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살리는 자연식 밥상 365 - 송학운 & 김옥경의
김옥경 지음 / 수작걸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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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은 음식이 나를 만든다.’

는 믿음으로 신선한 식재료를 조리하여 먹는다. 오감을 잃지 않고 감칠맛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어 감사함으로 일상을 보낸다. 건강에 자신 있던 체육교사인 남편이 직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깊은 산속에서 자연식으로 전환하여 건강을 회복하였다. 건강에 이로운 자연식으로 암을 극복한 남편의 식이를 중심으로 제철 음식을 준비하며 자연식을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전하고 있다. 건강을 잃기 전에 자신의 건강을 지키려는 이들이 늘어나 자연생활 교육원의 치유 프로그램에 관심이 드높아졌다.

‘아침은 왕처럼, 점심은 서민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먹어라.’

는 말이 있지만, 많은 이들은 바쁘다는 이유로 아침은 건너뛰고 퇴근 후 저녁에 폭식하여 몸에 부담을 주는 경우가 쌓여 건강한 식생활에 위배된다. 아침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탓에 가공식품을 곁에 두고 먹다 보니 건강에 해를 더하는 현실의 악순환이 가속화된다. 생명력을 담은 자연식은 변형이 없고, 발효하지 않은 요리이다. 가짓수가 적은 음식이지만 영양의 균형이 잡힌 소박한 음식으로 최소한의 음식 섭취로 건강을 돕는다. 너댓 시간 간격을 두고 음식을 섭취하며 간식은 삼가는 대신 중간에 물을 마시는 습관이 중요하다.

사람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자연식은 자연에서 가져온 재료들로 조리를 최소로 한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화학 첨가물을 조미료가 들어간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 식생활 습관은 혈액에 열을 주고, 피를 탁하게 하여 염증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싱싱한 식재료를 최소한의 간으로 조리하여 먹는 자연식으로 건강의 불균형을 개선하는 실천이 필요하다.

자연식 맛을 내는 찬연 재료 손질부터 아침과 점심, 저녁에 먹을 음식을 다양하게 준비하여 자연식 밥상을 차리는 일은 식단 짜기로 모아진다. 계절에 따른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하여 죽과 두유 밥상은 간편하면서도 영양 만점인 음식이다. 대두를 깨끗이 씻어 인 뒤 압력솥에 세 배의 물을 붓고 삶아 한 김 식혀 삶은 콩과 콩물을 붓고 믹서에 갈아 두유를 만든다. 대두는 오장을 보호하고 경락의 순환을 도와 장과 위를 따뜻하게 해주는 콩이다. 이에 넣는 재료에 따라 토마토두유, 쑥두유, 흑임자두유 등의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전례 없는 폭염으로 여름나기가 쉽지 않은 올해, 더위가 기승을 부려 소화 기능이 약해질 때는 콩과 쌀을 불려 갈아 만든 콩죽이 좋다. 점심 밥상의 기본은 소화가 잘 되는 현미밥, 국은 자투리 채소를 넣어 우려낸 채소국물을 기본으로 전골이나 찌개 등에 쓰면 유용하다. 반찬으로 좋은 감자는 얇게 채 썰어 찬물에 담가 전분을 뺀 뒤 체에서 감자채 물기를 뺀 뒤 팬에 기름을 두른 후 감자를 넣고 구운 소금으로 간하여 감자볶음을 만든다. 파린 빛이 돌도록 김을 구워 손으로 김을 찢은 뒤 양념장을 만들어 볼에 담긴 김과 실파를 버무려 김무침을 만든다. 텃밭에 많은 깻잎을 따서 물에 씻어 물기를 제거한 뒤 홍피망과 노랑 파프리카, 실파를 가늘게 채 썰어 준비한다. 레몬즙과 물, 가루간장으로 양념장을 만들어 깻잎겉절이를 만들어 먹으면 입맛이 살아날 듯하다. 더위와 갈증으로 지친 몸에 원기를 돋우는 수분이 많은 채소와 과일을 먹으며 여름의 잔상을 감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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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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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구성원과의 수평적 위치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의 소리를 경청하는 가운데 소통과 공감 능력은 길러진다. 소통 부재로 부정적인 현상이 벌어지는 사회에서 차별과 불평등은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공간을 달리한 아일랜드의 가정에서 벌어지는 여성적 차별은 비민주적 현실과 궤를 같이한다. 정서적 학대와 아동 학대, 고압적인 태도로 자녀를 돌보는 일 등에서 남성 중심의 완력이 느껴져 마음에 댓돌을 얹은 것처럼 울울함이 더한다. 소통보다는 일방적인 생각대로 판단하고 움직이며 뜻을 관철하는 남성의 이기심이 불협화음을 낳는 단편 소설을 읽으며 자유로이 들판을 거닐 날이 올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유치한 맹세로 마거릿과 결혼을 약속했던 사촌은 사제의 길을 걷기 위하여 그녀를 떠났다상대의 일방적인 이별로 버림받은 마거릿은 혼자 아이를 낳았지만 돌연사한 아들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마거릿은 성직 생활을 하던 사제가 죽은 뒤 그가 남긴 집에서 생활하며 그와 함께했던 과거를 떠올리고 회한에 젖어봤자 소용없음을 직시한다. ‘퀴큰 나무 숲의 밤에서 마가목으로 불리는 퀴큰 나무는 기르기 쉬워 정원수로 많이 심어졌고, 계절마다 다채로운 빛깔로 물들어 개성을 드러낸다. 생명을 지켜준다는 마가목에 대한 믿음과는 달리 활활 타오르는 생명 의지를 함의하는 마거릿의 말에는 지난 사랑에 대한 회한을 거두고 새로운 사람을 찾아 나섰다. 사랑에 집착하기보다는 새 생명을 잉태함으로써 신경을 모으고 정성을 보태고 싶은 유기적 생명체를 안고 새로운 세계를 향하였다.

