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을 먹고 남동생과 나는 일자산엘 갔다. 오르면서는 우리 점심에 무얼 먹을까, 에 대한 얘길 했다. 짬뽕과 냉면 소고기 까지 여러가지 메뉴들이 등장했고 결국 우리가 선택한 건 '까르보나라 스파게티' 였다. 이걸 어디에서 사먹을까, 하다가 나는 '야, 그거 만들어 먹자!' 라고 했다. 그래서 산에서 둘다 걸음을 멈추어 잠깐 앉아서는 인터넷으로 레서피를 검색해보았고, 흐음, 재료도 구할 수 있는 것들이고, 할 수 있겠는데? 해서 그렇게 까르보나라를 만들기로 했던 것. 원하는 만큼 만들어 원하는 만큼 마음껏 먹자!!! 게다가 집에는 따지 않은 와인이 한 병 있다.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와 와인이라니. 꺄악 >.< 완벽한 일요일이야!! 산에서 내려와 남동생과 나는 마트에 들러 양송이 버섯과 베이컨을 사고, 제과점에 들러 생크림을 산다. 우유와 양파, 계란, 스파게티 면은 집에 있고, 브로콜리는 안넣기로 쇼부를 친다.

 

 

그리고 집에 와 양파를 까려는데, 하아-, 늘 있던 자리에 양파가 없다. 원래 우리집은 양파를 많이 쌓아두고 먹는데, 언제나 베란다에 가면 양파가 가득가득 했는데...왜 없지? 그래서 남동생과 나는 잠깐 고민한다. 양파를 사러 갔다올 것이냐 말 것이냐...결국 양파도 패스하기로 한다. 양파 대신 파를 넣을까? 라고 물으니 남동생이 그러지말라고 한다. 그래. 그럼 양파대신 파프리카를 넣자, 해서 재료를 준비한다.

 

 

우선 양송이, 베이컨, 파프리카를 썰어 둔다.

 

 

 

 

저 옆에 노란건 다진마늘이다. 올리브유를 두르고 다진마늘을 넣을 것이다. 자, 그리고 이제는 크림소스를 준비한다. 레서피가 시키는대로, 우유와 생크림을 넣고 섞는다.

 

 

 

 

 

아....생크림 보고 잠깐 흥분해서 숟가락으로 퍼먹을 뻔 했지만, 간신히 이성을 부여잡고 퍼먹지는 않았다. 섞을때 잠깐 주저했다. 한 번 퍼먹고 저을까, 하고. 그렇지만 애써 이성을 부여잡는다. 이성아, 멀리 가지마. 내 옆에 꼭 있어야 해. 그렇게 간신히 우유와 생크림을 넣고 젓다가 레서피가 시키는대로 계란도 하나 깨 넣는다.

 

 

그리고 이제 썰어둔 야채를 올리브유에 볶는다.

 

 

 

 

냄새는 근사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파프리카를 넣지 않는 쪽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만 강하게, 강하게 든다. 이렇게 볶으면서 한 쪽에서 스파게티 면을 삶는다. 그런데..진짜..파프리카...지금 넣으면 안되는 거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불길하게 들고, 이 생각이 들수록, 아니야 이런 생각하면 부정타서 정말 맛없게 될거야, 싶어 그냥 가던 길을 내처 가기로 한다.

 

 

 

그리고 만들어둔 크림소스를 붓고 삶아진 면을 넣는다. 그런데..이상하다. 왜 스파게티 면이 지 혼자 잘게 부서져있지? 왜 토막토막 끊겨있지? 이거..무슨 면이지? 그냥 집에 있던 면인데...출처는 모르겠지만....내가 그간 스파게티를 몇 번 해봤지만 이렇게 면이 부서진 적은 없었는데..왜지. 뭐지. 왜그렇지... 그리고 소스는......왜이렇게 묽지? 끈적하게 되야 하는건데....그렇다고 전분을 넣을 순 없고...이거, 괜찮은건가? 왜 면을 넣고 끓이고 또 끓여도 안쫄지???????

 

결국 스파게티 국의 형태가 되었다가 스파게티 죽..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게.....뭐야???????

 

 

 

 

 

 

 

 

 

하아- 그래도 기분을 내기 위해 준비해둔 와인을 가져와 세팅한다. 와인을 따는 동안 스파게티를 먹어본 동생은 대체 뭘 한거냐고 묻고....뭘 잘했다고 사진을 찍냐며......그렇지만 이게 완성품이야.....

 

 

 

 

 

 

야..이게 진짜 뭐냐..남동생은 포크로 퍼먹으며 그냥 사 먹을걸, 하고 나는 숟가락으로 퍼먹으며..근데 이게 정체가 뭐냐 싶다. 남동생은 먹고 먹고 또 먹다가 결국 산에서 내려올 때 분식집에서 사왔던 떡볶이를 먹고, 나도 꾹 참고 먹다가 아, 더이상 먹을 수가 없어, 하고는 떡볶이를 같이 먹는다. 따라둔 와인은 마저마신다.

 

이 스파게티..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더먹어, 라고 말하자 남동생은 싫어, 라고 곧바로 대답한다. 그럼 베이컨이라도 건져 먹자, 아깝잖아...하고 나는 아직 잔뜩 남은 스파게티 냄비를 가지고 와서는 베이컨을 주섬주섬 꺼내 먹는다...

 

베이컨과 양송이, 생크림을 다 사는데 만원 정도의 돈이 들었는데.....내 시간과 노력은....게다가 초토화된 부엌은...대체 왜 이 맛없는 스파게티 죽 끓이는데 부엌은 난장인가....맛도 없고... 보기에도 구리고....술안주로도 형편 없어...하아- 하아- 깊은 우울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남동생은 스파게티를 만들기 전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다고 한다. 시간을 돌려서 사 먹으러 가고 싶다고. 맛도 없는게 불쾌하게 배를 부르게 하고 있다며 짜증을 냈다.

 

 

오늘의 까르보라나 스파게티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맛.

 

 

이다.

 

 

하아- 내가 한 요리를, 내가 못먹겠어... 지난번 김치찜도 내가 먹다가 버린다고 하는 걸 아빠가 꾸역꾸역 다 드셨는데..

아, 진짜 너무 스트레스 받는다. 일요일을 이렇게 낭비했어, 이렇게... ㅜㅜ

지구를 생각한다고, 환경을 생각한다고, 그렇게나 열심히 장바구니 들고 다니고 에코백 들고 다니고 텀블러 들고 다니면 대체 뭐하나. 음식 쓰레기를 이렇게 만들어 버리는데. 나따위..나란년...나따위년... Orz

 

 

우울한 마음으로 못먹겠는 스파게티를 버리고 설거지를 하면서, 요리는 이과 영역인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내 여동생은 요리를 겁나게 잘하는데, 엄마보다 저 맛있고 더 빠르고 더 깔끔하게 잘하는데, 여동생이 이과인 것. 요리 잘한다는 주변인들이 죄다 이과인 것 같다. 그러면 요리는 이과 영역....방금전에 트윗에서 ㄱ 님이 재료살 돈으로 그냥 책이나 사서 보라고 하셨다. 아무래도 그게 정답인건가.. 하아- 돈 아깝고 시간 아깝고 내 노력 아깝고 이 황금 같은 주말이 아깝다.

