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 똥 쪼물이 - 제22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저학년 부문 우수상 수상작 신나는 책읽기 51
조규영 지음, 안경미 그림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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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에게 선물해주기 위해 먼저 읽었는데 등장하는 아이들의 나이가 조카의 나이와 같아서 '좋구나' 했다가, 읽다보니 이야기가 산만하고 재미도 없고..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어... 아이라면, 내 조카라면 나랑 다르게 볼 수 있는걸까? 혼란스러워서 망설이다가 줬는데, 내가 잘한건지 아닌건지 모르겠다. 아이에게 재미있으려면 어른에게도 재미있어야 되는거 아닌가, 했다가, 아이는 내가 보지 못하는 걸 볼 수도 있지 않나..싶다가...혼란하다... 아이에게 독서 안내자가 되고 싶긴 하지만, 좋고 나쁨을 내가 판단해서 알려주는 것은 오히려 더 강압적인 게 아닌가 싶고. 나는 뭔가 정신 사납고 재미없게 읽긴 했지만, 읽으면서 내내 '이게 좋은 책인가??' 하고 갸웃했지만, 창비에서 우수상 받은 작품이라니, 어쩌면 내가 몰라서 그렇지 이 책은 좋은 책일 수도???


아이 엄마가 그 무슨 전집을 사줘서 조카가 보고 있는데, 사실 나는 전집도 읽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전집 보다는 요즘 나오는 어린이용 도서를 새롭게 많이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새로운 책이 나오고 눈에 띄면 사서 주는 편인데(이번에 백희나 신간도 같이 사줌), 음... 잘 모르겠다. 나에겐 어린이 도서를 보는 눈이 없는 것 같아서....  조카가 조카 나름의 재미를 이 책안에서 찾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바라는 건 무책임한걸까? 아 모르겠다.



혼란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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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8-04-16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해 전부터 아이들 책을 사주고 있는데요(전에는 와잎이 전집류를)
간혹 저의 기대와 다른 책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세계는 저와 다를 거라는 생각에 어린이책을 공부해 볼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다락방 2018-04-16 10:24   좋아요 1 | URL
아이를 존중하고 판단을 역시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러면서도 자꾸 ‘이 책은 재미없지 않을까?‘ 하고 망설이게 됩니다. 이게 잘하는건지 못하는건지 모르겠어요.
저는 지금보다 더 많이, 부지런히 어린이책을 읽어보자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제게도 보이는 게 있지 않을까, 하고요. 계속 보다보면 뭔가 알게 되겠지, 생각합니다. 네, 공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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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있으면서도 한참을 크레마로 책읽기에 집중을 못했는데, 최근 나폴리 시리즈를 크레마로 읽기 시작하면서 크레마가 얼마나 편한지 알게 됐다.


1. 활자 크기 조절이 가능해서 보기 편하고

2. 밤에 방 안에서 불 끄고 읽기에도 좋다. 방 불이나 스탠드를 켜지 않아도 보는 데 불편하지가 않아.

3. 누워서 들고 읽기에도 무겁지가 않고, 이 가벼운 무게와 사이즈는 지하철 안에서도 매우 편하다. 가방에도 쏙-

4. 그러면 안되지만 걸으면서 읽기에도 편하다. (이건 안그럴게요...)

5. 밑줄긋기와 책갈피가 스마트폰에서의 이북과 연동된다. 밑줄긋기만 한 눈에 찾아보기가 가능한데, 이게 세상 편한 기능.



고작 나폴리 시리즈로 연달아 두 권을 크레마로 읽으면서 아아, 어쩌지, 이제 모든 책을 전자책으로 사야하나, 나는 앞으로 무겁고 부피가 큰 종이책을 들고 다닐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크레마 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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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8-04-09 14: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다니까요~~! 이제 다락방님은 전자책도 사고 종이책도 사는 사람이 됩니다.

다락방 2018-04-09 14:08   좋아요 0 | URL
세상 편하더라고요 ㅋㅋㅋㅋ 아마 전자책을 더 살 것 같은데 그렇지만 종이책도 계속 살테니... 하이드님 예언이 아마도 적중할 듯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비연 2018-04-09 14:37   좋아요 1 | URL
전자책도 사고... 종이책도 사고...
그래서 전자책 안 보는 1人...

다락방 2018-04-09 14:57   좋아요 0 | URL
현명하십니다 비연님 ㅠㅠ

비연 2018-04-10 08:19   좋아요 0 | URL
근데 막 끌려요. 락방님 때문이라고 원망하고 싶어요 ㅜㅜㅜㅜㅜ

다락방 2018-04-10 10:07   좋아요 0 | URL
한 번 사는 인생 ㅋㅋㅋㅋㅋㅋㅋㅋ 전자책도 지르고 종이책도 지르면서 삽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세요, 전자책 월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ellas 2018-04-09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자책 장점을 아주 잘 이해하지만 쓰지않고 쳐박아두는 사람.... 이 저구요 ㅡㅡ

다락방 2018-04-09 14:57   좋아요 0 | URL
저도 계속 쳐박아두다가 이제서야 읽기 시작했어요. 나폴리 시리즈 무거워서 읽기 시작한건데... 나폴리 시리즈 끝나면 그 다음에는 아마도 다시 종이책을 읽지 않을까 싶어요. ㅋㅋㅋㅋㅋ

transient-guest 2018-04-11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보입니다. 혹시 PDF나 다른 파일로 갖고 있는 사제(?) e북도 볼 수 있나요? 아니면 알라딘에서 정품으로 구입한 e북만 보는 건가요??

