그리고 오타...........아닙니다. 제대로 친 거 맞아요. -0-

2015-04-22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5-04-23 10:5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또 먹고 싶네요, 김치부침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치니 2015-04-23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이거 오늘 해볼라 그랬는데, 다락방 님 후기를 읽으니 챔기름이 꼭 들어가야되겠네요. 당근 양파는 물 많이 나오게 듬뿍, 오케 감사합니다.

다락방 2015-04-23 11:58   좋아요 0 | URL
치니님, 후기 기다리고 있을게요. 치니님은 아마 저보다 더 맛있게 하실겁니다. 화이팅!! 아 잡채 먹고싶어요. ㅋㅋㅋㅋㅋ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라면 나는 《오만과 편견》을 읽었고, 《설득》을 읽었다. 이 두편에 대해 재미있다고는 생각했지만 딱히 제인 오스틴이 좋아진다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제인 오스틴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나 책이 더 재미있더라. 이를테면 《제인 오스틴의 북클럽》 이나, 《비커밍 제인》같은 것들. 그러므로 제인 오스틴의 책을 더 찾아 읽어나 할 생각은 없었는데, 뭐, 미래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인지라 이 책, 《노생거 사원》을 읽게 됐다. ㅇ님이 쓴 리뷰를 읽고나서 관심이 생긴 것인데, 그 리뷰에는 이 책속의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을 너무 좋아해서' 라는 문장이 있었던 것. 크- 나는 여기에 완저 꽂혀가지고 읽었고, 그래서일까, 내가 읽었던 다른 두 권의 제인 오스틴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고작 세권이 되긴 했지만 내가 읽은 제인 오스틴 소설중에 최고랄까.


무엇보다 작가가 자신을 드러내고, 그러면서 소설에 대해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는 게 참 좋더라. 소설을 폄하하는 시선에 당당히 반기를 드는 모습이랄까. 나는 일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소설을 폄하하는 사람들은,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숱한 위대한 소설들을 그들이 읽어봤다면 '소설이나 읽는다'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을거라고 정말이지 강하게 생각한다. 일전에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주연한 영화에서 그런 시선이 한차례 나왔던 걸 본 터다. '저 여자 읽는거 소설일걸?' 하고. 쳇. 


자, 우리의 제인 오스틴이 당당히 주장하는 '소설'에 대해 들어보자.



오전에 비가 와서 할 일이 없으면 굳이 축축하고 더러운 길을 달려가 둘이 문을 잠그고 들어앉아 소설을 읽었다. 그렇다. 소설이었다. 나는 소설가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바, 경멸적인 비난으로 자기들도 생산해 내는 바로 그 소설의 역할을 깎아내리는 옹졸하고 무례한 관습을 따르지 않으리라. 소설가들은 적들과 합세하여 소설에다가 심한 욕설을 하고, 여주인공에게 소설을 허락하지 않고 만약 여주인공이 우연히 소설을 집어 든다면 분명 그 재미없는 페이지를 욕하면서 넘기게 만든다. 안타깝다! 한 소설의 여주인공이 다른 소설의 여주인공에 의해 후원받지 못한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보호와 관심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난 인정할 수 없다. 문학비평가들이 한가할 때 공상을 발산하도록, 그래서 요즘 출판사에서도 싫어하는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새로 나온 소설에 대해 떠들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자. 우리는 서로를 배신하지 말자. 우리는 이미 상처받은 몸이다. 우리의 작품 활동이 다른 문학 관련 활동보다 훨신 광범위하고 꾸밈없는 즐거움을 제공하는데도, 어떤 글쓰기도 이렇게까지 비난받은 적이 없었다. 오만과 무지와 유행에 휩쓸려 우리를 비난하는 무리가 우리의 독자만큼이나 넘친다. 『영국의 역사』의 구백 번째 축약본을 쓴 작가, 또는 밀튼과 포프와 프라이어를 수십 줄 인용하면서 『스펙테이터』한 부와 스턴의 소설 한 장을 모아 펴낸 작가의 재능을 무수한 사람들이 나서서 찬양하는데, 여기에는 소설가의 능력을 비판하고 소설가의 노동을 깎아내리고 천재성과 위트와 취향을 골고루 갖춘 소설을 우습게 보려는 태도가 깔려 있다. "난 소설을 안 읽습니다. 소설은 거의 안 봐요. 내가 소설을 읽을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소설에서나 있는 일이죠." 이렇게들 떠든다. "무슨 책 읽어요, 아가씨?" 아가씨는 "그냥 소설이에요"라고 대답한다. 무관심한 척하면서 또는 순간적으로 부끄러워하면서 소설책을 내려놓는다. "그냥 『세실리아』, 『까밀라』, 『벨린다』라는 책이에요."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정신의 위대한 힘이 드러나고,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지식과 인간 본성의 변화에 대한 가장 행복한 묘사와 위트와 유머의 생생한 발현이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선별된 언어로 전달되는 그런 작품이란 말이다. (p.39-41)




제인 오스틴이 자신의 소설을 빌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작가라는 사실에 존경심마저 든다. 무엇보다 자신이 쓰는 장르를 자신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흡족하다. 그런 자신감과 당당함으로 쓴 책이기 때문에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읽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중에 가장 재미있다고 하긴 했지만, 그렇다해도 내게는 이 《노생거 사원》이 좀 아쉬운 게 사실이다. 캐서린이 남자를 매우 많이 좋아하는 감정에 대해서는 수시로 드러나고, 그점에 대해서는 재미있었지만, 뭔가 둘이 갑작스레 성사된 듯한 느낌이다. 남자도 여자를 어떻게 보는지, 어떤 식으로 감정이 자라는지, 그 점에 대해 좀 더 묘사되어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데 이 남자, 헨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캐서린보다 더 많이 알고 있고 또한 더 생각이 깊다. 그런 점이 무척 만족스러운데, 아주 당연한 이치-그러나 캐서린은 알지 못했던-에 대해 조곤조곤 캐서린에게 일깨워준다.



