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 브렌트 이야기 - 어느 흑인 노예 소녀의 자서전 뿌리와이파리 알알이 2
해리엇 제이콥스 지음, 이재희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1년 2월
품절


할머니의 주인이 죽자, 상속인들이 재산을 나눠가지게 되었다. 과부가 된 안주인은 자기 몫으로 호텔을 상속받아 계속운연했다. 할머니는 안주인의 노예로 남았지만 할머니의 자식들은 주인의 자식들에게 분배되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다섯 자녀 중 막내인 벤자민 삼촌은 상속자들끼리 재산을 공평하게 나눠갖기 위해 다른 집으로 팔려 갔다.-14쪽

"용기 내라, 린다." 피터 아저씨가 말했다. "나한테 단검이 있어. 내가 살아 있는 한 누구도 널 건드리지 못하게 할거야."-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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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1 18: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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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1 18: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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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1 18: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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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브렌트 이야기 - 어느 흑인 노예 소녀의 자서전 뿌리와이파리 알알이 2
해리엇 제이콥스 지음, 이재희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내가 1800년대의 미국 남부에서 태어나 노예를 부리고 살았다면, 부모님과 조부모님을 비롯하여 이웃들로부터 '흑인이 노예가 되는것, 그들을 사고팔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 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면 나는 어떤 마음과 어떤 태도로 노예들을 대했을까. 사소한 잘못으로 발가벗겨진 채 채찍으로 맞는 그들을 보면서 '잘못했으니 이정도 벌을 받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드물지만, '이건 옳지 않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을까? 나는 똑똑한 사람도 아니고 남들보다 빨리 깨우치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 충실하게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이니, 내가 그들중 유별난 사람, 그러니까 '노예도 사람이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노예로 부릴 권리가 없다'는 생각을 결코 해내지 못한채로 늙어 죽어가게 됐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을까봐 그 당시에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을 핍박하는 위치에 놓여있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고. 그 위치에 놓여있다면 나는 그것이 마치 내 권리인 듯 그렇게 지냈을지도 모른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그들을 때리고 구박하면서 또 굶기고 학대하면서.




여기, [어느 흑인 노예 소녀의 자서전] 이란 부제를 단 책이 있다. 제목 그대로 노예였던 소녀가 자유로운 입장이 되어 자신의 생활을 비롯 다른 노예들의 실상까지 낱낱이 고하고 있다. 그녀가 말하는 노예생활은 묵묵하고 담담하게 읽어나갈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이런 삶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몇 번이나 되묻고 싶어진다. 가족들과의 생이별, 숱한 채찍질, 소녀가 되면서부터 시작되는 성적 희롱, 인간이라 취급받기 보다는 물건처럼 취급되어져 팔려가는 생활. 당시의 노예주들은 그들을 인간 취급하지 않았다. 노예가 낳은 아이까지 자신이 돈을 받고 팔았다. 


당시 남부에선 이런 노예제가 있었지만 북부는 그렇지 않았다. 노예들은 북부로 도망가기를 그렇게 자유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도망노예법'이란 무시무시한 법이 만들어진다. 



이 땅 위에 완벽한 지옥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마지막 한 가지가 아직 남겨진 상태였는데, 1850년 마침내 그 일이 완성됐다. 바로 도망노예법의 시행이었다. 이제 어떤 주, 어떤 도시, 어떤 마을에도 추격자에 쫓기는 도망노예들이 몸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이제 내가 용맹한 사람들의 고향이며, 자유의 땅인 미국을 돌아다니면, 나라를 지키는 관료는 단 한 명도 없고, 나를 사냥하려는 추격자만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의 독립선언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은 자명한 진리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양도할 수 없는 권리, 즉 생명과 자유에 대한 권리,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부여받았다.' 오늘날 미국에서 흑인의 권리는 어디에 있는가? 한때는 흑인들에게 부여된 권리가 있었다. 그렇다. 투쟁의 시절, 그들으느 나라를 위해 피 흘리고 죽어갈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위업은 잊혔고 그들이 썼던 총검은 그 자손들의 사지를 묶는 쇠사슬과 족쇄로 변했다. 자유를 위해 싸웠던 독립전쟁에서 맨 처음 쓰러진 자는 흑인이었다. 나는 바로 그의 형제인 한 흑인 노예가 채찍질과 족쇄를 피해 달아다나가 붙잡혀, 자유를 기리는 기념비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곳에서 다시 노예제로 질질 끌려가는 걸 지켜봤다. 그것도 그곳에 그가 있는 줄도 몰랐던 남부 노예주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북부인들의 손에 의해서 말이다.  (p.341)



그 비참한 생활을 책장으로 넘기다보니 어쩔 수 없이 몇 번이고 눈물이 고인다. 그 힘든 생활들 때문에, 그 힘든 생활을 버텨나가려는 사람들 때문에. 그리고 그런 생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찍 철들어 버리는 어린아이들 때문에.



