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 적은 시집 2.


김선우 시인의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을 모두 옮겨 적었다.  4월 20일에 첫 시 '대관령 옛길'을 적었고, 5월 17일에 끝 시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를 적었다. 나란히 펼쳐놓고 보니 첫 시에도 끝 시에도 겨울과 자작나무가 나온다. 첫 시에선 '겨울 자작나무', 끝 시에선 '겨울산으로  돌아가는 자작나무'.  끝 시의 자작나무가 첫 시의 겨울 자작나무로 돌아와 서 있는 모습이다.  되돌이표 같은 순환. 


김선우 시인의 시들 속에서 에로틱한 여성의 몸이 자연과 생명, 순환의 주체로 깊어져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 읽고 쓰다가 나 혼자 민망하고 부끄러워하다가 그런 내가 한심하고 우스워 다시 부끄러워지곤 했다.  부끄러움의 되돌이표 순환. 




아들이 봉골레 파스타를 만들어줬다. 늘 맛있는 과식 뒤에 밀려오는 걱정과 후회들. 하지만 이런 게 바로 지극히 평범한 내가 맛볼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인데!  아들이 만들어주는 파스타를 거부하면서까지 지켜야 하는 게 도대체 뭔데!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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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8-05-18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들이 만들어주는 봉골레 파스타라니! 섬사이님,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런 기쁨이 여기 있건만, 뭣이 중허단 말입니까!! >.<

섬사이 2018-05-18 20:20   좋아요 0 | URL
그럼요, 제 말이 바로 그거예요.
불어나는 체중 따위, 아들이 만들어준 봉골레 보다 중허겠어요?
체중 때문에 아들의 요리를 누리는 즐거움을 포기할 순 없어요.
(그러나... 어느날 체중계 위에 올라가서 울지도 몰라요.ㅋ)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욜로욜로 시리즈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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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리 작가의 신간을 읽었다. 제목이 좀 길다.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극본의 형식을 차용해서 - 전적으로 극본은 아니다 - 쓰여진 이 소설은 M이 마흔여덟 번째 면접을 보기 위해 7월의 뜨거운 골목길로 나서는 것으로 첫 장면을 시작한다. 세상에, 마흔여덟 번째 면접이라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서류심사에서의 탈락이 있었을 테니, M이 감당했을 좌절의 깊이가 아득하다.

 

나만 빼고 지들끼리 잘 돌아가는 것 같은 세상은 너무 잔혹하다. 어떻게 해야 나도 그들과 같은 편이 설 수 있는지, 그 세계가 아무리 비정하고 냉혹하고 내 정신과 육체를 갉아먹는다 해도 아예 선택받지 못한 외부자보다는 피폐한 영혼의 내부관계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들끓는다. 그 욕망을 실현하기까지 한 개인이 느끼는 피 말리는 강박과 조바심은 취업을 원하는 이 시대 구직 청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렇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건가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이 느끼는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뜨겁고 불안한 욕망의 실현을 위해서, 거기 그들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여기선 회사)가 원하는 사람이 되고자(혹은 그렇게 보이고자)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한다. 이 소설이 '극본'의 형식을 차용한 이유가 바로 이게 아닐까.


M    면접이에요?

사장  아, 이 친구 참, 그게 뭐 그리 중요해?

M    확실히 알고 가야 합니다. 면접인지 아닌지.

사장  왜?

M    면접이라면...... 완전히 다르게 행동해야 하니까요.