 

 

오늘 일자산은 어제 일자산과 또 다른 모습이었다. 이렇게, 꽃이 피더라.

 

 

 

 

 

 

 

 

 

 

 

문과인 나는 책이나 사고 책이나 읽는 걸로 남은 생을 탕진해야겠다. 요리는...이번 생애 나는 안되는 걸로...

라지만 뭔가 하나 얻어 걸리는 게 있을 것 같아서 또 생각해보고 해봐야겠다. 나 이 요리만큼은 자신있어!! 하는 걸 하나쯤 만들고 싶단 말이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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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3-22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리는 이과영역! ㅋㅋ

다락방 2015-03-22 19:18   좋아요 1 | URL
그런것같죠? ㅎㅎㅎㅎㅎ

세실 2015-03-22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삼겹살 구워드실걸~~~
오늘 저녁 우리는 집에서 삼겹살이랑 김치, 팽이버섯, 새송이버섯, 콩나물 올려서 먹었어요. 음식 못해도 맛있네요^^

다락방 2015-03-23 14:26   좋아요 0 | URL
삼겹살하고 오리고기를 토요일에 구워먹었어요, 세실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15-03-22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르보나라, 어렵다고들 하던데...저도 아줌마 주제에 먹을줄만 알지 만든 적은 없어요.
요리는....잘 하는 사람, 잘 먹는 사람, 이렇게 두 부류라고 생각해요. 전 잘 먹는 쪽에서 줄 서 있을랍니다. 옆에 오세요.. ㅋ

다락방 2015-03-23 14:26   좋아요 0 | URL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잘 먹는 사람 쪽이라고 확신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하나 이렇다할 대표 요리가 있었으면 싶어서 말이지요. 이것저것 시도해봤자 아직까지 걸리는 게 없네요. 하아-

Forgettable. 2015-03-22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크림 우유는 실패하기 쉬워서 보통은 그냥 휘핑크림을 사용하고, 양파가 없었던 것도 약간 에러인듯. 파프리카는 향이 강해서 까르보나라랑은 잘 안어울리는 것 같아여. 그리고 무엇보다 까르보나라의 생명은 후추인듯. ㅎㅎ

다락방 2015-03-23 14:27   좋아요 0 | URL
크- 휘핑크림으로 해도 되는거였어요? 다시는 안해야지 생각했었는데 뽀 댓글 보니 휘핑크림 사서 다시 한번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양파도 필히 준비하고. 그러면 나...이번엔 성공하지 않을까???

그렇게혜윰 2015-03-22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정샷까지 찍으셨을 줄은....^^;;;ㅋ

다락방 2015-03-23 14:27   좋아요 0 | URL
찍는 동안에는 성공한 과정샷이었어요. 찍고 나니 실패한 과정샷이 되어버리고 말았...OTL

blanca 2015-03-22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이 페이퍼 정말 넘 귀엽당 !!! 우유를 넘 많이 넣었나 봐요. 그러면 묽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이번 실패로 까르보나라 두번 째는 감이 좀 오실 거예요. 남동생이랑 요리하는 모습이 너무 따뜻해서 나까지 미소가*^^

다락방 2015-03-23 14:28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질퍽질퍽해지질 않길래 대체 이건 어디에서 생긴 문제일까 생각해보다가 우유를 너무 넣었나..하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뭐 처음에 양파 없는 것부터 시작해서 끊어지는 면발까지...총체적 난국이었지만 말예요. ㅠㅠ

다다 2015-03-22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락방님 왜 일케 사랑스러운 겝니까! 깨알같이 웃다가 빵빵 터졌네요. 소리내서 막 웃었어요. 꽃 예뻐요. 봄이 성큼-

다락방 2015-03-23 14:29   좋아요 0 | URL
먹다가 음식쓰레기 된 스파게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참을 가만 앉아있었어요. 난 왜 존재하는가...하아- 요리는 제 길이 아닌가 봅니다. 대체 내 길은 뭐람..ㅠㅠ

하이드 2015-03-23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라피체 말벡 행사하는거 2만원에 3병 주고 샀다가 주말 꽐라 되서 망했어요. 아.. 와인 보니깐 또 생각이....

다락방 2015-03-23 14:29   좋아요 0 | URL
우앗. 저도 2만원 세병 행사로.. ㅋㅋㅋ 요즘 말벡이 괜찮은 것 같아서 말이지요. 그나저나 맛없는 스파게티라 저 트라피체는 남겼고요, 저게 마지막 병이라 조만간 다시 가서 2만원 세병 또 사와야겠어요. ㅋㅋㅋㅋㅋ

앤의다락방 2015-03-23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재밌으셔요!!!ㅋㅋ :) 월요일 아침 덕분에 즐겁게 시작합니다!!^ . ^

다락방 2015-03-23 14:29   좋아요 0 | URL
앤의다락방님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아마도 저는 요리를 망쳤는가 봅니다. -0-

아무개 2015-03-23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리 같은거 하지마라구욧!!!!!!!!!!!!!!!!!!!!!!!!!!!!!!!!!!!!!!!!!!!!!!!!!!!


다락방 2015-03-23 14:30   좋아요 0 | URL
기다려봐요. 내가 뭔가 하나는 꼭 성공할테니. 불끈!! --^

수이 2015-03-23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스타는 하면 할수록 늘어요 ㅋㅋ 그러니 마음 편히 먹고 다음에 또 도전해보세요 ㅋㅋㅋㅋㅋ 근데 빵 터져서 계속 웃었어요_

다락방 2015-03-23 14:30   좋아요 0 | URL
하면 할수록 는다지만, 거기에 예외가 있고, 그 예외가 저인 것 같다는 생각이 저는...듭니다만? ㅋㅋㅋㅋㅋ

라로 2015-03-23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르보나라는 어느 나라 음식인가요???ㅎㅎㅎㅎ3=3=3333

다락방 2015-03-23 14:30   좋아요 0 | URL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아- 제 시간과, 돈과, 노동력.. ㅠㅠ

꽃핑키 2015-03-23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성아 내 옆에 꼭 있어야해, 에서 미친듯 웃었어요ㅋㅋ ㅋㅋ 하아, 나라면 한 숟가락 퍼먹었는데ㅋㅋ 면 요리가 원래 좀 어렵더라구요ㅋㅋ 라면도 진짜 안 퍼지게 간 딱 맞춰서! 제대로 끓이기 힘드니까요ㅋㅋ 위로가 될런지;;

다락방 2015-03-23 14:31   좋아요 0 | URL
차라리 생크림 한숟가락 퍼먹었으면 요리의 처음부터 끝까지 몇초간이라도 행복했을것을.. ㅠㅠ

transient-guest 2015-03-25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리는 감이에요.ㅎㅎ 하다보면 많이 늘기도 하구요. 파스타종류는 고급이야 어렵지만, 일반적인 종류는 몇 가지 요령만 알면 거기서 거기더라구요.ㅎ 가급적 마리나라소스 방향으로 잡으면 실패가 적지요..ㅎ