   결혼 후 남의 집으로 가 살 딸은 가르쳐 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은 작별 선물속 아버지의 지론이다. 공부를 잘했던 유진은 학교를 그만두고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집에 남겨진 딸은 어머니의 묵인 아래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였다. 아버지의 성적 노리개로 살던 유진이 아버지의 말을 판 돈으로 가족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하여 길 위에 섰다. 걸어보지 않은 세계를 찾아 서툰 걸음을 옮긴 그녀를 안전하게 지켜줄 문은 존재할지 확언하기 힘들겠지만, 괜찮지 않은 시간을 괜찮지 않다고 당당히 말하며 살아갈 날이 오기를 바란다.

   ‘푸른 들판을 걷다속 신부는 자연적 질서를 거스르지 않고 순리를 따르는 삶을 지향한다. 한때는 롤러의 딸을 사랑하여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기도 하였지만, 신부는 세속적인 삶과는 거리를 두고 하나님의 제자로 살아갈 의지를 강화하였다. 사제는 자율 의지로 성직자 역할에 충실한 소명을 받들고 살면서 갈등하다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하고,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도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을 따라 걸으며 자신을 달랜다. 감정 표현에 서툰데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젬병인 사내는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의 꿈속으로 들어오는 황홀경을 겪을 때도 있지만 실상은 정반대로 흐른다. 용기를 내어 사랑하는 여인에게 고백하지 못한 사내는 그녀를 잃고 나서야 회한에 젖어 참담함을 술로 달래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여인이 검은 말을 타고 그의 들판으로 와 풀을 뜯기를 바라며 비현실적 꿈속 세계를 맴돈다.

   ‘당신이 딸한테 화풀이한 게 유감스러울 뿐이야.’, ‘그뿐이야.’

   비밀을 품고 살던 삼림 관리인의 딸의 마사는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다 남편이 딸의 마음을 아프게 하자 숨겨왔던 비밀을 폭로한다. 다른 사람의 씨앗으로 수태된 딸을 출산한 사실을 숨기고, 윤리적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결혼 생활에 대한 마침표를 찍기라도 하는 듯 어리숙한 아들이 불을 질러 집은 불탔다. 큰불로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는 잿더미로 변해 생계마저 위협받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마사는 가벼움을 느낀다. 면죄부가 적용되지 않아 죗값을 치르게 되더라도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마사의 용기가 불러올 파장은 크겠지만, 그녀는 비굴하지 않을 용기를 내었다.