"친애하는 몰란드 양," 헨리가 말했다. "오빠를 걱정하는 아리따운 마음이 좀 잘못된 건 아닐까요? 너무 멀리 나가는 것 아닐까요? 그녀가 틸리 대령을 안 만나기만 하면 그녀의 애정, 아니 적어도 그녀의 반듯한 몸가짐이 보장된다는 그 생각을 당신 오빠 스스로에게나 쏘오프 양에게나 바람직하다고 보고 감지덕지할까요? 그는 주변에 아무도 없어야 비로소 안전해지는 남자인가요? 그러니까 그녀의 마음은 다른 누가 붙잡지 않을 때에만 그를 향하나요?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또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라지 않아요. 당신이 지금 힘든 거 알겠으니까 '힘들어하지말라'고는 안 할게요. 그래도 가능하면 힘들어하지 말았으면 해요. 당신 오빠와 당신 친구가 서로 사랑한다고 믿잖아요. 두 사람 사이에 질투는 없어요. 그들 사이에 불화는 오래가지 않을 겁니다. 그들의 가슴은 서로에게 열려 있지 당신에게 열려 있지 않잖아요. 그들은 정확히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견뎌야 하는지 알아요. 재미있을 때까지만 장난치고 그만두어야 한다는 거, 안단 말이죠." (p.171)



그래, 바로 이거다. 헨리는 남녀 사이의 관계에 대해 아주 정확한 포인트를 짚어냈다. '그는 주변에 아무도 없어야 비로소 안전해지는 남자인가요? 라니. 크- '야광토끼'의 노래가 생각난다. '그녀보다 나를 더 먼저 만났대도 그래도 너는 그녀를 택했겠지 난 그냥 아닌거지' 라는. 크- 이거슨 남녀관계의 진리. '누구때문에' 안되는 게 아니라, 안되니까 안되는 거다. 아니니까 아닌 거다. '그녀의 마음은 다른 누가 붙잡지 않을 때에만 그를 향하나요'라는 이토록 날카로운 질문이라니. 여기에 대한 답이 바로 그와 나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일테다. 헨리 멋지다. 






아!

그리고 나는 이 소설에 대해 꼭 말하고 싶다. 이 책은 내가 최근에 읽은 그 어떤 소설보다 더 완벽하다. 2015년에 책 읽은 목록을 Ireaditnow 를 통해 쭈욱 훑어보면서, 아, 이 책이 유일하게 완벽한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1월달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있더라. 그러므로 2월달부터 읽은 소설중에 완벽한 걸로.


자, 일단 이 책은, 옮긴이의 말을 빌자면, '학자로서도 명성을 떨치지 못했고, 교육자로서 학생들의 인정을 받지도 못했으며, 사랑에 성공하지도 못한' 스토너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이 삶은 단조롭고 조용하다. 그러나 그윽하다. 이걸 어떻게 표현하면 될까. 이 소설은 대체 어디에서 나에게 완벽하다는 느낌을 주는걸까, 곰곰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다만, 며칠전에 읽은 소설, 《허즈번드 시크릿》이 생각났다.



책을 읽는 독자로서 소설에 대해 기대하는 바는 각자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생각할 거리가 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흥미있는 이야기를 원할 것이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문장을 원할 것이고, 누군가는 지식의 전달을 원할 것이다. 나는 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아주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소설이 재미있어서 읽었다. 재미있어서 읽었는데, 읽으면서 감동도 받고 빡치기도 하고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도 되고 전혀 다른 삶에 대해서도 알게 되더라. 그러면서 아름다운 문장, 고요한 이야기에 크게 만족감을 느낀다.


《허즈번드 시크릿》은 분명 사람들끼리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소재를 제시한다. '나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해보게 되고, 그래서 그 책을 읽고나면 누군가에게 줄거리를 이야기해주며, 너라면 어떨 것 같아? 라고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남편의 비밀은 그만큼 굉장히 '거대한' 것이었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하기에 딱 좋은 소재이기도 하고, 영화화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스토너의 삶에 대해서라면, 다 읽고나서 누군가에게 줄거리를 말해주기가 민망하다. 저 위에 쓴대로 '어느것에도 성공하지 못한' 한 남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니까. 딱히 이렇다할 충격적인 일이라든가, 반전이라든가 하는 것이 이 책에는 없다. 다만 그저 성공하지 못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에 대해 동정심이나 연민을 생기게 하는 것도 아니고, 아쉽다고 생각되어지는 것도 아니다. 독자는, 그러니까 이 책을 읽는 나는, 그저 그의 삶의 흐름을 따라갔을 뿐이다.


잠이 안오는 일요일 밤, 이 책을 집어 들었다가 새벽 세시가 넘을 때까지 결국 이 책을 다 읽고 잤는데(그래서 나 지금 예민하다), 스토너가 문학에 대한 사랑을 느낄때 처음 가슴으로 훅- 뭔가 들어오는 것 같았고, 이 결혼은 실패다, 라는 걸 깨달을 때 무척 안타까웠으며, 자녀에 대해서 마음껏 사랑을 표현하지 못할 때 같이 애석해했고, 아, 그가 사랑을 주고 또 받을 때는 한없이 그 사랑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생긴 것이다.


