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깨달음의 대화 - 탁! 한마디로 마음이 열린다
법륜 지음, 한차연 그림 / 정토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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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법륜 스님과 청중은 즉문 즉설 현장에서 만났다.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자로 물음에 답하는 자리에서 질문자 스스로 삶의 지혜를 얻도록 안내하기 위한 대화 방식을 취하였다. 질문하는 사람 자신에게 답이 있음을 전제하고 짧은 문장으로 답한다.

  '이 길을 걷는 게 맞는 걸까?'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앞으로 걸어 갈 길을 생각한다.

각각의 존재는 서로 다를 뿐, 우동하거나 열등한 존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열등하다 여기는 경우가 있다. 기대치가 높은 사람은 어떤 일을 잘하고 있으면서도 잘하는 게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만족할 줄 모르고 욕심을 안고 사는 이에게 흔한 일 중 하나다. AI시대를 필두로 사람이 하던 일을 인공지능이 대체하여 사람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따라 하지 못하는 개인의 역량을 길러야 하는 시대에 생각하는 힘은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스스로 찾는 과정에 선행되어야 한다.

   ‘왜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는 표현을 자주 말하는 동료를 볼 때면 사랑받고 싶어 안달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에게 웃어주지 않는 동료가 마음에 걸린다며 정작 본인은 상대에게 따스한 미소를 보내지도 않으면서 사랑받지 못한다고 불안해하는 모습에 과욕이라는 생가기 들었다. 뜨거운 쇠구슬임을 알아차렸을 때는 바로 그것을 내려놓아야 화를 면할 수가 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 눈치를 보는 것은 많은 것을 받아내겠다는 이자놀이 같은 것이다.

    반복된 일상을 생각 없이 살다 오지를 여행하며 깡마른 사람을 만날 때면 사람답게 사는 것에 생각이 들었다. 아등바등 살아온 시간에 쉼표를 주는 여행은 다음 여행지에 발이 닿기를 바라며 원력(願力)’을 세우고 일상에 정성을 기울이게 했다. 연속적으로 흐르는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지금을 소중히 여기며 열심히 살아갈 당위성을 부여한다. 스님은 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실패했을 때 괴로워하지 않고, 실패의 원인을 찾아 규명하며 다시 해보는 데 욕심 부리는 사람과의 차이를 뒀다.

     각종 민원으로 몸살을 앓는 관공서 직원이 민원인을 대하는 태도를 물었을 때 스님은 무심히 한 번 보고 지나가는 식물원의 꽃처럼 보라고 말하였다. <열반경(涅槃經)>에 나오는 공덕천(功德天)과 흑암천(黑闇天) 이야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스트레스 주는 민원인이지만 한 생각 돌리면 자신을 먹여 살리는 존재임을 생각게 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 이로운 삶을 살고 싶지만 뜻대로 안 되는 세상에 내가 상대에게 복을 베풀며 살기를 바라면 성숙한 사람으로 자리할 것이다.

    결과가 나쁜 줄 알고 언제든지 멈출 수 있는 집중과 멈출 수 없는 집착의 차이를 짚어주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생각이 다른 상대와의 다툼으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쉬이 화해하지 않는 자기 고집을 꺾고 먼저 상대에게 다가설 때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물음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괴로움 없이 살기 어려운 세상에 괴로움의 원인을 찾아 지혜롭게 괴로움을 벗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길라잡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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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곰의 재테크 불변의 법칙 - 최신 개정 리프레시
아기곰 지음 / 아라크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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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국내 증시가 가파르게 급등하면서 주변의 많은 이들이 다시금 주식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객장에 사람들이 몰리고, 유튜브와 서점가에는 연일 투자 성공 신화가 넘쳐난다. 이러한 열풍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수십 년 전, 패기 넘치게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감당하기 힘든 손실을 보고 시장을 떠났던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나는 '적게 벌더라도 원금을 지키는 것이 최고'라는 신념 아래, 오직 은행 적금만을 고집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매월 통장에 찍히는, 한 달에 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초라한 이자를 마주할 때마다 깊은 회의감이 밀려왔다.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자산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데, 내 예금의 가치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도둑에게 매일 조금씩 먹히고 있었다. 다시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위험 자산으로 갈아타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고민 속에서, 나는 운명처럼 아기곰의 재테크 불변의 법칙이라는 책을 만났다.