다락방 2018-04-11 08:04   좋아요 1 | URL
저도 이제 막 쓰기 시작한 초보이고 게다가 이런 쪽에는 영 지식이 전무해놔서 ㅎㅎ 잘은 모르겠는데요, 전자도서관에서 대여해서도 읽을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싶어 검색을 해보긴 했는데요, 링크 참고하세요.

http://cafe.naver.com/ebook/392122

transient-guest 2018-04-11 10:0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psyche 2018-04-16 0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게 전자책의 가장 큰 장점은 활자크기를 조절할 수 있어서입니다....
저는 초창기 크레마를 가지고 있는데 너무너무너무 맘에 안들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쓰는데 이게 요즘 나오는 대여책들은 예전 크레마에서 읽을 수 없는거에요! 아 너무햇
요즘 나온 크레마는 많이 좋아졌다고들 하던데.. 뒤에 빛이 있어서 밤에도 읽을 수 있다고 하고
저 신상 크레마 사야하는 걸까요? 집에 누크 킨들 크레마 다 있는데...흑

다락방 2018-04-16 09:11   좋아요 0 | URL
저는 크레마 사운드 쓰고 있거든요. 어제도 방에 불 다 꺼놓고 책 조금 읽었는데, 빛이 있어서 읽기도 좋지만 프시케님 말씀처럼 글자 크기 조절이 되어서 너무 좋아요! 저는 글자 크기도 키워놓고 글자체도 진한 걸로 바꾸고 또 볼드체로 바꿔가지고 찐하게 해서 읽거든요. ㅎㅎㅎㅎㅎ 그래서 읽기 너무 편해요. 어제부터 [백래시] 전자책으로 읽기 시작했어요. 앞으로도 전자책 계속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크레마 사운드...정도라면.... 한 번 성능 같은 거 검색해보시고 새로 구입하는 게 어떨까... 생각됩니다. -0-

blanca 2018-09-30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아직도 크레마 잘 쓰게 되나요? 지금 심히 갈등 중이랍니다. 다락방님 조언이 절실합니다.

다락방 2018-09-30 14:10   좋아요 0 | URL
저는 추천합니다, 블랑카님! 여름에 휴가 가서도 크레마로 책 잘 읽었어요. 무엇보다 여러권의 책이 들어가서 좋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기능은 활자를 제 마음대로 키울 수 있다는 거예요! 노안이 찾아오는 저에게 너무나 고마운 아이템인 것입니다! 저는 크레마로 나폴리 시리즈, 잭 리처 시리즈 잘 읽고 있어요. 스맛폰에 비해 눈의 피로도도 덜합니다. 추천합니다!!
 
부엌은 내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사샤 마틴 지음, 이은선 옮김 / 북하우스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몇해전에 친구가 내게 회사로 파이를 보내왔다. 호두파이와 치즈파이가 절반씩인 파이 한 판이었는데, 나는 이런 선물을 받아보지 못해서 그 참신함에 놀랐다. 선물을 받은 기쁨은 물론 있었지만, 그 날은 유독 지친 날이었다. 지금은 왜 지쳤었던 건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지쳤고, 그 파이를 들고는 집에 좀 늦은 시간에 들어갔다. 집에 들어갔으니 샤워를 해야 하는데, 정말이지 지쳐서 금방이라도 쓰러져 잠들고 싶은 그 밤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씻으러 들어가면서, 아 그런데 씻기 전에 친구가 준 파이를 한 조각 먹어볼까, 하고는 식탁앞에 서서 파이의 포장을 열고 치즈파이를 골랐다. 그렇게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입 안 가득 퍼지는 치즈향과 씹히는 촉촉함 그리고 바삭함이 갑자기 내 컨디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입 안속의 향긋함은 곧 온 몸으로 퍼졌다. 서서 한 조각 후딱 먹고 샤워하러 들어가려던 나는, 주저 앉아서는 눈을 감고 먹었다.



아, 너무 맛있다.



나는 그 지친 늦은 밤에 이 맛있는 치즈파이를 먹으면서, 처음으로, 음식이 나를 치유해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지친 몸과 마음이 그 순간에 탁, 하고 풀어지는 것만 같았다. 멀리서 파이를 보내준 친구가, 어떻게 내가 힘든걸 알고 토닥토닥 다독여 주는 것 같았다. 스트레스 받을 때면 매운 것 먹고 싶어하고 고칼로리 음식을 먹고 싶어하고 술을 퍼마시고 싶어하지만, 여태 그렇게 살아왔지만, 어떤 음식이 입 안으로 들어와 툭, 하고 나를 풀어놓는 경험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맛있다'는 것과는 달랐다.




여름에도 설탕을 뿌려야 단맛이 우러나는 신선한 딸기 대신 깃털처럼 가벼운 동결 건조 딸기를 반죽에 섞었다. 새빨갛고 울퉁불퉁한 껍질에 여름을 머금은 냉동 딸기는 맛이 강렬하고, 반죽에 넣어도 속이 축축해지지 않는다.

여기에 색깔도 선명한 레몬이나 오렌지 제스트를 추가하고 크림을 몇 숟가락 끼얹으면 서리가 내린 창가가 따뜻해진다. 정말이다. 파운드 케이크 한 조각이면 지독하게 추운 날에도 몸이 풀린다. (윈터 파운드케이크, p.71)



'사샤 마틴'의 이 책, 《부엌은 내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는, 이런 이야기가 가득차있다.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사랑을 받고 또 치유가 되었던 경험의 기록들. 단순히 사랑과 경험이라고 얘기하기에는 더 내밀하고 깊은 사연들이 있다. 사샤 마틴은 세계 각국의 요리를 해보이며 그것을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하고 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에 찾아들기 시작했다. 점점 매체에서도 관심을 갖게 됐고 팬이 생기면서 그 모든 음식들을 한 데서 차려내 파티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요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들만으로 책을 내려고 했지만, 결국 그녀가 써내려가게 된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 가난하게 지내면서 엄마가 어린 자신과 오빠 마이클에게 요리를 해주던 그 부엌의 냄새와 분위기부터, 위탁가정에 맡겨지며 쓸쓸했던 기억까지, 자라면서 방황하고 엄마가 그리웠던 감정과, 끝내 섞이지 못했던 양부모와의 갈등까지. 사춘기와 대학시절 그리고 직장 시절을 거치면서 사귀었던 남자들, 그들로부터 자신을 돌아보게 된 계기가 고스란히 이 책 한 권에 녹아들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그 사연과 기억들 틈틈이, 그것들을 떠올리게 만들어준 음식과 그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



그녀는 자라는 내내 엄마와 아빠를 향한 그리움에 시달렸고 또 외로움을 겪었다. 자신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단단히 붙들어줄 누군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사귀었던 남자친구중 한 명이 그에게 이별을 고하며 '니 문제는 결국 니가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그녀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 뒤의 연애와 직장생활 그리고 육아에까지 고스란히 닿는다. 그 외로움과 아픔과 그리움이 그녀를 온통 잠식하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또 따뜻한 사람이 되었다. 그녀가 소개하는 레서피에도 그 유머와 따뜻함과 그간 살아오면서 깨닫게 된 인생에 대한 철학이 다 담겨있다. 요리를 하는 그 과정을 하나씩 겪으면서, 어릴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의 초반부터 부엌의 따스함과 다정함 때문에 덩달아 한겨울의 난로앞에 앉아있는 기분이 되었었는데, 그러다가 툭툭, 그 따뜻함 사이에 끼어드는 강한 찬바람 때문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는 이 책 한 권을 다 읽는동안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쳤다. 어제는, 지하철 안에서도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아픈 사연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랑을 깨닫는 과정 때문이기도 했다. 사람은 어느 나이에 이르든 계속 성장하는 존재인 것 같다. 계속 깨닫는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항상 뒤늦게 오는 것 같아 속상하지만, 그렇게라도 깨달으면 그 때부터 다른 식으로 세상을 보는 게 가능해지기 때문에 또 의미가 있다.




