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시아의 여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5
윌리엄 트레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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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아 일자리를 잃은 펠리사아는 다른 풀타임 일자리를 구하고 싶었지만 좀처럼 일을 구할 수가 없었다. 아빠와 오빠들은 펠리시아가 파트타임 잡을 구해 가사노동을 온통 펠리시아가 도맡아 주기를 바랐다. 백살이 된 할머니를 돌보는것 까지도. 이런 답답한 펠리시아의 삶에 사랑은 한줄기 빛이었고 구원이었다. 나 같은 사람을 누가 바라봐줄까 했던 펠리사아에게 다가와 사랑을 속삭이는 남자 '조니'가 나타난 것이다. 일주일간 매일 만나서 사랑을 속삭이고 혹시 모를 임신에 대한 걱정을 할라치면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이 다 알아서 한다고 조니가 말했기 때문에, 펠리시아는 사랑에 빠져 조니를 믿었다. 조니와 펠리시아는 사랑하니까 앞으로 이 사랑으로 서로에게 행복이 되어줄 터였다. 펠리시아의 나이 열일곱이었다.


그러나 어쩌다 몸이 아픈 엄마를 방문하기 위해 고향에 들르는 것이 전부였던 조니는 다시 자신의 직장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했다. 주소를 알려달라고 편지를 쓰겠다고 펠리시아는 요구했지만 주소를 알 수 없었고 그는 자신이 먼저 편지를 보내겠다고 했지만 펠리시아의 주소를 알려준 적이 없었다. 내내 애를 태우던 펠리시아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깨닫고 조니의 엄마를 찾아가 조니가 사는 곳의 주소를 알려달라고, 나에게는 그가 필요하다고 애원해보지만 조니의 엄마는 그녀에게 내 아들을 그냥 두라고 말하며 그녀를 쫓아낸다. 열일곱 펠리시아의 임신은 펠리시아의 아버지도 알게 되고, 아버지는 펠리시아에게, 자신의 딸에게 창녀라고 소리친다. 펠리시아는 집을 나온다.


너무나 전형적인 나쁜 놈이 나온다. 피임하지 않았으면서 그러나 걱정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본인이 임신하지 않는 육체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빈번히 생각하지만, 만약 임신이 섹스후에 랜덤으로 오는 것이었다면, 그러니까 반드시 여자만 임신하는 게 아니라 남자도 임신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남자들은 지금보다 콘돔 쓰는데 더 열심이었을 것이고, 세상에 섹스의 횟수는 지금보다 적었을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임신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섹스하지 않는 것이니까. 그러나 임신은 여자만의 몫이고 아이를 배안에서 키워가거나 혹은 병원에 가 낙태를 하는 일도 여자만의 몫이기 때문에 남자들은 때로는 귀찮아서, 콘돔 사는 걸 까먹어서, 콘돔을 끼면 느낌이 살지 않아서, 너무 욕망이 강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서 피임에 소홀한다. 그들에게 섹스는 절실하지만 임신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그러면서도 괜찮아, 내가 다 조심하고 있어, 라고 말하고 그러다 여자가 임신을 하면 그야말로 세상 찌질한 남자가 된다. 조니는 펠리시아가 임신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로 임신시켜두고 떠났고 사실 펠리시아랑 다시 또 관계를 이어나갈 생각도 전혀 없었다. 펠리시아는 그것을 사랑이라 불렀지만 조니에게 그것은 잠시잠깐 고향에 내려가서 욕구를 해소한 것 뿐이었다. 아, 하나의 모험담으로 추가될 순 있겠다. 동료들이나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말야 이번에 고향에 내려갔다가~ 하고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시면서 얘기하겠지. 친구들은 껄껄 웃을테고. 그런 모험담속의 소재가 펠리시아였다. 



초반에 한 남자의 모험담 속에 등장하는 여자라면, 그 후에는 힐디치 씨라는 평범해 보이는 중년 남자의 트로피 여친이 된다. 아니, 펠리시아는 자신의 정체성이 그 남자의 여자친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고 그럴 의도도 아니었으며 또한 자신이 그렇게 보일 거라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누가 봐도 집을 나왔으며 갈 곳 없어 보이는 듯한 열일곱 펠리시아에게 중년의 퉁퉁한 사내 힐디치 씨는 다가왔고, 온갖 선함을 가장하며 그녀에게 선의를 베푼다. 네가 원하는 곳에 데려다줄게, 너를 배불리 먹여줄게, 나의 집에서 쉬게 해줄게, 너의 남자친구를 찾아줄게 등등. 그러면서 그는 수시로 그녀와 함께 있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길 원하고 그것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그녀와 함께 병원에 가서는 '나의 여자친구'라고, 물론 펠리시아가 자리에 없는 틈을 타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 그는 그녀의 남자친구로 보이는 것이 너무 짜릿하고 즐겁다. 그녀가 인정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관계를 설정하고서는 그 혼자 그 관계에 뿌듯해하고 그리고 그것을 지속시키고 싶어한다. 나는 너에게 잘하고 있으니 너는 나랑 오래 잘 지내고 나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러나 이 젊은 여성은 사실 처음부터 그가 두렵긴 했다. 누군가의 선의를 이렇게 단번에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못하며 그것은 반드시 되갚아야할 것이라는 자명한 이치를 간직한 채로, 그것에 앞서 이 중년의 남자가 '혼자서', '혼자인' 나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는 이것을 받아들여도 되는가, 이 사람의 차에 타도 되는가, 이 사람의 집에 발을 들여놓아도 되는가. 이런 불안감을 가지면서도 그러나 그곳에 발을 들이는 까닭은 펠리시아가, 그리고 그전에 펠리사아 같았던 다른 젊은 여성들 모두가 다른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폭력으로부터 도망치고, 돈이 없고 그렇게 갈 데가 없으므로 어쩔 수 없었고, 그리고 시간이 좀 흐르면 더이상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본인의 갈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그렇지만 이제 가야겠어요.



이 관계에 만족하고 있었으며 뿌듯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베푼 것이 선의라고 믿었던 힐디치 씨는 자신이 돌봐주고 도와주었던 그녀들이 그렇게 말을 할 때마다 너무나 너무나 서운했다. 왜 이 관계를, 이 집 안에서 너와 나의 단단한 관계를 너는 더 유지하려 하지 않지? 자신이 베푼 선의에 대해 자신이 기대한 답을 받지 못하는 힐디치 씨는 그래서 자신 안의 악에 몸을 푹 담근다. 한 발은 원래 담그고 있었던 터다.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일상이, 그녀들의 떠나겠다는 말에 무너지는 거다. 뭐라고? 날 떠나? 내가 널 그냥 떠나게 둘 수 있겠니?



힐디치 씨에게 관계-그는 그것을 우정이라 말한다-란 그런 것이었다. 직장에서 성실히 일 잘하는 사람이었고 그러므로 두루두루 좋은 사람인 듯, 평범한 사람인 듯 보였지만, 그가 맺는 관계라는 것, 친밀함이라는 것은, 이 밀폐된 집 안에서 단 둘이 있으면서 서로 결속되는 것이어야 했다. 바깥으로 나가서는 안되고 이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갇혀사는 삶. 필요한 걸 모두 자기가 해주고 있으니 상대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만족해야 했다. 내가 아껴주잖아. 그가 그런 관계를 자꾸만 시도하고 실패에 절망했다 또 상대를 물색해 시도하는 것은, 그가 어릴적부터 맺어왔던 관계라는 것이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감금되어지고 그 안에서 일어난 일을 목격하고 그러면서 입 닥치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여야 했던 삶. 그 삶은 힐디치 씨를 어른이 되어 자신이 당한 일을 그대로 하게 만들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어느 순간 바뀌어버린 것. 거기에, 자신의 길을 찾고자 나섰던 펠리시아가, 그리고 펠리시아 이전의 베스, 샤론, 보비, 게이, 엘시, 재키가 걸려들었다. 그저 자신의 길을 가려고 했던 것뿐인데 중간에 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여자가 길을 떠난다는 것은 왜 이다지도 어렵고 험난한걸까.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고 선의는 선의가 아닌 길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내딛으며 자꾸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왜 이다지도 힘든가. 나아가지 않으면 가사노동으로 허리가 휘면서 꿈도 희망도 없는 삶이 기다리고, 사랑을 찾아 그것이 구원이 되겠다 싶으면 사실 남자는 임신시키고 도망쳐버린다. 늙은 남자의 선의는 그저 나를 장식용으로 데리고 다니는 것이었고, 길을 다니면서도 숱하게 바로 악의 구렁텅이로 직행하는 손길이 자꾸만 뻗쳐온다. 거기에서 열일곱살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며 간신히 하나를 피해 도망쳤다한들 또 만나게 될 위험에서도 도망친다는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또 오늘의 희망과 빛을 끌어안으려 노력하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에너지일까. 어떻게 펠리시아는 햇볕을 쬘 수 있을까.



윌리엄 트레버는 책의 말미에서 선의를 얘기한다. 보통 사람들의 크지 않은 선의. 그러나 햇볕을 쬐도록 도와주는, 고통을 덜어주는 진정한 선의. 선의를 가장한 악의로부터 빠져나와서 다시 햇볕을 쬘 수 있는건, 그 선의들을 보고 받았기 때문에 가능햇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후의 펠리시아는 어떻게 됐을까. 나는 그간 살아오며 다른 사람의 삶의 형태에 대해 내 기준으로 단정지어서는 안된다는 걸 배웠지만, 그런데 그 후의 펠리시아는 어떻게 됐을까를 자꾸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쬘 수 있는 건 다행한 일이지만,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됐을까. 책의 해설에서 정부는 펠리시아 같은 사람들을 위한 구제책을 마련해 성공했다는데, 펠리시아는 그 수혜를 받았을까. 내가 어릴 적에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이제는 남자의 안심해도 된다는 말을 믿지 말라고 말하는 어른 여자가 되었을까. 