다락방 2015-03-25 10:38   좋아요 0 | URL
마리나라 소스는 무엇인가...지금 네이버에 검색해봤네요. ㅎㅎ

스파게티를 집에서 해먹을 땐 그냥 소스 사다가 먹는데요 이번에 크림 소스는 내가 직접 만들어 잔뜩 먹어주겠다는 의욕이 너무 가득찬 나머지...음식 쓰레기를 만들어버렸네요. 하아-
저는 요리에 워낙에 소질도 관심도 없을 뿐더러 해본 적도 없어서 뭐만 시도했다 하면 자꾸 실패를 해요. 아무래도 돈을 열심히 벌어서 독립하게 되면 요리해주는 사람을 쓰던가 아니면 요리에 재미를 붙이고 소질도 있는 남자랑 동거를 해야겠어요. 맨날 사먹을 수는 없으니깐요. -_-

비로그인 2015-03-26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라면 이성은 멀리 가게 냅두고 한 번 퍼먹었을 거예요 ㅎ
산에 오르며 뭘 먹을지 얘기나누는 장면에서 하트뿅~
파프리카 고민에서 또 뿅~
에코백 텀블러 뿅뿅~
저도 문과라서 마지막으로 뿅~♥

다락방 2015-03-26 10:51   좋아요 0 | URL
전 이성을 내다버리지 않겠습니다!! ㅎㅎㅎㅎㅎ 그동안 너무 이성하고 안친해가지고 육체가 이지경이 된.....orz

아 배고파요 아른님. 헤헤.
저 지금 누구랑 문자메세지 주고받고 있게에에에에에에~~~~~~~~요? 히히히히히.
 

이비인후과에 가는 건 언제나 끔찍하다. 진찰실에 들어가는 아이들은 반드시 울고 그 울음 소리는 대기실까지 들린다. 아마 듣기에 제일 힘든 소리가 아이들의 울음 소리가 아닐까. 다독다독 옆에서 아이야, 울지마.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콧구멍에 이상한 기계 들어와 요란한 소리를 내는데, 아이들에게 내 말이 들릴까. 얘들아, 아프지마. 아프니까 이 무서운 병원에 와서 그렇게 울게 되잖아. 아, 이비인후과는, 아이들이 울어서, 너무 힘들다.

그리고 나는 까페에 왔다. 까페 창을 통과하는 볕이 좋고 빛이 좋다.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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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1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2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리스 2015-03-2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 책 어제 빌려왔어요. ^^

다락방 2015-03-22 19:04   좋아요 0 | URL
이리스님, 오랜만이네요. 읽기 시작 하셨습니까? 훗.
 

안되겠구나.


재이슨 스태덤과 그의 연인 로지 헌팅턴 휘들리던가..이름이 암튼 겁나 길어서 잘 모르겠다.

내가 이둘이 연인이라고 사진 올렸던 게 트랜스포머..그 뭣이냐, 여주 바뀌고 나서였던 것 같은데.

여튼 이들이 2010년 부터 지금까지 사귀고 있단다.

여자가 88년생이라고 했던가. 스무살 차이라는데.

재이슨 스태덤에 대해 내가 아는 건 그저 내가 좋아하는 배우라는 것 뿐이지만,

그가 한 여자와 오년이상 교제할 수 있는 남자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그리고 좋다.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좋아서 사귄다면 그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게,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게 당연한 거겠지만,

나는 그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아서 그런지..뭔가 참 좋아보인다.

그러니 내가 거침없이..양보한다.


예쁘다.


바로 밑에 사진 여자 배 모양이 나랑 똑같다.

다만, 내가 저 여자보다 아주 많이 크고 아주 많다는(응?) 차이만 있을 뿐... 저 배나 내 배나... 저 다리나 내 다리나... 저 얼굴이나 내 얼굴이나...다 거기서 거기지, 뭐....

재이슨 스태덤은 저 여자한테서 뭘 봤을까?

저 여자는 재이슨 스태덤한테서 뭘 봤을까?

뭣 때문에 그들은 끌렸고 어떻게 지금까지 유지할까?


좋네, 재이슨 스태덤..역시 좋은 남자였어..

아, 좋은데 어쩐지 쓸쓸해...



개인적으로는 맨 마지막 사진이 마음에 든다. 같이 편한 차림으로 장 봐서 돌아가는 사진.






재이슨 스태덤, 이젠 안녕..



집에 가서 술이나 한 잔 하면서 그를 보내야겠다..굿 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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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5-03-20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이슨 스태덤은 다 좋은데, 옷을 넘 못입는 거 같아욤~^^

다락방 2015-03-22 19:05   좋아요 0 | URL
그냥 막 입는 것 같죠? 뭔가 생각하고 입는 것 같진 않고 그냥 옷이니까 입는다?
옷을 예쁘게 입으면 좋겠지만, 저는 한 사람과 저렇게 오랫동안 연애할 수 있는 남자라면 옷 저렇게 입어도 좋은 것 같아요. 후훗

몬스터 2015-03-21 0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일 마지막 사진이 좋아요. 저렇게 가슴 위 (?) 까지 내려가는 옷도 자연스럽게 입을 수 있는게 좋아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거. 한국도 이제 그럴 수 있는 분위기인가 잘 모르겠네요.

다락방 2015-03-22 19:05   좋아요 0 | URL
맨 마지막 사진 여자 원피스 편하고 예쁘죠? 저도 저렇게 입고 다니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 시선은 상관 없는데 아빠랑 남동생 시선이 신경 쓰이네요. ㅎㅎㅎㅎㅎ 제일 마지막 사진 좋아요!! :)

비로그인 2015-03-21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능성은 열어두세요^^~재이슨도 자기도 모르게 양보당한 걸 알면 얼마나 가슴아프겠어요~

다락방 2015-03-22 19:06   좋아요 0 | URL
흐음. 가능성..열어둘까요? 저도 저렇게 단단한 연애를 해보고 싶은데, 저렇게 단단한 남자여야 가능한거겠죠?

transient-guest 2015-03-25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대머리 남자들에게도 희망의 빛이....ㅎㅎㅎ

다락방 2015-03-25 10:38   좋아요 0 | URL
어떤 대머리 남자들은 지독히도 멋있잖아요. 재이슨 스테덤이 그렇고 브루스 윌리스가 그렇죠!! >.<
 
다음생을 위해 지금이라도 지구를 구해야겠다.















아침에 이 책 제목 회사 동료한테 말하면서 [악마 같은 연인] 이라고 했는데 지금 보니 '악명 높은 연인' 이었다. 하하하하하. 불과 몇해전까지만 해도 읽었던 책 제목과 작가쯤은 거뜬히 외울 수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작가 이름도 안외워지고 제목도 잘 모르겠고....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를 회사 동료한테 말하면서 [나쁜 남자]라고 한 적도 있다. -0- 나란 년... 돌...



