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자신의 서있는 자리가 위태로움을 느낀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학살'을 보고도 보지 못한척, 듣고도 듣지 못한척 하려하고, 그 학살을 이끄는 자들의 무리에 속하고자 한다. 그렇게 된다면, 그녀의 자리는 굳건히 지켜질 수 있으니까. 그녀는 잘 해낼수 있으리라 믿었다. 소수를 희생해서 다수가 살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은가, 자기 자신을 합리화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가,
사랑을 알게 됐다.
사랑을 알게 되니 그 사랑이 소중해진다. 그 사랑을 지키고 싶고, 그 사랑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 누군들 안그럴까. '한수영'의 로맨스 소설인 <연록흔>과 <혜잔의 향낭>에 보면 '널 사랑하기 때문에 내게도 약점이 생겼다' 라는 남자 주인공들의 대사가 나온다. 이 소설속의 여자에게도 약점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사랑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누군가를 구해내야겠다는 지켜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채 계속 두 눈 질끈 감고 잔인한 행동에 합류할 수 있었을텐데.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 계획이 위험하다는 말을 들어도 그녀는 못들은 척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나자 더이상 무시할 수 없는 말이 되고 말았다.
이 모든 일들이 서늘하게 그려진다. 서늘하고 잔인하게. 그녀가 사랑하는 순간만 잠깐, 반짝이는 불이 켜질 뿐.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구처럼.
럭이 막막한 어둠 속에서 말했다.
"뇌를 촬영한 영상이 있어요. 본 적 있어요?"
"글쎄요."
"난 본 적이 있어요. 사람의 뇌가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뇌 속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요. 그걸 포착한 사진인데, 꼭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는 것 같았어요. 불빛이 켜졌다가 꺼졌다가 다시 빛났다가 꺼졌다가. 반짝반짝하거든요."
"크리스마스트리 본 적 있어요? 여긴 더운 나라인데."
"크리스마스가 없는 곳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게 말하곤 럭이 혼자 웃었다.
"사실 직접 본 건, 리조트가 생기면서부터네요. 그것보다 더 많이 본 건 저 별들이죠. 그러고 보니, 뇌의 영상이 저 하늘을 닮은 것도 같네요. 검은 바탕에 흰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거든요."
요나는 럭을 따라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음 순간 럭의 떨리는 목소리에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내가 당신을 떠올릴 때, 내 머릿속에서는 그렇게 별이 빛나고 있을 거예요. 나도, 당신도, 그걸 직접 보지는 못하겠지만 분명 내 머릿속에서는 그렇게 별이 반짝이고 있을 거예요." (pp.188-189)
이 소설은 내내 찬바람이 부는데(물론 배경이 되는 나라는 더운 나라이지만), 이 대화가 오고가는 동안만 온기가 돌았다.
잠깐,
데워지는,
공 기.
그리고 소설은 여자와 남자를, 더 큰 바람, 더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곳으로 내몰고 만다.
조금만 더, 아주 약간만 더, 하는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흠잡을 데 없이 서늘한 소설이다. 고발성만 갖추고 마는 작품이 아니다. 작가는, 주인공에게 가차없다. 아니, 이 세상에 누가 주인공인가. 어디를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주인공은 달라지기 마련이고, 나 역시, 커다란 자연앞에 하나의 생물에 지나지 않을진데.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읽기전에 감히 말하자면, 아마도 작가의 다른 작품들보다 이 책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이 생각이 깨지면 좋을텐데. <무중력 증후군>을 읽을까, <1인용 식탁>을 고를까?
지난 토요일, 친구와 레스토랑에 들러 스테이크와 와인을 먹었다. 와인과 손톱을 꼭 한 데 묶어 촬영하고 싶었는데, 그러려고 하다보니, 스테이크가 너무 빈약하게 나와 시무룩..
지방에서 만난 우리는, 이걸 다 먹고, 후식으로 나오는 아주 맛있는 티라미수 까지 다 먹고 숙소로 돌아갔는데, 아 글쎄 친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덕진게 먹고 싶다며 족발을 주문하는거다! 그러나 우리도 사람인지라, 몇 점 먹고 포만감에 더이상 먹을 수 없게 되어 족발을 남겼는데, 크- 남긴 족발은 다음날 아침에 더 맛있어 진다는 걸 다들 알고 계시는지?
다음날 아침. 배가 고파져서 사발면에 뜨거운 물을 넣고(참깨라면~) 사다 놓았지만 다 마시지 못해 냉장고에 들어있던 맥주를 꺼내 컵에 따라 마시면서(500 두 캔이나!), 지난밤 남긴 족발을 함께 먹는데, 와- 완전 맛있는거다. 그 시간이 아침 아홉 시. 으크크크크크크크크크. 아침에 먹는 푸짐한 식사. 라면과 족발과 맥주! 아, 너무 맛있고 행복해서 정말이지 쉬지 않고 먹었다. 이렇게 먹는 나를 보고 친구는 '너 정말 배고팠나보구나' 라고....난.........난.................아침도 푸짐하게 먹는 게 좋아. 흑흑. 지난밤의 스테이크보다 아침의 차가운 족발과 뜨거운 사발면, 그리고 아침맥주가 더 맛있었다. 아하하하.
체크아웃을 하고 그 도시의 영풍문고에 들렀다. 그러다 한 책장 앞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고 말았는데, 그 책장에 내가 읽은 책이 너무 많았기 때문. 내가 읽은 책들을 꺼내어 보았다. 그리고 이쪽 저쪽 방향에서 찍어 보았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물론, 이게 소설 코너니까 가능했지, 다른 코너였으면 어림도 없었을 거다.
그나저나, 오늘 점심은 또 무얼 먹을까. 일단은 커피를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