나는 항상 머릿속에 요리 생각을 하지만, 내가 결국 손으로 만들어내는 요리는 언제나 상태가 안좋아서 역시 돈 주고 사먹는 게 최고구나, 라고 번번이 깨닫는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 요리를 해보고 싶다, 잘하고 싶다, 나만이 만들 수 있는 특별한 메뉴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보일 수 있는 것이 요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정성들여 음식을 준비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걸 맛있게 먹는 걸 지켜보는 게 너무 행복할 것 같아서.



첫 조카가 세살 무렵이었을 때, 미트소스 스파게티를 만든 적이 있다. 면을 삶느라 부엌에 열기가 있고 가스렌지에 불이 들어와있어, 이모라고 달려드는 아이에게 '조카야 여기 뜨거워, 위험해, 이모가 맛있는 거 만들어 줄테니까 거실에 가서 엄마랑 기다리고 있어' 라고 말했었는데, 그 작은 아이가 '응' 하더니 내 말을 듣고 소파로 가 제엄마 옆에 얌전히 앉아있는 거다. 나는 면을 다 삶고 마트에서 사온 미트소스를 부어서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조카를 위해서는 작은 그릇에 담고 포크로 집어먹을 수 있게 잘라주었다. 식탁에 차려두고 아이를 불렀을 때, 아이가 포크로 스파게티를 떠 먹으면서 맛있다고 했고, 그렇게 한 그릇을 다 비워내는 걸 보는데 진짜 심장이 터질 것 처럼 행복하고 좋았던 거다. 이런 경험을 또 하고 싶어! 그러나 그 다음 스파게티를 만들어줬을 때는 조카가 먹지 않았다..................



사샤 마틴은 어마어마하게 달콤한 디저트를 만들어, 육아 때문에 단둘이 있는 시간을 가질 수도 없었던 남편과 아이를 재우고 잠깐이나마 데이트 시간을 갖는다. 그 날 밤은 사랑이 무르익어간 밤이었다. 나는 이것이 사샤가 맛있게 만들어낸 그 디저트의 힘이었다는 걸 믿는다. 나도 그걸 하고싶은데, 아아, 나는 그것을 돈에 의지해야 하는 것인가... 내 손은 정녕 그것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인가. 나는 요리로는 사랑을 표현할 수 없단 말인가!!




사샤 마틴은 따뜻한 마음과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고 요리도 잘하는데, 그것들을 한데 모아 글을 쓰는 능력도 탁월하다. 이 책은, 글 자체로도 아름답고 뛰어나다. 자연스럽게 사연과 사랑과 유머가 그리고 깨달음이 글에 녹아나고, 그리고 그것은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의 성장과정과도 섞인다.

좋은 글이다.

올 해 읽은 가장 좋은 에세이라고 하고 싶지만, 혹여라도 내 에세이가 또 나올지도 모르니까 그 말은 아끼기로 한다. (킁킁)



그런데 이 좋은 책이 왜 아직도 1쇄인지 영문을 모르겠다.

더 널리 읽히라고 내가 이렇게 리뷰를 쓴다. 움화화핫.





바게트와 처음 만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종이봉지 안에 넣은 채 손으로 잡고 뜯으면 바스라지면서 한숨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들리면 나는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를 들은 사슴처럼 걸음이 절로 멈춰졌다. 제대로 만들어진 빵 껍질에는 그런 효과가 있다. 입에 넣고 씹으면 이스트와 소금으로 만들어낸 깊은 맛이 입안 가득 퍼졌고, 부드러운 속살이 내 입술에 대고 따뜻하고 촉촉한 입김을 불었다. (p.111)



한 남자와 몇 번씩 헤어지더라도 애착이라는 질긴 끈을 차마 자르지 못하는 여자도 있다. 엄마는 올리버의 약물 남용과 음주와 도벽으로 인해 벌어지는 감정의 줄타기는 견딜 수 있었다. 그의 변덕과 걸핏하면 사라지는 습관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마이클과 나를 생각해서 모든 인연의 끈을 놓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사라질 때마다 실망하는 우리의 모습을 견딜 수가 없었고, 우리에게 그의 성미를 이해시킬 수도 없었던 것이다. (p.39)

마이클은 점점 더 자기 방 속에 아픔을 가두었다. 한번은 토니가 방안에서 우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마이클은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런다고 대답하고는 끝이었다고 했다. 나도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닫힌 방문만큼 마음의 상처를 감추는 동시에 여실히 드러내는 상징도 없다. (p.81)

나는 요리를 하고 싶었다. 요리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엄마가 가르친 무언의 교육에 따르면 요리는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우여곡절의 해결책이었다. 권태를 해소하는 해독제일 뿐 아니라 슬픔, 헤어짐, 외로움과 같은 암울한 현실을 떨치는 방편이었다. 반죽을 주무르거나 냄비를 저을 수만 있다면 이 새로운 삶을 잘 헤쳐나갈 수 있었다. 사랑하던 반쪽과 사별한 뒤에 셔츠를 안고 자는 배우자처럼 나도 요리를 하면, 재료를 다듬고 보글보글 끓는 그 냄새를 맡으면 엄마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p.85)

온 사방이 귀청을 찢는 소음으로 덮이자 결국 내 안에서 뭔가가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 감정의 속삭임에 점점 중독이 된 채로 움직이고 춤을 추고 살아갔다. 시인인 셰인 코이잔은 이런 말을 남겼다. "무언가에 중독되는 것은 고통의 몸부림이 아니라 제정신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이보다 더 맞는 말이 어디 있을까. (p.121)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건 풀면 돼. 희한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보여. 당신과 함께 할 모든 게 전부 다 보여." (p.240)