새벽이 되기 전에 가족들이 다시 나를 은신처로 데려다주려고 왔다. 아이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자세히 보려고 커튼을 옆으로 밀었다. 달빛이 아이의 얼굴에 비쳤다. 나는 몇 년 전 도망가던 날 밤 그랬던것처럼 아이 위로 몸을 숙였다. 그리고 방망이질 치는 가슴에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아이가 흘리기엔 너무나 서글픈 눈물이 엘렌의 뺨으로 흘러내렸다. 아이는 마지막 입맞춤을 하더니 내 귀에다 대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엄마, 난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엘렌은 실제로 그랬다. (p.215)



아들이 대답했다. "엘렌이 떠나기 전 어느 날 처마 밑에 서 있었던 적이 있어요. 근데 헛간 위에서 누군가 기침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나도 왜 그 사람이 엄마라고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엘렌이 떠나기 전날 밤 엘렌이 방에 없었어요. 근데 할머니가 그날 밤에 엘렌을 방으로 다시 데리고 왔어요. 나는 아마도 엘렌이 가기 전에 엄마를 만났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왜냐면 할머니가 엘렌한테 '이제 자거라. 그리고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ㄴ된다'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나는 엘렌한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침 소리를 듣고부터 집 쪽에서 엘렌이 다른 아이들이랑 놀고 있으면 아이들도 엄마의 기침 소리를 듣게 될까봐 다른 쪽으로 데려갔다고 말했다. 플린트 씨가 오는지 항상 망을 보았다고도 했다. 만일 플린트 씨가 보안관이나 순찰대원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보이면 항상 할머니에게 이 말을 전했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사람들이 집 쪽에 있으면 왜 아들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는지 알게 됐다. 그때는 아들이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지 짐작이 안 가 걱정스러웠었다. 그런 사려 깊음은 열두 살 소년에게는 지나친 것이었다. (p.237)




문학(文學) [명사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또는 그런 작품소설희곡수필평론 따위가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



고통스러운 긴 시간후에-그녀는 7년간 다락방에 숨어지낸후 뉴욕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유를 찾고, 노예제를 폐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그녀의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책으로 적어낸다. 그래서 나는 1840~1860년대 미국 남부의 노예들의 생활을 읽을 수 있었고 그래서 알 수있게 되었다. 



문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여 기록하는 것, 그 기록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 열 명이 됐든 백만 명이 됐든, 책으로 세상에 나오는 순간, 글을 쓴 사람이 혼자만 알고 있고 생각하고 있던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 이 책이 당시에 어느 정도의 반향을 일으켰을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분명 '우리는 노예제를 하고있지 않지' 라며 나름 자부심을 느꼈을 북부인들도 남부의 제도를 묵인했던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주인이 있는 앞에서 '너는 이 집의 노예 생활에 만족하느냐' 고 묻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목사들도 자신의 짧은 생각에 후회할것이다. 노예제에 전혀 관심이 없던 누군가였다면 이 책을 읽고나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곳에서 이런 비참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땅을 치며 우리가 이런 것을 어떻게든 고쳐야 되지 않겠냐며 목소리를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모두가 그 당시의 상황이 기록되어 책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읽혀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 기록은 한사람이 다른 한사람에게 전할 수 있다. 그 한사람은 또다시 다른 한사람에게 그 사람은 또 다른 한사람에게 건넬 수 있다. 가려두고자 했던 악법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고 이제 사람들은 그 법을 다시 한 번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그러기까지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드러냈기에 사회는 그것을 고칠 가능성을 더 많이 갖게 되었다.



문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기록으로 남겨 주변인에게 또 후세에 전했던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 있다는 데에. 당신들이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에, 그걸 내가 이제는 알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음은 당신들의 역할 덕분이란 걸 알 수 있게 됐어요, 고마워요. 우리는 우리가 고마워해야 할 대상에게 고마워할 수 있다. 그걸 문학이 해준다. 




많은 것들이 고마워지는 그런 책이다.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 준 작가에게, 그녀에게 책을 쓰라고 권한 그녀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녀의 원고를 편집해준 편집자에게. 무엇보다 이런 사실을 나(를 포함 다른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알려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 문학에게 고마워진다. 책장을 덮으며 세상에 문학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문학은 나보다 오래전에 탄생했고 나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이 세상에 끝까지 살아 남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문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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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8 01: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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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8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르고숨 2013-10-18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적 정의' 이미 충만하신 다락방 님은 정말, 훌륭한 독자이시자 문학가. 숙연해지는 리뷰 고맙게 읽었습니다.

다락방 2013-10-18 13:25   좋아요 0 | URL
좀 진정한 뒤에 썼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격할 때 써가지고 흥분된 글..이 되어버리고 말았네요. 부끄럽게....

[시적 정의] 아직 안샀는데...( ") 킁킁.

다다 2013-10-18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분된 글'이 참 살아있네요 너무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

다락방 2013-10-18 16:48   좋아요 0 | URL
저는 책이 참 좋습니다, 소금꽃님!!

페크pek0501 2013-10-20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은 <시적 정의>를 읽을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이미 문학의 존재 이유를 알고 있으므로.
<시적 정의>를 읽은 사람으로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다락방 2013-10-21 14:16   좋아요 0 | URL
아, 페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는 오히려 더 [시적 정의]를 읽고 싶어지는데 말입니다!! 흐흣
 

알리데는 자기 농장에 있는 마리아 크릴을 만나러 갔다. 크릴 할머니의 사악한 눈과 지혈하는 능력은 알리데가 태어났을 때부터 유명했기 때문에 알리데는 할머니의 능력에 대해선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크릴 할머니에게 자기 처지를 봐 달라고 하려니 찾아가기가 어색했다. 알리데는 누구에게도 자기의 괴로움을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달리 기댈 데가 없었다.

마리아 크릴은 마당 긴 의자에 고양이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알리데가 올 줄 알았다고 했다.