   먹고 싶은 과일을 함께 나누며 정을 두텁게 하는 관계는 서로 간에 친밀감을 더한다. 누구에게도 나눠 주고 싶지 않은 오렌지를 혼자 까먹고, 어린 소년에게 돌아갈 흰 빵을 돈을 더 주고 사버리는 중사는 약혼녀를 외면하고 계산적 의도로 결혼을 결심한다. 이기심으로 상대에게 가해지는 학대에 쾌감을 느끼며 타인을 통제하는 굴복의 장본인은 자기중심으로 세계를 보는 이기심을 극명히 드러낸다. 굶주린 아이의 시선을 외면하지 않을 용기를 회복함으로써 이기심을 향한 욕망에 굴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며 사회적 약자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선택 없이 결정된 채 세계로 나와 소속된 공동체의 관습을 따르며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를 쓰며 살던 시절이 생각난다. 배움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당연시 여겨 왔던 일들의 부당함을 깨닫고는 감내하던 생활 습관에 제동을 걸며 무례한 대우에는 맞서며 조금씩 자신의 입지를 찾았다. ‘물가 가까이가고 싶은 할머니는 바다에 가고 싶은 바람이 실현되었을 때 씻을 수 없는 모욕과 함께 허탈함이 돌아왔다. 바다를 보고 돌아오기로 한 시각에서 5분이 늦었다고 자신을 혼자 버려두고 집에 가려 했던 남자와 평생 함께 살며 회한은 쌓였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는 속담처럼 마음이 통한다고 여기며 살던 사람도 속내를 알기 힘든 것처럼 함께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 없이 가정생활을 지속하는 어려움을 함의한다. 두려움에 바다를 다시 찾을 생각을 거두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단조로운 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날은 요원하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이의 손을 선뜻 잡기 힘든 불신은 깊기만 하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물으며 답하는 가운데 자신의 감정을 자유로이 내비칠 수 있는 유연한 태도가 쌓여갈 때 부부 관계는 발전해 갈 것이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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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공간 일기 - 일상을 영감으로 바꾸는 인생 공간
조성익 지음 / 북스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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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밋밋한 시간과 결별하고 낯선 공간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거리 위를 나돌다 집으로 무탈하게 돌아와 또 다른 꿈을 꾸게 하는 동인으로 자리한다. 걸음을 옮기다 마주한 공간이 갖는 특별함은 가슴에 남아 공명하며 삶의 위안을 주기도 한다. 며칠 전 다녀 온 북유럽 여행지에서 만난 코펜하겐의 왕립 오페라하우스는 뉘 하운 운하 투어를 하면서 무주한 건물이다. 오페라하우스는 통문 유리로 운하의 반짝이는 물결을 끌어안고 있는 듯 서 있다.

대학에서 건축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실제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건축가인 저자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인생 공간을 찾아 표현한 드로잉 기록을 바탕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실었다. 저자는 나만의 속도로 걸음을 옮긴 공간에서 나만의 의미를 발견하였고 떠오른 생각과 공간 주변의 소재들을 드로잉 하였다. 지치고 힘들 때 찾는 위로의 공간, 집중과 몰입으로 새로운 생각 도출의 공간, 평균적인 삶의 규모를 넘어 삶의 질을 높이는 공간, 여행지에서 타인의 삶을 살아보며 나만의 의미를 찾는 공간 등이 즐비하다.

네 명의 식구가 한 방에서 기거하던 시절 내 방을 갖는 게 소원이었다. 비밀이 보장되는 나만의 사적인 공간에서 생각하고 공부하며 자신의 성장을 목도하고 싶던 시절 모든 것을 공유하는 현실이 힘에 부칠 때면 농작물 저장 창고를 찾았다. 식량을 저장하는 곳이라 쥐들이 출몰할 때도 있지만 다른 이에게 방해받지 않으면서 생각에 잠기기에는 맞춤형이었다. 공간에 나를 두고 감정 변화를 읽어 자신에게 쓸모 있는 소리를 건네는 공간을 찾아내는 일은 우리 몫이다.