사장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과자 회사의 연수 합숙 종료 이틀 전에 도망친 후 '복잡한 계약에 따른 고용관계'를 피해 면접 절차가 필요치 않은 단기직, 전단지 배포일을 하던 M이 자판기 관리 일을 소개해주는 야식집 사장과 나눈 대화다. 마음이 서늘해졌다. 사회가 원하는 사람으로 보이려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어느 정도 자아분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연극무대에 선 배우가 보여주는 모습이 실제 현실의 모습과 다른 것처럼.  과자보다 질소를 빵빵하게 채운 화려한 빛깔의 과자봉지처럼,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실제의 나(포장에 비해 보잘 것 없는 과자)와 상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부풀린 포장 사이에 존재하는 그 허무한 부피에 괴로워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그 길이 내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적어도, 길을 잃지 않았다고 착각하며 살 수 있다. 빵빵하게 부푼 화려한 과자봉지 안의 공허한 부피까지 모두 ''라고 세뇌하고 그 포장의 기술까지 나의 능력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날카로운 무언가에 찢겨 질소가 빠져버리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숨 막히게 촘촘하고 단단하고 폐쇄적인 사회라는 그물조직에 바람이 통하는 작은 구멍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쉽게 뚫릴 리 없겠지만 숨 좀 쉬며 살고 싶다. 숨 좀 쉬며 살게 해주고 싶다. 우리집 큰애들 나이가 취업과 무관하지 않아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큰딸과 친한 친구 6명 중 딱 절반인 3명이 취업에 성공했는데, 그 중 2명은 벌써 직장 스트레스로 괴로워 한다. (한 명은 간호사고, 또 한 명은 어린이집 교사다.) 다른 3명은 기약없는 취준 공부 중이다.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거나 토익을 공부한다고 한다. 취업준비를 하면서 아이들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다. 그 아이들에게 현실 세계는 방향도 방위도 알 수 없는 일그러진 시공간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나는 어디에 있는 거죠?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요? 너무 어두워서 나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요. 여기가 어딘지도 알 수 없어요. 그러니 그렇게 보고 있지만 말고 제발 알려줘요.

 

우리가, 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련할 수 있을까? 묵묵부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모두를 불편하고 힘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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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영산홍이 붉은 바다처럼 일어나 있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파르르 떠는 붉은 물결 같다. 영산홍 양쪽에는 겹벚꽃나무 두그루가 화사하게 구름같은 분홍꽃을 피우고 있다. 그 위로 비스듬히 눈 시린 햇빛이 쏟아지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마치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처럼 마음이 즐겁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가슴 속 묵은 먼지를 털어내듯 큰숨을 내뱉게 된다. 미세먼지도 없고 햇빛도 좋은 맑고 청명한 날이었다. 딸아이 침대에서 이불과 패드를 거둬 빨아 널었다.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고 햇빛이 들어오는 자리로 화분을 옮겨 놓았다. 빨래도 식물들도 행복해 보였다.

 

얼마 전에 다락방 님의 페이퍼를 읽다가 알게 돼서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에서 출간한 세계문학시리즈 중 베스트 e-book 30권을 아주 싼 값에 샀다. 마침 조지 오웰에 관심이 생기고 있는 중이었는데, 30권 안에 <동물농장><1984>가 들어있었고, 그 외에도 읽고 싶은 책들이 몇 권 있었다. <동물농장>은 민음사에서 나온 걸로 오래 전에 읽은 적이 있지만 <1984>는 처음이었다.



 

개인적으로 <1984>보다 <동물농장>이 문학성 면에서는 더 나은 것 같다. <1984>는 이 작품을 쓸 당시의 조지 오웰에게는 1984년이 미래였겠지만 나에겐 오래 전 과거라는 시간적 오차(?)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1984>를 읽으며 내가 조지 오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확실히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이다. 위대한 작가를 나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걸 몰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조지 오웰의 작가적 업적과 문학적 성과를 떠나서 인간으로서의 성향이 많이 다르다는 거다. 그는 정직하게 말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고, 행동하기를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아니다. 어쩌면 조지 오웰도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두려워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1984>에서는 분명 두려움이 느껴진다. 빅브라더라는 거대권력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인간의 무력함을 두려움 없이 쓰는 일이 가능하진 않을 것 같다. 조지 오웰이 나와 다른 건, 그는 두려워하면서도 쓰고 말하고 행동하는 용기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두려움이 없다면 용기를 증명할 수 없다. 나는 두려우면 숨는다. 그는 두려우면 썼다. 밑바닥까지 내려갔고, 총을 들었다.

 

앞에서 말했던 시간적 오차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동물농장>보다 문학성 면에서 부족한 것 같고, 메세지의 명확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1984>를 그의 대표작으로 꼽는 것은 보다 많은 물음들을 던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조지 오웰이 염려했던 전체주의가 세상을 지배할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지는 않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1984>에서 보여주는 여러 정치사회적 술수들에 대해서만은 어쩌면 부분적으로라도 우리 사회에 적용 가능할지 모른다는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의미있게 읽을 책인 것은 분명하다.