   은퇴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나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었다. 남들은 연금 생활자로 제2의 인생을 보낼 수 있으니 다행이라며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노년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고정적인 수입이 끊긴 상태에서, 젊은 시절 모아둔 한정된 자본을 쓰기만 하다가 결국 자산이 고갈되는 상황. 생각만 해도 끔찍한 그 시나리오를 방지하기 위해 재테크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생존 방책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뼈아프게 지적하고 있었다.

   우리는 흔히 재테크라고 하면 화려한 투자 기법이나 대박이 날 종목을 고르는 선구안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책은 우리가 돈의 노예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돈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설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재테크의 목적은 단순히 남들보다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는 것이 아니라, 쓰고자 하는 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경제적 독립'에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불행을 자초하는 태도를 경계한다. SNS에 넘쳐나는 타인의 과시용 삶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 그리고 나의 나태함과 싸울 마음을 먼저 내야 한다는 것이다. 자산을 증식하기 위한 첫걸음은 철저한 절약을 통해 '종잣돈(Seed Money)'을 만드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며, 스스로 내린 결정에 대해 온전히 자신이 책임지는 자세와 혹독한 훈련을 거쳐야만 한다.

   책에서 매우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부자 지수'를 통한 냉철한 자기 객관화였다. 우리는 기업의 경영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재무제표와 손익계산서, 대차대조표를 살펴본다. 그렇다면 나의 가계는 어떠한가? 저자는 개인 역시 자신의 소비 습관과 재테크 성적을 정확히 측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의 소득과 자산, 그리고 나이를 고려하여 계산되는 부자 지수는 현재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허상을 쫓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거울이다. 이 지수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재무 상태를 시장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판단하고 수술대에 올릴 수 있게 된다.

정부의 정책 발표나 거시 경제의 중요한 변화가 있을 때마다, 시장의 변곡점을 파악하고 여기에 자신만의 주도적인 의견을 덧붙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전문가의 말을 맹신하는 수동적인 투자자는 결코 시장의 주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투자 시장, 특히 주식 시장은 왜 끊임없이 변동하며 예측을 불허하는가? 저자는 시장이 아무리 돈이 많은 자산가나 권력자라 할지라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는 이유를 '불확실성'에서 찾는다. 시장은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서, 수많은 참여자의 심리와 수요, 공급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따라서 투자자가 가져야 할 태도는 막연한 낙관이나 공포가 아니라, 객관적인 데이터와 원가 구조를 분석하고 시대의 거대한 흐름을 읽는 눈을 기르는 것이다.

  주식 투자의 격언 중에 종목과 결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내가 고른 종목이 무조건 오를 것이라는 편견과 사랑에 빠지는 순간, 시장을 바라보는 눈은 왜곡된다. 우리는 철저하게 옥석을 가려 투자해야 하며, 한곳에 모든 것을 거는 올인 투자가 아닌, 위험을 분산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을 구동해야 한다. 이를 통해 변동성 속에서도 안정적인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투자처를 끊임없이 발굴해 나가야 한다.

   애써 모은 종잣돈으로 시작하는 투자의 성패는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진짜 가치를 구별해내는 '정보 해석 능력'에 달여 있다. 똑같은 뉴스나 공시를 보고도 그것이 시장에 미칠 파급효과를 남들과 다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해석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남들보다 한발 앞선 투자 타이밍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타이밍을 놓친 투자는 아무리 좋은 종목이라 할지라도 기회비용의 상실을 의미할 뿐이다.