"무슨 일 때문인지도 아시나요, 크릴 아주머니?"

"머리 색깔이 밝은 청년 때문이지. 젊고 잘생긴." (p.133)

















한스를 먼저 발견한 건 알리데였다. 첫눈에 반해 그가 자신을 봐주기를, 자신과 눈을 마주치기를 속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런데 그가 눈을 들어 마주친 건 알리데의 눈이 아니라 알리데의 언니인 잉겔의 눈이었다. 그저 마주치기만 한거면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그 마주침에는 강렬함이 있었고 끌림이 있었다. 한스와 잉겔은 눈이 마주치고 사랑하게 됐다. 한스를 먼저 발견한 알리데의 의지와는 다르게, 알리데의 생각과는 다르게, 알리데의 기대와는 다르게.


한사람이 다른 한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누가 먼저 만났'는지가 대체 뭐가 중요할까. 그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알리데는 자기가 먼저 보았고 먼저 사랑을 시작했는데 이런 결과가 난 것이 몹시 원통하다. 한스가 언니인 잉겔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들을 볼 때마다 알리데는 저건 무슨 뜻일까, 저들은 무슨 의미를 담고 저 말을 하는걸까 몹시 궁금하다. 한스와 잉겔은 결혼하고 알리데는 그 집에 함께 살면서 그들이 서로의 시선을 좇고 들끓는 애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자꾸만자꾸만 보게 된다. 한스는 언니와 결혼했지만, 언니의 남편이지만 알리데는 한스를 포기할 수가 없다, 갖고 싶다. 그래서,



그녀는 노파를 찾아간다. 마법의 주문을 걸어줄 수 있는 노파를. 그녀는 노파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럼 나 말고 다른 사람은 바라보지 못하게 할 수 있나요?" (p.136)



이미 언니의 남편인 한스를 두고 저런 바람을 가진 알리데가 너무 가여워서 너를 위해서라도 그걸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 한스를 바라보는 마음을 한스를 원하는 마음을 멈추라고. 그러나 이미 싹터버린 사랑은 멈추라는 말로 멈출 수 없는법. 한스에 대한 사랑과 욕망에 눈이 먼 알리데는 평생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일들을 해버리고야 만다. 





나는 언제나 사랑에, 단 한사람에 대한 사랑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위험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그 사랑이 결국은 자신에게 비극을 가져올 것이 뻔한 선택을, 그들은 그 사랑에 빠져있는 동안 하고야 마니까. 왜 사랑에 자신을 던질까. 왜 사랑에 그토록 매달릴까. 왜 그들은 그토록 그 사랑을 간절해할까. 나는 영화나 소설속에서 하나의 사랑에 자신을 송두리째 던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대체 저런 삶은 어떤 삶일까' 를 생각해보곤 한다. 그리고 나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실감한다. 나로 말하자면 사랑에 나 자신을 몽땅 던지지는 않으니까. 나로 말하자면 언제나 한 발을 빼고 있으니까. 나는 극으로 치닫는 사랑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 극으로 치닫는 사랑은 극으로 치닫는 결말을 불러오니까. 그들과 나의 차이는 어느것을 더 중요하게 두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나는 내 자존심을 가장 위에 두고 그들은 사랑을 가장 위에 둔다. 그들은 그 사랑을 '어떻게든' 이루고 싶고, 나는 그 과정에 내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다면 사랑을 접거나 포기하는 쪽을 택한다.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 가슴 아파도 나는 내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 이미 다른 사람의 남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고 나를 전혀 봐주지도 않는데, 그런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든 돌려 보겠다고 묘약을 받으러 가는 그 마음이 참으로 안타깝다. '내 사랑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는 마음가짐은 대체 어디로부터 나온것일까. 왜 그것이 어떤 사람에겐 있고 어떤 사람에겐 없는걸까. 나에게는 모험심이 부족한걸지도 모르겠다. 위험한 길, 힘든 길인듯 하면 별로 가고 싶어지지 않는 그런 사람. 격렬한 연애를 할 수도 있고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질 수도 있지만, 상대가 나를 봐주지 않는 경우에 뭔가를 그다지 해내려고 할 것 같진 않다. 묵묵히 가슴아파하거나 포기하거나 할 뿐. 이 사랑을 이루게 해달라고 부적을 쓴다거나, 그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없애버린다거나 하는 일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나는 사랑에 빠졌어도 내 온 몸을 던지지는 않을것 같다. 여태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나는 이 세상에서 단단히 발 붙이고 살아가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한 몸 바쳐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사랑 받는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나는 내 온 신경을, 모든 에너지를, 더 나아가서는 내 목숨을 사랑에 걸지는 않을것이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상대 역시 그러했으면 좋겠다. 온 우주의 중심에 나를 두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상대도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자존심을 지키고, 자신을 이 땅에 설 수 있게 하는 여러가지 것들중 내가 하나였으면 좋겠다. '너여야만 해, 너 아니면 살 수 없어' 가 아니라 '너가 아니어도 살 수 있지만 가급적 너였으면 좋겠어' 라면 좋겠다. 나는 모험심만 부족한 게 아니라 세상에 내 책임이 하나라도 더 생기는 걸 극도로 경계하는 걸수도 있겠다. 뭐, 어쨌든.