스마트폰 사용 연한이 늘어날수록 폰에 종속되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과 맞닥뜨릴 때 후회를 한다. 해야 할 일은 있는데 친구와의 소통 공간에서 오래 머물렀기 때문이다. 디지털 디톡스를 위해 찾는 아날로그 공간은 산만해진 정신을 모아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빌 게이츠는 휴가를 내 책을 한 보따리 싸 들고 혼자만의 독서실로 들어가 오롯이 독서와 사색에만 몰두하는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월든 호숫가 옆 오두막을 연상케 하는 공간디지털 세상과의 접속과 결별하고 내면이 전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은 떠오른 영감을 찾기 좋을 듯하다.

여행하다 보면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는 좋은 공간을 발견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일상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소시민이 동경하는 공간을 찾아 떠나는 일이 쉽지 않으므로 주변 공간을 찾을 필요가 있다. 책을 읽고 사색을 즐기기에 방해 받지 않을 공간에서 나만의 세계에 잠길 수 있는 장소를 발견하기 위해 관찰자의 시선을 갖출 필요가 있다. 도시의 광장에서 질 높은 삶을 유지하기 적합한 공간은 물질적인 것보다 감성 욕구를 충족할 공간일 것이다.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에서의 행복지수는 사회적 시스템의 안전한 보장에서 나온 듯하다. 침묵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사우나는 무심한 듯 넌지시 작은 이야기를 나누기 좋은 공간이다. 몸에 쌓인 독소를 배출하여 자기 정화에 이르는 동네 목욕탕 같은 사우나 상용화는 오욕에 찌든 자신을 정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빛나는 시간뿐 아니라 빛나지 않은 시간까지 포용하며 서 있는 건축물을 보며 ‘건축가의 공간 일기’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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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 개정판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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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35도를 웃도는 폭염 경보 아래 책을 읽는 것마저도 편치 않은 시간에 소설을 읽다 보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선량한 사람의 사업이 번창하여 수익이 커지자 부당한 방법으로 손에 넣은 양조자 일가를 파멸로 이끄는 과정은 괴기스럽다.

‘밭도랑을 베게 하고 죽을 놈’

이라는 속담은 용서할 수 없는 악인에게 퍼붓는 저주를 담고 있다. 선의의 피해자가 죽어서도 용서할 수 없는 원한을 품고 ‘저주 토끼’를 만들었을 듯하다. 저주 토끼를 예쁘게 만들어 토끼의 머리를 쓰다듬도록 유인한다. 저주 토끼를 가까이하는 이들은 죽음에 이르는 파멸의 구도를 띤다. 저주당하는 이들은 자신을 파괴하는 원인에 대한 분석이나 관찰 없이 자멸한다. 복수의 화신인 저주 토끼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정도로 예쁘다는 것이 치명적이다. 죽음으로 앙갚음하는 도식이 씁쓸함을 더하지만 부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의 신화는 오래 가지 않음을 극명하게 보인다.

구전되어 오는 옛날이야기에 상상력을 보태어 현대적 구성에 담은 아홉 편의 단편 소설 역시 괴기스러움에 공포를 욱여넣은 듯하다. 변기 속에서 ‘머리’가 나오는 이야기는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던 시절 화장실에 박혀 사는 귀신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떤 색깔의 종이를 줄지 물음을 던지며 말을 건넨다던 귀신의 환청과는 달리 볼일을 보고 변기에 물을 내려도 계속 나타나는 머리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던지는 남편의 한마디는 인간에 대한 경외와는 거리가 멀어 당혹스러움을 더한다.

자신의 고독을 이해하고 슬퍼하는 인간이 흘리는 눈물은 처연함이 묻어난다. 마을의 역병을 물리치고자 괴물에게 바쳐진 소년의 이야기 ‘흉터’는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내용의 설화를 모티브로 한다. 쇠사슬에 묶인 채 칠흑같이 어둡고 습한 동굴에 갇혀 지내는 소년의 목뼈에 단단하고 뾰족한 것을 쑤셔 넣는 이가 있다. 뼛속 깊이 고통이 흉터로 새겨진 소년은 무방비인 채로 잔혹한 고문에 시달리다 동굴로 내몰렸다. 갇힌 공간에서 위압적 권력을 행사하는 이에게 짓밟힌 소년도 어느새 청년이 되었다. 청년은 자유를 찾아 떠나는 길을 탐색하다 탈출에 성공해 야생의 열매를 먹으며 생명을 유지하지만, 환골탈태하여 인간으로 자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청년은 괴물이 이끄는 대로 투견장의 개처럼 짐승을 상대하거나 사람을 상대로 피 튀기는 싸움을 벌여 이겨야 했다. 청년은 상대와 싸워 승리해야 하는 압박의 사슬을 끊고 전쟁 같은 싸움터를 탈출하여 비극의 시원을 찾지만, 공중에 흩어지는 연기처럼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고통으로 얼룩진 흉을 통증처럼 안고 살아야 하는 숙명에 내몰렸다.