   저자는 주식 시장을 '시장 참여자들 간의 치열한 경기'로 규정하는 반면, 부동산 시장은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경고한다. , 주식은 참여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부동산은 내가 시장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전세가 상승이나 주거 불안정 등의 형태로 반드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부동산에 무관심한 것은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어떤 부동산을 선택해야 하는가? 핵심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인 '주거 향상의 욕구'를 이해하는 데 있다. 인간은 누구나 지금보다 더 쾌적하고, 더 안전하며, 더 편리한 곳에 살고 싶어 한다. 따라서 이러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몰리는 곳에 내 집을 마련해야 자산의 가치를 지킬 수 있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 건물 자체는 시간이 지나면 감가상각으로 인해 낡고 가치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아파트가 깔고 앉아 있는 '땅의 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인플레이션이 진행될수록 우상향한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입지, 즉 편리한 교통과 우수한 교육 환경, 쾌적한 자연 및 생활환경을 갖춘 곳의 땅은 대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단기적인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투자를 위해서는 바로 이 땅의 가치, '입지'를 철저히 따져보아야 한다.

   저자는 아파트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타운 홈(Town Home)'과 같은 새로운 주거 형태에도 주목한다. 세대마다 단독 정원이 따로 있는 자연 친화적인 타운 홈은 과거에는 관리의 어려움 등으로 소외받기도 했지만, 국민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고 삶의 질을 중시하는 시대가 도래하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통찰을 제시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대중의 욕구가 어디로 향하는지 민감하게 포착하는 것, 그것이 부동산 투자의 핵심이다.

   투자할 '돈의 씨앗(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내 삶 전반에 걸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동안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핑계로 행했던 충동적인 소비, 굳이 사지 않아도 될 물건들을 집안에 쌓아 두었던 미련한 행동들이 스쳐 지나갔다.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혹은 외적인 과시를 위해 고가의 브랜드를 소비하는 행위가 얼마나 내 자산을 갉아먹는 독이었는지 명확해진다.

   재테크의 궁극적인 본질은 돈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목적과 방향대로 내 삶을 주도적으로 움직이며,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선택의 폭을 넓혀줄 '경제적 자유'를 확보하는 것에 있다. 돈 때문에 내 가치관을 꺾지 않아도 되는 자유, 은퇴 후의 삶을 불안이 아닌 설렘으로 맞이할 수 있는 자유야말로 재테크가 우리에게 선물하는 최고의 가치다.

   이를 위해 나는 거창한 계획 대신, 책이 제시한 대로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작은 목표부터 하나씩 달성해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달 지출을 일정 금액 이하로 줄이는 것, 매일 경제 기사를 읽고 나만의 분석 한 줄을 남기는 것 등 작은 성취감을 쌓아가는 가운데 자산 지수를 높여갈 것이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떨던 나에게 아기곰의 재테크 불변의 법칙은 단순한 투자 지침서를 넘어, 내 삶의 주권을 회복하는 이정표가 되었다.

 

 "본 포스팅은 교보문고 VORA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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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컬러 명화 수록 무삭제 완역본) - 명화와 함께 읽는 현대지성 클래식 63
알베르 카뮈 지음, 유기환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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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대 초반,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의 창궐은 인류가 이룩해 놓은 견고한 일상을 단숨에 뒤엎으며 아비규환의 세상을 만들어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소한 존재 앞에서 거대한 문명은 속수무책으로 흔들렸고,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도입된 방역 대책들은 역설적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스크 뒤로 얼굴을 숨긴 채, 외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통제하며 안으로 잦아드는 고독의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순간, 비감염자들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명목하에 '격리 수용'이라는 차가운 행정적 순서를 밟아야 했던 기억은 현대인들에게 거대한 실존적 충격이었다. 보건의료 시스템의 기민한 대응과 첨단 방역 사업이 확산을 막는 방패가 되어주었으나, 그 이면에 자리한 고립과 공포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온 오랜 재앙의 기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했다.