어쨌든, 이 600페이지 넘는 책을 읽으면서 참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스웨덴이란 나라에서는 비리가 정말 끝이 없구나, 하는 것. 뭐 비리와 부정부패가 스웨덴만의 것이겠냐마는, 이 책에서는 너무 답답한 게 정말이지 믿을 놈이 하나도 없는 거다. 하아- 이 놈을 믿어야 될지 저놈을 믿어야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구석에 몰리면, 나는 대체 어떤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처한 상황이 어마어마한 위기라면 당연히 거기에서 빠져나와야 하고, 그런데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그럴 수 없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데, 이 놈도 저 놈도 다 내 등쳐먹을 생각만 하는 놈들이라면...하아-


일전에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을 읽을 때도 스웨덴이란 나라, 복지가 좋고 한 사람이 두 채의 집을 갖는 것도 어색하지 않은 이 나라가, 도대체 왜이렇게 부정부패가 심한가, 왜 다른 나라들과 별다를 바 없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책, [악명 높은 연인]에서도 그랬다. 어디나 돈이 있는 곳이라면 썩어버릴 수 밖에 없는 건가..



사람에게는 여러가지 모습이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똑똑한 사람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맹한 사람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사악함의 근원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천사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밝고 명랑한 사람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어두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좋게 본다 해도 어디서 누군가는 이 세상에서 뿌리 뽑아 버리고 싶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알 수 없다. 또한 내 안에 선한 기질이 이천 개쯤 있다고 해도, 악한 기질 두 세개가 악의 축이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대체적으로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평을 듣는 사람이지만-물론, 그러니 만남을 유지하겠지만- 교제했던 남자에게 쌍년 이란 말을 들은 적도 있다(앞으로 듣지 말란 법도 없고).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가 채식주의자이며 동물을 극진히 사랑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동물들에게 그는 천사 같은 인간이었을 것이 아닌가. 인간에게 잘하고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과 인간을 학살하고 동물에게 극진한 사람이 있다면, 그 중 누가 낫다고 그 가치를 어느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물론 어떤 사람들에겐, 인간에게 잘하면서 동물에게도 잘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건지는 모르겠다만. 자신이 아닌 타인, 혹은 자신이 아닌 동물들에 대해 '나보다 못하다' 혹은 '내가 괴롭힐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게, 그게 왜 안될까.



이 책 악명 높은 연인에서도 그런 사람이 나온다. 스웨덴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거물이며 폭력배의 두목이고 그러므로 누군가를 '제거' 하는 것에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노인이, 강아지를 구한다.



발톱 달린 작은 발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피뇨가 공을 입에 물고 늘 그렇듯 기쁨과 흥분을 발산하며 다가왔다. 주인 없는 개였던 피뇨는 5년 전 아달베르토의 문 앞에 나타났다. 그는 개를 집에 들였고, 그 뒤로 좋은 친구로 지냈다. 구스만 엘 부에노는 공을 잡아 던졌다. 개는 달려가 공을 물어 주인에게 다시 가져왔다. 늘 재미있는 일이다. (p.61)



길 잃은 개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구스만은,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다. 그는 더 많은 돈을 가지기 위해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올라서려하고 손 안에서 사람들을 쥐락펴락 한다. 사람 목숨을 우습게 아는데, 길 잃은 개에게 좋은 친구가 된다. 이걸..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다면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물론 한 사람을 좋은 사람이다 혹은 나쁜 사람이다 라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기는 하겠지만-그건 내게 보이는 면에 대한 평가일 뿐이니까-, 참, 생각 복잡해지는 건 사실이다. 길 잃은 개 피뇨에게, 구스만은 은인이며 좋은 친구이다. 길 잃은 개 피뇨에게 구스만은 피뇨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고마운 사람이며, 그를 만난 걸 평생 감사하며 살다 눈을 감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피뇨가 아닌 다른 많은 인간들에게 구스만은 죽음을 가져온 사람일 것이며 악의 뿌리일 것이다. 또한 구스만을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은, 구스만과 피뇨의 사이만 보고 구스만을 선한 사람 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동물을 대할때조차 따뜻하다면 인간에겐 어떻겠어? 하고. 반면, 그의 밑에서 일을 했다거나 그에게 당했던 사람들이라면, 그가 피뇨와 노는 모습을 보고 혀를 찰 것이다. 아니, 저인간은 어떻게 개한테는 잘해주지? 하면서. 하아-



더 심각한 문제는 사실 여자 주인공 소피에게 나타난다.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아들을 키우고 있던 소피는 아주 오랜만에 가슴 떨리게 하는 남자를 만난다. 함께 있는게 즐거운 남자, 더 알고 싶은 남자, 손을 잡는 게 좋은 남자. 그 남자랑 있는 게 참 좋다. 소피는 그를 알 것 같고, 그도 소피를 알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을 만나는 건 살면서 그리 쉽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건 괜찮아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손을 잡은 채 춤추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그의 손은 크고 따뜻했다. 잡고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p.86)




그런데 그 남자가, 크고 따뜻한 손을 가진 이 남자가, 손 잡는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바로 이 남자가, 구스만의 아들이며 구스만 조직의 후계자다. 분노가 들끓어 오르면 사람을 토막살인할 수 있는 남자이며, 고기 가는 기계로 갈아버리라고 말하는 남자이다. 하아- 다정한 눈빛을 내게 보이고 내 손을 따뜻하게 잡는 남자가, 전국적으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심지어 국제적으로도 힘을 가진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라니. 도대체 나는, 소피는, 이 남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끌리는 건 사실이고 두려운 것도 사실. 아아- 어쩌란 말이냐. 이 혼란스러운 마음을, 이 복잡한 생각들을. 왜 하필이면 이런 남자한테 끌리게 된걸까. 


그런 그녀에게 위험이 찾아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경찰에서는 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소피에게 접근해 그들의 스파이가 될 것을 요구한다. 당연히 소피는 갈등한다. 경찰의 말대로 해야할까? 그렇지만 그는 내게 자신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는데???? 경찰을 믿어도 좋은가? 그렇지만 그는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인데???



후아- 참...뭐라 더 할 말이 없다.