사람들은 반드시 '서로 사랑하는' 누군가가 생기는 것이구나, 비슷한 크기로 상대방을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구나, 누군가에게 그건 아주 늦게 나타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만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스토너 덕에 하게 됐다. 결국 스토너가 그 사랑을 끝내 선택해 함께하게 된 게 아니었어도, 죽음에 이르러 불러볼 이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책장은 넘어가고 스토너의 경력이 쌓일수록, 아, 몸은 허약해지고 스토너는 이제 죽음에 다른다. 그때, 나는 내 나이를 돌이켜 보았고, 나에게도 이제 죽음이 십년전보다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사실 때문에 무서워졌다. 이 고요함, 이 묵직함, 이 고독함. 시간이 흐르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게 이토록 아플 줄이야.



2월 말에 또 피로가 그를 덮쳤다. 아무리 해도 피곤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는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작은 뒷방에서 소파 겸용 침대에 기대어 서류작업을 했다. 3월에는 다리와 팔이 둔중하게 아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피곤해서 그럴 것이라며 따뜻한 봄이 되면 조금 나아질 것이라고, 그저 휴식이 필요할 뿐이라고 자신을 타일렀다. 4월이 되자 통증이 아랫배 쪽으로 국한되었다. 그래서 그는 가끔 수업을 빼먹었고, 강의실을 옮겨다니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힘이 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5월 초에는 통증이 심해져서 더 이상 그냥 귀찮기만 한 가벼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대학 부속병원에 진료예약을 했다. (p.360)



자신의 몸이 점점 더 약해져가고 있다는 걸 느끼는 이때의 스토너는 60대이다. 내게 60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슬픈 깨달음이 왔다. 나도 이렇게 지내다가 언젠가는 내 다리가, 내 팔이, 내 허리가 예전과 다르다는 걸 점점 더 느끼게 되겠지. 이 책의 책장을 넘기는 새벽, 우울해진 까닭이다. 몸 여기저기가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그러다 결국은 병원에 가게 되고, 약을 처방 받고, 종국엔 움직임조차 힘들어지는 날이 오겠지...




위에 언급했듯이, 스토너는 사랑을 잃었다. 그 사랑을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영원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었고 결국 함께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육체의 병은 마음에서 쉽게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내가 몸이 아팠을 때는, 내 마음이 크게 아팠을 때였다. 마음이 너무 아프면, 몸이 그걸 버텨내지 못했다. 이런 나를 두고 남동생은 '스트레스에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노력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는 쪽으로 모든 결정을 내리고자 한다. 그렇다고 해서 스트레스와 상처를 번번이 피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다. 일전에도 마음이 너무 아파서 몸이 아팠다. 스토너는, 사랑을 잃고 아프다. 사랑을 잃었다면, 아플 수밖에 없지. 나도 사랑이 아파서 몸이 아프기도 했으니까.



그해 여름에 그는 강의를 맡지 않았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병을 앓았다. 그는 원인이 불분명한 엄청난 고열에 시달렸다. 겨우 일주일이었지만, 기운이 쭉 빠져서 몹시 수척해졌을 뿐만 아니라 후유증으로 청각마저 일부 잃어버렸다. 여름 내내 그는 너무나 쇠약해져서 겨우 몇 발짝만 걸어도 녹초가 되었다. (p.306)



하아- 생애 처음으로 병을 앓을 정도로 그는 아팠다. 사랑을 잃었다. 사랑을 잃고 그는 아팠다. 청각마저 일부 잃을 정도로. 몹시 수척해질 정도로.



근데..

나도 사랑 때문에 몹시 아팠던 적이 분명 있는데, 왜 나는 수척해지질 않지? 왜 아파도 안수척해지지, 나는? 나 진짜 아팠었는데???? 아플수록 잘먹어야 된다. 그래야 빨리 낫는다.



스토너는 캐서린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자기 혼자만의 것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캐서린이, 그것이 캐서린에게도 찾아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아, 너무 좋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니까, 자기 혼자만 캐서린을 열망했다고, 흠모한다고 생각했던 스토너에게, 어느날 캐서린은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다.



"정말이지 내가 옛날에 당신을 얼마나 갈망했는지 알아요?" 캐서린이 말했다. "수업시간에 앞에 서 있는 당신 모습은 아주 크고 사랑스럽고 서툴러 보였어요. 나는 당신에게서 뭔가 격렬한 것을 보고 싶다고 갈망했는데, 당신은 전혀 몰랐죠?" (p.276)



이 부분은 줌파 라히리의 소설 한 구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녀는 갑자기 아찔해서 비틀거렸다. 자기에게 무관심하던 그 소년, 자기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정사를 시작한 이 남자, 바로 그가 마지막 순간에 그 이상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줌파 라히리, <뭍에 오르다> p.389)




어쩌면 우리는 생애 한번쯤, 자신이 정말 갈망하던 사람과 사랑하며 살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은 짧든 길든 어쨌든 유한하겠지만. 우리에겐, 그런 시절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고, 그때가 모두에게 다르게 오겠지만. 



이 책은 읽고나서 다른 사람과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다만 조용히 혼자 곱씹고 음미할 수 있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문학을 사랑하고 소설을 폄하하지 않는 독자들에게 읽으라 권하고 싶다. 아름답고 고요하며 우아하고 아름다운 소설이다. 나는 이런 소설을 좋아한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다시 한 번 인용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정말이지 내가 옛날에 당신을 얼마나 갈망했는지 알아요?" 