제로니모에는 기다림이 있다. 모든 것이 때가 되면 열매를 맺기 마련이라고 다들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야구공만 한 우박이 쏟아지든, 한 마을을 싹 쓸어버릴 수도 있을 만큼 강력한 토네이도가 들이닥치든, 가벼운 소화불량에 걸리든,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떠오르는 태야, 뜯어먹을 수 있는 메기, 뜨끈한 저녁, 잦은 미소만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키스는 이런 세상의 귀감이다. (p.252)

로맨스 지수를 최고로 끌어올리려면 완벽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초콜릿의 씁쓸한 뒷맛이 그런 역할을 하듯, 사랑의 달콤함도 고난을 통해 좀 더 세련되게, 좀 덜 질리게 발전한다. 힘든 일을 겪은 뒤에 다시 만나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이인지 깨닫게 된다. 자허 토르테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초콜릿 케이크인데, 다크 초콜릿과 적당량의 설탕이 어우러져서 완벽하게 달콤 쌉쌀한 맛을 연출한다. (자허 토르테, p.320)

"당신이 자랑스러워." 키스는 내 어깨를 꾹 누르며 테이블을 둘어보았다. "당신, 진짜 행복하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행복은 하나의 목적지가 아니다. 행복해지려면 끊임없이 잡초를 뽑고, 감정과 상황을 맞닥뜨리는 대로 조절해야 한다. 그 뒤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식의 결말이나 행복을 보장하는 사람이나 장소는 있을 수 없다. 혼란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려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혼란을 통제하겠다는 욕심을 버리는 것, 그것부터가 시작이다. (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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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3-30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 글, 너무 좋네요~~~
치즈케이크를 부르는 글이예요. 전 가끔, 치즈케이크를 먹으려고, 밥을 먹어요.
일단 밥을 먹고, 그리고 치즈케이크... 첫 번째 만남이 최고죠. 크하~~~

전 요리에 관련된 책들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요리를 안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제게 요리는 요리가 아니라, 끼니가 되어서요 ㅎㅎ 이 책은 정말 근사하네요. 특히 요기요.

˝요리는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우여곡절의 해결책이었다. 권태를 해소하는 해독제일 뿐 아니라 슬픔, 헤어짐, 외로움과 같은 암울한 현실을 떨치는 방편이었다. ˝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도 떠오르구요.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부엌이야기, 다락방님 새 책 다음 가는 에세이로 찜을 해놓고요 ㅋㅋㅋ

다락방 2018-03-30 10:28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이 책 너무 좋아요!
특히 음식을 요리하고 먹을 때 묘사가 대단해요! 저 위에도 인용했지만 바게트 먹는 거 묘사 좀 보세요. 어휴..음식이 생생하게 그려져서 미치겠더라고요.
이건 단순히 요리 얘기라기 보다는 요리에 얽힌 성장과 사랑, 이해의 이야기인데요 작가가 글을 아주 잘 썼어요.
또 몇 번의 사랑을 잃고 결국 자신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지켜봐주는 짝을 만나는 이야기도 너무 좋아요!
책날개에 보면 블로그 주소도 있던데, 어제는 거길 가서 음식들 구경을 했답니다. 근사한 음식을 구경하는 건 근사한 글을 읽는 것처럼 제겐 너무나 기분 좋은 일이라서요!

레이먼드 카버의 그 단편, 저도 좋아해요! 빵집 주인이 일단 잘 먹이려고 하는 그 장면, 제가 너무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마음이 따뜻해지죠.

아무튼 이 책은 좋은 책입니다. 저같이 요리랑은 거리가 먼 사람도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고, 요리를 끼니라고 생각하는 단발머리님이 읽으셔도 아주 좋을 책이에요. 아름다운 책이거든요.


그나저나 다음책은 백래시를 읽을까 하는데... 너무 분위기가 달라지려나요? 하하하하하

2018-04-03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3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근본없는 페미니즘 - 메갈리아부터 워마드까지
김익명 외 지음 / 이프북스(IFBOOKS)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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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메르스 갤러리 사이트에 처음 들어가봤을 때 놀란 건 그 미러링 표현들 때문이었다. 그러고보니 많은 남성들로부터 글로 혹은 말로 늘 들어왔던 것들을 여자들이 거기서 되돌려주고 있었다. 와, 이렇게도 할 수 있네? 그때의 통쾌함은 말할 수가 없다. 그리고 다시 들어가봤을 때는 익명의 여자들이 그곳에서 자신의 성폭행 피해를 얘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했었다가, 그것이 자신의 잘못인줄로만 알고 숨겨왔다가, 그곳에서 비로소 익명의 여성들로부터 '네 잘못이 아니다', '가해자가 나쁜놈이다'라는 말을 듣고 위로 받고 있었다. 나는 메갈이 하는 일은 미러링이지만, 미러링 이전에 그동안 억압받았던 여자들의 편에서 여자들의 이야기를 하는 곳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정기적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곳에 회원가입을 한 것도 아니어서, 나는 숱한 사람들이 같은 익명으로 글을 쓰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댓글을 단 유저들이 모두 'ㅇㅇ' 란 닉네임을 달고 있었던 것. 그런데 이 책을 읽고서야 그것이 이름에서 올 수 있는 권위에 기대지 않기 위함임을 알았다. 그러니까 나처럼 '다락방' 이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면 결국 나에게 친한 사람이 생길 것이고, 혹여 내가 파워블로거라도 되면 나에게 말하기도 힘들어질텐데, 모두가 다같이 똑같은 닉네임을 사용하면 그걸 방지할 수 있는 거였다. 아니, 이 사람들, 이런 것까지 다 생각하고 있었구나...