난..글쎄. 나라면 어떨까. 나는.. 물론 남자를 좋아하지만, 내 자신이 더 소중하다. 내가 끌린 남자가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란 사실을 알게 되면, 나는 그와의 관계를 끊어낼 것이다. 단순히 경찰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거나 귀찮아서가 아니라, 큰 조직의 우두머리라면 위협받는 상황도 그만큼 많을 터, 그 위협은 내 것이 되기도 할텐데, 나는 그런 위험의 순간 속에 나를 놓고 싶지 않다. 내가 나로서 기능하고 나로서 잘 살기 위해서는 커다란 힘을 가진 자가 옆에 있어서는 안될것 같기도 하다. 내가 '엑토르'-그의 이름이다- 를 선택하는 순간, 나는 아마도 '엑토르의 여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될테고, 그러면 엑토르의 부하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저 여자는 예쁜 여자야, 똑똑한 여자야, 지적인 여자지, 아름다운 여자야, 세계 최고지' 라는 말을 듣기 전에 '저 여자는 엑토르의 여자지' 라는 정체성을 가장 크게 갖게 될 것이고, 그건 경찰들과 경쟁 조직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엑토르를 협박하기 위한 수단이 될것이고, 아마도 가장 큰(덩치가 가장 크다는 게 아니고) 포로가 되기도 할 것이다. 나는 그간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엑토르를 선택하는 순간 내게 가해올 위험이 너무나 많을 것이란 게 눈에 보인다. 매시간 나를 암살하려는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 나를 노릴텐데, 와-,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내가 되고 싶은 영화속 주인공 캐릭터는 소소한 일상속에서 빛나고 잘먹고 잘 마시고 자주 섹스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여자주인공이지, 액션물에서 개죽음 당하는 보쓰의 여자가 아니다..



그러니 나는 위험한 남자에게, 나는 위험속에 놓이고 싶지 않으므로 너와의 관계를 끝내고 싶다, 고 말할 것이고 만약 그 남자가 나를 정말 좋아한다면, 그렇지 내가 위험한 남자지 너를 놓아줄게, 하고 나를 좋아줄 것이다. 혹은 나를 안심시키며 붙잡을 수도 있겠지. 엑토르처럼.



"아론과 내가 차에서 내린 순간, 온갖 일들이 일어났던 그날 밤, 난 고칠 수 없는 무언가가 깨졌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어요. 당신이 내게 가졌던 믿음, 희망, 신뢰 같은 거겠지요. 나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오늘 그렇게 이상하게 굴었던 거예요. 당신을 잃는 게 두려워요.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다시 예전처럼 지내고 싶어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은 날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절대." 그가 말했다. (p.280)



좋아했던 남자다. 지금도 좋다. 그러나 두렵다. 그런데 좋아했던, 좋아하는 남자가 나를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좋아했던 남자가 나를 잃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잘 지내고 싶다고 말하고, 자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데, 하아- 어떻게 나는 그를 떠날 수 있을까. 흔들흔들 흔들리는 이내 마음, 나도 몰라~ 아아 될대로 되라지, 그래요 같이 가요, 하게 되어버리지 않을까. 아니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나는 사랑을 선택하는 여자가 아니야. 나는 나의 안전을 선택할 거야. 미안해요, 나를 놔줘요, 당신이 나를 놔줘야 해요. 그래야 내가 자유로워요. 나는 자유로울 때 가장 빛나요.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당신을 선택해 사랑하며 굵고 짧게 살고 싶진 않아요. 나는 사랑을 포기한 채 얇고 길게 살래요... 아, 엑토르. 제발, 세이 굿바이 하자. 그런데..겁나 흔들리겠지.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남자니까. 내가 반한 남자니까. 하아-





그러나 .. 그 남자가 좋은 남자가 아닐 확률이 진짜 엄청 많다. 높은 위치에서 힘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다루던 경험이 많고 오래됐던 사람이라면, 너랑은 안돼, 라는 부정의 말을 그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웃기지마, 너는 일단 내가 찍은 이상 내 여자야, 어디도 못가, 라는 싸이코식 발언과 행동을 하게 되지 않을까. 아, 그럼 나는 어떻게 하나. 어디로 도망가나. 전국적이며 국제적으로 힘이 뻗친 조직이라면 내가 어딜 가나 나를 쫓아올텐데.. 도망가 숨을 곳이 없을텐데. 나는 자연인이다 여자 버젼 찍어야 하나. 산 속 깊은 곳에 숨어들어...난 산 속 깊은 곳도 무서운데.. 비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소리를 꺅꺅 질러댈텐데... 바람이 세게 불어 나뭇잎들이 흔들린다면 혼자 무서워서 눈물 줄줄 흘릴텐데...밖에 늑대라도 나타난다면 난 아마 기절할거야. 아, 제발 진짜, 엄청난 힘을 가진 국제범죄단의 두목들이 나를 좋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를 내버려둬요. 엉엉 ㅠㅠㅠㅠㅠ 난 소박한 여자에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힘들어..



그러나 이건 모두 추상적인 상황일뿐, 구체적인 대입을 해보면 또 답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자, 그럼 이제 구체적 대입의 시간. 내가 지금 이순간 가장 좋아하는 남자를 떠올려보자. 그리고 그 남자를 국제조직범죄단의 보쓰로 만들어보자. 나는 그를 떠날것인가?



음.



음.



음.



음.




뇌가 꼬인다. 생각이 멈춘다. 재이슨 스태덤이 보고싶다. 




얼마전에 본 영화 [나의 ps파트너]에서 김아중은 고등학교(였나 중학교였나) 동창을 우연히 만나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듣게 된다. 이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던 지성은 그 동창에게로 가 김아중의 편을 들어주며 그 동창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 못생겼어.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이건..너무나 치명적이야. 다른 말도 아니고 못생겼다니!! 그 말을 이성으로부터 듣다니! 꽥!! 그리고, 이 책에서도 본다.



"우린 잘 지내왔어, 라르스. 우린 싸우지도, 오해하지도 않으면서 관계를 유지해왔어.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같이 지내왔잖아. 우린 흥미도 같고, 가치관도 같아. 같이 발견한 것들이 있잖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는 계속 시선을 피하며 와인을 더 마셨다.

"아무 일도 없었어. 넌 그냥 편집증적이고‥‥‥못생겼어." 

사라는 얼마나 마음이 상했는지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p.191)




아, 다정했던 사람이여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사라와 라르스는 동거하고 있었고, 라르스는 소피를 감시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피가 너무 예뻤고...완벽했고.....집에 와 사라를 보니 못생겼고.....왜 저런 여자랑 살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그래서 한때 사랑했으며 함께 살고 있는 여자한테 못생겼어 라고 해버린다. 물론 저 상황의 라르스는 약물중독이었지만....하아-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못생겼어 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니. 그 절망. 아무리 사랑이 식어 헤어졌어도, 연인에게 못생겼어, 라는 말을 하진 말자. 우리, 그정도의 예의는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 되자. 너도 못생겼잖아. 나도 너 잘생겨서 만나는 게 아니라는 걸, 너도 알잖아. ...현빈이나 김우빈은 티븨에만 있는 거란거, 늬들도 알잖아. 




이건 뭐 부패부정이 너무 심해서 읽기 짜증날 정도의 책인데, 정말 지칠 정도로 비열한 인간들 투성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짜증나고 건조한 책에서 한가닥 유머가 삐죽,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그럴때면 나도 삐죽, 피식, 웃었다.



"총알은 제거했어요. 운이 좋았어요. 내부 장기에 영구적인 손상은 남지 않았어요. 그래도 한동안 좀 불편할 겁니다."

"고마워요." 클라우스가 조용히 말했다.

파트리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데, 몸 상태는 괜찮겠어요?"