"모르겠나, 스토너 군?" 슬론이 물었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갑자기 슬론이 아주 멀게 보였다. 연구실의 벽들도 뒤로 물러난것 같았다. 스토너는 자신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질문을 던지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십니까?"
"정말이지." 슬론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p.31-32)

"전쟁은 단순히 수만 명, 수십 만 명의 청년들만 죽이는 게 아냐.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 마음 속에서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뭔가가 죽어버린다네. 사람이 전쟁을 많이 겪고 나면 남는 건 짐승 같은 성질뿐이야. 나나 자네 같은 사람들이 진흙탕 속에서 뽑아낸 그런 인간들 말일세." (p.53)

"뭔가 잘 안 되네요, 그렇죠? 죄송합니다. 당신 같은 분을 만난 적이 없어서 제가 자꾸 서투른 소리만 하고 있습니다. 혹시 당신을 곤란하게 해드렸다면 용서해주십시오." (p.75)

"나는 여러 면에서 무지한 사람입니다. 바보 같은 것은 바로 납니다. 당신이 아니라. 내가 당신을 만나러 오지 않은 것은 ‥‥‥ 내가 당신한테 점점 귀찮은 존재가 되고 있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잘못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래요." 그녀가 말했다. "잘못 생각하셨어요."
그는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나는 ‥‥‥내 감정 때문에 당신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계속 만난다면 조만간 그 감정이 뚜렷이 드러났을 테니까요."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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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5-04-20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깐 말을 해야해요. 말을해야알지!! ^-^



뭔가 책 한권 들고 골방에 콕 처박히고 싶은 날입니다.



다락방 2015-04-20 16:20   좋아요 0 | URL
응 조용히 읽기에 좋은 책이었어요. 노생거 사원은 재미있고 스토너는 문학의 클래식 같은 느낌. 특히나 조용한 골방에서 읽기에 맞춤한 책입니다. 헤헷 :)

nomadology 2015-04-20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리뷰를 봤을때는 그저 그러려니 (알려지지 않은 작가가 점잖게 잘 쓴 소설 정도?) 했는데, 다락방님 리뷰를 보니 읽고 싶어지네요. 감사합니다.

다락방 2015-04-20 16:21   좋아요 0 | URL
참 좋더라고요, 저는. 왜, 한장 한장 꼭꼭 씹는 느낌으로 읽어야 되는, 그런 소설이었어요. 저는 이런 소설이 정말 좋아요!! >.<

단발머리 2015-04-20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학을 사랑하고 소설을 폄하하지 않는 독자로서 [스토너]를 서둘러 읽어야겠어요~ 소설에 대한 제 애정을 확인하고 싶어 막 불끈!!!해지는데요~~

다락방 2015-04-20 16:27   좋아요 0 | URL
아, 단발머리님!
좋은 소설입니다. 정말 좋은 소설이에요. :)

다다 2015-04-20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다락방님 페이퍼를 향한 애정은 유통기한이 없나봅니다.
언제 읽어도 좋구요. 깨닫는 바가 많아요.
오늘도 다락방님의 무등에 올라탄 난쟁이가 되어 좋은 소설 하나를 발견하네요.
[스토너] 장바구니에 쑝 담습니다. 감사해요. 락방님. ^-^

다락방 2015-04-21 15:17   좋아요 0 | URL
네, [스토너]는 정말 좋습니다, 소금꽃님.
조용한 곳에서 조용히 읽어보세요. 책의 문장 하나하나가 콱콱 와서 박힐겁니다.

blanca 2015-04-20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이 두권. 언제나 읽고 싶어지는 책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 저는 제일 근사하게 느껴집니다. 고마워요^^

다락방 2015-04-21 15:17   좋아요 0 | URL
우와- 저 두 권의 책에 대해서 블랑카님이 어떤 느낌을 받으실지, 풀어놓을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

에이바 2015-04-20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말씀하신 부분이 <노생거 사원>에서 참 아쉬운 부분이에요. 오스틴 소설 속 남주들의 감정묘사가 아쉬울 때가 많은데요. 저는 드라마로 <오만과 편견>을 보고 책을 읽었는데 다아시 분량이 너무 적어서 놀랐어요. 콜린스 출연의 임팩트가 더(?) 강하더군요. 그래도 명작은 명작이더라고요. 요즘 오스틴 다시 읽기중인데 다락방님께 공감하고 갑니다. 그리고 <스토너> 읽어야겠어요.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꼭꼭 읽겠습니다.

다락방 2015-04-21 15:18   좋아요 0 | URL
네, 여주의 사랑이야 충분히 잘 알겠는데, 대체 남자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사랑이 시작된건지, 아니 얼마만큼 사랑하는건지, 아니 이건 표현이 이상하고 뭐랄까, 사랑을 하기는 하는건지 충분하게 느껴지질 않아서 답답하더라고요. 야..뭐야, 니네 왜 갑자기 서로 사랑이야? 하는 느낌이랄까요. ㅎㅎ
에이바님 덕에 노생거 사원 읽었습니다. 헤헷.

스토너 꼭 읽으세요, 에이바님. 정말 좋아요!! >.<

프레이야 2015-04-20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공감 2권이 탄생할 것 같습니다. 그러시길요!

다락방 2015-04-21 15:19   좋아요 0 | URL
우하하핫. 독서공감 2권이 탄생한다면, 이 영광을 프레이야님께로!!

잘 지내시고 계신거죠, 프레이야님?
앞으로 자주자주 소식 전해주세요.

블랙겟타 2016-01-15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도 ireaditnow어플 쓰시는 군요 ㅎㅎ 제가 가장 아끼는 어플중에 하나에요 이 어플 때문에라도 책을 자주 읽으려고 노력할 정도 거든요 ㅎㅎ 제가 다락방님 글을 읽고 나중에 읽어야지라고 샀던 책이 `스토너`였었는데 제 주위에서도 추천을 하길래 ˝이제야(?) 읽을때가 됐구나!˝ 라고 생각이 들어 드디어 읽어보았는데요. 다락방님 말대로 아름다우면서 고요한 책으로. 조용히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네요..별 내용이 없었던것 같은데 읽고난 뒤 먹먹해지네요 ^^;; 덕분에 좋은 책 읽었어요.

