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은 정말이지 마음에 안든다. 원제역시 The Husband's Secret 이지만, 제목이 뭐랄까, 지나치게 .. 가벼운 느낌을 준달까. 이 책의 내용이 가볍지 않은데 말이다. 이 상황에 나라면 어땠을까, 를 계속계속 생각하게 만들지만, 지나치게 수다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첫장을 넘길때부터 이야기가 수다스럽게 진행된다. (나는 이런 수다스런 진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지나치게 사교적인 주인공 '세실리아' 탓일지도 모르겠다. 세실리아는 등장인물들중 가장 사교적이다. 너무 열정이 넘쳐, 나의 경우엔 사귀고 싶지 않을 만큼.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정말이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니까. 내성적인 테스나 테스의 엄마가 세실리아를 보며 피로감을 느끼는 것도 이해가 된다. 뭐, 그건그렇고.
선물!
나는 이 책에서 아주 좋은 선물 아이템을 찾아냈다.
뭐, 딱히 선물하겠다는건 아니지만.
"너한테 속달로 왔어. 너희 아빠가 보낸 것 같아. 너희 아빠가 속달로 뭘 보내다니, 상상이 되니?"
테스가 장 본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테스의 엄마가 말했다.
엄마의 말처럼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테스는 엄마와 함게 식탁에 앉아 에어캡에 싸인 조그만 속달 우편을 풀었다. 평평하고 네모난 상자가 들어 있었다.
"설마 너한테 보석을 보낸 건 아니겠지? 그지?"
테스의 엄마가 상자 뚜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나침반이야. 쿡 선장이 이런 걸 쓰지 않았을까?"
테스가 말했다. 아빠가 보내온 물건은 나무로 만든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나침반이었다.
"정말 독특한 사람이라니까."
테스의 엄마가 콧방귀를 뀌었다.
테스는 나침반을 들어올렸다. 상자 밑엔 노란 포스트잇에 쓴 편지가 붙어 있었다. 테스가 편지를 읽었다.
사랑하는 테스,
이게 여자애들에겐 적절한 선물이 아닌 거 알아. 너에게 어떤 선물을 해야 하는지 한 번도 제대로 알았던 적이 없구나. 하지만 길을 잃었을 것 같은 너에게 필요한 게 뭐일지 고민해봤단다. 나는 길을 잃는 느낌이 어떤 건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정말 끔찍한 느낌이지. 하지만 내겐 언제나 네가 있었어. 너의 길을 찾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아빠가. (p.370-371)
테스의 엄마와 아빠는 어린 시절 이혼했다. 테스는 그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상처 받았었는지 분명히 기억한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이혼할 위기에 놓여있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인 리엄이 그때문에 불행해질까봐 이혼만은 안되겠다고 이를 악물고 있다. 그런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엄마에게 찾아와 머물고 있는데, 테스와는 어색해서 대화도 길게 하지 못하는 사이인 아빠가 이렇듯 속달로 나침반을 보내온 것이다. 이 나침반이라는 선물이 나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테스도 '가슴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p.371)고 했는데, 그러자 당장 뛰어가 나도 나침반 하나를 사고 싶어졌다. 며칠전에 '내가 과연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다'는 기분이 들어 헤매었는데, 그럴때 가만, 나침반을 들여다보면 조금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진거다. 방황하는 마음이, 갈 길을 제대로 찾은건지 모르겠는 혼란스러운 마음이,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며 조금쯤 진정하지 않을까, 하고. 테스는 '아주 예쁜' 나침반을 받았는데, 나도 조만간 아주 예쁜 나침반을 하나 마련해 늘 내 방에 두어야겠다. 그러다가 또 혼란스러운 날이 찾아들면, 고통스럽고 괴로운 시간이 찾아들면, 가만히 들여다봐야지. 내가 어디로 갈 것 같니, 나침반아? 내가 가야할 방향으로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거니?
실상 물끄러미 나침반을 들여다본다고 해서 방향이 정해지지도 않을 것이고, 나침반이 물론 나에게 방향을 일러주지도 않겠지만 -이아립은 누구도 내게 일러주지 않았네, 라고 노래하지 않았는가-, 들여다보는 순간에 마음은 조금쯤 고요해지지 않을까.
테스가 '코너 휘트비'와 했던 두 번의 데이트가 좋았다. 그 두 번의 데이트 동안 테스가 경험한 것들이 좋았다. 그녀에게 그게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코너 휘트비에겐, 무척 안타깝게 되었지만. 유감이에요, 코너 휘트비. 당신은 당신에게 잘 맞는 짝을 찾은건지도 모르는데...
아, 참고로 말하자면 이 책에서 아내 '세실리아' 가 알게된 남편 '존 폴'의 비밀-허즈번드 시크릿!-은, 내가 결코 알고 싶지 않은 성질의 것이었다. 몰랐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그런 비밀. 알게 되었기 때문에 너무나 끔찍한 비밀. 모든 고통과 갈등은 사랑하기 때문에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랑하므로 발생되는 것이 아닐까.
어제부터 내내 이 노래를 반복해 듣고 있다.
https://vimeo.com/91684107

사람들은 보통 비극을 겪은 사람은 자동적으로 훨신 높고 고상한 차원으로 올라간다고 믿지만, 레이첼이 보기엔 그 반대였다. 비극은 사람을 옹졸하고 편협하게 만든다. 위대한 지식이나 영감을 주는 일 따윈 없다. 레이첼은 인생이 잔혹하고 제멋대로라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엔 처벌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는 사람도 있고, 조그만 잘못에도 끔직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사람도 있다.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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