소설 얘기를 조금 더 하자면, 이제는 나이가 많아버린 알리데의 집  앞에 어느날 '자라'라는 여성이 쓰러진 채로 발견된다. 남편으로부터 도망을 쳤다는 그 젊은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 둘의 과거와 현재가 반복되는데, 그 둘은 다른 시대, 다른 공간에 살았으되 같은 삶을 살았다는 걸 보여준다. 알리데가 공산주의 국가적 체제로 인해 강한 힘에 농락당했다면, 자라는 돈의 유혹에 끌려가 여러 남자들로부터 농락당했다. 여자가 남자로부터 극도의 폭력에 노출되었다는 것, 그들이 반항하기에 상대가 너무 강했다는 것, 자신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누군가 알아볼까 늘 두려워한다는 것이 그녀들의 공통점이었다. 가난했던 상황에서도 돈이 많아진 상황에서도, 여기에서도 그리고 거기에서도. 끊임없이 폭력은 행해지고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그 폭력으로 인해 평생 고통스러운 것으로 채워지고야 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여긴 거기와 다르다고? 아니, 다르지 않다.








그건그렇고,

어제는 돼지두루치기를 해보겠다며 두시간동안 부엌에 있었고, 별로 맛도 없었던 식사후 설거지를 하겠다며 또 한시간동안 부엌에 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오늘부터는 씨리얼을 우유에 말아 먹으리라. 그러면 딱 그릇 하나 숟가락 하나만 쓰면 된다. 무슨 대단한 요리를 했다고 어제는 숟가락이란 숟가락 다 꺼내쓰고 그릇이란 그릇 다 꺼내써서 저녁 한 끼 먹는데 만신창이가 됐단 말인가. 그래, 이제부터는 씨리얼이 내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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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3-10-16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이야기하기를.. 사랑은 '능력과 의지를 최대한 발휘하더라도 부족함이 드러날 수 있고 자존심이 상할 수 있다' 고 하더라구요. 개인적으로는 이 문장에 동감하는 편입니다. 자존심도 상하고.. 무너지더라도 그런 게 사랑의 과정이라고 여기고 싶네요. 물론 많이 아프기는 하겠죠. 그래서 사랑이라는 말에 모든 것을 다 던지는 그런 사람을 이해할 것 같아요. 그러나 사람들마다 사랑에 대한 생각은 다 다른 것 같아요. 다락방님의 말씀이 더 정확할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가 아니라도 상관없지만 가급적 너였으면 좋겠다, 와 같은 선택을 모든 것을 다 사랑에 거는 사람들은 절대로 하지 못할거 같네요. 뭐, 이렇게 끄적거리는 저도 아픈 사랑은 좀 피하고 싶지만...

다락방 2013-10-17 11:18   좋아요 0 | URL
저도 온 몸을 다 던져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을 이해해요. 다만 저는 그러지 못할 것 같아요. 가끔은 그렇게 온 몸을 다 던져 사랑에 바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고요. 한 상대에게 올인한다니, 그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그야말로 그 가치는 최상이 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러나 저는 제 모두를 다 던지기엔 제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것같아요. 모든걸 다던져 이사랑을 쟁취해보자 라는 생각보다는 무너지지 않게 나를 잘 붙들자 라는 쪽의 생각을 한달까요.

어제 현빈이 티븨 광고에서 눈밭을 달리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남동생에게 말했어요.

난 현빈이 참 좋지만 현빈이 자기랑 눈밭을 달리자고 하면 거절할거야. 라고.

그러자 남동생은 저에게 "그런 걱정은 하지마" 라고 하더군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dreamout 2013-10-16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을 살짝 바꿔서, 오늘 제 마음을 표현하자면..
회사를 위해 이 한몸 던지는 일은 없을겁니다. 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런데 보이지않는 압박감이 계속 느껴지는 건, 아마 벌써 상당히 길들여졌기 때문 아닌지...

다락방 2013-10-17 11:22   좋아요 0 | URL
가끔 제가 너무나 많은 시간을(오전 8시-오후 6시) 회사에서 보내고 있단 생각을 들어요. 게다가 출퇴근시간은 또 한시간씩. 신해철의 [도시인] 노래 가사대로 '직장이란 전쟁터' 까지는 아니더라도 '집이란 잠자는 곳'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씁쓸해요. 저 역시 회사를 위해 한몸 던지는 일은 결코 없을거에요. 전 회사가 제 가장 중요한 축이 되게 하고 싶진 않아요. 회사는 사실 좀 중요하긴 하지만-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가지 것들중 하나가 되어야만 하지, 그게 중심이 되는건 정말 싫어요.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게 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렇지만 저 역시도 길들여져 있을지도..

네꼬 2013-10-16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님 요새 요리에 관심 생겼어요? 라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씨리얼 먹겠다는 결심을 보니, 역시 당신이라는 여자는 중간이 없는 여자. 돼지 두루치기 아니면 씨리얼이라니.

다락방 2013-10-17 11:24   좋아요 0 | URL
제가 요리에 관심이 생길리가 있겠습니까.
엄마가 여동생 산후조리 때문에 여동생 집에 가 계셔서 집에 밥과 반찬을 제가 하고 있어요...맨날 김치만 꺼내먹고 스팸만 부쳐먹을 순 없어서....그래봤자 반찬은 두루치기가 유일했고 국은 김치찌개랑 된장찌개 끓여봤는데 남동생이 먹어보더니 '누난 도대체 왜이러냐' 라고 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그것밖에 없어서 먹긴 먹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3-10-17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리얼은 아침에.... 돼지 두루치기는 저녁에...