다락방 2016-01-18 10:26   좋아요 1 | URL
우어엇 블랙겟타님도 아이리뒷나우 어플을 쓰시는군요! 반갑습니다! 꺅 >.<

스토너는 참 좋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딱히 별 내용이 있었던 것 같진 않은데, 그런것과는 전혀 별개로 묵직하고 먹먹하게 만드는 책이었어요.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남동생에게도 추천해줬는데 남동생은 이걸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네요. 스토너가 늙고 병들 때 참 외로움이 느껴지더라고요. 아, 삶은 뭘까, 싶기도 하고요. 아프고 병들어 움직이기조차 힘들어졌을 때, 저도 같이 아프고 힘든 느낌이었어요.

블랙겟타님, 자주 나타나주세요! 같이 얘기해요, 우리!

블랙겟타 2016-01-18 23: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다락방님, 그 소설에서 한단어로 표현하자면 외로움! 이었어요.

사실 다락방님 서재에 최근엔 뜸해서 조금 찔렸었는데. ^^;;; 앞으론 자주 들릴께요 ㅎㅎ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닷.
 













어제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지하철안에서 이번호 시사인을 읽었다. 시사인을 읽다말고 시사인 정기구독을 선물해준 친구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시사인 선물해준 거 고마워요. 꼬박꼬박 오는 것도 좋고 읽는 것도 좋아요. 이걸 당신이 해줘서 최고 좋아요.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어딘가에서 울분에 찬 사람들이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이렇게 지하철안에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고마웠다.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이 순간을 선물해준 친구에게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내가 무엇보다 이걸 누가 선물해주길 원했다는 사실이 좋았고, 몇 년전의 그 말을 기억하고 좋은 사람이 선물해줬다는 사실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다 모두 소중해서 가슴속에 애정이 보글보글 끓었다. 



이번호 시사인에는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가 샘플북으로 같이 왔다. 이 책을 주문해뒀지만 0416 키링의 재고 소진으로 아직 내게 오지 않았고, 덕분에 샘플북으로 이 책을 잠깐 읽을 수 있었다. 어김없이 눈물이 났다.





좀전에는 친구로부터 노란 리본 위젯 받기 라는 문자메세지가 왔다. 설치했더니, 어디에서 스맛폰에 노란 리본이 달려있는지 알 수 있더라. 일단, 위젯은 여기서 다운 받으면 되고,



다운 받고 나서 지도를 활성화 시키면, 이렇게 여기저기 노란 리본이 보인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걸 물끄러미 보노라니 또 코끝이 찡해진다.



남동생이 남매 단톡창으로 오늘 세월호 1주기라며 말을 걸어왔다. 그 말이 고마워서, 나는 말했다.



다음주에 0416 키홀더 나한테 오는데 하나 더 준비했어. 너도 줄라고. 가방에 달고 다니자. 아침에 또 울었네. 내일은 촛불집회 갈 예정이야.


남동생은 '웅 그래' 라고 답해주었다. 그러자 또 고마워졌다. 또 이 순간이 소중해졌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랑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같아서. 내가 하는 말에 '그래'라고 해주어서. 나는 언제나 '그래'라는 말에 마음이 다 허물어져 버리는 느낌이다. 어제도 친구가 '우리가 같은 식으로 세상을 보는 게 좋다' 고 말을 했었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방향을 본다는 건 분명 축복이다. 나는 이렇게 슬픔 때문에 눈물을 흘리다가도, 자꾸 순간순간이 소중해 기억하고 싶어진다. 슬픔과 소중함을 함께 느끼는 것이 옳은 것인지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슬퍼서 울고 소중해서 가슴이 벅차다. 



몇몇 친구들에게 노란 리본 위젯 같이 달자고 메세지를 보냈다. 남동생에게도 물론. 남동생도 바로 다운 받았다고 했고, 나는 또 남동생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이 벅차오를 것 같다. 녀석이 나랑 같이 신해철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사람이고, 나랑 같이 세상을 얘기하고, 나랑 같이 노란 리본을 단다는 사실이, 나는 정말 좋다. 애정이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이렇게 애정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다가 또 울컥, 미안해지는 것이다. 당신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여전히, 내내 아파하고 있는데, 나는 자꾸 애정이 끓어오르고, 소중한 순간을 기억하려고 해서, 이래도 되나 싶어서, 정말 미안해진다. 그래서 또 운다. 미안해서 울고 소중해서 울고, 소중한게 또 미안해서, 자꾸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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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6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16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5-04-16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 순간에나 눈물이 왈칵 하고 쏟아지는 날이네요...

다락방 2015-04-16 17:02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래요, 휘모리님.

무해한모리군 2015-04-16 18:14   좋아요 0 | URL
더 슬픈건 제가 있는 방배 고급 아파트 단지엔 저 어플 까신분이 없네요...

다락방 2015-04-17 08:38   좋아요 0 | URL
이 어플이 이제 작동을 안하는 거 아닐까요? 저도 어제 퇴근후에 확인해보니 아예 노란 리본 자체가 보이질 않더라고요. ㅠㅠ

테레사 2015-04-17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다락방님...정말 ....소중한 분이세요.