열입곱살 여자에겐 더 많은 좋은 어른이 필요하다. 그 남자를 따라 숲에 가지 말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필요하고, 그 남자를 따라 차에 타지 말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필요하다. 물론 열일곱살 남자에게도 그런 어른은 필요하다.  힐디치 씨에게도 방향을 알려주고 끌어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우정이란 어떤건지 몸소 보여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그랬다면 그 뒤에 다른 소녀들에게 가해질 불행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자아이들이 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면 그 길을 안전하게 떠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걸 원한다면 원하는 걸 이루어내는데에 있어서 악의가 끼어들어 길을 가로막아서는 안된다. 길을 펼쳐 보여주고 혹은 길을 물었을 때 옳은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 어른들이 해야하는 몫이다. 길을 떠나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주저 앉혀서는 안된다. 떠나는 걸 원한다면 가도록 해야한다. 여정을 떠난 여자아이들이 밑바닥 인생이 되어서는 안된다. 여자아이들의 여정은 힘차게 계속되어야 한다. 원하는 것을 비로소 찾아낼 때까지.



여아자이들은 엉망진창이 된 삶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혹은 그냥 뭔가 다른 것을 원해서 길을 떠난다. 여정중인 그들을 본 이들은 알다가도 모를 아이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대도시나 여자를 사고파는 일이 있을 만한 큰 동네에서는 랜드로버나 폭스바겐, 도요타의 차문이 열리며 아이들을 태운다. 

콘스 씨 집에 그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들은 상점 입구에 머물러보기도 한다. 모든 일에는 다 처음이 있기 마련이라고 말하며 노상의 잠자리에 자리잡는다. 한동안은 실종으로 처리되지만 나중에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된다. 밑바닥 인생, 이제 그들은 그렇게 불린다. -p.306-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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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7-25 2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트레버 단편집을 끝까지 못 읽었지만 트레버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알라딘 이웃님들이 극찬하시는 이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만난다는 건 정말 좋은 거 같아요. 그 시대에 새롭게 쓰여진 것도 소중하지만,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을 새롭게 만나게 되면 그야말로 횡재 아니겠습니까. 이게 바로 문학이야!의 다락방님의 외침이 귀에 울리는 듯 합니다^^

다락방 2021-07-26 09:47   좋아요 1 | URL
이래서 소설을 읽는거지, 오랜만에 소설 읽는 기쁨에 젖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되는지 궁금해서 책장을 빨리 넘기게 되기도 했고요. 저는 윌리엄 트레버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닌데 근데 이 책 참 좋았어요. 책장을 덮고나서도 자꾸 생각하게 돼요. 힐디치 씨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 여자에게는 여정을 떠나는 것 뿐만 아니라 떠나지 않을 때조차도 위험한 삶이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좋은 독서의 시간이었습니다.

독서괭 2021-07-26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트 100개요❤️❤️❤️❤️❤️

다락방 2021-07-26 09:47   좋아요 0 | URL
하트 백개 접수요! 후훗.
 
[젠더 트러블] 남자는 남자를 사랑해서

 

 

 

 

 

 

 

 

 

 

 

 

 

 

아니 어제 도대체 이게 뭣여 왜 검색해도 안나와, 했던 '조앤 리비어의 「가면으로서의 여성성 Womanliness as a Masquerade」'은 이 책 읽다보니 논문이라고 다시 언급된다. 아니 그러면 처음 나왔을 때 논문이라고 해주지 왜 실컷 이것이 뭣이여 하고 검색한 뒤에 없네? 뭔데? 이러고 답답해하는데 나중에 논문이라고 언급하는 것이여. 진짜루 친절하지 않은 글쓰기다 버틀러..증맬루 뭐여...

 

어제도 인용하면서 생각한거지만 버틀러는 그렇다면 이 책을 쓰기 전에 임 푸코, 레비 스트로스, 이리가레, 조앤 리비어,프로이트,라캉 다 읽었다는 거잖아. 오늘 출근길에는 라캉을 인용한 부분을 만났다.

 

 

라캉은 그 특유의 대명사의 위치들 사이의 미끄러짐 때문에, 누가 누구를 거절할 것인지를 명확히 밝히는 데 실패한다. 그러나 독자로서 우리는 이 자유롭게 떠다니는 '거절(refusal)'이 중요한 방식으로 가면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거절이 결국, 현재 혹은 과거에 있었던 다른 어떤 관계에 대한 충성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거절은 동시에 어떤 것의 보존이기도 하다. 가면은 이와 같은 상실을 감추지만, 그것을 감춤으로써 그 상실을 보존(하고 부정)한다. (p.180-181)

 

 

나는 이 가면 부분이 너무 재미있다. 라캉이 실망한 이성애로부터 동성애가 나타난다고 한다면 이성애 역시 실망한 동성애에서 나타나는 게 아니겠느냐고 버틀러가 말하는데 진짜 젠더에 트러블을 일으키고 있는 버틀러 되시겠다. 성적 '지향' 역시 고정관념에서 출발하는 거 아니겠냐고 말하고 그러다가 라캉이 《도덕의 계보학》쓴 니체의 통찰까지 이어지면서 노예 얘기 나오는데, 그러다가 주석으로 푸코가 언급된다. 푸코는 또 라캉을 비판했대.

 

 

30) 노예의 도덕에 대한 니체의 분석을 보려면 『도덕의 계보학』에 나오는 첫번째 소론을 참고할 것. (Friedrich Nietzsche, "First Essay", The Genealogy of Morals, trans.
walter Kaufmann, New York, Vintage, 1969) 다른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니체는 신은 자신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인 권력의지에 의해 창조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 복종의 구조에서 권력의지를 회복하는 것은, 신에 대한 생각과,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무력함에 대한 생각을 생산하는 바로 그 생산적 권력을 교화함으로써가능해진다. 푸코의 『감시와 처벌 Discipline and Prunish』은 니체의 여명 Daybreak 뿐아니라 분명 『도덕의 계보학』, 그중 무엇보다도 두번째 소론에 기초한다. 그의 생산적인 권력과 사법적인 권력 간의 구분은 의지의 자기 복종에 대한 니체의 분석에도 기초하고 있다. 푸코의 관점에서 사법적인 법의 생산은 생산적인 권력의 결과이지만, 그 안에서 생산적인 권력이 그 법의 은폐와 복종을 제도화한다. 푸코의 라캉에 대한 비판( (Michel Foucault, "Right of Death and Power over Life", The History of Sexuality,
Volume I, An Introduction, trans. Robert Hurley, New York, Vintage, 1980, p. 81)과 억압가설에 대한 비판은 일반적으로 사법적인 법의 중층결정된(overdetermined)위상에 초점을 두고 있다.
- P195

 

 

저 구절 읽다가 푸코 도대체 뭔데 여기저기서 다 나와, 성의 역사가 그중 제일 재미없었다는데 그렇다면 나 감시와 처벌 읽어볼까, 하고 갑자기 핸폰 꺼내 북플에 감시와 처벌 읽고싶어요 표시를 했다.

 

 

 

 

 

 

 

 

 

 

 

 

 

 

 

감시와 처벌에 대한 다른 분의 리뷰에서 판옵티콘 얘기도 나온다길래 어쩌면 재미있지 않을까, 성의 역사보다 잘 읽히지 않을까, 이걸 사서 꽂아두면 나 나름대로 푸코 책장 한 칸을 마련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아니 왜 나는 뜻한바가 아니었는데 푸코 책까지 담고 있는가..하게 되었고, 이게 다 버틀러 때문이다.. 이러면서 도대체 버틀러 무엇인가.. 하게되었다.

 

버틀러가 언급하는 이리가레, 라캉, 프로이트, 푸코.. 읽은 것도 있고 읽고 싶은 것도 있고 그러한데, 이렇게 엄청난 이론들을 가져와서 비판하고 비판을 가져와서 반박하고 이러는 걸 보다보니 오늘 출근길에는 근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지는거다. 내가 버틀러를 읽는것에 푸코를 읽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나? 이게 세상 사는데 어떤 쓸모가 있나 싶어지는 거다.