"아뇨."

"그냥 부를게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파트리크는 방에서 나가 병실 두 개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사무실로 들어가서 경찰이 남긴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구닐라 스트란드베리라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아주 예의 바른 여자였다.

"그의 상태는 어떤가요?" 그녀가 물었다.

파트리크는 전문의가 쓰는 용어를 써가며 막 떠들어댔다. 구닐라는 그냥 잘난 척하려고 이러는 거구나 싶어 말을 끊었다. (p.48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구닐라는 그냥 잘난 척하려고 이러는 거구나 싶어 말을 끊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기 읽다가 피식- 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이 책이 소피 시리즈로 앞으로 나올 거라는데, 아, 너무 믿을만한 사람들이 나오질 않아서...아마 안읽게 될 것 같다. 시리즈로 나올라면 잭 리처 같은 캐릭터가 존재해야 하는데..사랑에 빠져야 계속 만나지. 




어제는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오늘 뭐 먹지?> 란 프로그램을 보았다. 얼마전에 친구가 '니가 보면 좋아할거야' 라고 했던 그 프로렸다. 그래서 보는데 오, 정말 재미있는 거다. 요리하다 말고 수다 떠는 신동엽 때문에 빵빵 터져 웃다가, 아, 뭔가, 어쩐지, 성시경이 좋아졌.............이 캐릭터, 뭐지? 뭔가...요리하다 말고 수다 떠는 신동엽을 한심하게 보는 것 같고, 뭔가 똑똑한 것 같고, 뭔가 좀 .. 아 몰라. 암튼 초큼 성시경이 좋아졌......그런데 어쩐지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내적갈등 중이다.



이 세상은 내적갈등 투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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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 2015-03-20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입니다.
다락방님은 좋아하지 않을래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슬프지만 무척 행복합니다. (말이 좀 이상합니다만 너그러히..)
다락방님의 독자라서..:)
목 아픈거는 좀 나았어요?
아프지 말아요.

다락방 2015-03-20 15:06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네요, 소금꽃님. 잘 지내고 계십니까?
제 목은 나아가고 있어요.
네, 봄이네요. 봄을 봄대로 잘 즐겨요, 소금꽃님!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때, 그 바탕이 사랑과 신뢰 이해를 기반으로 한거라 해도, 서로에 대해 얼마만큼을 양보할 수 있을까? 사랑과 이해와는 별개로, 취향이란 것 자체가 상대의 것과 딱 맞아 떨어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경우에는 한쪽이 살짝 뒤로 물러나주는 게 관계에선 필요하다.


나의 경우 누군가와 사랑을 기반으로 해서 함께 산다는 걸 결정할 때, 그 사람이 책을 안 읽는 건 괜찮지만 술과 고기를 멀리하는 사람이라면 좀 별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회적인 문제에서 나와 늘 다른 의견을 가진다면, 그 역시도 곤란할 것 같다. 나는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 집에 돌아오는데 함께 사는 사람은 밤에 출근하고 아침에 돌아온다면, 그것도 어느 순간엔 힘들게 느껴지지 않을까?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그는 바깥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면, 그역시도 낭패일 거란 생각이 든다. 난 집에 있을게 당신은 나갔다와, 라고 말하는 거야 어려운 게 아니지만, 어쩌면 그는 나가서 늘 함께할 다른 상대를 찾을 수도 있을테니까.


우리 사이에 애가 생긴다면 또 그런 상황에 따른 충돌도 생길 것이다. 나는 일회용 기저귀를 채우자고 하는데 남자가 천기저귀를 하자고 하면 대뜸 나는, 그거 다 네가 빨아, 라고 해버릴지도 모르겠다. 조기 교육은 안돼, 냅둬, 라고 말하는데 상대는 다른 아이들에게 뒤쳐지는 거 싫다고 버럭 화를 내며 아이를 다섯살부터 영어 유치원에 보내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걸 대체 어떻게 조율해야 할까?


사실 이런 것들을 가정해보긴 했지만, 가장 민감하고 사소한 문제는 '손님을 초대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의 경우, 지금 내가 식구들과 사는 집에 누군가 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 때문에 바뀌는 분위기, 그 분위기가 우리 식구들만 있을 때처럼 자연스럽지 않은 게 당연하니, 아무리 가까운 친척이 온다 해도 좋을 리 없다. 이를테면, 우리집에서 내 방안에 다른 식구들이 들어오는 게 딱히 내키지 않는 것처럼, 우리 집에 다른 사람이 오는 것도 딱히 내키지 않는 것이다. 방해받는 다는 느낌이 내게는 강한데, 이런 성향 때문인지 나는 누군가의 '집'에 가는 것도 굉장히 꺼리게 된다. 가급적 '집'에는 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집은, 그 사람이 혼자 혹은 가족과 함께 안락하게 보내는 곳이라는 생각이 내게는 강하기 때문이다. 외부인을 들이는 건, 내게는 낯설고 편하지 않은 일이다. 



이 책, '마일리 멜로이'의 《지금 두 가지 길을 다 갈 수만 있다면》은 (생긴 건 자기계발서처럼 생겼지만) 단편집이다. 총 11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각 단편 모두 격렬하지 않으나 갈등과 고민이 드러나는 짧은 소설들이다. 그 중 맨 마지막 단편이 인상적이었는데, 다른 단편들속 인물들의 갈등도 어떤건지 알겠다는 느낌이 왔지만, 마지막 단편, <오 타넨바움>에서는 특히 그랬다.



네 살 어린 딸과 함께 부부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쓸 나무를 구해서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 가족은 스키를 타다 길을 잃은 커플을 마주치게 되고, 그 커플들이 차를 세워뒀다는 곳으로 그들을 데려다주기 위해 차에 태운다. 여기서부터 남편과 아내는 신경전을 벌이게 된다. 이 낯선 사람을 차에 태운 것이 아내로서는 못마땅하다. 그들에겐 아이도 있는데. 반면에 남편은 크리스마스인데 길잃은 사람들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다고 말한다. 아내는 차 안에서 내내 뾰로퉁하고 그런 채로 이 커플이 차를 세워뒀다는 곳으로 갔는데, 거기에 차는 없었다. 누군가 차를 훔쳐간것 같단 말에 이 가족은 이 커플을 경찰서까지 데려다주기로 한다. 차 안에서 이들이 여기에 와 스키를 타게 된 사연-남자가 자신을 찾겠다며 스키장에 갔다가 다른 여자랑 바람이 난 것, 이 커플에게도 세살난 아이가 있다는 것 등등-을 듣게 되었고, 차 안에 타고 있던 부부의 아이는 '트리 장식을 같이 할래요?' 라고 순진하게 물어본다. 경찰서에 도착해 이 커플을 내려주는데, 하아, 남편은 이들에게 '일단 도난 신고를 해라, 나는 집에다 트리와 가족들을 두고 다시 너희들을 데리러 올게' 라고 하는게 아닌가!