다락방 2013-10-17 11:26   좋아요 0 | URL
아침부터 씨리얼이라니. 말도 안돼요! 그건 너무 초라한 아침이에요! (이러면서 무슨 저녁에 씨리얼이람 ㅋㅋ)
당연히 어제 저녁도 씨리얼은 아니었어요. -_-

Mephistopheles 2013-10-17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립하셨어요???? ( 아머님 동생 산후조리...^^)

동생분이 어머님께 많이 고마워하실 것 같습니다. ( 남동생이요! )

다락방 2013-10-17 14:20   좋아요 0 | URL
독립은 그러니까..나중에........( ")

별로 고마워하는 것 같지 않던데요. 맛을 보면.....Orz

Mephistopheles 2013-10-17 16:5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께가 아닌 어.머.님.께.요.

다락방 2013-10-17 17:09   좋아요 0 | URL
아 저 오독했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머님께 라고 써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2년 3월
구판절판


"지금 당신처럼 권력이 없어지면 사람들이 당신에게 진실을 말한다는 문제가 생길 거야. 당신은 그런 상태에 익숙하지 않겠지. 당신은 당신이 발산하는 공포로 둘러싸인 세계에 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함께 지내려면 그 망상에 찬 낭만주의는 접어둬야 해. 우리가 같이 지내는 건 상황 때문이야. 당신에겐 내가 있고 내겐 당신이 있지. 그것 외에는 사실 별게 없어. 우리가 함께있으려면, 지금부터 난 당신에게 진실만 말할 거야. 더 이상 당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거짓말은 하지 않아. 우린 전에는 한 번도 그렇지 못했지만 이제는 평등한 사이가 될 거야. 그걸 받아들여."-250-251쪽

"세상엔 두려워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 당신이 그중 하나가 돼선 안 되는 거잖아."-251쪽

"아니다. 레오, 내 말을 들어라. 넌 종종 네가 우리에게 뭘 해줘야만 우리가 널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어릴 때도 그랬어. 그건 그렇지 않아. 너도 너의 삶을 살아야지. 우린 늙었어. 어디에 살든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너의 소식을 듣기 위해서였어. 이번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보는 거란 현실을 받아들이자. 덧없는 계획은 세우지 말자. 할 수 있을 때 작별 인사를 해두자꾸나, 레오. 난 너를 사랑하고 네가 자랑스럽다. 네가 더 나은 정부를 섬길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3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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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0-16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월 알라딘 영화쿠폰 안쓰시는 분 저 좀 주세요!

2013-10-17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3-10-17 17:0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금요일에 둘째조카가 태어났다. 토요일에 조카를 보러가서는 자고 있는 작고 작은 조카를 보았다. 진작에 여동생 집에 가서 첫째 조카를 봐주고 계신 엄마는 갓 태어난 둘째 조카를 보고 아주 잘생겼다고 말씀하셨는데, 눈을 감고 있는 아가를 보고 어떻게 잘생겼다는 걸 알수 있을까? 하하.

 

 

점심을 먹으러 남동생과 엄마와 병원 앞 콩나물국밥집에 들렀다. 콩나물국밥 하나와 콩나물오징어찜을 시켜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한 무리의 남자사람손님들이 들어왔다. 여덟명쯤 되어 보였는데, 먼저 들어와있던 사람이 위치를 설명하기 위해 누군가와 통화를 하기도 했고 종업원에게 여긴 뭘 잘하느냐며 큰 소리로 물어 자연스레 시선이 갔다. 40대 후반쯤으로 보였던 그들은 아마도 동창회모임 같은걸 하는 중인것 같았다. 모두 자리에 앉고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려 옆으로 갔는데 그들중 한명이 "아가씨" 라고 불렀고, 다른 한 명은 "야, 아가씨가 아닌데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도 실례야" 라면서 자기들끼리 소란스레 웃었다. 아, 싫겠다, 싶어 나도 좀 짜증이 났다. 밥을 다 먹고 나오면서 남동생이 그랬다. 콩나물국밥 집에 와서 여종업원 희롱하다니 참 한심하다, 라고. 나는 남동생에게 그러게, 너는 절대 저렇게 늙지마, 라고 말해주었다.

 

여종업원은 나랑 비슷하거나 약간 더 나이가 많은듯 보였다. 그들은 아무리 여덟명이었어도 옆 자리에 앉아있던 내게 희롱할 수는 없었을거다. 감히 상상도 못하겠지. 그러나 그녀에겐 그랬다. 나와 그녀 모두 여자사람이었는데, 그녀가 나와 다른 게 있다면 그녀가 그 식당의 '종업원' 이었다는 거다. 지난번에 '한승태'의 [인간의 조건]을 읽고 씁쓸해했던 기억이 났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종업원 이나 점원인 상대를 무시한다고. 자신이 '손님' 이기 때문에 '종업원' 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당연히 생각하고 있다고. 그 당연함이 무시를 부른다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당연함이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도 깨달았다. '당연히' 좋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야말로 독단'일 수 있다는 것을.

 

 

거기 보니까 애들 데리고 온 학부형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학부형들한테 애들 오는 데 쫓아오지 말라고, 당신들 때문에 아이들이 이렇다고 그랬어요. 대체 뭘 보려고, 무슨 지적 허영을 부리려고 여기 왔냐고, 오버들 하는 거 아니냐고. 아이한테 인문학 강의를 듣게 해주는 그런 엄마랍시고 다들 뿌듯한 얼굴이더라고요. 오늘도 강의 가서 많이 느꼈는데, 이런 엄마들 위험해요.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는 엄마보다 이 사람들이 더 무섭다고요. 자기들의 가치관을 주입하는 거예요.