 

푸코도 그렇지만 특히나 주디스 버틀러의 경우 아예 주디스 버틀러의 이름을 들어본 적조차 없는 사람들도 많을텐데, 나는 뭐라고 버틀러 읽다가 푸코 쓸어담고 이리가레 읽자고 이러고 있는가. 이리가레와 버틀러와 푸코 읽어서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나 싶어지는거다. 여성혐오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버틀러 책을 읽는 것보다 나가서 시위를 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은가. 여성혐오의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들과 맞짱 떠서 싸우는 게 더 나은게 아닌가. 성범죄 저지르는 놈들을 죽여버리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나.  이성애 연애도 섹스도 결혼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 땅에서 여성혐오에 대해 항의할 수 있는 최전방이며 또 가장 나은 방법이 아닌가 싶어지는거다. 쓸모는 그런것에 있지 않나. 버틀러 읽어서 나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나? 세상 바꾸는데 어떻게 일조를 하나? 내가 버틀러 읽고 이리가레 읽는다고 세상이 달라지나? 도대체 이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겨? 올해 11월에 이리가레 가고 내년에 스피박 가야겠다고 얘기하면서, 그런데 스피박 읽으면 대한민국이 여성차별이 없어지나? 나는 도대체 이 책을 왜 읽고 있나? 주변의 남자들하고 싸우기 위해서라면 잘 싸우는 법에 대한 책을 읽는게 더 효율적이지 않나. 도대체 내가 이러는 게, 3년간 계속 으쌰으쌰하며 여성학 책 읽어오는게, 그렇게 어렵다는 버틀러까지 닿아서 건드리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나 싶어지는 거다. 여기에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거야? 나는 이걸 왜 읽고 있지? 왜 이거 읽다가 좋아, 이리가레 도전이다, 좋아, 푸코를 더 읽어보자..왜 이러고 있는거지? 이것들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지? 버틀러의 이름을 알고 버틀러의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내용을 다 파악하지도 못했지만 다 파악한다고 해도, 도대체 이 세상에 어떤 의미가 있느냔 말이다.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무슨 의미야....푸코 책장은 뭐하러 만들어.... 푸코는 감시 그런 책 왜 썼어? 막 이렇게 되어버려서 내 머릿속에 트러블 생겨버린 것이다. 내 머릿속에 트러블, 내 독서 의욕에 트러블, 글쓰기에 트러블, 내 통장에 트러블...트러블 메이커가 되어버린 젠더 트러블인 것이여.......

 

 

의미. 의미. 쓸모. 쓸모.

나는 의미있고 쓸모있는 일을 하고 싶은데, 도대체가 모르겠네?

 

의미는 뭐고 쓸모는 뭐냐..이러면서 성의 역사 옆에 감시와 처벌 꽂으면 예쁘겠다...하고 있다. 아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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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22 11:0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트러블 라임 떨어지는 것 보소.. 트트러블 메이커!!! 음. 충분히 이해가 되다 못해 감읍하게 되는 고민인 것입니다. 여성혐오를 하는 놈들 뚝배기를 젠더트러블 모서리로 때리면 아플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책은 양장이죠. 감시와 처벌을 사셔서, 감시와 처벌 모서리로 때리면 잘 때리기에 따라서 죽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물론 뚝배기 깨는 데에는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만한 책이 없겠지요. 확실합니다. 그걸로 뚝배기 후려치면 머리 마이아파...

다락방 2021-07-22 14:45   좋아요 4 | URL
저 진짜요 쟝님, 그냥 성범죄자들 죽이면서 다니는게 여성들을 위해 더 나은게 아닌가 생각해요. 버틀러 읽을 시간에 닥치는대로 성범죄자 죽이는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확실히 도움되지 않을까.. 도대체 버틀러를 왜 읽어야 합니까. 왜요. 푸코는 읽어서 뭐하게요. 진짜 환장하겠네요. 아 오늘 너무 의욕 없어요. ㅠㅠ
여성혐오 사회만 아니었어도 제가 공부할 일이 없었는데 세상이 원망스럽네요. ㅠㅠㅠㅠㅠㅠㅠ

청아 2021-07-22 15:28   좋아요 3 | URL
다락방님 전복 끝판왕이십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전복에 소주 한잔 사드리고 싶....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7-22 16:50   좋아요 4 | URL
크 저는 전복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소주라면 사랑합니다. 소주 마시고 싶네요. 버틀러 때문에 온 몸과 영혼이 트러블 덩어리가 되어버려서 소주만이 저를 위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ㅜㅜ

유수 2021-07-22 11: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젠더트러블 책장은 넘어간다..와 부럽다.. 저 맹세컨대 어제 폈어요 펴기는 정말 폈어요…

다락방 2021-07-22 14:45   좋아요 3 | URL
아마도 이번 젠더 트러블 일등은 아래 ↓ 미미님이 하실 것 같습니다. 벌써 200쪽 넘게 읽으셨더라고요. 저는 몇 장 넘기지도 못하면서 아 뭐래 아이건 또 뭐야 이러다가 오늘은 급기야 왜 읽는가, 이것은 무슨 쓸모인가... 이러고 있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인생은 뭐죠? ㅜㅜ

청아 2021-07-22 11: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면에 관한 얘기가 끌렸는데 저의경우 다락방님보다 기초적인 측면에서 끌린것 같아요ㅋㅋㅋㅋ😅

다락방 2021-07-22 14:46   좋아요 3 | URL
저 가면 논문 되게 읽고 싶은데 뭐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번역본 버틀러도 못읽고 있는데 원서 논문은 무슨 수로 읽는단 말인가. 머리 팽팽 돌아요. 이해되는 부분은 재미있는데 그런 부분이 현저히 적다는 게 함정입니다. ㅠㅠ 미미님처럼 조현준 교수의 그 얇은 책을 봐야겠어요. 아놔...

청아 2021-07-22 15:24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이 책 너무 좋아요! 저에게는 이 책도 좀 어렵지만(ㅋㅋㅋㅋㅋㅋ) 그럼에도 좋았거든요. 다락방님은 저보다 쉽게,더 많이 보시리라 의심치 않습니다. 아담하고 100몇 페이지 밖에 안되는데 조현준교수님이 버틀러를 열심히 연구한 흔적이 보입니다~♡♡

다락방 2021-07-22 16:51   좋아요 2 | URL
버틀러에게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네요. 이왕 가기로 한 거 잘 가기 위해서라도 미미님 링크하신 책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흑흑. 버틀러 미워!! ㅠㅠ

단발머리 2021-07-22 12:5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런 것이 진짜 공부의 맛 아니겠습니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지식의 향연, 인용은 인용을 부르고, 밑줄은 구매를 부르고, 구매는 책장으로 완성된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 건 몰라도 푸코 책은 꽂아두면 늠름하잖아요. 키가 크고 반짝반짝 ㅋㅋㅋㅋㅋㅋㅋ 그냥 그렇다고요. 그냥 그렇다는 건만 말하는 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7-22 14:48   좋아요 3 | URL
오늘은 왜이렇게 버틀러가 저를 바닥으로 내팽개치는지 모르겠어요. 공부란 무엇인가, 왜 공부해야 하는가, 책은 왜 읽는가, 이게 정녕 세상을 바꾸는데 무슨 도움이 되는가..제 의욕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어요. 오늘은 뭔가 할 생각을 말고 잠 푹 자고 일어나서 내일 희망차게 보내야겠어요. 내일은 버틀러 님과 반갑게 만날 수 있어야 할텐데요. 이러다가 내일 의욕 뽝- 생겨서 푸코 질럿!! 이러고 있는것은 아닐지... 인생.....Orz
 

 

 

 

 

 

 

 

 

 

 

 

 

 

 

어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을 읽는데, 옮긴이의 말에 버틀러와 레비 스트로스가 언급되어 있었다. 크- 내가 알지 알아. 물론 버틀러랑 레비 스트로스를 안다는 건 아니지만, 버틀러가 레비 스트로스를 인용한다는 건 내가 알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러면서 기뻤다. 언젠가는 크 내가 버틀러 잘 알지~ 이러는 날이 오겠지.. (과연?)

 

자, 그러면 버틀러가 자신의 책에서 레비 스트로스 인용한 부분을 길지만 한 번 가져와보겠다. 다 이유가 있어서 가져오는 것이니께롱.

 

레비-스트로스에게 남성적인 문화 정체성은 부계 계승 씨족들 간의 외적 변별화 행위를 통해 성립된다. 여기서 관계 내부의 차이는헤겔적인 것, 즉 구분되는 동시에 연결된 것이다. 그러나 남성과 그남성 간의 변별화를 가져오는 여성 사이에 성립된 ‘차이‘는 헤겔의변증법을 완전히 비껴간다. 다시 말해, 사회적 교환이라는 변별화의계기는 남성 간의 사회적 유대로 나타난다. 그 유대는 구체화된 동시에 개별화된 남성적 관점들 간의 헤겔적 통일성이다. 두 씨족 모두 유사한 정체성, 즉 남성적, 가부장적, 부계 계승적 정체성을 갖고 있어서 추상적 층위에서 보면 이는 차이 속의 동일성이다. 이들은 서로다른 이름을 가짐으로써 스스로를 포괄적인 남성문화의 정체성 안에서 개별화한다. 그러나 어떤 관계가 한 성씨를 썼다가 다른 성씨로바꾸는 여성을 교환 대상이라고 선포한 것일까? 어떤 종류의 변별화기제가 젠더 기능을 이런 식으로 분배한 것일까? 레비-스트로스의 헤겔적 경제를 명백하고도 남성이 개입된 방식으로 부정함으로써어떤 종류의 변별화된 차연이 전제되고 또 배제되는 것인가? 이리가레의 주장대로, 이 남근로고스 중심 경제는 결코 표명되지는 않지만 언제나 전제되는 동시에 부정되는, 차연의 경제에 근본적으로 의존한다. 사실 부계 계승 씨족 간의 관계는 동성사회적(homosocial) 욕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리가레는 동음이의어를 이용해 이를 ‘남성 간-섹슈얼리티 (hommo-sexuality)‘라고 불렀다(불어에서hommosocial과 hommo-sexuality는 발음이 유사하다 - 역주), 그것은 억압되고, 따라서 비난당하는 섹슈얼리티이다. 결국엔 남성들의 유대에 관한 남성 간 관계이지만 여성들을 이성애적으로 교환, 분배함으로써 발생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레비-스트로스는 남근로고스 중심 경제의 동성애적 무의식을드러내는 한 구절에서 근친상간 금기와 동성애적 유대 강화 사이의 연관성을 주장한다.
교환, 즉 결과적으로 족외혼 법칙은 단순히 상품들 간의 교환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환, 즉 결과적으로 교환을 표시하는 족외혼 법칙은 그 자체로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남성들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수단을 제공한다.
이 금기는 족외혼적인 이성애를 발생시킨다. 레비-스트로스는이 족외혼적 이성애가 더 자연스럽고 덜 억제된 성욕을 금지함으로써 만들어진(이는 프로이트의 『성욕 이론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에서도 공유된 가정이다) 비근친상간 이성애의 인위적 성과물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남성들 사이에 설정된 상호성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남녀간의 비상호관계의 조건이자, 이른바 여성 간의 비관계의 관계(a relation of non-relation)의 조건이 된다. 레비-스트로스는 "상징적 사고의 출현으로 인해 이는 여성들에게 언어처럼 교환 대상이될 것을 요구했음이 틀림없다" 라는 악명 높은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은 레비-스트로스가 투명한 관찰자의 회고적 태도에서 오는 미리 전제된 보편적 문화구조에서 어떤 필연성을 끌어왔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했음이 틀림없다‘는 것은 수행문으로 작동할 뿐인 하나의 추론으로 보인다. 레비-스트로스가 상징계가 등장하는 순간을 목격할 수는 없으므로 어떤 필연적인 역사를 추측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보고서는 하나의 명령문이 된다.
그의 분석은 이리가레로 하여금 만일 그 상품들이 결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게 만들었으며, 대안적인 성 경제의 예상치 못한 행위주체성을 밝혀냈다. 이리가레의 최근작 『성과 친족』 은 어떻게 이런 남성들 간의 상호 교환구조가 여성, 여성성, 또는레즈비언 섹슈얼리티라는 명명 불가능성뿐 아니라 그 경제 안에서발화될 수도 없는 양성 간의 비상호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비판적 해석을 제안한다. -p.163-165