   인류는 문명과 과학의 발달을 통해 질병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왔지만, 역사적으로 재앙은 늘 예고 없이 찾아와 인간의 오만을 꺾어 놓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소설 『페스트』는 단순히 과거의 전염병 창궐을 기록한 문학 작품을 넘어, 오늘날 우리가 겪은 팬데믹의 참상을 고스란히 예언한 거울과 같다. 카뮈는 1940년대의 가상 도시 오랑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심리적 변화와 사회적 해체 과정은 우리가 마주했던 코로나19의 풍경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 우리는 왜 수십 년 전의 소설을 읽으며 오늘의 공포를 발견하는가. 그것은 페스트라는 질병이 단순히 생물학적 바이러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삶의 불합리성, 즉 '부조리' 그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카뮈가 묘사한 알제리의 해안 도시 오랑은 지극히 평범하고 지루한 곳이다. 그곳은 계절의 변화를 나무나 하늘의 빛깔이 아니라 오직 '상업적 활기'나 '날씨의 불쾌함'으로만 느낄 수 있는, 무색무취의 근대적 공간이다. 오랑의 주민들은 특별한 열정 없이 그저 돈을 벌고, 퇴근 후 카페에 앉아 권태를 반복하며 무탈한 일상을 소비하는 데 익숙한 인물들이다. 변화를 거부하고 어둠 속에서 안일하게 지내던 이들에게, 어느 날 상상을 초월하는 균열이 발생한다. 의사 베르나르 리유가 자신의 병원 복도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오랑의 거리와 골목 곳곳에는 죽은 쥐의 사체가 수천, 수만 마리로 늘어나기 시작한다.

  돌연한 쥐 사체의 출몰은 평화롭던 도시에 불길한 전조를 드리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암약하던 인체의 약점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듯, 페스트는 도시 전체를 잔인한 열병의 늪으로 욱여넣었다. 인간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진과 고열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죽어갔고, 평소 천식을 앓던 이들은 발작적인 기침을 연신 해대며 정신 착란과 고통에 짓눌렸다. 처음에 오랑 시민들은 이 비현실적인 재앙을 금세 사라질 한여름 밤의 악몽으로 치부하려 했다. 그러나 매일같이 늘어나는 사망자 수와 장례식장의 연기는 방관하던 이들의 뺨을 후려치며, 이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각인시켰다. 카뮈는 이를 통해 일상의 견고함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 폭로한다.

  위기 상황이 도래했을 때, 언론과 사회 지도층의 태도는 그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리트머스시험지가 된다. 본래 언론은 객관적인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이슈를 통한 올바른 여론 형성으로 당면한 현안을 해결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공적 기능을 수행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페스트 초기, 오랑의 현지 언론과 행정 기관은 주민들의 혼란과 동요를 막아야 한다는 명목하에 쥐 사건을 가볍게 보도하거나 환자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애써 외면하였다. 문제를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기득권의 태도는 재앙의 규모를 키우는 기폭제가 되었을 뿐이다.

  주검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도시가 전면 봉쇄되는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자, 시민들의 불안감은 극도로 증폭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페스트균에 감염되지 않은 '현재의 상태'에 안도하는 인간 중심주의자들은 눈앞의 비극을 타자화했다. 그들은 이 불쾌한 전염병이 자신을 비껴가기를, 그저 빠르게 그리고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계산하는 이기주의는 페스트가 퍼지기 가장 좋은 심리적 토양이었다. 카뮈는 이러한 방관적 태도야말로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영혼의 페스트라고 고발한다.