야생 동물을 포획하기 위한 ‘덫’에 한 번 걸리면 헤어나기 힘든 상황에 빠진다. 덫에 걸린 여우의 머리에서 나는 금빛 액체를 굳혀 금덩이를 만들어 팔아 돈을 모은 아버지는 더 많은 금을 얻기 위하여 생명체에 상처를 낸다. 가정을 이룬 뒤에는 순도 높은 양질의 금을 모으는 데 쌍둥이 남매를 도구로 삼는다. 탐욕에 눈이 멀어 부성애까지 저버린 아버지는 자식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은 가장의 가정은 무너지고 모녀는 목숨까지 잃어 참척의 슬픔을 배가시킨다.

백 세 시대라고 하지만 인간은 환갑을 지나면서 신체 기능이 급격히 떨어져 다른 이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게 된다. 유약한 인간을 보조하여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개발된 인조인간의 도움을 받는다. 노후 된 인공 반려자는 새 제품으로 교체되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동안 자신을 보필하였던 1호가 주인을 습격해 죽음에 이르게 한 ‘안녕, 내 사랑’은 사랑이라는 숭고한 단어의 의미가 무색해진다. 폐기되기 전 주인을 먼저 없애버린 인조인간의 습격은 디스토피아의 단면을 반영하는 듯하다.

돌연한 사고로 기억을 잃고 암흑 속에 갇힌 선생은 희미해지는 기억을 부여잡고 ‘차가운 손가락’이 가리키고 말하는 대로 움직였다. 늪지대를 벗어나려 하지만 점점 늪으로 빠져 차체가 내리누르는 압박을 견디다 못해 자동차와 함께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다. 차가운 손가락은 자신이 시키는 대로 행하던 선생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선생이 소중히 여기는 반지를 빼내어 취하며 설상가상의 상황에 놓인 선생을 방치한다. 예고 없이 오는 사고로 목숨을 잃고 인생의 향방이 틀어진 경우를 이용해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비정한 현실은 곳곳에 널려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의미 있었던 시간을 반추하며 지금의 고통을 상쇄하며 사는 삶에서 좋고 나쁨은 함께 존재함을 느낀다. 행복한 삶을 갈구하며 현재의 피로와 고통을 감내하며 자신을 옭아매는 현실을 견딘다. 어떤 기대를 걸 수도 없는 상황에서도 찰나의 행복을 발견하며 살아가기 위하여 단조로운 일상에 변화의 물꼬를 튼다. 생존본능이 꿈틀댈 때마다 경각에 달린 삶의 시각도 조금씩 다른 빛깔로 주변을 물들인다. 망각의 시간과 만나며 망자들을 소리를 듣는 능력이 있는‘재회’의 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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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우리돌의 들녘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러시아, 네덜란드 편 뭉우리돌 2
김동우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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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절절한 사연들은 공유해야 힘을 갖는다.’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를 답사하여 단절된 기억을 되살려 우리 민족의 맥을 이으려는 작가의 말은 전율케 한다. 국경을 초월한 채 어떤 환경에서도 희망찬 미래를 발원하던 사람들은 대의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국경의 강을 건넜다. 지금도 강을 건너다 목숨을 잃는 피란민들이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하여 강을 건너는 이들이 있다. 바다에 인접한 연해주로 이주한 한인들은 러시아 정부의 조선인 차별 속에서도 언젠가는 강 건너로 돌아가야 한다는 믿음으로 러시아인의 횡포를 견뎠다. 회령군 영산 전투에서 대패한 안중근은 구사일생으로 연추로 복귀하여 1909년 3월 눈 덮인 연추의 자작나무 숲에서 동지 열두 명과 함께 단지(斷指)로 혈맹을 결의하였다.