다락방 2015-04-20 08:30   좋아요 0 | URL
소중하다뇨, 테레사님. 와- 고맙습니다.
:)
 















이 책의 제목은 정말이지 마음에 안든다. 원제역시 The Husband's Secret 이지만, 제목이 뭐랄까, 지나치게 .. 가벼운 느낌을 준달까. 이 책의 내용이 가볍지 않은데 말이다. 이 상황에 나라면 어땠을까, 를 계속계속 생각하게 만들지만, 지나치게 수다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첫장을 넘길때부터 이야기가 수다스럽게 진행된다. (나는 이런 수다스런 진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지나치게 사교적인 주인공 '세실리아' 탓일지도 모르겠다. 세실리아는 등장인물들중 가장 사교적이다. 너무 열정이 넘쳐, 나의 경우엔 사귀고 싶지 않을 만큼.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정말이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니까. 내성적인 테스나 테스의 엄마가 세실리아를 보며 피로감을 느끼는 것도 이해가 된다. 뭐, 그건그렇고. 



선물! 

나는 이 책에서 아주 좋은 선물 아이템을 찾아냈다.

뭐, 딱히 선물하겠다는건 아니지만.






"너한테 속달로 왔어. 너희 아빠가 보낸 것 같아. 너희 아빠가 속달로 뭘 보내다니, 상상이 되니?"

테스가 장 본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테스의 엄마가 말했다.

엄마의 말처럼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테스는 엄마와 함게 식탁에 앉아 에어캡에 싸인 조그만 속달 우편을 풀었다. 평평하고 네모난 상자가 들어 있었다. 

"설마 너한테 보석을 보낸 건 아니겠지? 그지?"

테스의 엄마가 상자 뚜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나침반이야. 쿡 선장이 이런 걸 쓰지 않았을까?"

테스가 말했다. 아빠가 보내온 물건은 나무로 만든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나침반이었다.

"정말 독특한 사람이라니까."

테스의 엄마가 콧방귀를 뀌었다.

테스는 나침반을 들어올렸다. 상자 밑엔 노란 포스트잇에 쓴 편지가 붙어 있었다. 테스가 편지를 읽었다.


사랑하는 테스,

이게 여자애들에겐 적절한 선물이 아닌 거 알아. 너에게 어떤 선물을 해야 하는지 한 번도 제대로 알았던 적이 없구나. 하지만 길을 잃었을 것 같은 너에게 필요한 게 뭐일지 고민해봤단다. 나는 길을 잃는 느낌이 어떤 건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정말 끔찍한 느낌이지. 하지만 내겐 언제나 네가 있었어. 너의 길을 찾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아빠가. (p.370-371)




테스의 엄마와 아빠는 어린 시절 이혼했다. 테스는 그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상처 받았었는지 분명히 기억한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이혼할 위기에 놓여있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인 리엄이 그때문에 불행해질까봐 이혼만은 안되겠다고 이를 악물고 있다. 그런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엄마에게 찾아와 머물고 있는데, 테스와는 어색해서 대화도 길게 하지 못하는 사이인 아빠가 이렇듯 속달로 나침반을 보내온 것이다. 이 나침반이라는 선물이 나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테스도 '가슴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p.371)고 했는데, 그러자 당장 뛰어가 나도 나침반 하나를 사고 싶어졌다. 며칠전에 '내가 과연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다'는 기분이 들어 헤매었는데, 그럴때 가만, 나침반을 들여다보면 조금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진거다. 방황하는 마음이, 갈 길을 제대로 찾은건지 모르겠는 혼란스러운 마음이,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며 조금쯤 진정하지 않을까, 하고. 테스는 '아주 예쁜' 나침반을 받았는데, 나도 조만간 아주 예쁜 나침반을 하나 마련해 늘 내 방에 두어야겠다. 그러다가 또 혼란스러운 날이 찾아들면, 고통스럽고 괴로운 시간이 찾아들면, 가만히 들여다봐야지. 내가 어디로 갈 것 같니, 나침반아? 내가 가야할 방향으로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거니? 


실상 물끄러미 나침반을 들여다본다고 해서 방향이 정해지지도 않을 것이고, 나침반이 물론 나에게 방향을 일러주지도 않겠지만 -이아립은 누구도 내게 일러주지 않았네, 라고 노래하지 않았는가-, 들여다보는 순간에 마음은 조금쯤 고요해지지 않을까. 



테스가 '코너 휘트비'와 했던 두 번의 데이트가 좋았다. 그 두 번의 데이트 동안 테스가 경험한 것들이 좋았다. 그녀에게 그게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코너 휘트비에겐, 무척 안타깝게 되었지만. 유감이에요, 코너 휘트비. 당신은 당신에게 잘 맞는 짝을 찾은건지도 모르는데...



아, 참고로 말하자면 이 책에서 아내 '세실리아' 가 알게된 남편 '존 폴'의 비밀-허즈번드 시크릿!-은, 내가 결코 알고 싶지 않은 성질의 것이었다. 몰랐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그런 비밀. 알게 되었기 때문에 너무나 끔찍한 비밀. 모든 고통과 갈등은 사랑하기 때문에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랑하므로 발생되는 것이 아닐까.





어제부터 내내 이 노래를 반복해 듣고 있다. 



https://vimeo.com/91684107





사람들은 보통 비극을 겪은 사람은 자동적으로 훨신 높고 고상한 차원으로 올라간다고 믿지만, 레이첼이 보기엔 그 반대였다. 비극은 사람을 옹졸하고 편협하게 만든다. 위대한 지식이나 영감을 주는 일 따윈 없다. 레이첼은 인생이 잔혹하고 제멋대로라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엔 처벌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는 사람도 있고, 조그만 잘못에도 끔직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사람도 있다.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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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5-04-14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두려워요. 어디로 가야할지 도무지 모르겠어. 평생 이 고민만 하다 죽음을 맞이 하는건 아닐까란 생각을 합니다.
모르니깐 두려움이 더 큰거 같아요.