  페스트의 기습으로 도시는 완벽하게 봉쇄되었고, 외부에서 온 여행자들은 순식간에 오랑에 억류되는 처지가 되었다. 신문기자 랑베르처럼 우연히 도시에 발을 들였다가 갇힌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강제로 떨어져야 하는 생이별의 고통을 겪었다. 그들은 상대에 대한 짙은 그리움과 외로움 속에서 매일 밤 불면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오직 질병이 종식되는 날 연인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만이 그 극단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봄에 시작된 페스트는 습하고 무더운 여름을 지나며 더욱 흉포해졌다. 뜨거운 태양 아래 도시는 거대한 감옥으로 변했고, 절망한 이들은 도시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였지만 삼엄한 군대의 총칼 앞에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페스트는 인간이 오랜 시간 쌓아온 전통적인 유대 관계를 여지없이 해체해 버렸다. 감염에 대한 공포는 이웃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게 만들었고, 개인들을 철저히 고립시켜 각자의 고독한 세계로 폐하였다. 게다가 행정 기관에서는 범죄와 사회적 혼란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야간 등화관제를 시행했고, 이는 도시의 물리적·정서적 어둠을 가중시켰다. 상업 활동을 비롯한 경제 활동 전반이 무너지면서 실업자가 양산되었고, 가난한 이들은 질병의 위협에 굶주림의 고통까지 이중으로 겪어야 했다. 재앙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부터 잔인하게 부수어 나갔다.

  그러나 인간은 재앙 앞에 그저 무력하게 무릎 꿇지만은 않았다. 관리 대상이 되어버린 인간의 죽음을 한 명이라도 더 줄이기 위한 숭고한 노력들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권력의 강요가 아니라, 건전한 시민 의식을 지닌 이들의 자발적인 연대를 통해 빛을 발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페스트라는 거대한 부조리를 대면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응전한다. 파늘루 신부는 페스트를 신이 인간의 죄를 벌하기 위해 내린 '신의 채찍'이라고 설교한다. 그는 페스트의 제일선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헌신을 보이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인간이 신 앞에 무릎 꿇고 회개함으로 감염병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죄 없는 어린아이가 페스트 고통 속에서 처절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후, 그의 교조적 신념은 심하게 흔들리게 된다.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리외는 종교적 구원이나 거창한 영웅주의를 거부한다. 혈청 주사조차 생명의 안전을 완벽히 지켜준다고 장담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는 묵묵히 의사로서의 직분을 다하며 페스트 최전선에서 환자들을 치료한다. 그는 사망하는 시민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수 있음을 차갑게 예견하면서도, 전염병 감염 예방과 당장의 치료를 자신의 절대적인 과제로 삼았다. 그에게 반항이란 대단한 이념이 아니라, 눈앞의 죽음을 막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성실성' 그 자체였다. 그와 함께한 타루는 누구보다 먼저 자발적으로 '시민 보건대'를 조직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페스트로 인해 건강과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도 이웃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행동했다. 여기에 도망치려 했던 기자 랑베르 역시 개인의 행복보다 공동체의 고통에 연대하는 것이 더 가치 있음을 깨닫고 보건대에 합류한다. 이처럼 다양한 실천을 통해 연대해 나간 이들의 행보는 인간이 부조리한 운명에 대항해 거둘 수 있는 숭고한 가치를 실현하였다.

자비 없는 총탄과 폭력에 쓰러져 간 수많은 생명체, 그리고 원자폭탄 투하로 흔들린 인류의 존엄성을 떠올릴 때, 세상에 존재하는 이 거대하고 형이상학적인 악(惡)에 맞서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소설 속 오랑 시(市)는 기나긴 겨울이 오면서 마침내 페스트가 종식될 조짐을 보인다. 언제 끝날지 몰라 숨죽였던 페스트가 물러가자, 사람들은 그동안 마음속 깊이 켜켜이 쟁여 두었던 감정과 표현의 실타래를 풀며 환희에 찬 목소리로 환호했다. 거리는 다시 활기를 찾았고, 봉쇄는 해제되었으며, 인간들은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서술자인 의사 리외는 준엄한 경고를 남긴다. 그는 페스트 제일선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쓰러져 간 동료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기록한 이 연대기를 통해, 우리 곁에 여전히 상존하는 페스트균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한다. 리유의 영혼의 동반자였으나 종식 직전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타루 역시, 자신의 수첩에 페스트 환자들의 일상을 담담히 기록하며 '페스트균은 결코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인류가 뼈저리게 알아야 함을 일깨웠다. 페스트균은 수십 년 동안 방이나 지하실, 트렁크나 손수건 속에 숨어 살아남아 있다가, 언젠가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또다시 자신들의 죽음의 숙주인 쥐들을 깨워 행복한 도시로 보낼 날이 올 것이라는 카뮈의 불길한 예측은 단순한 소설 속 경고가 아니다.