80년대 학번 아줌마들이 대안 교육을 한다는데, 이게 문제예요. 사회는 대안이 없는데, 사회를 바꿔놓고 대안 교육을 시켜야 하는 거잖아요. 대안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사회에 나오면 힘들어해요. 자기가 대안 학교에서 배웠던 걸로는 사회에서 못 살아요. 그래서 그 아이들이 상상마당 강의에 다 들어와요. 제가 대안적인가 봐요.(웃음) 대안 교육이란 게 아이를 가지고 또 하나의 실험을 하는 거예요. 그 아이들 인터뷰하면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대안 교육 싫다고 하는 애가 반이에요. 좋아할 것 같지만 싫어해요. 좋아한다는 얘기만 들은 사람들은 침묵하는 애들을 안 봐서 그래요. 저라도 그럴 것 같아요. 어머니의 숭고한 이념을 못 따라가는 것도 있을 테고, 애들이랑 게임하고 놀고 싶은데 산에 들어가서 자연하고만 놀고. 너무 고상한 것만 하잖아요. TV도 보고 싶을 텐데. 대안 교육이 실패한 이유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기 이념을 사랑했다는 데 있어요. 형식과 절차, 이념이 다 정해진 엄마들이 무슨 교육을 시켜요? (pp.317-318)

 

 

대안교육을 하는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대안교육을 시킨다는 것 만으로도 스스로 뿌듯해하는 걸 간혹 목격하곤 했었다. 세상의 찌든 교육으로부터 벗어나있다는 것, 올바른 교육을 아이들을 위해 시키고 있다는 자신감. 그러나 나는 강신주의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이 결코 옳은게 아니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맞다. 그건 아이들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기 이념을 사랑하는 거였다. 내 아이에게 이런 교육이 아니라 저런 교육을 시키겠다, 하는것 역시 자기 나름대로의 이념이 정해져있는 게 아닌가. 저것은 무조건 틀렸고 이것이 옳다, 하는.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가치관을 주입하는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아이들은 부모가 만들어준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아파트에 사느냐 단독주택에 사느냐, 도시에 사느냐 시골에 사느냐 등을 자신의 의지로 결정할 수가 없다. 부모가 여기에서 살면 아이 역시 여기에서 살 수밖에 없다. 그 환경이 아이를 위해서라는 생각은 오로지 부모의 생각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아이들은 자신의 선택이 아닌 부모의 선택으로 살아가게 된다. 아이가 원하는 게 입시경쟁에 시달리며 친구들과 짬을 내어 편의점에 가서 라면을 사 먹는 거라면, 부모들이 아이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대안학교에 넣고 자연을 벗삼아 친구하게 만드는 것도 강요와 압박이 아닌가.

 

아, 정말 부모 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어려운 거구나. 생각할 게 많고도 많구나. 무엇이 아이에게 더 좋은지 머리 터지게 고민하는 것보다는 수시로 아이와 대화를 해봐야 하는거겠구나. 엄마는 이렇게 하는게 나을것 같은데 너는 어떻게 하는 게 너에게 더 좋다고 생각하니? 하고.

 

 

 

 

 

오늘, 일요일 오후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밥통엔 오래된 밥이 있어, 나는 야채를 썰고 햄을 썰어넣고 볶음밥을 만들었다. 밀린 빨래를 넣고 세탁기를 돌렸다. 설거지도 해두었고 밥도 새로 해두었다. 이 모든 과정을 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 잽싸게 해두고 책을 읽으려던 나의 계획은 지켜지지 못했다. 무슨 볶음밥 하고 밥 하고 빨래하고 하는데 몇 시간씩이 걸리는지. 다 하고나니 배고파서 저녁을 먹을 때가 되었고, 저녁 먹고 멍 때리며 티븨 보니 벌써 지금 시간이 되어버렸다. 아..허무해..허무하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들에 음악이 있었다. 오랜만에 혼자서 감자를 썰면서, 설거지를 하면서, 쌀을 씻으면서, 빨래를 널면서 음악을 들으니 이 모든 과정들이 그럭저럭 괜찮게 느껴졌다. 랜덤으로 나오는 노래들을 듣는데, 그 중 대부분을 따라불렀다. 마침 외출했던 남동생이 돌아왔다 그런 나를 보더니 '누나 즐기고 있네' 라고 말했다. 하하. 그 노래들은 이것이었다.

 

 

 

 

 

 

 

 

 

 

 

 

 

 

 

 

 

 

오늘 오후에 여동생은 아직 부어있는 자신의 손과 갓 태어난 작은 아가의 발 사진을 함께 찍어 내게 보내줬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말랑말랑 하기도 하고.

 

 

 

 

 

아, 벌써 열한시가 다 되었다. 어떡하냐. 일요일이 가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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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10-13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째 조카의 탄생을 축하드립니다^^
가끔 식당에서 아저씨들 목소리가 너무 클때, 시덥잖은 소리로 종업원 농락할 때 막 화가 나요.
일요일이 가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려요. 아쉬워요! 오늘은 늦게 아주 늦게 잠들거예요. (음 그러나 제 별명이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는...)