 

 

 

위의 긴 인용문은 버틀러의 주장이 아니라, 레비 스트로스가 이러했는데 이리가레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라는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가 주장한 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남성들은 남성들간의 유대를 위하여 여성을 교환하였다는 것. 여성은 아버지에게서 남편에게로 옮겨지고 그렇게 성도 옮겨진다. 옮겨지고 교환되는 것은 여성 주체적인 것도 아니었으며 여성에게 이득인 것도 아니었다. 자, 우리가 그동안 읽어온 책들을 한 번 살펴볼까.

 

 

 

여성들은 결혼할 때 부모의 집을 떠나 매우 멀리 떨어진 남편의 가정으로 들어간다. 젊은 여성들은 일단 결혼하고 나면 죽은 뒤에라야 남편의 집을 떠날 수 있으며 모든 고통과 굴육을 참아내야 한다는 권고를 받는다. 며느리는 새 가정에 적응하려면 늘 최선의 행동을 해야 한다. 며느리는 시가 식구들에게 고분고분 순종해야 하며, 자신이 소유한 물건에 대해서도 사심 없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남편의 가족은 현금은 물론 특별히 지참금 용도로 제작하거나 구입한 보석 및 가정용품을 받는다. 지참금을 딸이 받는 상속 재산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Goody 1976).

이와 관련해서 집고 넘어가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이 있다. 첫째, 지참금은 신부가 아니라 신랑 가족에게 전달된다. 시부모는 지참금의 분배에 관한 완전한 통제력을 갖는다. 둘째, 내가 아는한, 토지는 절대 지참금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여성에겐 재산이 없다. 이른바 그녀의 재산으로부터 아무런 부를 창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젠더에 따라 특정된 성격이 만들어진다. 남자들은 국가 경제에 공헌하고 생계비를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여자들은 남자에게 의존하고, 외부세계에 대해 무지하며, 자녀양육과 가사에 몰두한다. 그런 이유로 여자들은 지나치게 과소평가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바로 지참금 마녀 사냥에서 핵심이 되는 문제다. -페미사이드, p.231-232

 

 

 

 

 

남자들이 함께 모여 여자를 어떻게 ‘따먹고‘ ‘박아볼까‘ 이야기를 하고 ‘진도‘를 운운할 때, 이들은 성관계는 여자랑 하긴 해도 남자끼리의 감정적 유대감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남성 동지들에게 "나랑 자는 여자보다 너희들이 더 중요해"라고 전하는 것이다. (이게 많은 남자가 어떤 여자랑 성관계를 갖는지에는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또한 여기에 여자와의 성관계는 착취가 목적이라는 메시지도 담겨있다. 남자들끼리 이런 대화가 이루어질 때, 남성 청자도 남성 화자와 여자의 성관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여자에게 ‘박고 있는‘ 남자 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남성 동지들이 지켜보며 서 있다. 남자가 여성 착취에 성공하면 그건 모두의 승리가 되고, 승리로 말미암아 남자끼리의 유대감이 강화되며, 이들은 여성성을 발밑에 깐 채 서로를 부둥켜 안고 하나가 된다.
- 여자는 인질이다, P198 

 

 

 

 

 

 

내가 처음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사회계약이 가부장적인 계약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 계약이 아버지들-그들이 동의함으로써 가족이 묶여지는 것이라고 여겨지는-에 의해 맺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범주가 아무나와 누구나를 뜻하는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개인들'은 사회계약을 맺지 않는다. 거기에 여자들의 몫은 없다: 자연적 주체들로서 여자들은 [계약에서]요구되는 수용력과 능력을 결여한 것이다. 이 이야기들에서의 '개인들'이란 남자들이지만 그들은 아버지로서 행위하지 않는다. 결국 이 이야기들은 아버지의 정치적 권력이 패퇴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남자들은 더이상 아버지로서의 정치적인 장소를 갖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들은 남편들이기도 하며-로크의 친구 티럴(Tyrrell)은 아내들이 '남편들에 의해 체결된다'라고 적고 있다-또 다른 관점에서, 사회계약에 참여하는 자들은 아들들 내지는 형제들이기도 하다. 계약은 형제들-혹은 형제애적 집단(fraternity)-이 맺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형제애가 자유와 평등과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출현한 것도, 형제애가 정확하게 그것이 말하는바- 즉, 형제들 간의 사랑(brotherhood)-를 의미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여자들의 무질서, p.72-73

 

 

 

내가 위의 긴인용문을 가져온 건 이리가레 때문이었다. 이리가레는 거기에서 '그 상품들이 결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게 만들었으며, 대안적인 성 경제의 예상치 못한 행위주체성을 밝혀냈다' 는게 아닌가. 아아, 너무나 놀랍지 않은가. 여자가 상품들로 여기에서 저기로 건네질 때, 그런데 그 상품들이 결헙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를 생각하다니. 너무나 놀랍지 않은가 말이다. 이리가레가 몹시 궁금해지는 것이다. 버틀러도 무슨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어려워서 몇 장 읽다가 뒤로 치우고 몇 장 읽다가 뒤로 치우고 있는데 이리가레를 읽는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이리가레는 산속으로 들어가 읽어야 하는건 아닐까. 읽다가 초록한 숲을 보며 머리와 마음을 정화하고 다시 몇 장 읽고 다시 숲을 보고... 하다가 뱀이 나오면 으이크 놀라겠는데, 그럴 때를 대비해서 샤론 볼턴의 《뱀이 깨어나는 마을》을 읽어두면 좋다.

 

여러분 뱀이 깨어나는 마을 읽으세요...

샤론 볼턴을 이렇게 나만 좋아하게 만들지 마세요... 읽으면 여러분도 좋아할거야..

 

 

 

 

 

 

 

 

 

 

 

 

 

 

 

며칠전에 읽었던 브리저튼 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As for Anthony, the lucky man had been able to avoidthe harsh scrutiny she‘d been forced to endure. He hadtold her he needed to remain at Aubrey Hall to take care ofa few estate details before the wedding, which had beenset for the following Saturday, only nine days after theincident in the garden. Mary had worried that such hasti-ness would lead to "talk," but Lady Bridgerton had ratherpragmatically explained that there would be "talk" nomatter what, and that Kate would be less subject to unflat-tering innuendo once she had the protection of Anthony‘sname. - P230

 

 

 

한편, 앤소니, 그 운 좋은 남자는 케이트가 겪어야 했던 가혹한 비웃음들을 피할 수가 있었다. 그는 오브리 홀에 남아 결혼 전까지 재산 문제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했다. 결혼식은 바로 다음 토요일, 그러니까 정원에서의 사건 후 9일째 되는 날로 잡혀 있었다. 그렇게 서두르면 ‘말’들이 많지 않을까 메리는 걱정했지만, 레이디 브리저튼은 다소독단적인 태도로, 결혼식을 언제 하는 다들 입방아는 찧어 댈 것이며, 일단 앤소니의 이름으로 보호를 받게 되면 케이트도 사람들의 노골적인 빈정거림을 덜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케이트'는 벌에 쏘였는데, 하필 가슴부분이었고, 벌에 쏘여 사망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안소니는 겁을 집어먹고 케이트에게 퍼졌을지 모를 벌의 독을 빨아들이려고 하는거다. 그런데 으이크, 귀부인 세 명에게 이 장면을 들켜버리고 이것은 그대로 두면 케이트의 추문이 되어 돌아다닐 터, 안소니와 케이트는 결혼하기로 하는 거다. 로맨스 소설이니만큼 그런데 이 둘이 서로 사랑한다는 흐름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사랑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정원에 단 둘만 나와 있을리도 없을 것이고 벌에 쏘였다고 저렇게 쪽쪽 빨아줄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저런 일이 벌어졌는데 그것이 결혼으로 이어져야만 한다는 건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더 끔찍한 건 저것이 '케이트만의' 추문이 된다는 것이다. 안소니야 워낙 나봉꾼으로 소문났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탐나는 지금 시즌의 신랑감이다. 그러나 이 결혼이 급속하게 추진되고 있을 때 나쁜 소문은 케이트만을 향한다. 이 때 안소니의 엄마가 케이트에게 '결혼하면 안소니의 이름이 너를 보호해줄거다' 라고 하는 거다.