   우리는 코로나19라는 현대판 페스트를 겪으며 카뮈의 경고가 여전히 유효함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감염병 창궐로 불안과 공포가 지배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제 어떤 생각과 태도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카뮈가 『페스트』를 통해 던진 질문의 답은 명확하다. 재앙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것이며,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부조리하다. 그러나 그 불확실하고 부정확한 것에서 오는 공포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바로 인간의 '연대'와 '소통'에 있다. 리외와 보건대 대원들이 그러했듯, 생명의 존엄함을 깊이 인식하고,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며,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모일 때 우리는 비로소 부조리한 운명의 주인으로서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이다. 오랑의 연대기가 남긴 가르침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실존적 나침반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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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 라이벌편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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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VORA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거대한 수레바퀴와 같지만, 그 바퀴를 굴리는 동력은 종종 두 개의 점이 부딪히며 발생하는 치열한 마찰음에서 비롯된다.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라이벌은 때로 평행선을 긋는 적대적 관계에 놓이기도 하지만, 그 충돌의 에너지는 때로 시대를 앞당기는 혁신의 불꽃이 된다. 《벌거벗은 세계사: 라이벌편》은 르네상스의 천재들부터 현대 국제 정세의 화약고까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결정적 맞대결을 통해 우리가 미래를 향해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깊이 있게 통찰한다.


   먼저 16세기 영국 왕실을 뒤흔든 메리 스튜어트와 엘리자베스 1세의 대립은 권력과 생존이 얽힌 잔혹한 드라마를 보여준다. 생후 6일 만에 왕위에 오른 메리는 빼어난 미모와 정통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종교 분쟁과 음모라는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시기와 질투의 표적이 되었다. 그녀의 참수형으로 두 여왕의 서슬 퍼런 갈등은 비극적으로 일단락되었으나, 사후 메리의 아들 제임스 6세가 영국을 통합 통치하게 된 대목은 역사가 남긴 기묘한 아이러니다. 이는 개인의 승패를 넘어 역사의 흐름은 결국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화합의 지점을 찾아간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예술의 영역에서 라이벌은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외모와 성격, 작업 방식까지 모든 면에서 대조적이었으나, 서로의 존재 자체가 서로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드는 자극제가 되었다. 스포르차 가문의 후원 속에 연출력의 정점을 찍은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과, 인간의 고통을 대리석에 새겨 넣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그들의 보이지 않는 경쟁이 낳은 인류의 유산이다. 그러나 경쟁의 이면에는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처럼 성별과 권력 구조에 가려진 비극도 존재한다. 협업을 통해 <지옥의 문> 같은 걸작을 탄생시켰음에도, 로댕이 명성을 쌓는 동안 클로델은 예술계에서 소외되어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 이는 경쟁이 누군가에게는 성장의 발판이 되지만, 공정함을 잃었을 때는 파멸의 굴레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건축가 가우디의 사례는 라이벌이나 후원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한 도시의 정체성을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다. 대장장이 아버지의 감각을 물려받은 가우디는 평생의 조력자 구엘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자연의 원리를 건축에 녹여냈다. 척박한 지형을 파괴하는 대신 곡선의 미학으로 극복하고, 공사장의 부산물을 재사용하여 세운 기둥들은 시대를 앞선 생태적 건축의 효시가 되었다. 반면, 현대의 라이벌인 이란과 이스라엘의 대립은 여전히 풀지 못한 인류의 숙제다. 과거의 협력자에서 현재의 숙적이 된 이들의 대결은 핵 개발과 종교적 신념이 충돌하며 전 세계 경제와 평화를 위협하는 복병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수많은 맞대결의 민낯은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라이벌은 나를 무너뜨려야 할 적인가, 아니면 나를 완성하는 거울인가. 시기와 질투에 매몰된 경쟁은 메리나 클로델처럼 비극으로 끝나거나 이란과 이스라엘처럼 공멸의 위기를 부르지만, 가우디와 구엘처럼 서로를 지지하거나 두 르네상스 천재처럼 서로의 재능에 자극받을 때 역사는 진보한다. 우리는 이제 '누구를 이길 것인가'가 아니라, '상대와 함께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타인의 존재로 나의 한계를 시험하고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동력으로 삼는 지혜로운 태도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갈 가장 강력한 에너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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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발자취를 찾아서 - 인도·네팔 불교 성지 순례
황동욱 지음 / 지식과감성#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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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43일간 인도 도보 순례를 위하여 길을 떠나는 순례자들의 걸음에 담긴 의미를 새기며 <<붓다의 발자취를 찾아서>> 책을 폈다. 순례단은 길 위에서 대중에게 전법을 설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 상구보리(上求菩提)를 실천하던 길 끝에서 열반에 든 부처님의 생애를 좇아 길을 나섰다.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에서 열반지인 쿠시나가르에 이르는 불교 8대 성지를 차례로 훑으며, 사진과 함께 게송을 읊듯 순례지를 찾았다.