"가서 신고하세요." 에버렛이 보니에게 말했다. "경찰이 뭘 해줄 수 있는지 알아봐요. 난 집에 가서 짐을 내리고 두 사람을 데리러 다시 올게요."

마치 영화에서처럼 동시에 두 가지 일이 벌어졌다. 하나는 클로즈업, 하나는 딥포커스. 보니(낯선 여자)는 눈물이 맺히며 환한 미소를 지었고, 팸(아내)은 앞으로 기울인 몸이 뻣뻣해지며 고개를 반쯤 돌렸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더욱 맹렬한 기세로 앤 메리를 챙겼다. (오 타넨바움, p.249)




하아- 난 여기서부터는 남자가 오버한거라고 생각했다. 스키를 타다 길을 잃은 낯선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 편이 더 낫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그 일은 경찰서에 그들을 데려다주면서 끝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편 '크리스마스'라는 핑계로 그들을 '더' 돕기를 원했고, 아내는 그러지 않기를 원했다. 사실 남자에게는 약간의 다른 생각이 파고 들었다고도 보여진다. 남편에게 감사하며 낯선 여자가 가슴을 밀착시켜 그를 끌어 안던 일, 같은 것들. 어쨌든 아내는 이 일로 화가났고, 집에 돌아와서는 남편에게 그들을 데리러 가지 말라고 말한다. 화를 내면서 말하고, 남편은 이에 알았다고 한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저녁이 되었는데, 이들의 분위기가 좋을 리 없다. 아이는 늘상 하던대로 트리를 장식하지만, 집 안에 떠있는 공기는 무겁기 그지없다. 



이 상황에서, 일단 표면적으로는 아내의 뜻대로 되었다. 아내는 그들-스키장에서 맞닥뜨린 낯선 커플-이 집에 오지 않기를 바랐으니. 그러나 남편은 그들을 초대했고 그들이 오기를 원했다. 이 상황, 남편과 아내가 같은 걸 원하지 않은 이 상황에서 둘 모두에게 좋은 길이라는 게 없다. 어느 한 쪽은 자신의 뜻을 굽혀야 하는데, 굽혔다고 해서 만사형통하는 게 아니다. 다른 한쪽은 '저쪽이 양보했지만 사실은 나와는 다른 걸 원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이상, 그 분위기는 더이상 맑고 투명할 수 없는 게 아닌가. 그 무거운 공기를 대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하아-


이런 상황이 진짜 너무 싫다. 내 뜻대로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은 이 순간이. 아내도 그랬을 것이다. 결국 아내는 시간이 지나 경찰서에 전화를 걸고 그 커플이 있다면 바꿔달라 말한다. 결국 '우리 남편이 데리러 갈거에요' 라고 말하며 남편의 뜻을 받들어준다. 그렇다면, 그 커플을 데리러 간 남편은 행복했을까? 남편에게도 사실 '어쩌면 그들을 데리고 오는 게 좋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데리고 오겠다는 것은 자신의 뜻이었다. 어쨌든 남편은 그 커플을 경찰서에 데리러 갔고, 그렇게 그 커플을  차에 태운다. 소설은 그 커플중 여자만 차에 태우고 남자가 타기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끝이 나는데, 남편이 이 커플을 데리고 집에 가면 모두가 평화로운 상황, 모두가 행복한 상황이 될까? 남편의 마음 속에도 여전히 '아내는 이걸 원하지 않았다'는 잔재가 있을텐데? 아, 머리가 지끈거린다.



나는 다시 말하지만, 남편이 그들을 '다시 데리러' 가는 것 까지는 오버라고 생각한다. 그들을 애초에 돕는 것까지는 의도가 좋았지만, 더 나아가려고 한 것 까지는 그가 하지 않았어도 될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게 그 일이 벌어졌다면, 나는 내 남편에게 데리러 가지 말라고 말했을 것이고, 나중에, 공기가 무거워져도 그 뜻을 꺽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경찰서까지 가서 그들을 데리러 오라고 하다니, 글쎄. 모르겠다. 이건 단순히 소설을 읽고 생각해본거니 실제 상황이 됐을때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렇지만 세상에는 그렇게 지나치게 선하거나 착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의 속마음이 정말로 돕고 싶은 마음인지 아니면 돕는 자신에 대한 만족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게 지나치게 선하거나 착한 사람과는 함께 살고 싶지 않다. 뭐, 남편의 경우, 크리스마스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시작했지만, 결국 다른 뜻도 좀 들어가있기는 했다. 아내는 남편의 다른 생각 혹은 다른 뜻을 좀 눈치챘던 걸지도 모르고, 가족의 분위기가 안좋아지니 '내가 오해한걸지도 몰라' 라고 다독였을 수도 있겠다. 크- 역시 이러저러한 신경 쓰이는 일을 겪지 않으려면 진짜 혼자 사는 게 제일인 것 같다. 우리집 크리스마스 파티에 낮에 만난 낯선 커플을 초대한다라...뭐, 나 역시 그들의 인상이나 대화후 느낌으로 인해 기꺼이 호응할 수도 있었겠지만, 상황적으로는 아내에게 동조하는 바, 아, 역시 같이 산다는 건 진짜 쉽지 않은 일이구나, 했다. 




이 책의 다른 단편, <아이들>에는 이런 구절이 실려있다.



대학에 다닐 때 메그가 시를 써서 집에 가져온 적이 있었고, 그 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두 가지 모두가 내가 원하는 유일한 길이다." 두 가지 모두를 원하는 자신의 강력한 힘에 그는 이를 악물었다. 어떤 바보가 오직 한 가지 길만을 원하겠는가? (아이들, p.231)



우리는 두 가지 길을 다 갈 수가 없고, 그러므로 당신과 내가 뜻이 다를 경우 당신 뜻과 내 뜻 모두를 관철시킬 수가 없다. 어느 한 쪽은 반드시 양보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고, 그 양보라는 게 실상 하는 쪽이 기쁘게 한다 해도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많이 기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양보를 했어, 혹은 저사람이 양보를 했어, 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반복된다면, 어느 순간 신경줄이 팽팽하게 당겨지지 않을까. 그러므로 내가 만족하는 길이 당신이 만족하는 길이 되는게 최상일텐데, 우리가 누군가와 이렇게 지낼 수 있다는 게 어디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어렵다.



그리고, 오, 이 침착한 단편들 속에서, 어떡해요, 그레이가 떠올랐어요. 오, 그레이. 우리 그레이를 대체 어쩌면 좋아!



"얘야." 릴리애너 할머니가 말했다. "부담 주기는 싫다만, 여기에 내가 묶을 방이 있을까?" (릴리애너, p.150)




 아-------그러니까 죽은 줄 알았던 릴리애너 할머니가 손자를 찾아왔고, 본인이 잠시동안 여기에 묵어도 되냐고 말하는건데, 그게 이 책에서는 오타가 난거다. '묶다' 로....그런데 묶을 방, 이라고 하니까...그레이의 변태 룸이 생각나잖아...힝. 묶을 방..할머니, 뭘 묶어요, 뭘 묶으실 겁니까, 뭘 묶으시려고 그러는거에요!! 묶지 마요. 폭력은 나쁜 겁니다. 묶으면 안돼요. 때려서도 안돼요. 폭력은 나빠요. 흑흑.