당시에 저 말은 사실일 것이다. '안소니의 이름으로', '안소니의 아내가 되어버린' 케이트는 추문에 휩싸이지 않고 백작부인이 될 것이다. 단 한번도 남자랑 사귀어본 적도 없고 남자랑 단둘이 있어본 적도 없고 심지어 남자랑 잠자리를 갖는다는 게 도대체 어떤건지 알지도 못하는 케이트지만, 저렇게 한 순간에 타락하고 가치없는 여자가 되기도 한다. 또한, 그 땅에 떨어질지 모를 명예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됨으로써 지켜지기도 한다.

왜 여자인 나의 명예를 내가 지킬 수 없을까. 내 명예를 떨어뜨리는 것도 남자요 내 명예를 보호하는 것도 남자려니. 애초에 안소니랑 둘이 정원에 있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었단 말이다.

 

 

 

다시, 젠더 트러블로 돌아가서.

읽다보니 '조앤 리비어의 「가면으로서의 여성성 Womanliness as a Masquerade」'이 언급되는데 너무 궁금한거다. 알라딘에 조앤 리비어, 가면으로서의 여성성 모두 검색했지만 결과가 없다. Womanliness as a Masquerade 으로 검색해도 결과가 없고 아마존도 마찬가지. 그런데 인터넷에 때려넣으니 쪽글이 뜬다. 당연히 영어..

에이포용지로 출력하니 총 다섯매인데 이건 책이 아니라 기사나 칼럼인건가 싶어서 일단 해석가능한가 보자, 했는데, 제목부터 모르는 단어가 나와. 이렇다.

 

JOAN RIVIERE

Excerpts from "Womanliness as Masquerade" (1929)‘

Every direction in which psychoanalytic research has pointed seems in its turn to haveattracted the interest of Ernest Jones, and now that of recent years investigation has slowlyspread to the development of the sexual life of women, we find as a matter of course one by himamong the most important contributions to the subject. As always, he throws great light on hismaterial, with his peculiar gift of both clarifying the knowledge we had already and also addingto it fresh observations of his own.
In his paper on "The early development of female sexuality," he sketches out a roughscheme of types of female development which he first divides into heterosexual and homosexual,
subsequently subdividing the latter homosexual group into two types. He acknowledges theroughly schematic nature of his classification and postulates a number of intermediate types. It iswith one of these intermediate types that I am today concerned. In daily life types of men andwomen are constantly met with who, while mainly heterosexual in their development, plainlydisplay strong features of the other sex This has been judged to be an expression of thebisexually inherent in us all; and analysis has shown that what appears as homosexual orheterosexual character-traits, or sexual manifestations, is the end-result of the interplay ofconflicts and not necessarily evidence of a radical or fundamental tendency. The differencebetween homosexual and heterosexual development results from differences in the degree ofanxiety, with the corresponding effect this has on development. Ferenczi pointed out a similarreaction in behavior, namely, that homosexual men exaggerate their heterosexuality as a
"defence" against their homosexuality. I shall attempt to show that women who wish formasculinity may put on a mask of womanliness to avert anxiety and the retribution feared frommen.

 

뒤에는 보지도 않고 'Excerpt'를 찾아보니 '발췌'라는 뜻이었다. 아, 역시 이 다섯장은 발췌.. 였구나. 대체 .. 뭐야? 왜 아마존에도 없고 알라딘에도 없고.. 이건 뭐야??? 뒤에 참고문헌 볼랬더니 젠더 트러블은 참고 문헌 없네요?  흐음. 네이버에 넣고 검색하면 학술논문만 뜨는데... 그러니까 논문인건가... 아 모르겠다.

 

버틀러 책 읽으면서 무슨말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책장을 넘기다가 뭔가 좀 알겠고 인상적인 구절들에 박박 밑줄을 긋고 있다. 지금 당장은 이해가 안되도 어느 순간 생각이날 수도 있기 때문에.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특히나 여성학 책은 더 그렇다. 당시에 바로 이해되지 않더라도 다른 책을 읽는 일을 계속하다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엉뚱한 책을 읽다가 '아, 그 때 그 책에서 한 말이 바로 그거였겠구나' 싶어지면서 깨달음의 환한 빛이 찾아드는 것이다. 이런 순간, 누구나 다 있지 않아요? 그럴 때를 대비해 밑줄을 그어두는 건 도움이 된다. 가만있자, 그게 그러니까 버틀러가 이런식으로 얘기한 것 같은데, 하면서 휘리릭 들쳐보면 나는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무언가 알 수 있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몰라도 모르는대로, 모르는만큼 계속 읽어나가면 좋다. 어쩌면 훗날 이 페이퍼를 다시 읽어보다가 '아 이게 그 뜻이 아니었는데'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뭐가 되더라도 될테니까 해본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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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젠더 트러블] 젠더 트러블은 트러블 메이커
    from 마지막 키스 2021-07-22 10:47 
    아니 어제 도대체 이게 뭣여 왜 검색해도 안나와, 했던 '조앤 리비어의 「가면으로서의 여성성 Womanliness as a Masquerade」'은 이 책 읽다보니 논문이라고 다시 언급된다. 아니 그러면 처음 나왔을 때 논문이라고 해주지 왜 실컷 이것이 뭣이여 하고 검색한 뒤에 없네? 뭔데? 이러고 답답해하는데 나중에 논문이라고 언급하는 것이여. 진짜루 친절하지 않은 글쓰기다 버틀러..증맬루 뭐여... 어제도 인용하면서 생각한거지만 버틀러는 그렇다면 이
 
 
청아 2021-07-21 13: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리가레에 관한 부분을 읽고있던 저는 ‘이리가레를 이해하렴 산으로‘ 여기서 빵 터졌는데 <뱀이 깨어나는 마을>이라뇨ㅋㅋㅋㅋㅋ이런 작두타는 듯한 글 저는 언제 쓸수있을지 아득하지만 즐겁게 기대하며 놓친 정신줄 다잡고 총총🤦‍♀️

다락방 2021-07-21 14:03   좋아요 2 | URL
정신줄 바싹 잡고 젠더 트러블 읽다보면 어느틈에 정신줄 또 다른데 가있어요. 이건 뭐 통 저로 하여금 책에 몰두하지를 못하게 만드네요. 뭐래는거냐...이러면서 또 저기 가있는 정신줄을 부릅니다. 정신줄아, 돌아와!! 그렇게 돌아온 정신줄 또 바싹 잡고 있으면 어느 틈에 또 저~~어기에... 이게 다 버틀러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화이팅!! ㅜㅜ

유수 2021-07-21 1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쓸 수가 있는 거군요…배워가야지… 트이타에 조안 리비에르 검색하니 논문이네요. 11페이지 정도 전문 검색 되더라고요. 아마존에서는 이 책에 실려있는 듯해요. https://www.amazon.com/Female-Sexuality-Early-Psychoanalytic-Controversies-ebook/dp/B07CJV2MC6/ref=mp_s_a_1_4?dchild=1&keywords=female sexuality early&qid=1626842631&sr=8-4

뱀이 깨어나는 마을 영업 너무 좋다. 그냥 스르륵 감기네요ㅋㅋㅋㅋ

다락방 2021-07-21 14:07   좋아요 3 | URL
오오 역시 누군가는 찾아줄 줄 알았어요. 유수 님 넘나 멋진분..
저는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열심히 해서 영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해버려가지고!! 이 책 똭- 사서 흐음, 이 논문은 이런 거였군, 하고 이해 뽝- 하고 요점 정리해서 알라딘에 페이퍼 올릴 수 있도록..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ㅠㅠ

뱀이 깨어나는 마을은 진짜 재미있는 소설이며 저는 작가인 샤론 볼턴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으하하하핫

유수 2021-07-21 15: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검색덕후죠 저ㅋㅋ 어떤 책 보고 영어 마스터하실지...저도 또 따라해야지 ㅋㅋ 샤론 볼턴 기억해 두겠습니다. 근데 저 진짜 젠더트러블 덮어두고 목록만 쌓아올려요. 주디스트러블 탑이 될지어다아..

다락방 2021-07-22 14:34   좋아요 0 | URL
버틀러님 책을 읽다보면 버틀러님이 무슨말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버틀러님이 막 끌고 오는 사람들 책까지 읽어야될것 같고 할 게 막 쌓여가고 따라갈 능력은 딸리고 하아- 아무튼 버틀러님 보통 똑똑한 게 아닌것 같습니다.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유수님, 샤론 볼턴은 추천추천 적극추천 입니다!

단발머리 2021-07-21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계 사회의 동성애적 사회를 이어나가는 ‘교환물‘로서의 여성을 고찰한 레비-스트로스에 대해 전 더 관심이 가네요. 어머나, 탐구하고 싶어라. ㅎㅎㅎㅎㅎㅎ 같이 읽었는데 다락방님은 진짜 꼼꼼히 기억하고 계시네요. 전, <여자들의 무질서> 저 문단은 사실 기억도 안 나요. 역시 여성주의 책은 구입이 정답입니다. 저도 얼른 달려가 볼께요. 가즈아, 트러블!!!

다락방 2021-07-22 14:35   좋아요 0 | URL
레비 스트로스도 교환물로서의 여성을 고찰하고 이리가레는 그 상품들끼리 결합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생각해보고 와 사람들 왜이렇게 생각 많이 하고 살아요. 저는 나름 제가 생각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는데 진짜 저따위 코딱지였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무튼 단발머리님 화이팅요. 우리모두 화이팅!!