러일 전쟁에서 패한 러시아는 한인들의 독립운동을 제지하라는 일본의 압박 아래 한인들의 러시아화를 강요하였다.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압박이 커질수록 잃어버린 주권을 회복하려는 독립운동 의지는 더해 곳곳에 의병을 조직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은 임시정부 당시 동의회 창립 자금을 모아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견지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교육 활동을 위하여 그는 한인 학교를 설립하여 후학 양성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극동 아시아 진출의 핵심 거점인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광활한 공간에 닿고 싶은 바람을 싣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한인들의 이주가 많은 지역의 사람들에게 러시아로의 귀화를 강요하였다. 하지만 한인들은 유교와 무속 신앙에 기반한 생활을 지속하다 콜레라 창궐로 어려움을 겪었다. 러시아 정부는 감염병 창궐의 원인을 제사 때 쓴 돼지고기를 빌미로 삼아 한인들이 거주하는 개척리를 폐쇄하였고, 극동지역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러시아 정부는 한인들의 노동력을 흡수하기 위해 힘을 썼다.

2004년 5월 9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시 지신허 마을에 서태지가 헌정한 비가 섰다. 그는 한인 이주 140주년을 기념하고 한국과 러시아의 친선 우호를 돈독히 하며 우리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흥성거리던 옛 자취는 사라지고 황량한 터만 남아 사라진 사건과 기록을 불러내 서사를 복원하려는 듯하여 숙연해진다. 개척리에서 쫓겨난 한인들은 궁벽한 황무지를 개간하여 새 한국을 부흥시킨다는 뜻으로 신한촌을 일궜다. 신한촌에서 독립운동의 기틀을 마련하여 러시아 혁명을 기점으로 독립운동에 활력이 더해졌다. 노인동맹단의 일원인 강우규는 조선총독부 3대 총독에게 폭탄을 던지고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러시아 내전으로 정세가 악화된 데다 일본군의 증파로 무고한 민간인이 학살되었고,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로 신한촌은 폐허가 되었다. 간도 15만 원 사건으로 일본의 밀정으로 드러난 엄인섭의 변절은 그가 민족적 신념보다 우위에 둔 금력이 자신을 옭아맨 상황이 되어버렸다. 엄인섭과 달리 이범진은 헤이그 특사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자 이들의 활동을 도왔다. 극한에 이른 이범진은 자신의 최후를 부탁하며 자기를 파멸하였다. 무연고 묘로 분류돼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이범진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추모비를 세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니 끊어졌던 민족적 서사가 이어지는 듯하다.

‘이 방에서 이준 열사가 순국하였습니다!’

네덜란드의 덴히그 이준 열사기념관에서는 미스터리에 부쳐진 그의 사망진단서가 걸려 있다. 1907년 이준, 이상설, 이위종 등이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헤이그의 만국 평화 회의에 출석,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세계 각국에 호소하려 하였으나 일본과 영국 등의 방해로 회의 참석을 거부당하였다. 안중근이 생전에 가장 존경했던 인물 이상설은 상해에서 신한혁명당 활동의 성과가 미미하여 실의에 빠져 쇠잔해졌다. 이상설은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자신을 생각하기보다는 동지들이 합세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해 달라고 유언하였다.

북한의 함경도 지방과 중국, 러시아 등지를 오가며 항일무장 독립투쟁을 벌인 홍범도 장군의 유품 사진을 봤을 때는 감동이 밀려왔다.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공격하여 대승한 전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외손녀 김알란이 기억 속에는 없지만 할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이 커 보인다. 러시아령 자유시에서 한국 독립군 부대와 소련 적군이 벌인 전투에서 숱한 사상자가 발생한 참변은 동족 간의 갈등이 초래한 비극적인 역사로 남았다.

사진은 소멸과 기억의 단절을 막는 발화제로 역사적 사건의 증거로 남는다. 퇴색된 사진을 복원하기 위해서라도 당시의 상황을 남긴 사진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로운 출사는 알지 못한 독립운동가의 활약상을 알 수 있는 궤적을 찾아나서는 길 위에서 빛을 발한다. 나라의 주권을 되찾는 일에 목숨을 걸었던 순국선열의 의로운 죽음을 조명해 망각하지 말아야 할 민족적 당위성을 톺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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