처음에 나는 이 게시판 재미있네, 후련하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말을 해, 라는 생각을 갖고 있긴 했지만 내가 그곳에 속해있거나 한 건 아니고 몇 번 들어가본 게 다 였으므로 '아니 나는 메갈회원 아닌데?'라고 말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숱한 남자들이 이제 '너 메갈이냐?'를 혐오 발언으로 쓰며 여자를 나누기 시작했다. 마치 김치녀와 된장녀를 만들어낸 것처럼, 개념녀를 만들어낸것처럼, 그렇게 여자를 또 나누고 있었다. 김치녀를 만들어내면 많은 사람들이 '나는 아닌데?'를 증명하려 하고, 개념녀를 만들어내면 '아, 나는 개념녀가 되어야겠다'가 되어버린다. 그런참에 메갈을 낙인찍어 버리면 또 여자들 내에서 메갈인 여자와 아닌 여자로 나뉘게 되고, 그렇다면 나는 메갈이 되지 말아야지, 하고 생겨버리게 되는 거다. 나는 이 남자들 특유의 낙인 찍기, 여자를 후려치기 하는 것에 반대했고, 그러므로 그 뒤로 '내가 메갈이다' 라고 말하고 다녔다. 내가 메갈이다. 그래, 뭐 어쩔래?



그렇게 말하고 다니면서도 실상 나는 메갈이 그동안 해온 일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잘 모르고 있었다. 소라넷을 없애려고 시도하고 노력한 게 메갈이라는 것은 알았고, 미러링으로 남자들한테 맞받아친 게 메갈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의 타임라인을 보니, 아주 많이 내가 모르고 넘어갔던 것들 중에 메갈 활동들이 있더라. 이들은 정말이지 전투력을 최고 게이지로 상승시켜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여성혐오를 뿌리뽑기 위해 활동해오고 있었다. 그 표현의 과격함으로 누군가는 굳이 그 사이트에 들어가서 캡쳐를 해오고, 얘네가 이렇게 못됐다!! 하고 기사화 하기도 했지만, 실상 그들이 하지 않은 것에 그들이 한것처럼 낙인 찍힌 것도 있었고, 거기에 대해서는 정정되지 않기도 했다. 소라넷과 몰래카메라를 뿌리 뽑으려하고 임신중단 합법화를 위해 시위를 했던 그들인데, 그들은 '여자일베'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있었다.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했던 건, 여러차례 얘기했지만, '최명희'의 [혼불] 때문이었다. 그전까지는 별 관심이 없었고, 나야말로 페미니스트는 사랑받지 못한 여자들이고 과격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혼불을 읽다가 여자들이 처한 입장이 너무 말도 안되고 어처구니가 없는 거다. 야, 이거 너무 부조리하고 불공평하고 억울한데... 내가 이 억울함을 어떻게 달래야 하지? 이거 왜 이런거야? 어떻게 해야 돼?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는데?? 하고 생각해서 '페미니즘이 답을 주지 않을까' 하고 시작하게 된거다. 아니나다를까, 나는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페미니즘적인 삶을 살았었다는 걸 알게됐고, 내가 가진 편견이나 고정관념 역시 이 사회가 내게 강압적으로 주입한 것이란 걸 알게됐다. 부끄럽게도 성매매에 대해 '그렇게 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했다가, '당사자가 아니면 말할 수 없지 않나'로 생각하게 됐다가, 이제는 확실하게 '성매매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됐으며 그것은 노동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볼수록 내 생각은 변하게 됐고, 그 잘못된 것을 파고 들어가다보면 거기엔 여성혐오가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성매매는, 노동이 될 수 없었다. 세상 어느 노동이 나이들고 경력이 쌓일수록 노동가가 적어지고 내쳐지는가. 성매매는 성노동이 아닌 성착취였다. 나는 포주와 성구매자만 처벌하는 노르딕 모델을 도입해달라는 청원에 동참했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할수록 내가 과거에 얼마나 무지하고 또한 혐오발언에 힘을 실어줬었는지를 깨닫게 됐다. 부끄러운 발언들과 행동들이 수시로 튀어나와 나를 괴롭혔지만, 그렇다고 후회와 반성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나는 여성혐오를 없애자고 말하는 이들의 편에 서서 그들과 연대하고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고 싶다. 초반에는 대부분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다정하게 그들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다 답이 없다는 걸 알았다. 애시당초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한테 다정하게 이천번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화를 내면 다정하게 말하라 하고 다정하게 말하면 논리나 근거를 가져오라고 헛소리를 한다. 그간 아주 오래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똑똑하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었는데, 최근에야 나는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논리와 팩트, 이성과 객관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남자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얘기를 할 땐 한없이 감정적으로 흥분해서는 냉정한 사고를 하지 못한다. 자, 그 일이 왜 일어났을까? 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그들은 하지 못한다. 세상 멍청하다는 걸 세상 논리적이란 허울로 감추고 있었다. 그렇게 교수가 되고 감독이 되고.... 그렇게 멍청한데 권력을 쥐고 있었다. 이런 세상이 문제가 터지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는 모든 직업에 여성들을 균등하게 뽑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 생각에 더 힘을 실어주게 됐다. 그렇지 않다면 남자들끼리 봐주고 밀어주는 이 행태는 계속될 것이다. 지금은 이 행태를 고발하고 체제를 바꾸자고 말하는 모든 여성들의 편에 서서 그들과 연대하고 힘을 실어주고 싶다.



최근에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쉴라 제프리스'의 [래디컬 페미니즘] 책을 번역 출간한다고 텀블벅을 열었을 때,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발언했던 남자페미들이 광광대던 걸 봤다. 그 책을 왜 번역하냐, 그 책은 묻힌 책이다, 그 책이 얼마나 나쁜책인데... 라면서 텀블벅 자체를 훼방 놓으려고 했다. 나는 여기에서 또 깊은 빡침이 왔는데, 왜 어떤 책이 나쁜 책이고 아닌지를 자기들이 알려주려고 하는걸까? 나도 한 사람의 독자이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어떤 책을 읽었는데 싫다면, 그때는 싫다고 얘기할 것이다. 그리고 좋다면 좋다고 얘기할 것이고. 대체 다른 여자들을 뭐라고 생각하길래 '니가 읽을 책은 내가 정해준다'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그러면서도 자기가 페미라고 얘기한다. 최근에는 윤김지영 쌤의 [헬페미니스트 선언] 책을 팔지 말라고 출판사에 압박을 넣어서 그 책이 절판된 상태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출판사를 통해 새로 나올 예정이라는데, 어떤 책을 읽을지 말지 정해주려는 태도는, 정말이지 맨스플레인 중에서도 개같고 더러운 맨스플레인 아닌가. 왜 다른 사람들이 독자로서 판단을 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왜 그 능력은 자기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지, 정말 멍청해도 너무 멍청한 게 아닌가. 다른 사람의 주체성을 인정할 줄도 모르면서 무슨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다니는 걸까. 어떤 남자들은 페미니스트를 벌레보듯 하고, 어떤 남자들은 여자에게 인기 끌기 위한 껍데기로 쓴다. 그리고 어떤 남자들은 감별사를 자처한다. '너는 진짜 페미가 아니야' 그걸 자기가 어떻게 알고 판단하는걸까?