- 2021-07-22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읽으려고 이시각(?)에 컴터키고 로그인 했시요... (모처럼 나의 사랑하는 맥북을 켰다!!) 저두 단발님말에 동감. 우리 다 같이 함께 읽었는 데, 왜 저는 저 책들을 다 읽었음에도 ㅋㅋ 기억이 안나쥬??? 아무튼 여자교환-남성연대! 오천년은 말해져야할 가부장제!!! 우리는 공부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함께 즐겁게 해야하는 것입니다. 다 잊어버려도 어쨌든 공부는 해야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페미니즘 공부 그 자체로도 훌륭한 페미니즘저거 실천이기 때문이지요! ^^ 좋은꿈 꾸소서!

다락방 2021-07-22 14:36   좋아요 1 | URL
아, 그러고보니 나의 사랑하는 맥북은 집에서 하도 펼쳐보지 않아서 이 더위에 녹지는 않았는지..오늘 가서 잘 있나 두고봐야겠어요. 이러면서 왜 맥프로 사고 싶다고 막 생각해요, 저? 쓸데없어.. 쯧쯧.
공부는 하는게 맞는거겠지요? 페미니즘 공부는 그 자체로 실천인...거 맞지요? 저는 이것보다 성범죄자들 죽이면서 다니는게 더 좋을것 같네요. ㅠㅠ

어제 여러가지 이유로 잠을 제대로 못잤는데 오늘은 잘 자도록 해야겠어요. 야한꿈도 꿀거야 ㅠㅠ
 

 

 

 

 

 

 

 

 

 

 

 

 

 

 

보부아르에 대해서라면 좀 복잡한 마음이다. 그러니까,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심 한나 아렌트랑 보부아르를 내 안에서 경쟁시켜놓고서는 단번에 한나 아렌트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제2의 성》이란 엄청난 책을 써낸 것도 보부아르고, 지금도 나는 내가 읽은 그 책으로부터 많은 인용문을 가져오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정체화하지 않은 한나 아렌트 쪽을 너무나 좋아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한나 아렌트가 왜이렇게 좋은걸까. 반면에, 왜 이 위대한 보부아르에 대해서라면 한나 아렌트만큼 좋아하지 않는걸까?

 

그런데 어젯밤 자기 전에 이 책을 마저 읽으면서 보부아르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아, 정말이지,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어. 이 책을 통해 보부아르의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에 대한 생각과 어머니에 대한 생각, 그 어머니를 이름으로 호명하며 하나의 인격체로 되살려놓은 것까지, 그 사유가 깊어 나는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마치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래도 날 안좋아할 수 있니?"

 

별 수없이,아 나는 좋아해, 좋아합니다, 다 읽을게요 보부아르 님. 했다. 한나 아렌트 책을 한 권씩 모으자고 생각했지만 보부아르에 대해서는 아직 그 마음까지는 아니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별 다섯을 주고 책장을 덮으면서 다 읽자, 보부아르 다 읽자, 하게된 거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해서 사두고서도 여태 미뤄뒀었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것은 상상만 해도 벌써 슬프고 힘들기 때문이다. 여동생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언니 시간이 지나면 엄마도 돌아가실텐데 그 때 어떡하지, 라고 동생이 물을라 치면, 야, 상상만 해도 벌써 다리가 후달리고 눈물이 나와, 했던 터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려고 사두었으면서도 읽지 말까, 종내는 울어버리지 않을까 했던 거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받게될 감정의 격함을 받아들이고 감당할 수있을까, 했던 것.

 

이 책속에서 보부아르는 자신의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을 앞에 두고 엄마와 딸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그 삶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뒤에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면 이 책의 의미는 그부분에 더 있는것 같은데, 사실 나는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암으로 육체적 고통에 괴로워하는 어머니를 수술로 그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과연 더 옳은 일이었을까. 그것이 어머니에게 과연 더 나은 일이었을까. 어머니는 저렇게 고통을 당하느니 차라리 돌아가시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이런 후회를 하며 의사들에게 이 생명 연장이 의미가 있냐 따져물어도 의사들은 이것이 본인들의 할 일이라고 답하는 거다. 이런 고통속에 어머니의 삶을 연장하는 것은 괴롭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하루하루 삶을 살아가며 오늘 하루를 또 벌었다고 즐거워하는, 이토록이나 삶을 사랑하는 어머니를 보노라면, 어쩌면 이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는거다. 아프면서도 하루라도 더 살아있는 것, 어쩌면 그게 더 나은 것일까. 게다가 엄마를 잃지 않은 나로서의 기쁨도 있다. 고통속에, 그 고통이 주는 두려움속에 살게 하는 것은 인간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닌가 싶으면서도 막상 살아있는 어머니를 보는 것이 나에게도 기쁜 것. 이런 일을 대체 어떻게, 누가, 무엇이 옳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엄마가 이 상황에 놓인다면 무엇을 원할까. 만약 이렇게나 통증이 심해서 비명을 질러야 한다면 그러면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끔 생명을 연장하지 않는 쪽을 택해야 하는 건 아닐까, 죽어가는 사람이 하루라도 더 살아있기를 바라는 것은 당사자가 아니라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닌가. 당사자를 위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안락사인가 수술로 인한 생명연장인가. 나는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하다가,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이것은 내 이야기가 된다. 당사자로서의 나, 이렇게 통증으로 비명을 지르는 게 노년의 나라면. 나에게 닥칠 미래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다시 생각하게 되는거다. 나는 무엇을 원할까. 너무 아프니 나를 이대로 죽도록 놓아달라 할까, 죽음으로써 나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길 바랄까, 아니면 삶을 하루라도 더 연장시켜달라고, 나는 이렇게 하루를 또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고 울부짖을까. 어쩌면 나는 그 고통속에 있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삶을 사랑한다. 나는 삶을 더 연장하고 싶다. 할 수 있는 최대로 연장해 어떻게든 부여잡고 싶다.

 

 

가끔은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사는 일상이 답답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가끔은 내가 집에 돌아갔을 때 내가 혼자이길 원하기도 한다. 몇 년후에는 따로 사는 것을 계획하고 있지만 지금은 함께 살고 있으면서 거기에서 오는 좋은점과 나쁜점들을 두루 겪고 있다. 보부아르의 책을 읽고 결국 보부아르 어머님의 죽음 앞에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지금 엄마 옆에 있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후회하고 싶지 않다.

 

 

그토록 신앙이 깊었던 보부아르의 어머님이 죽음 앞에서 오히려 종교를 찾지 않은 것은 놀랍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어도 죽음 앞에서 더러 종교인이 된다는데,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여러차례 들은바, 이해하고 있는것이다. 그런데 신앙을 가진 사람이 죽음을 앞에 두고 오히려 신앙과 멀어진다니. 거기에 대한 보부아르의 생각들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더 좋아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글로 써내는 보부아르가 진짜 자지러지게 좋았다.

 

 

나는 신앙이란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에게 종교는 삶의 버팀목이자 핵심이었다. 엄마의 검은색 서랍에서 찾아낸 문서를 통해 우리는 그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엄마가 기도를 기계적으로 하는 단조로운 행위라고 생각했다면, 낱말 맞추기보다 묵주신공이 더 피곤한 일이라고 느끼진않았을 것이다. 엄마가 기도를 회피했던 건 오히려 그녀가 기도를 집중력과 성찰을 요하는 일종의 수련, 즉 영혼을 어떤 상태에 이르게 하는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신에게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저를 치유해 주소서. 하지만 당신이 뜻하신 바라면 죽음을 받아들이겠습니다"라는 말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실해야 하는 기도의 순간에 엄마는 거짓을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신의 뜻을 거스를 수 있는 권리를 자신에게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엄마는 침묵을 택한 것이었다. "하느님은 인자하시니"라고말하면서.
"이해할 수가 없네요"라며 보티에 씨가 놀랍다는 듯 내게 말했다.
"그렇게 믿음이 깊고 독실하신 어머니께서 죽음을 그리 두려워하시다니요!"
  p.131-132

 

 

나는 이들에게 마음속으로 답했다. 당신들 모두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라고, 종교는 나나 어머니 모두에게 죽고 나서 거둘 성공에 대한 희망이 될 수 없었다. 천국에서든 지상에서든 영원불멸하길 꿈꾸는 것은 삶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있어 죽음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p.133-134

 

다 읽고는 내 생각보다 슬픔이 크진 않았는데 두려움이 크게 찾아왔다. 자기 전에 읽었는데 다 읽고 불을 끄고 눈을 감아서도 두려웠다. 죽음이 나에게 닥칠 미래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해서 두려웠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내 손으로 내 가슴을 쓸어내려준다. 다 괜찮다, 다 괜찮다, 괜찮아. 평안해질 것이다. 그래도 쉬이 잠이 오질 않았다.

 

 

 

 

 

 

 

 

 

 

 

 

 

 

 

 

일전에 《혼자를 기르는 법》을 재미있게 보았기에 이 책도 실망시키지 않을거란 생각을 했지만 중간 부분은 좀 지루했었다. 그런데 워낙에 음식모형 만들기에 대한 설명부터 주문과 납품, 주문이 들어오면 그 일에 들어가는 과정까지 섬세해서 어느 순간부터는 김정연이란 이름을 잊고 이세린 이란 음식모형만들기 달인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 같았다. 중간중간 가족 안에서의 딸에 대한 차별과 세상으로부터의 외모 평가로 인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아서,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일하는 여자가 되기까지의 자연스러운 수순인 것인가 씁쓸했는데, 세상은 여성도서관도 여성차별이라 하고 여성도 군대에 보내라 하고 여성부를 없애라 한다. 어제만해도 나는 아버지의 친딸 성폭행 기사를 보았는데.