다락방 2013-10-16 08:18   좋아요 0 | URL
세실님, 벌써 수요일이 되었어요. 수요일만 지나면 한주도 잘 보냈다는 안도감이 벌써부터 찾아들지 뭡니까. 이제 목,금만 버티면 주말이다!! 하고 말이지요. 그래봤자 일요일 밤이 되면 또 잠들지 못하고 월요일을 어떻게 맞나 걱정하겠지만. 일주일도 일상도 몇 번을 지내도 싫은건 싫은것 같아요. 하핫.

축하 고맙습니다, 세실님.^__________^

무해한모리군 2013-10-14 0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게 늙지 말아야겠다는 반성이 되네요 ㅎㅎㅎ

제게 스무살이 되는 조카가 있는데, 대화라는게 참 쉽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 '이녀석 너 잘못가고 있어'라는 낌새를 풍기게 되서 그런건지.

아가가 너무 예쁘네요 ㅎ 저 여디디 여린 아가는 무슨 꿈을 하며 코 잘까요?

다락방 2013-10-16 08:20   좋아요 0 | URL
추하게 늙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요. 가끔 어처구니 없는 어른들을 보면 그 때마다 옆에 있는 사람한테 말해요. 너는 저렇게 늙지마, 라고요. 저 역시도 그렇게 다짐하고요. 나이 많다는 게, 돈이 많다는 게 다른 사람들을 하대하고 무시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할텐데, 그걸 왜 모르는지 모르겠어요.

대화라는 게 쉽지 않죠, 정말. 같은 장면을 보고 같은 단어를 입 밖으로 뱉어내도 서로가 받아들이는 뜻은 다르더라고요. 허무할 때가 많아요. 누군가 제게도 그런 느낌을 받겠죠.


신생아실에 있어서 그저 보고 오기만 했는데 다음번엔 품에 안아볼 수 있겠죠? 작은 발을 만져보고 싶은데 날씨가 차가워 제 손까지 차가울까봐 선뜻 손내밀지 못할것 같아요.

아무개 2013-10-15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둘째 조카 탄생 축하해요!

2.쌀쌀한 아침이에요. 동생분 조카들 다락방님 모두모두 감기 조심!!

3.강신주는 가끔 멘트가 너무 쎄요. 특히 사랑에 관해선 더 그렇게 느껴질때가 많더군요.
뭐 그게 매력적이기도 하지만요....^^

다락방 2013-10-16 08:21   좋아요 0 | URL
축하 고마워요, 아무개님. 아가들은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무조건 아프지말고 무럭무럭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어요. 아프면 그 작은 아이들이 고생인것도 그렇지만 그걸 보는 어른들의 마음이 무너져요 ㅠㅠ

강신주는 너무 과격해요 아무개님. 강신주의 대부분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선뜻 그를 좋아할 수는 없는건 바로 그 과격함 때문인것 같아요. 표현에 망설임이 없달까요. 저 책은 중간정도 읽다가 말았어요. 다 읽고자 하긴하는데 딱 재미없는 부분이 시작되서 그만.. 하핫

단발머리 2013-10-14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축~~~ 둘째 조카 탄생~~~
인형 같은 이쁜이 첫째 조카는 약간의 패닉 상태가 올 수 있어요. 엄마, 아빠, 외할머니, 삼촌 모두 쪼그마한 아기한테 눈 쏠려있더라도 이모는, 다락방 이모는 꼭~~ 첫째 조카와 눈 맞춰주시길^^

2. 교육에 대한 생각에는 완전 동의요. 저도 학원 안 보내는, 사교육 반대 소신 엄마로서 (흐음~~), 내 교육적 방법과 철학에 대해서, 아이와 이야기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걸, 아이도 다 좋아하는 건 아닐테니까요.

3. 강신주님을 사랑합니다. (왜 여기서 이럴까요?) 올해 안에 책 2권 더 내신다고, 하셨어요.

4. 넘넘 이뻐요. 애기 발이랑 아직도 부기 안 빠진 엄마 손. 새 사람이네요. 새 사람...

다락방 2013-10-16 08:24   좋아요 0 | URL
아직 둘째가 눈 감고 있어서 그런건지 첫째한테 가는 애정은 어쩔수 없네요. 조금 더 지켜봐야 겠지만 제가 과연 그 둘을 '똑같은' 크기로 사랑할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부디 제 애정이 어느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조카들중 누구도 이모는 차별한다는 생각을 받기 보다는 '나는 이모에게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들 교육은 어렵죠. 부모도 여러번 생각해 내린결론일텐데, 아직 자신의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그런 결정이 최선일 수밖에 없지 않나 싶으면서도 그건 역시 부모기준이 아닐까 싶고. 확실히 어떤 방법을 정하지는 못하겠어요.

강신주를 사랑하지는 못하겠어요, 단발머리님. 위에 아무개님 댓글에 댓글로도 썼지만 너무 과격해요. 대부분의 의견과 생각의 고개를 세차게 끄덕여 동의하긴하지만 너무 '세서' 선뜻 좋아할 수가 없어요. 하핫


그렇게혜윰 2013-10-14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가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 것 같아요..아~~~!!!!