나는 이 땅에서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 계속 살고 있다. 여학생이었고 여직장인이고 지금은 여자상사이다. 내가 겪은 삶을 토대로 그리고 내 주변 여자들의 삶을 토대로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페미니즘을 실천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역시 이 땅에서 살아온 다른 여자들과 연대하며 서로 힘을 주고 받고 지칠 때는 잠시 쉬라고 쉴 틈을 내어주며, 그렇게 페미니즘을 실천할 것이다. 내가 하는 페미니즘에는 누군가의 감별도 필요없고 인정도 필요없다. 나는 같이 갈 나의 동료들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안에는 이미 적극적으로 싸우는 여자들이 있었다. 모두 다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어서 인상깊었는데, 그중에서 한 명은 악플러 남자들을 일일이 고소하는 에너지를 보였다. 나 역시 긴 온라인 생활을 하며 악플을 받아보지 않은 게 아닌데, 그 때 대응하는 것 만으로도 진빠지는 일이다. 그런데 그녀는 일일이 고소하고 자기 앞에서 그 악플을 실제로 읽게 했고 반성문을 받아냈다. 그 과정은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었을 텐데, 그녀는 그 일을 기필코, 기어코 해내고야 말았다. 그녀가 그렇게 힘들게 이 과정을 겪어냈기 때문에, 아마 그들중에 어떤 사람들은 '야, 잘못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해서 악플달기를 멈칫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분명 그녀가 한 것은 큰 용기이고 큰 에너지였으며 큰 의미를 가진 일이었다. 이제야 뒤늦게 이 책을 읽고 알게되어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이 책에 실린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계속 싸우고 있는 탁수정씨에게도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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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0920 2018-03-19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만 안고가겠다는 용자나셨네. 쯧쯧. 지들이 한 해로운 짓꺼리들은 싹 입 닫고 남(자) 탓만하고 자빠졌으니...이 글에 논리가 있나?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네. ‘성매매는, 노동이 될 수 없었다. 세상 어느 노동이 나이들고 경력이 쌓일수록 노동가가 적어지고 내쳐지는가.‘ 이 대목에서 뿜었음. 막장인생 노가다가 웃겠다. twitter나 여초 커뮤니티 짤로 페미 공부한 티가 팍팍 나네! 세상 해로운...쯧쯧쯧.

섬사이 2018-03-19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혼불>을 읽고 페미니즘 공부로 이어졌다니, 책을 통해 뻗어가는 길은 참 다양하네요. 사진에서 분노를 에너지 삼아 여성운동을 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문장을 봤어요. 평화운동 하시는 분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분이 그랬어요. 분노의 영성을 가진 사람이 평화를 위해 움직인다고요. 여성운동에서 분노의 에너지도 그렇게 쓰이는 게 아닐까요? 부당함과 불의함에 눈감지 않아야 말하고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요.

다락방 2018-03-19 13:42   좋아요 0 | URL
네, 섬사이님. 제가 밑줄 그은 분노에 대한 부분도 바로 그런 얘기를 한다고 생각해요. 분노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운동을 할 수 있을까 싶어요. 그리고 내가 분명하게 분노를 느꼈는데, 그것을 아닌것처럼 하는 것은 또 내 속을 얼마나 타들어가게 하겠어요. 제가 느낀 바 그대로를 얘기하고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어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책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책이 모든 일의 해답은 결코 될 수 없겠지만, 해답으로 가는 길은 안내해주는 것 같아요. 분명히 책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읽기도 글쓰기도 멈출 수 없는 것 같아요. 여러가지 길로 이끌어주기도 하고 문제의 답을 얻을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누군가와 소통을 할 수도 있게 해주잖아요.
요즘 섬사이님 글 보여서 저 너무 좋아요!! >.<

비공개 2018-03-19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의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댓글을 익명이나 다름없는 아이뒤를 달고 쓰는 이유는 뻔하겠죠. ㅋㅋㅋ 다락방님 글의 모든 부분에 다 동의합니다. 저도 이 책 읽고 싶어요!! 알라딘에서는 품절인데, 곧 다시 나오겠죠?

다락방 2018-03-19 14:09   좋아요 0 | URL
딱 이 책에서 말하는 바로 그런 댓글 되시겠습니다. ㅎㅎㅎㅎ

이 책 왜 나오자마자 품절인지 모르겠어요. 품절 풀려서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라고 리뷰 쓴건데, 그러다보니 뭐 이런 저런 댓글도 받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하핫.

2018-03-19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3-19 21:01   좋아요 0 | URL
힘이 된다 하시니 저야말로 힘이 됩니다!!

boddari 2018-03-20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너무 가슴에 와닿는 글 잘 읽었어요. 왠지 팬이 될거 같아요. 궁금한게 있습니다. 헬페미니스트 선언 언제 나오는지 아시나요?꼭 읽고 싶은데 품절에 중고는 엄청 비싸네요. 곧나올거 같으면 기다리고 아니면 비싸도 중고라도 사려구요.

다락방 2018-03-20 22:20   좋아요 0 | URL
제가 트윗에서 얼핏 여름 전으로 본 것 같은데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지금 당장 읽고 싶으시면 제꺼 빌려드릴까요? 택배로 보내드릴테니 다 읽고 택배로 돌려주시면 어때요? 웬만한 책은 제가 그냥 드릴 수 있는데 이 책은 제가 윤김 쌤께 싸인 받은 책이라 꼭 소장하고 싶거든요! 만약 괜찮으시면 받으실 주소 삼종셋트 비밀댓글로 적어주세요!!

boddari 2018-03-21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닙니다. 그냥 중고 살께요. 제가 기다라는거 잘 못하고 책은 빌려서 못읽는 성격이라. 줄도쳐야하고 도장도 꽝꽝 찍어야해서요. 감사합니다.