 

책을 다 읽고 저자 후기를 읽다가 비로소 아, 이 책의 작가가 김정연이었지, 이세린이 아니었지! 했다. 워낙 디테일한 장면장면의 설명과 그림들 덕에, 게다가 곳곳에 그 일을 하면서의 과정 같은 것도 섞어둔 바람에 영락없이 이 만화를 그린 사람은 이 일을 진짜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자는 이 일에 잔뼈가 굵은 프로 음식모형가가 아니라, 더 늦기 전에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겠다고 훌쩍 독일로 날아가 지내고 있는 김정연이었다. 와우- 이세린도 근사하지만 김정연도 근사하군! 그런 한편 워킹홀리데이도 연령제한이 있을텐데 아아, 작가는 한없이 젊은 사람이구나. 하고 부러웠다. 젊음과, 그 젊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과감히 도전한 것이.

 

책속에서의 이세린도 부러웠다. 혼자 지내고 혼자 일하면서 일거리도 꾸준히 들어오고 그렇게 자신의 일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작업실을 갖춘 거다. 음식 모형을 만들기 위해서 작업실은 필수로 보였는데, 필수로 보인다고 모두 갖출 수 있는 건 아닐 터였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작업실에 대한 로망이 있다. 문제는 작업실에서 할 게 없다는 것... 이지만. 작업실은 갖고 싶은데 그 작업실에서 뭐할래? 물어보면 할 게 없다. 알라딘에 페이퍼 쓰는게 전부일 터. 그것은 돈이 되지 않는데, 작업실 임대료는 어떻게 내나욤?????

 

김정연이 더 늦기 전에 가겠다고 독일로 훌쩍 떠났는데, 그것은 그렇게 바라왔다고 해서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터였다. 어떤 사람들은 계획을 하고 그대로 실행에 옮기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그만큼 간절한 바람이었기 때문에 실행에 이를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내가 계획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몇 번 언급했지만 지인이 나는 어디 회사에 입사할거고 입사하고 나면 언제쯤 결혼을 할거야, 라고 말하고서는 그대로 옮기는 걸 보고는, 아아 나는 저런 계획 하나도 없는데 역시 무계획의 사람인가, 했던 거다. 또한 여행을 갈때도 어떤 스케쥴을 정해서 가지 않았다. 나는 가서 무엇을 먹을 것이다, 어디를 가볼 것이다, 무엇을 해볼 것이다, 정도의 계획만 있지 며칠에 어디에 가고 몇시에 어디에 가고 이런 식으로 미리 계획을 짜지 않았었기에 내가 무계획의 사람이라고 아주 오래 생각한거다. 여행 역시 마찬가지. 나는 내가 아주 오랫동안, 내가 여행을 다니면서도,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내가 매우 계획적인 사람이고 그 계획을 실행하고자 하는 사람이며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는 가깝게는 다음 끼니도 다 계획해둔 사람이고, 친구들을 만나기로 하면 미리 식당을 찾아보고 여기가 어떨까 정해두는 사람이다. 한 친구는 이런 내게 '다른 친구들 만나면 길 돌아다니면서 저기 갈까 여기 갈까 하는데 너를 만나면 그런 거 없이 그냥 식당에 가서 편하다' 고 한적도 있다. 아마 이런 걸 친구도 좋아했기 때문에 편하다고 생각했겠지. 미리 식당을 정해두고 그 식당에서 만나기로 하는 것은 내 성격의 전반적인 패턴인 것 같다. 이를테면 내가 백화점에 무언가 살 게 있어서 갔다면, 나는 백화점에 들어가 곧장 그 매장으로 가서 그것을 사가지고 나오는 사람이다. 나랑 같이 백화점에 갔던 친구는, 야 너 다른 층 가서 구경 안해? 라고 물었고 나는 아니 이거 사러 왔으니까 이것만 사가지고 가야지, 했었던 거다. 만약 내가 백화점의 여러층을 돌기로 했다면, 그 계획을 가지고 가야했다. 오늘 백화점 돌아다니러 갈까, 가 있어야 했고 걸어야 한다면 오늘은 걷자, 가 있어야 했다. 이런 나의 최대 부작용은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자, 를 해야만 비로소 아무것도 안하고 쉴 수 있다는 것.. 쉬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아, 이런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고,

 

나는 그렇게 목표를 정해두고 계획을 세워두어야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실제 내 삶이 그러했고. 이런 내 성격이 공부 잘해서 하버드 대학 가는 걸 목표로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그런 목표는 애초에 가진 적이 없어.. 나여.. 왜죠? 그러나 나는 젊을 때부터 '책 써서 타임지 표지 모델에 실릴거야'라고 말하고 다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을 썼는데 타임지 표지 모델에 실리진 못했고 국내 베스트셀러도 되지 못했으니 완전히 이룬 꿈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어느만큼은 이룬 것 같다. 하버드대학을 목표로 했으면 서울대라도 갔을지 모르는데... 쓰불..

 

아 근데 왜 자꾸 글이 삼천포로 빠지지... 김정연, 독일! 김정연의 독일 때문에 할 말이 있었는데.

그러니까 나는 오래 한 남자를 좋아했었고 그는 저기 비행기를 타고 열시간 이상을 날아가야 닿을 수 있는 곳에 살았다. 그가 거기 있다는 것만 알지 거기에서도 어디에 있는지 몰랐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언젠가는 기어코 그를 만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살았다. 살아 생전 그를 한 번이라도 꼭, 어떻게든 만날 것이다. 어떤 날은 이 계획이 너무 허황되게 나아가서 내 상황극속에서 나는 그 대륙으로 날아가 말을 타고 달리고 있었다. 말을 타고 이곳저곳 달리다가 그를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아주 낯선 곳에 작은 호텔을 차려두고(호텔 사장님!!) 오가는 손님을 받다가 여행중 그 호텔에 닿은 그를 만나기도 했다. 그와 다시 굿바이 하긴 하지만 어떻게든, 기필코 한 번은 꼭 만날 것이리라. 그가 사는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도 모르면서도 그렇게 내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두었던 거다. 그래서 이곳 알라딘에서 그 나라에 산다는 분을 만났을 때, 언젠가 이런 나의 꿈을 얘기한 적이 있다. 사실 그가 그 넓은 나라의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데 나는 이런 꿈을 갖고 있어요, 라고. 그러자 그 분은 니가 마음 먹고 오기만 하면 최대한 찾을 수 있게 도와줄게, 라고 하셨더랬다. 교포들 사이에서 묻는 방법도 있을 거고 어떻게든 시도해볼 방법은 있을 거야, 라고. 아, 말씀만이라도 얼마나 고맙던지. 그의 연락처도 모르고 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를 언젠가는 만나겠다는 누가봐도 허황된 꿈은, 그러나 이루어졌다. 몇 년만에 그와 소식이 닿았고 나는 그를 한 번만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는데 몇년간 관계를 유지했으며, 그가 나를 보기 위해 한국에 오기도 했고 우리가 머무르는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각자 비행기를 타고 와 만나기도 했다. 내 꿈보다 더 크게 이뤄진 셈이었다.

 

비록 내가 그를 만날거란 목표를 가지고 수절하고 지낸 건 아니지마는.... 나는 그동안 연애하며 지냈지마는.. 어쨌든 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생은 즐겁게 살아야 하잖아요? 난 언젠가 너를 만나러 갈거야, 그 때까지는 다른 남자들 좀 만나면서 살게...의 마인드랄까. 인생은 재미지게!!

 

 

아, 김정연, 독일!

그래서 한참 전에 나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다른 나라로 가는 꿈을 꾸었다는 것.

 

지금은 베트남을 꿈꾼다.

베트남은 누구를 만나러 가기 위한 게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한 곳, 내가 머무르기 위한 것. 최종적으로 나는 내가 있었던 이곳으로 돌아오겠지만, 나는 베트남에 가서 머물고 싶다. 이것도 목표와 계획이 있어야 한다. 말을 타고 간다는 허무맹랑한 계획이 아니라, 자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갈것인가 하는 것. 한달이상 장기간 머무르기 위해서라면 퇴사한 후가 좋을 것인데, 코로나 시국에 퇴사하면 나는 뭣도 아녀... 베트남에 갈 수도 없을 뿐더러 그 다음 돈을 버는 것도 막막해진다. 그러니 지금은 계획을 이렇게 세워뒀다. 코로나 상황이 종료되면 퇴사하자, 그 후에 퇴직금으로 베트남에 가자, 하는 것. 나는 이것이 가급적 빨리 오길 바라지만 내 말을 들은 동료가 '코로나가 끝날까?' 하고 말하는 바람에 이내 침울해지고 말았다... 나는.. 베트남에 못가나염?????

 

 

오늘은 소고기버섯볶음밥 을 도시락으로 싸왔고(냉동식품을 프라이팬에 볶은 것), 튀긴건빵과 복숭아가 간식으로 준비되어 있으며, 알라딘 커피로 아이스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다. 점심에 산책을 할것이고 산책 후에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다른 옷도 준비해왔다. 냄새.. 노노해...