기관지염이라고 나를 진단한 병원은 아무래도 나랑 맞지 않는 건지, 약을 먹어도 나을 기미가 보이질 않고 증상이 심해지기만 했다. 나는 원래 알러지성 비염을 가지고 있고, 계절의 흐름으로 보니 이게 딱 그거겠더라. 평소랑 증상이 달라 내가 이게 뭐지, 했던 건데, 안되겠다 싶어 어제는 늘상 나를 진찰해주던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병원은 그런데 우리 집근처에 있어서 내가 업무시간을 쪼개 다녀오기가 어려웠다. 마침 퇴근후 남동생의 차를 타고 가다가 이 얘기를 하니 남동생이 혹시 야간진료 할지도 모르니 전화를 해보라는 거다. 그래서 전화를 하니 오후 18:30까지 접수를 받는다는 게 아닌가. 내가 전화를 한 시간은 18:18 이었다. 12분 후에 내가 그 병원에 도착할 수 있을까? 라고 물으니 남동생은 '아니' 라고 했다. 신호들에 걸리기 때문에 그 시간까지는 무리라고. 하는수없이 나는 집에 계신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지금 뭐 하고 있는거 있어? 라고 물으니 아니라며 왜그러냐 하셨고, 나는 병원가서 내 대신 접수 좀 해줘, 라고 부탁드렸다. 그리고 엄마는 그렇게 하셨고, 그렇게 나는 여섯시 반이 조금 넘어 병원에 도착해 진찰을 받을 수 있었다.


늘상 나를 보던 닥터는 이번에도 내게 찾아온 비염과 그 증상에 대해 얘기하며 '괴롭고 고통스러운 증상이죠' 라며 약은 이런 걸 줄게요, 라고 말했다. 내가 밤에 잠을 못 잔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는데 그 전에 이미 '낮에는 괜찮다가 밤에 자기 전에 목구멍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죠?' 라는 게 아닌가. 흑흑. 갑자기 너무 안도해서 네, 라고 뭔가 응석받이가 된 기분으로 대꾸했다. 막 죄다 다다다닥 털어놓고 싶었달까. 마스크 하고 다녀요, 잘 때도 해도 돼요, 가습기 틀어놓고요. 그렇게 약을 지어왔고, 그 약을 먹고 잔 오늘 아침은 어제보다 많이 나아있었다.



언젠가 여동생은 자신이 다니는 산부인과 닥터가 자신의 소울메이트인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얼마만큼 힘든지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닥터가 다 알고 말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거기에서 상당한 위로를 받았다고 했는데, 이건 동생 주변의 누구도 해주지 못했던 거라 아마도 동생은 그 닥터에게 소울메이트같다는 극찬을 한 것 같다. 그런데 어제의 나는, 아, 나도 이 닥터가 내 소울메이트 인 것 같아, 라는 생각을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안그래도 요즘 영혼이 통하고 어쩌고 하는 생각을 하던 참에, 내가 어떻게, 왜 괴로운지 말하지 않아도 뭐가, 왜 괴로운지 이미 알고 얘기해주니까, 사실 이 닥터는 환자 말 잘 안듣고 무뚝뚝하고, 정확하지 않은 걸 싫어하는-언제부터 그랬어요? 란 말에 주말부터요, 라는 대답을 싫어한다. 며칠 됐다는 건지 말해봐요, 라고 해서 나흘이요, 라고 대답해줘야 만족한다- 딱히 친절이라고 할 것까진 없는 닥터인데, 내가 왜, 어떻게 괴로운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니, 이 사람이 주는 약이 틀릴 리 없다는 생각이 막 드는 게 아닌가! 



또한 엄마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엄마가 그 시간 집에 있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게 가능했다고. 내가 엄마랑 살고, 엄마가 그 시간에 집에 있었고, 그래서 병원에 가 대신 접수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병원에 갔고, 제대로된 약을 받아먹을 수 있었던 거라고. 물론 내가 혼자 살았다면, 엄마가 그 시간에 집에 없었다면, 그땐 또 나름의 어떤 방법들이 있었겠지만, 마침 그 시간에 엄마가 거기 있었기 때문에 내가 나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어제는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약국에서 약을 지어 엄마와 함께 돌아가는 길, 엄마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엄마, 병원 접수해줘서 고마워, 라고. 




좀전에는 화이트데이라고 회사 남자 직원이 준 초콜렛을 먹었다. 처음 먹어 보는 벨기에 초콜렛이었는데 와- 완전 맛있어. 하나만 먹으려다가 두 개를 먹었고, 그렇게 정신없이 세 개를 먹으려고 할때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절제해, 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래서 아직 두 개가 남아 있다. 근데 와- 진짜 겁나 맛있어. 세상에는 있어서 좋은 게 몇 개 있는데, 술이 그렇고 초콜렛이 그렇다. 누가 이런 걸 만들었는지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랄까. 신이 나를 사랑해 술을, 초콜렛을 만들었대요~



그리고 당신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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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고숨 2015-03-18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보고 뭔가 했네요. 그레이.ㅋㅋㅋㅋ 기역 하나에 분위기 반전.
웃픈 오타로 전하고 싶은 제 안부는 이렇습니다. `목 아픈 거 빨리 낳기를요.` ㅎㅎ

다락방 2015-03-18 16:06   좋아요 0 | URL
릴리애너 할머니를 그레이라고 했다고, 그레이가 화나서 저를 명의회손으로 고소하는 건 아닌지 몰라요. ㅎㅎㅎㅎ
쾌유를 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흣 :)

단발머리 2015-03-19 0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편 이야기를 따라 가다가 `아내`에게 완전 감정이입되서 `남편`을 계속 미워한 1인입니다.
나쁘죠, 이러면~~ 안 되죠~~

오늘의 웃긴 문장은 ˝(생긴 건 자기계발서처럼 생겼지만) 단편집이다.˝이구요,
오늘의 감동 문장은 ˝그리고 당신도 그렇다.˝예요.

혹, 다락방님 북풀에 댓글알람 해놓지는 않으셨죠? 약 먹고 자고 있는데, 혹 내 글이 ˝띨롱˝하고 다락방님을 깨울까 걱정이예요. 알려주세요. 그리고, 얼른 나으시기를요~~~

다락방 2015-03-19 08:20   좋아요 0 | URL
저는 문자메세지를 제외한 모든 어플에 대해서 알림 설정을 꺼두었어요. 단발머리님이 댓글을 이백개 남기셔도 저에게는 메세지가 하나도 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걱정마시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댓글을 마음껏!!!!!!!!!!!남기셔도 됩니다. 설령 알림메세지 오는 문자메세지라도 아무때나 아무데서나 보내셔도 상관 없어요. 잘 때 문자메세지 온다고 화내지 않아요, 저는. 자느라 답장을 안할 수는 있지만요. 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