그래도 나쁘지 않은 일상이에요.
먼길 날 만나러 오는 친구들도 있고, 아직은 먹고 싶은걸 사 먹을 수 있는 돈도 있고 하니깐.
아직은 괜찮아. 괜찮아..

다락방 2015-04-15 14:0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레와님. 우리 나침반을 살까요?
이 책에 나온것처럼 `나무로 만든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나침반`을 사자요. ㅎㅎㅎ
나침반 너무 사고 싶네. ㅋㅋㅋㅋㅋ


그래요 우리 즐겁게 먹고 마시고 수다 떱시다. 그런것들로 채워지면 나쁘지 않은 일상일 것 같아요.

[그장소] 2015-04-14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비극이랄 것 까진 없지만..비일상스러운 일에..대범보단 옹졸해지는 것을 느끼고 이런 스스로가 환멸스러운데도..그런데도 뭔가 침범당한 것 같은 건 ..어쩔 수없어....마음이 번잡합니다.
다락방님 화통하게 별거아냐..인생 별거 없어..해주세요.ㅎㅎㅎㅎ부적이 되게.

다락방 2015-04-15 14:03   좋아요 0 | URL
인생 별 거 아닙니다, 별 거 없어요. 다 거기서 거깁니다. 빠샤!! (부적이 됐나요? ㅎㅎ)

우리는 항상 본인은 소심하면서 다른 이들이 대범해지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없는 건,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없는 걸텐데 말이에요. 번잡한 마음, 날도 좋은데 차 한잔 하면서 달래세요, 그장소님.

테레사 2015-04-15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제가 읽어도 좋을까요? 두려워서요..마지막 다락방님의 말을 보니, 두려워지네요.
그리고 레이첼 세이지의 노래는 참 좋아요.....다락방님은 어떻게 이런 곡들을 알고..또 듣는지....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곡들을 발견하고 듣고...알리는지......저도 그렇고 싶은데...아름다운 곡들을 찾아내는 능력..그걸 듣는 즐거움...행복을 느끼고 싶은데....

다락방 2015-04-15 14:01   좋아요 0 | URL
음, 테레사님은 혹시 영화처럼 빠르고 흥미있게 진행되는 책을 좋아하시나요? 이를테면 기욤 뮈소라든가 더글라스 케네디 같이요. 리안 모리아티의 이 책은 분명 생각할 거리를 주고 책장을 덮고나서도 고민하게 만들지만, 음, 작가가 너무 많이 개입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지만 제게 그렇게 좋은 책은 아닌 것 같아요. 테레사님도 딱히 좋아하실 것 같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의외의 지점에서 저랑 다르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으실 수도 있으니..글쎄요 이 책에 대해서는 참 확신을 갖고 추천을 드리기가 어렵네요. 이 책 읽고 [미 비포 유] 생각도 했어요. `이런 경우에 나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두 책이 비슷한 것 같아요. 물론 설정은 전혀 다르지만요.


아, 테레사님. 저 아침마다 출근준비하면서 라디오 들어요. 노래 몇 곡 듣지 못하고 나오지만 좋은 노래 나오면 무슨 노래인지 스맛폰으로 검색해서 메모해뒀다가 나중에 유튭으로 다시 듣거든요. 그리고 다시 들어도 여전히 좋으면 유료구매합니다. 흐흣. 이 노래도 그렇게 알게 되어 구입한 노래에요. 테레사님께도 좋은 노래라니, 기뻐요! :)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 그림책 다락방 4
상드라 푸아로 셰리프 글.그림, 문지영 옮김 / 한겨레아이들 / 201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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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이 jtbc 뉴스에 나와 손석희와 대화 하면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앞으로는 이미 시작된 사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과정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고.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보통이 말한 요지는, 이 세상에 사랑이 시작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은 많지만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그 사랑의 상태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는 적다, 사람들이 별로 관심없어한다, 는 거였다. 그래서 그걸 자신이 해보겠노라고. 나는 그간 보통의 책을 여섯권 정도 읽었고, 그 여섯권들중 어떤 책에서도 보통의 매력을 느끼지 못해, 앞으로는 보통의 글을 안읽어도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인터뷰를 보며 앞으로 보통이 자신이 말한 바로 저 책을 쓰게 된다면, 그 책은 반드시 읽어보겠노라고 생각했다. 사랑이 시작되기 전의 그 설레임이 아닌, 이미 진행되고 있는, 혹은 아주 오래 진행되고 있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면, 나는 관심이 많다. 사실 그 관심은 '그게 정말 가능할까?' 라는 의심에서 시작됐다고 하는 게 솔직하며 정확할 것이다.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그 기한이 2년인지 3년인지는 모르겠다. 2개월인지 15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설레임으로 시작된 사랑이 설레임으로 계속 지속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혹여 오래 지속된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의 속성은 설레임이 아닌 무엇, 이를테면 익숙함이나 습관 같은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내 사랑이 늘 짧았던 이유였을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부모와 지내고 있으면서도, 실상 내 부모의 관계를 받치고 있는게 '이성간의 사랑' 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들의 의리, 정, 신뢰, 습관, 연결. 그런 것들이 내 부모를 지금에 이르게 한 게 아닐까. 물론 의리나 정, 신뢰등을 사랑의 또다른 이름이라 부른다면 그들의 바탕이 사랑이라고 해도 부인할 수 없겠지만, 여전히 내게는 사랑은 설레임이나 긴장이라는 생각이 강한 까닭이다. 나는 사랑은 지속될 수 없다는 현실성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가보다. 아니, 그렇다. 그래서 나는 길고도 긴 사랑은 무섭다. 변질되는 감정일까봐 두렵다. 그런 것들이 내것이 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런 한편, 길고 긴 관계를 유지하는 연인들 혹은 부부를 보는 것은 존경심을 자아낸다. 아, 어떻게 저렇게 지낼 수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오래 함께하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열정이라고 내가 믿는다면,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 열정이 아닌 다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책,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을 보면,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는 것 정도가 아니라,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란 생각마저 든다. 나는 어쩌면, 사랑이란 것에 대해 정말 쥐뿔도 모르는 걸지도 모르겠다. 