 

<1984>를 읽고 어제부터 조지 오웰의 에세이를 담은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조지 오웰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김사인의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의 필사를 마쳤다. 324일에 첫시 '풍경의 깊이'를 옮겨적기 시작해서 419일에 끝시 '강으로 가서 꽃이여'를 적었다. 25일간 매일매일 시를 옮겨적는 동안 나는 시와 가까워진 걸까. 넓은 광장 이 끝과 저 끝 마주보는 벤치에 앉아 살짝 눈은 마주친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저 끝 벤치에 앉아있던 시가 ', 매일 이 광장을 찾아와서 맞은 편 끝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이 있네.'하고 알아봐주지 않았을까. 계속 옮겨적고 읽다보면 언젠가는 시와 한 벤치에 앉는 날도 오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지금은 김선우 시인의 시집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을 옮겨 적고 있다. 오늘 '가을 구름 물속을 간다'까지 옮겨 적었다.



 

조지 오웰은 이 봄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1984>를 읽다가 문득 영산홍 붉게 화려하고 햇빛 찬란한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책의 내용과 풍경이 너무나 어긋나 있어서 현실이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곤 했다. 하지만 음산한 계절에 <1984>를 읽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너무 끔찍했을 것 같다.그러니 차라리 봄에 읽는 편이 더 낫다. 한동안 조지 오웰의 책을 몇 권 더 읽게 될 것 같다. 조지 오웰을 이해하려면 스페인 내전에 대한 상식도 좀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읽어야 할 박지리 작가의 책도 한 권 더 남아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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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단 대학 탐방기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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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금까지 읽은 박지리의 책들 중 좀 특별하다. <합체>, <맨홀>,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그 내용이 밝든 어둡든 주로 십대 소년들이 주인공이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양춘단이라는 65세의 시골 할머니다. 순박하고 어리숙하지만 당차고 정도 많고 호기심도 많은 푸근한 할머니. 석공 양호익의 범상치 않은 태몽을 받고 태어난 양춘단은 꼭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는 가시내라는 것과 가난한 살림살이 때문에 못 배운 한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서울 아들네에 갔다가 받은 건강검진에서 남편 영일이 양성종양진단을 받는 바람에 정든 송정리를 떠나 서울 아들네로 오게 된다. 영일을 병간호 하던 중에 만나게 된 양정례의 소개로 천지대학교 청소 일을 하게 된 춘단은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는 게 그렇게 신 나고 좋을 수가 없다. 명문 천지대학교를 다니게 된 양춘단은 하숙생 서성환(장대열), 시간강사 한도진, 동료 미화원들과 소장을 만나고 겪으면서 세상의 모순과 가식, 부조리와 맞닥뜨린다. 마치 만담처럼 경쾌하게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가벼운 건 아니다. 이야기의 전개방식도 과거와 현재를 건너다니고,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사건과 맞물리고, 현실의 아픔이 춘단의 부모 앙호익과 정순규를 향한 한탄으로 이어지기도 해서 처음엔 다소 산만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차근차근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아, 하고 감탄하게 되는 지점들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관계와 오염에 대해 생각했다. 이 사회가, 춘단이 일하는 천지대학교 교수와 학생들, 소장, 남평구 교회의 목사 등이 맺고 있는 관계의 방식과 관점은 양춘단과 미화원들이 타인을 대하는 방식과 사뭇 다르다. 미화원들은 임금삭감과 소장의 무례한 언동에 대해 대학 측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대학은 본 대학은 미화 용역업체인 더클린과 미화원들의 계약 관계에 하등의 관련이 없음을 표명하며 미화원들을 더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에 미화원들은 분개한다.


우리랑 아무 상관이 없다고? 우리가 누구를 위해 일하는데? 우리가 뭐 소장을 위해 일하나. 우리가 걸레질해주는 복도로 걸어다니고, 비질해주는 강의실에서 공부하고, 우리가 쓰레기 버리고 변기통까지 닦아주는 화장실에서 오줌똥 누면서, ? 이제 와서 우리랑 자기네가 아무 상관이 없어?”