 

 

 

(덧. 제목은 본문과 아무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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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21 1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체리랑 올리브는 안 나왔네요....찾으려고 두 번이나 읽었는데 맨 나중에 ‘제목은 본문과 아무 상관이 없다‘ 이건 왜 지금 보이는지;; ㅋㅋㅋ

저도 보부아르한테 딱히 정이 안 가요. 그건 아렌트도 마찬가지... 왜지;;;? 왜일까요? 그 두 사람이 하필이면 내가 싫어하는 남자들을 만나고 그렇게 똑똑하면서도 그런 관계에서 평생 못 벗어나서 그런가;;; ㅋㅋㅋㅋㅋ -_-?? <아주 편안한 죽음>에서도 가끔 사르트르 등장하는데 넘 싫었어요;;;

저는 <아주 편안한 죽음>에서 보바르나 엄마도 엄마지만 동생이 참.... 여러모로가엾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 점심으로 샌드위치+과일(복숭아블루베리방울토마토) 입니다. 지금 저도 알라딘 커피로 아이스커피 마시고 있습니다.
저도 오늘 같은 날에도 산책 나갈 겁니다. 화이팅!

다락방 2021-07-21 11:05   좋아요 3 | URL
제가 아침 출근길에 걷다가 저 문장을 생각했는데 딱히 내용은 떠오르질 않아서 그냥 제목으로 던져버렸습니다. 언젠가 쓸 일이 있겠지.. 하면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부아르도 아렌트도 말씀하신 것처럼 이성애에 있어서 저도 너무 화가 나는데요. 이렇게나 똑똑한 여자들이 왜그랬을까 왜그랬을까.. 하면서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저 역시도 멍청하고 후회되는 연애를 해본적이 있는데, 누군들 그런 일이 없겠나 싶고. 물론 저들은 하고 만게 아니라 평생을 지배한 사랑이지만... 저도 아주 편안한 죽음에서 사르트르 얘기 나오는게 되게 싫었어요. 이거 왜케 싫죠? 보부아르에게 사르트르는 치명적이었나보구나 새삼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여기엔 안나왔으면 좋겠네..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러다가 또 보면 저도 툭하면 좋아했던 남자 얘기하고... 인간이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드러내고 싶은 것인가.. 하기도 하면서 참 거시기하고 그래요.

저는 죽음을 다룬 글을 읽을 때면 <토지>의 용이 아내 생각이 나요. 죽기 전에 죽기 싫다고 막 발악을 하는데, 저는 그 심정이 너무 이해가 되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보부아르의 이 책 읽으면서 나 역시 죽기전에 엄청 발악하지 않을까, 우아한 죽음이 내게 있을까 자꾸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오늘 진짜 엄청난 더위라고 해서 저 안에 갈아 입을 옷 단단히 챙겨왔어요. 산책길에 만나요. 동쪽 한 번 보세요. 저도 동쪽 볼게요. 산책하면서 잠시나마 한방향을 봅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낭만 터지는 다락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화이팅!!

독서괭 2021-07-21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편안한 죽음> 읽으면서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이거 리뷰 써야지 생각하며 계속 미루게 되네요. 잭리처 리뷰만 제때제때 쓰고 있는 듯 ㅋㅋ <이세린 가이드>도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저는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보면서 지적인 끌림이 그렇게 강했을까? 상대를 구속하고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것 없이 관계를 유지해도 좋을 정도로 그렇게 그와의 대화가 좋았을까? 싶어 약간 부럽기도 했습니다. 평생 그런 상대 만나기 어렵잖아요.
오늘 엄청나게 덥던데 산책 잘 하셨길요^^

다락방 2021-07-21 14:01   좋아요 1 | URL
사무실 들어와서 땀에 젖은 속옷을 모두 벗고!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회사를 도대체 어떻게 다니고 있는건지 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부아르도 그렇고 아렌트도 그렇고 남들이 뭐라든간에 자기 인생에 되게 강한 연인이 있는거잖아요. 어쩌면 그런 연인이 있기 때문에 사실 남들이 뭐라는것도 신경 안쓰이는 건가 싶기도 하고, 스스로 잘난 사람들이었으니 자기 사랑을 자기 방식대로 지켜나가는 데 있어서 망설임이 없었던가 싶기도 하고요. 계약결혼은 보부아르를 좀먹은 것 같기도 하지만... 사랑을 하면서 늘 기쁠수만은 없겠지요.

저는 보부아르의 [모든 사람은 혼자다]도 너무너무 좋았는데 [아주 편안한 죽음]도 너무 좋았어요. 저는 이제 제 마음에 보부아르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07-21 1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빨리 코로나가 끝나야 다락방님이 베트남엘 갈텐데요. 에휴.... 오늘 집에 남편이랑 둘째가 백신 맞고 왔고, 저는 다음 주 백신 예약이에요. 그런데 망할 코로나는 지금 또 너무 급속하게 번지고 있고....
날이 너무 더운데 산책길 일사병 걸리지 않게 조심하셔요. 그 회사는 샤워실만 따로 있으면 최고겠습니다. ^^
보부아르의 책은 얇던데 올 여름에 읽어봐야겠네요. ^^

다락방 2021-07-22 14:49   좋아요 0 | URL
제가 베트남을 좋아하는 데에는 베트남의 더운 날씨도 한몫 했는데요, 어제 퇴근하다 보니 하노이보다 서초구 온도가 4도 높더라고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게 무슨 일이에요? 대한민국은 이제 베트남보다 더 더운건가요. 그러면 저는... 어쩌나요? 하하하하하.

코로나 오늘도 확진자가 엄청 많이 나왔더라고요. 다들 얼른 백신 맞고 세상이 좀 안정적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나저나 저는 언제 맞나요 ㅠㅠ

보부아르 책은 추천합니다, 바람돌이님. 저는 참 좋았어요.

자성지 2021-07-21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나 아렌트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나면서 사랑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열정이 가슴 속에 자리하여 삶을 아우르는 철학을 궁구하였고 사상가를 사랑하였습니다. 때로는 열정이 이성적인 판단을 압도하고 말 때가 있죠. 특히 사랑에 빠졌을 때에는 더더욱 그러하고요. 한 남자와 살면서 늘 사랑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아주 편안한 죽음>>산 지 꽤 되었는데 차근차근 읽어야겠습니다. 중복에 자극 받아 갑니다. 강건한 여름 보내요. ^^

다락방 2021-07-22 14:52   좋아요 1 | URL
한나 아렌트는 계속 읽어보고 싶어요. 한권씩 한권씩 아렌트가 쓴 책과 아렌트에 대해 쓴 책을 모아보고 들여다볼 생각입니다. 저에게 한나 아렌트는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에요.

아주 편안한 죽음 읽으시면 어떤 느낌을 받으실까요. 저는 무척 좋았고 그래서 내친 김에 보부아르 책장 한 칸도 만들어보자, 하고 있는데 자성지 님께도 좋은 느낌을 주는 책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무척 덥네요. 물 많이 드세요, 자성지 님.

- 2021-07-22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작업실에서 알라딘 페이퍼쓰자!!!!!! 우리의 꿈!!!! 작업실에서 알라딘 페이퍼쓰기!!!!!ㅋㅋㅋㅋㅋ 아니 이 재미진 글을.. 한나 아렌트에서 시작해서 보부아르를 좋아하다 죽음을 떠올리고 연애를 하면서 대륙을 횡단하고 베트남으로 마무리짓는 이 즐거운 스토리텔링을... !!!!! ㅋㅋㅋㅋㅋ 작업실에서 쓰실 수 있도록 소인 몸이 부서져라 돈을 벌겠나이다!!!! 제가 건물을 사게 되면 꼭 한 층을 스터디카페처럼 꾸려 페이퍼 생산 사무실로 ㅋㅋㅋㅋ 쓰는 즐거움 읽는 기뿜이 뿜뿜한 전 사회의 효용이 올라가는 투자이지요. 계획이 있는 삶, 꿈이 있는 삶. 얼마나 아름다운가.

다락방 2021-07-22 14:54   좋아요 3 | URL
나 진짜 알라딘 페이퍼 쓰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데 알라딘 페이퍼 때문에 임대료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넘나 아까운 것. 임대료 안내도 되게 쟝님이 어떻게 잘 해봐요. 알았죠? 그렇게 나 작업실 하나 주는 겁니다! 그래도 몸이 부서져라 돈 벌지는 마요. 돈 벌었는데 몸이 부서지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아무튼 우리 알라딘 페이퍼 생산 사무실에서 자주 만나도록 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주말은 쉽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1-07-23 14:49   좋아요 2 | URL
알라딘 페이퍼쓰고, 한잠 자고 일어나 책읽다가, 플랭크하고 달리기하고 돌아와 씻고 술 곁들인 요리먹으면서 읽은 책 ㅇ야기하고 잠드는 삶을 생각하니… 너무 아름답고, 벅차오른다. 40평대 아파트여. 우리의 꿈이여. 반드시 반드시 해내리라!!!!

초딩 2021-08-06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역쉬! 변함 없쉬!
이달의 당선 페이퍼 축하드립니다!

독서괭 2021-08-06 1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1-08-06 1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새파랑 2021-08-06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의 ㅋㅋㅋㅋㅋ 보면 그냥 재미있더라구요. 축하드려요 ^^

행복한책읽기 2021-09-01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구매를 고민하며 리뷰와 페이퍼를 둘러보던 중, 님 글에서 구매 결정을 내렸슴다. 저도 좋아해 보려구요^^
 
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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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속에 삶은 연장하는 것은 폭력일까 선물일까.
나의 엄마에게 닥칠 미래에 잔뜩 겁을 먹고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나에게 닥쳐올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님을 애도하며 이 책을 쓴 보부아르에게도 찾아온 죽음은 어김없이 내게도 찾아올테지.
나는 삶을 붙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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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0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21 0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21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