미미한 인간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예고 없이 겪고 삶의 의미를 빼앗긴 채 하루하루 살아내는 여정에 붓다의 발자취를 따라 걸었다. 각기 다른 시간을 보내던 순례객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떠나는 여행의 첫 관문인 공항 개찰구는 동일한 목적을 띤 사람을 순례자라는 이름으로 묶어 준다. 축적된 시간이 쏟아내는 사연을 채 주워 담기 전에 부처님의 궤적을 따르는 인연의 깊이는 간절한 바람이 빚은 생의 무늬이다.

저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는 불제자로 당대 불교 지혜의 요람이었던 날란다대학이 붉은 벽돌로 남아 붓다의 가르침을 증명할 뿐이다. 쌓인 붉은 벽돌 더미 속에 사려 둔 부처님의 법음을 널리 전하는 후대의 불제자로 서는 지혜를 갈구하며 순례자는 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여래는 열반하지 않되 열반한다고 말한다.’

중생들이 여래의 무량한 수명을 알면 태만해질 수 있어 열반한다 말하여 정진하는 삶의 방편으로 삼은 역설적인 표현에 담긴 의미를 되새긴다.

영취산 칠엽굴 협소한 공간에서 500여 명의 비구들이 모여 경(經)과 율(律)을 합송하는 제1차 결집(結集)이 있어 후대에까지 붓다의 가르침이 이어지고 있다. 아비를 굶어 죽음에 이르게 한 죄를 지은 아자타삿투왕은 이를 참회하며 칠엽굴 결집을 후원하였다. 아자타삿투왕이 뒤늦게라도 죄를 뉘우치고 오백 나한의 결집을 후원하여 부처의 가르침이 전승될 수 있도록 하여 순례자의 꿈을 실현하게 했다.

부처님의 최초 설법지인 사르나트의 녹야원은 수행하다 헤어진 다섯 비구를 만나 수행 공동체를 이뤄 불도에 정진한 곳이라 의미가 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성도의 땅 보드가야 마하보디 대탑을 맨발로 참배하며 이천 칠백 년 전 맨발로 전역을 유랑하여 설법을 전한 부처님을 떠올리며 신심을 두텁게 하는 상상에 젖는다.

불법이 스미어 있는 공간으로 현장 공부를 나서는 성지 순례자의 바람을 품고 지금의 시간에 집중한다. 죽음을 향하여 흐르는 생명의 시간은 붙잡을 새도 없이 유유히 흘러간다. 고해와 같은 인간세상에서 불법을 만난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탐(貪)진(瞋)치(痴) 삼독(三毒)을 버리고 자비를 행하며 선업을 쌓는 생활인으로서의 나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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