다락방 2018-03-21 11:01   좋아요 0 | URL
넵! 잘 알겠습니다!!
 
아주 친밀한 폭력 - 여성주의와 가정 폭력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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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조금은 나 자신에 대해 안다. 그래서 배우를 감히 단 한 번도 동경해본 적이 없다. 세상에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이 있는 법이다. -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p.73



정희진은 자신의 다른 책, 《혼자서 본 영화》에서, 온 몸으로 예술을 표현하는 한 배우에 대해 얘기하며 자신은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안다고 썼다. 나 역시 마찬가지. 나는 감히 정희진처럼 글을 쓸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아, 세상에 절대로 안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정희진처럼 글을 쓰는 일이겠구나' 싶었다. 이 논문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을 검열한다. 내가 혹시 '연구자'인 나의 입장으로 선악을 가르려고하진 않았나,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편을 들지 않나, 증언자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건 아닌가, 반복해서 고통을 듣다 보니 고통에 무뎌지는 건 아닌가, 를 끝없이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논문'이며 '연구서'여도 일단 쓰는 사람이 '나'인 이상, 나의 생각과 주관 경험 느낌 사상등이 반영되지 않을 수 없을텐데, 그걸 미리 인지하고 그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너무 인상적이었던 거다. 사람은 누구나 객관적일 수도 없고 객관성을 유지할 수도 없다. 그 '객관'이라는 것도, 내가 살아온 삶 위에 놓여진 것이므로, 다른 사람들에겐 주관적일 수밖에 없을 터. 이미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계속 한 걸음 뒤로 떨어져서 내가 뭔가 잘못하는 건 없는지, 놓치는 건 없는지를 세심하게 생각하는 게 너무 대단하게 느껴지는 거다. 내가 감히 '리틀 정희진' 이라든가 '또 하나의 정희진' 이라든가 하는 걸 꿈꿔본 적도 없지만, 정말이지, 감히 바란 적도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백 년을 책을 읽고 공부해도 정희진처럼 될 순 없겠구나' 싶었다. 나 역시, 정희진과 그나마 비슷한 점이 있다면, '아주 조금은 나 자신에 대해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희진이 결론에서도 밝히듯이, '아내 폭력'이 가족안의 문제, 가족이라는 사적인 영역에서의 문제로 다루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연구서이자 입문서이다. '남편'과 '아내'가 아니라면, 그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폭력이, 남편이기 때문에 그리고 아내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작년에 한창 '경찰이라니 가해자인줄' 해시태그 운동이 일었었는데, 정희진이 이 책에서 보여주는 숱한 사례에서도 여지없이 경찰은 가해자와 한 편이 된다. 남편과 아내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가족이라는 그 사적 영역 내에서 일어난 것이고, 그러므로 그들이 해결해야 할 일인 것이다. 경찰은 신고하는 아내에게 '알아서 잘 해결하라'고 말을 한다. 아니면 '더 맞고 피 터져서 오든지' 라고 말한다. 그래야만 그것을 폭력으로 인정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아내라는 역할을 잘 수행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아내를 때려야 하므로, 그래서 가정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하고, 아내는 그런 남편의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에 자꾸 맞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편이 아내를 '때려서' 가정이 파괴된다면, 그건 원인제공을 한 '아내' 탓이라는 것.








이 책을 읽는 건 그래서 힘들다. 그렇게나 많은 여자들이 '아내'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폭력에 노출되는데, 그런데 그 많은 아내들이 '내가 참으면..' 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다. 오히려 아내를 때린 남자들은 자신들이 폭력을 썼다고 생각하질 않는다. 자신들이 그러는 건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었으므로. 그것이 폭력일 리 없다는 것. 이 과정에서 어떤 아내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해서 도움을 못받거나 혹은 여기저기 도와달라 손을 내미는데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친정이든 시댁이든 니가 참으라, 하라는 대로 해라, 라고 하고 경찰이나 상담사도 아내 스스로 이겨내고 참고 극복하라고 얘기한다. '구타'로 이혼한다면 세상에 이혼 안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며 이혼을 말리는 거다.






그렇게 '참자'고 생각하고 '내가 더 잘해보자'고 결심하던 여자들이 끝내 여성단체를 찾게되는 데는, 그러니까 남편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데에는, 자식들의 영향이 컸다.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가 아니라, 폭력 남편의 많은 수가 자식들을 성적으로도 학대했던 것. 차마 여기에 쓰고 싶지도 않지만, 갓난 아기를 상대로도 그런 짓들을 하는데, 그걸 보게된 아내가 '아, 더 있으면 안되겠구나, 지금도 이러는데 아이가 크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하게 되어서 남편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것.



그나마 한국에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된 건, 이렇게 밖으로 드러내려는 증언자 여자들과 여성주의 진영의 노력, 여성 운동의 국제 연대의 성과였다. 이마저도 안됐으면 어떻게 됐을지...


남편이 아내를 '가르치기 위해서' 폭력을 휘두른다는 인식이 너무 퍼져있고, 그래서 아내는 '내가 잘하면 된다'라고 생각하게 되어서 이 아내폭력이 계속해 반복되지만, '이혼하기 싫다'는 아내들의 생각도 폭력 남편으로부터 탈출하지 못하게 했다. 이건 생활능력이 없는 여자뿐만 아니라, 자기가 돈을 더 잘벌고 있어도 그러했는데, 이혼하는 여자가 되는 게 싫었던 것. 그것은 사회가 이혼한 여자에 대한 인식이 안좋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자라는 아이에게 '이혼한 가정의 아이'라는 걸 낙인처럼 찍어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니 아내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사회적 의식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이혼이 흠도 아니지만(흠이어서도 안됐고), 내가 '맞으면서'까지 이 가정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아이에게도 '맞고 참고 사는 엄마' 보다는, '혼자서도 행복한 엄마'쪽이 훨씬 안정적이니까. 때리고 맞고 소리지르고 울고 하는 공간이, 단순히 부모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안락한 가정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이 부모가 다 있으므로 괜찮은 것이 되는걸까. 우리는 아내를 단순히 '남편의 아내' 가족구성원에서 가족을 지켜야하는 사람으로 볼 게 아니라, 한 개인으로 봐야하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가 한 '개인으로서' '같이' 가족을 만들고 또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아내를 한 개인으로 볼 수 없다면, 아내의 주어진 역할을 잘 이끌어주기 위해 남편의 가르침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남자들이여, 부디, 결혼하지 마시라. 가족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한 사람 이상의 삶을 지옥으로 이끌지 말고, 사회를 쓰레기통으로도 만들지 말길 바란다.