여기, 기억을 잃은 할머니가 있다. 오랜 시간 할아버지랑 함께 살아온 할머니. 피자를 먹고 싶으니 피자를 사오겠다고 했지만, 그 말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 자동차 열쇠가 어디있는지 통 찾을 수가 없는 할머니, 그래서 먼 길을 오랜 시간을 걸려 집까지 걸어가야 했던 할머니. 그리고 그런 할머니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있다. 결국 할머니가 언젠가 자기를, 그리고 그들의 자식에 대한 기억마저 잃을까 두려워하는 할아버지. 그녀를 위해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를 고심하는 할아버지. 그리고, 이런 문장.




정말이지 예쁘구나, 하고 할아버지는 생각합니다.



이건..뭐지? 잠든 아내의 모습을 보며 정말이지 예쁘구나, 하고 생각하는 할아버지라니. 이건 뭐지? 이건 사랑이잖아. 이건 애정이잖아. 그렇다면 사랑이란 게, 유통기한 따위, 없는 거 아니야? 정이나 신뢰 혹은 의리 같은 거 말고, 그런거 말고 더한 무엇이 거기 있는 거잖아.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와도 질리지 않고 지치지 않는 거, 그게 사랑 안에 있는 거잖아. 그리고 이들은 지금, 그걸 하고 있는 거잖아.


이 사람을 위해서 무얼 할 수 있을까, 를 고민하는 할아버지라니. 이런 사람들이 하고 있는게 사랑이 아닐 리가 없잖아. 밤중에 잠을 못이루고 옆에 잠든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는 거, 이게 사랑이 아닐 리가 없잖아? 



마흔다섯이 되고 일흔둘이 되어도 연애를 즐기며 살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사랑이 일시적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런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제는 한다. 이미 나보다 더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 내게 그렇다고 말한다. 줄리언 반스가 그랬고,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속,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렇다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들의 말은 옳았던 것 같다.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살아왔던 사람들의 말. 그들이 사랑에 대해 하는 말 역시 옳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여든다섯 살이 되어, 나보다 훠어어얼씬 젊은 이들에게 말할런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지금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단다, 라고. 

사랑은 이토록 오래 지속되는 것이야, 라고.



이 책의 모든 책장은 덤덤하게 넘길 수 있다. 요란하지 않게 그저 묵묵히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맨 마지막장까지 그렇게 볼 수는 없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위해 손수 만든 것들을 펼쳐 보면서는 울컥, 하는 마음을 덤덤하게 누를 수가 없다. 그래서 이게 사랑인 것이다. 그들이 사랑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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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4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5-04-14 17:32   좋아요 0 | URL
어디를 말하는지 몰라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네요. ㅋㅋㅋㅋㅋ 땡큐요!

웽스북스 2015-04-14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 글 참 좋네요! :)

다락방 2015-04-14 17:33   좋아요 0 | URL
좋다니 다행입니다.
:)

레와 2015-04-14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한다고 말해줘. ^^

다락방 2015-04-14 17:33   좋아요 1 | URL
누구한테? 레와님한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nomadology 2015-04-14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린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들일 뿐이죠. 저는 보통은 좋아해요. 그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노래도 좋아하고.

다락방 2015-04-15 14:04   좋아요 0 | URL
크- 뭔가 술 한잔 하면서 읽어야 되는 댓글 같아요. 우린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들... 크- 뭔가 인생의 진리를 한 수 배운듯한 느낌입니다. 헤헷

cocomi 2015-04-15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사랑에 대한 정의가 달라서 이건 사랑이고 이건 아니다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에로스적인 사랑도 있고 자식을 향한 무한 사랑도 있고 생물학적 본능을 넘어서는 다른 종류나 차원의 사랑도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전 개인적으로 한순간에 불타오르는 감정 보다 권태나 다른 삶/사랑의 굴곡을 이겨내거나 지나가고 난 후에도 이어지는 사랑, 상대의 모든 것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용하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것이 이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게 쉽지 않으니까.. 그래서 노년의 사랑이 사람들에게 더 큰 감동을 주는 것 같아요.

다락방 2015-04-15 14:06   좋아요 1 | URL
네, 최근에야 저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권태나 다른 삶의 굴곡을 이겨내고 지나간 후에 이어지는 사랑. 그런 사랑의 숭고함이랄까요. 그런 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제 나이 먹어가며 저도 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함께 봐오고 겪어오며 서로에 대해 나만큼 잘 알 수 있게 된다는 것 말예요. 끄덕끄덕. 네, 그 쉽지 않은 것이 그래서 아름다운가 봅니다.

nomadology 2015-04-15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낮술 고고, 라고 적었더니 너무 체신머리 없이 보이네요. 오늘 날씨가 무척 좋아요.

다락방 2015-04-15 16:25   좋아요 0 | URL
오늘 날씨가 무척 좋아서 저도 낮술 고고, 하고 싶지만 일단 직딩이므로 꾹꾹꾸우우우우우우우욱 참았다가 퇴근후 슝- 술 마시러 갑니다! ㅎㅎ

salt23 2015-04-2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페북에 공유했습니다.

다락방 2015-04-22 09:37   좋아요 0 | URL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