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과 봄을 돌아보면서 가장 놀라운 점은 내가 그냥 내 일을 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변호사였고, 변호사들은 일을 한다. 우리는 늘 일했다. 우리는 근무시간만큼만 가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다른 선택은 없다고, 일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시카고시내로 출근해서, ‘원 퍼스트 내셔널 플라자‘라는 기업들의 개미탑 같은건물로 들어가서, 고개를 푹 숙이고 근무시간을 채웠다.
메릴랜드에서 수잰은 병마와 더불어 살고 있었다. 수잰은 진찰과 수술을 받는 와중에 역시 심각한 암과 싸우는 어머니를 간호해야 했다. 의사들은 어머니의 병이 수잰의 병과는 무관하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것은 너무나도 기이해서 골똘히 생각하면 오싹하기까지 한 나쁜 우연, 나쁜 운명이었다. 수잰은 다른 가족 중에서 딱히 가까운 사람이 없었다. 수잰이 좋아하는 여자 사촌 두 명이 힘 닿는 대로 수잰을 도울 뿐이었다.
앤절라가 가끔 뉴저지에서 차를 몰고 내려가서 수잰을 만났지만, 자신도 육아와 일을 저글링하는 형편이었다. 나는 법대 시절 친구 버나에게가능하면 나 대신 들러달라고 부탁했다. 버나는 우리가 하버드에 다닐때 수잰을 두어 차례 만난 적 있었고, 공교롭게도 마침 실버스프링에, 더구나 수잰의 집에서 주차장 하나를 사이에 둔 건물에 살고 있었다.
실은 버나도 얼마 전 아버지를 잃고 슬픔과 씨름하던 터라, 내 부탁은 - P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