이 같은 연구 결과로 볼 때 여성의 사회적 정체성과 역할을 가족 구성원으로만 한정하여, 여성을 사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현재의 가족 제도에서는 '아내 폭력'이 근절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아내 폭력' 문제를 둘러싸고 여성의 권리가 가족의 유지와 갈등하는 상황 자체가 현재의 가족이 여성에게 억압적임을 보여준다. '아내 폭력'의 발생, 수용, 해석, 대응은 가족 제도를 중심으로 성별화되어 있다. 여성의 아내 역할 수행 여부가 남편에 의해 폭력의 이유가 된다는 사실은 여성의 가족 내 성 역할이 여성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따라서 '아내 폭력' 해결 방식에서 가족 구조의 성 차별성을 문제화하지 않는 가족 가치에 대한 강조는 오히려 문제의 원인을 강화하는 것으로 '아내 폭력'의 사회적 대책이 되기 어렵다. (p.248)



'아내 폭력'이 가족 유지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개인의 인권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하는 이유는, 가족을 기반으로 하는 성별 제도(gender system)가 여성이 보편적인 인간으로서 권리를 갖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인권은 정치적 투쟁의 결과라는 과정의 의미로 생각되기보다는 선언적 진실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즉 한국 사회에서 인권은 관념적으로 긍정적, 진보적 가치로 간주되지만, 여성 인권처럼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한국 사ㅇ회의 주류 가치인 가족주의와 경합할 대는 사소하고 부차적인 것이 된다. 이러한 문화적 상황이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이유이다. 이처럼 성 차별 사회에서는 '모든 인간은 폭력당하지 않을 권리를 포함하여 인간으로서 권리를 가진다'는 인권 개념이 모순적인 명제가 되어버린다. (p.248-249)






증언자를 구하기는 ‘너무‘ 쉬웠다. 연구자 주변에 ‘아내 폭력‘ 경험자나 그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피해 여성, 가해 남성들 모두 학력·직업·계층·종교·연령에 상관없이 거의 전 계층을 망라했으며 피해자, 가해자 중에는 전문직은 물론 ‘심지어‘ 여성 운동가, 사회 운동가도 있었다. (p.52)

하지만 폭력을 극복하는 과정이 폭력을 당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면, 사람들은 그냥 그 상태에 머물려 할 것이다. 나는 피해 여성들의 ‘말하는(말해야 하는) 고통‘을 지켜보면서, 사회를 현재 그대로 두려는 보수주의자의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하게 되었다. 인간 생활의 어두운 문제(惡)를 ‘들추어내어‘ 연구하고 개선하려는 노력 자체가 악은 아닐까, 악을 파급하는 것은 아닐까, 악이 되기 쉬운 것은 아닐까? 폭력 문제를 연구한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연구자인 나도 폭력에 연루되고 접촉함으로써 부정의(injustice)한 상황에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증언자들의 고통은 청자(聽者)의 경험 밖에 있으므로 타인의 고통을 다루는 연주자, 여성 운동가는 그들의 고통을 타자화하기 쉽다. 이것이 바로 악이다. (p.57)

증언자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이야기가 부정되고 의심받았기 때문에 나의 사소한 태도에도 금세 상처받았다. 그들은 비난받는 데 너무나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그들의 입장에 충분히 동의하고 공감하는데도 그들은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열심히 설명하고 연구자를 설득했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 대부분의 증언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완전히 믿어주고 분노 표현을 격려하고 자신의 행동에 ‘혐의‘를 두지 않는 청자를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폭력당하는 아내에게는 제일 처음 자기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태도가 이후 그녀의 대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성이 폭력당한 경험이 수치심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녀가 ‘맞을 짓‘을 했거나 늦은 밤거리를 혼자 걸어다녀서가 아니다. 그것은 남성 중심 사회가 강요하고, 희망하는 해석 체계의 산물일 뿐이다. (p.61)

사례의 폭력 남편들은 자신의 남자다움을 위해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돈을 벌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본 연구의 50사례 49명의 남편 중 약 40퍼센트인 19사례가 무직이었다. 직업이 있다 해도 부인과 함께 자영업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 아내 혼자 일했다. 이 문제로 아내가 불만스러워하거나 항의하면 남편은 폭력으로 대응한다. 이는 현대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근본 원리인 성별 ‘분업‘ 논리가 실제로는 분업이 아니라 협박과 강제 속에서 여성의 이중 노동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여성은 세계 공식 노동력의 3분의 1, 비공식 노동력의 5분의 4를 담당하면서, 전 세계 수입의 10퍼센트만을 받으며 세계 재산의 1퍼센트만을 소유한다.) (p.158)

남편과 아내의 폭력 행사는 그들이 각자 다르게 처해 있는 가족 내외의 권력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남편과 아내의 폭력은 서로 다른 이유와 의미를 지닌다. 남편은 ‘내가 하라는 대로 하라‘고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지만 아내는 ‘이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며 ‘폭력‘을 행사한다. (p.230)

법정, 경찰서, 가족 앞에서 남편은 폭력 행위를 사과함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가족의 유지를 위해 노력했는가를 증명한다. 그러한 노력을 아내가 인정하지 않으면 남편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가정 파탄‘의 책임은 여성에게 돌아온다. 남편의 폭력 행위가 가족 유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용서 여부가 가족 유지를 결정한다. 이는 ‘아내 폭력‘ 정도로는 가정이 해체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 즉 아내가 맞고 사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뜻한다. 가족의 유지를 위해 남편에게 요구되는 책임 수준은 ‘때리고 사과‘하는 것이지만, 아내에게 요구되는 책임 수준은 ‘맞고 남편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p.234)

결국 여기서 나는 ‘아내 폭력‘을 여성 인권 침해가 아니라 가족 해체의 문제로 인식하는 기존의 시각에 도전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여성의 정체성을 사회적 개인이 아니라 아내, 어머니 등 가족 구성원으로서만 규정하는 한국 사회 구조가 어떻게 ‘아내 폭력‘을 발생시키고, 해석, 대응, 재생산하는지를 가족 내 성 역할 규범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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