다락방 2013-10-16 08:24   좋아요 0 | URL
전 저 발을 만져보고 싶지 뭡니까!!!!! 작고 말랑말랑한 발요. 훗

Mephistopheles 2013-10-14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아 둘째....건강하게 자라면 그것이 최고입니다..^^

2. 원래 나이 든 인간 숫컷들은 무리를 지어버리면 아주 못된 하등습성이 표출되곤 합니다.(진화가 덜 된 증거에요)

3. 볶음밥은 버터로 볶으면 정말 맛있습니다...우히히히히..

moonnight 2013-10-14 12:26   좋아요 0 | URL
ㅎㅎ 집요하신 메피님 ^^

Mephistopheles 2013-10-14 12:53   좋아요 0 | URL
제가 집요하기 보단...그 페이퍼의 임펙트가 정말정말정말 너무 커서요...ㅋㅋㅋ

다락방 2013-10-16 08:31   좋아요 0 | URL
1. 건강이 최고라는 걸 나이 들면서 정말 실감해요 메피스토님. 이번에 제부가 심근경색으로 수술해서 문병 다녀왔고 그 다음엔 조카가 가와사키 병으로 입원해서 문병 다녀왔거든요. 어른이 아픈것도 여러가지로 걱정되지만 아이가 아픈건 진짜 못견디겠더라고요. 제발 건강하게 자라다오, 아픈건 내가 대신할게 싶은 심정이 간절해져요.


2. 나이 든 남자사람들은 '나이들고' '남자'인게 뭐 대단한줄 아는 것 같아요. 승무원 폭행도 다 나이든 남자사람들이고 식당이든 어디든 여종업원 희롱하는 것도 다 나이든 남자사람이고 말이지요. 그래도 되는줄 아는걸까요. 대체 어디서 그런 못된 생각이 들어가지고. 틈나는대로 제 주변의 젊은 남자들에게 곱게 늙으라고 잔소리좀 해야겠어요. 어휴 짜증나..


3. 어떻게 아셨어요. 저 볶음밥에 버터 넣을까 진짜 완전 미친듯이 고민했어요. 어제 계란후라이 하면서도 고민하고. 하여간 후라이팬 앞에만 가면 버터 생각이 저절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걍 빵먹을 때도 마찬가지고 말이지요. 아 버터 좋아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oonnight 2013-10-14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째 조카의 탄생을 축하드립니다!!! ^^ 둘째조카랑 첨 만났을 때가 생각나네요. (하트로 변한 눈 @_@;;)
아무리 착한 아이라도 갑자기 동생이 생기면 스트레스 받는 거 같아요. 식구들이 둘째 아이 들여다보고 있을 때 첫째 아이는 소파에 엎드려 울고 있더라는.. ㅠ_ㅠ; 다락방 이모님이 타미 꼭 안아주세요. ^^

하여간에 가끔씩 남자사람들이 진저리나게 싫어져요. ㅠ_ㅠ;;;

음악을 사랑하시는 우리 다락방님. (죄다 제가 모르는 ;;;) 맞아요. 가끔 가슴 깊이 느끼게 되는데, 음악이 위로해주는구나. 하는 기분요. 지난 달 추석에 식구들 모두 시골로 떠나고 저혼자만 집에 있었거든요. 거실의 홈씨어터로 클래식 에프엠 들으면서 청소하고 저녁준비하고 했는데, 정말... 좋더라구요. ㅠ_ㅠ (거실에 있는 덕분에 평소에는 무용지물인 홈씨어터 -_-;;;)

다락방 2013-10-16 08:39   좋아요 0 | URL
네, 충분히 사랑받고 자랐는데도 동생 타는 것 같더라고요. 첫째도 둘째도 상처받지 않게 충분히 사랑해주고 싶어요. 어휴 문나잇님 첫째 조카 얘기 들으니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

추석 연휴에 집에서 홀로 듣는 음악이라니. 와 생각만해도 여유롭고 좋으네요. 다시 그런 일상이 찾아들어야 할텐데요. 그래야 우리가 좀 숨을 쉬지요. 그치요? 흐흣

레와 2013-10-14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 한장 감동! ^^

다락방 2013-10-16 08:39   좋아요 0 | URL
아가들 사진은 어떤 모습이든 어떤 신체 부분이든 다 예뻐요. 그쵸? 헤헷 :)

프레이야 2013-10-15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째는 더더 귀엽지요. 첫조카 태어났을 때의 감격이 상기되어요. 대학생 때였근데 얼마나 놀랍고도 설레던지 ᆢ 마지막 사진, 말문이 턱 막히네요. 조 작은 발가락좀봐요. 말랑말랑한 발이 단단해지겠죠 아주 서서히. 근데 잘 생긴 사람은 눈 감아도 표가 나는 거 같아요ㅎㅎ

다락방 2013-10-16 08:40   좋아요 0 | URL
저도 조카가 태어나고 걷고 말을 시작하는 걸 보면서 심장이 터질 정도로 감격했었거든요. 이런 사랑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며 사랑하게 됐고요. 그래서 때로는 이 기쁨을 제가 여동생에게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도 생기더라고요. 하핫. 첫조카는 정말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랑을 가져다주는 것 같아요. 하핫.

네꼬 2013-10-15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고고 축하해요! 동생 가족에게 이 모든 축하들 꼭 전해주세요.
음악 틀어놓고 집안일 하는 거 좋죠. 음. 근데 가끔만 그렇죠, 그쵸?

다락방 2013-10-16 08:41   좋아요 0 | URL
가끔만 그런 정도가 아리나 저 날 하루 딱 좋았던 듯해요. 대부분은 끔찍해요 -_-

2013-10-16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16 0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