관계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관점이 극명하게 비교되는 부분이다. 책임의 소재와 권력의 방향과 힘의 역학, 이해득실과 유불리를 판단하는 것이 현대 도시 사회의 복잡한 관계 맺기의 방식이라면, 양춘단과 미화원들은 인정과 애련함으로 관계를 파악한다. 어느 틈엔가 우리는 ’, 고용인과 피고용인, 업무적 관계를 인간관계로 인지하게 되었다. 너와 나 사이에 분명한 계약이 없다면, 혹은 함께 나눌 업무적 책임감이 없다면 난 너에 대해 기대할 것이 없는 관계다. 언제부터인지 나도 사람을 때문에 만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물론 함께 일을 하면서 끈끈한 동지애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동지애라는 것이 함께 일을 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었을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라 일이 끝나 마무리가 되면 그 동지애라는 것도 흐리고 옅어지고, 어쩌다 만나더라도 형식적인 안부나 주고받는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고 만다. ‘이 없이는 전화 한 통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들이 내 삶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나 또한 그들의 삶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것이 현대 도시인들의 인맥이다. 인맥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 사회적 지위와 영역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것, 혹은 성취감 같은 것들이다. 참 메마른 관계다. 메마르고 병든 관계는 상대적 약자의 위치에 선 사람을 벼랑 끝에 세운다. 시간강사 한도진이 그랬고, 양춘단의 첫째아들 종철이가 그랬고, 춘단의 손주 삼수생 준영이가 그랬다. 시급 오백원 삭감에 생사의 위협을 느끼고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던 미화원들은 툭, 툭 밥줄 끊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일자리에서 쫓겨났다. 힘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여기는 세상은 잔혹하다.


얼마 전 김사인 시인의 <봄밤>이라는 시에 가슴이 녹아내리며 울컥했던 것도 그 시 속에서 나의 결핍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불콰한 낯빛을 하고 돈 따위 없어도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부비는 모습에 나도 그 싱싱하고 풍요로운 관계의 망 속으로 뛰어들어 함께 울고 웃고 싶은 마음이 치솟아서.


책의 결말에서 양춘단은 천지대학교의 상징인 코끼리 위에 몰래 올라가 겨우내 망치질을 한다. 남평구에서 양춘단의 아버지 석공 양호익은 온세상 근심을 홀로 떠안은 고통의 모습으로 서 있는 거대한 예수상을 무너뜨렸다. 자신이 만든 것이었고, 그 지역의 명물로 인정받는 예수상이었다.


추수감사절 날, 마을 신도들은 가져온 오곡백과를 예수상 앞에 쌓아놓고 하루 종일 통성기도를 올렸다.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사꾼의 삶에서부터 기대한 만큼은 영특하지 못한 자식들, 병원에서도 답을 내주지 않는 병, 두 개로 갈린 나라까지, 온갖 고통을 토로하며 울부짖던 사람들의 기도가 극에 달하자 그곳은 억장이 무너지는 비명과 혼절도 보기 좋은 예절로 통용되는 상갓집으로 바뀌었다. 자신이 만든 상 앞에서 벌어지는 가을 잔치를 구경하기 위해 교회에 간 양호익은 술을 좋아하고 노래를 즐겨 부르던 남평구 사람들의 얼굴이 사는 기쁨은 하나도 없이 고통으로만 일그러져 있는 것을 목격했다.’(345)


그것은 양호익이 보기에 오염이었을 것이다. 자연스럽고 건강하고 순박한 정으로 살아가던 오랜 이웃들이 자신이 만든 고통의 예수상 앞에서 고통으로 오염되어 있었던 거다. 그래서 양호익은 예수상을 무너뜨린다.


얼마 뒤, 새벽 기도를 다녀오던 길에 문득 예수상이 사라진 자리 뒤에서 오만 가지 색으로 빛나는 위대한 자연과 그 속에서 영원히 이어질 삶의 회귀성, 이번 생에서 자신이 무심코 저지른 업을 발견한 어떤 이는 잠시나마 속세에 흔들렸던 방종을 뉘우치며 개종을 철회하고 본래의 믿음으로 돌아갔다. 이불을 둘러쓰고 돌아가며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추위를 나는 남평구 사람들은 겨우내 예수상에 대한 갖가지 소설을 만들어냈지만 어느덧 더 아래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눈을 녹이고 씨를 뿌릴 계절이 왔음을 알리자 몸이 시키는 대로 냄새나는 이불을 걷어차고 기지개를 켜며 밭으로 나갔다.’ (346)


그때 춘단은 보았다. 가을밤 내내 아버지 양호익이 사다리와 망치를 들고 몰래 오솔길로 걸어가는 것을. 그래서일 거다. 춘단은 한도진의 자살을 계기로 그 잘났다는 천지대학교가, 이 사회가 허위와 위선, 부조리와 부패, 비겁함으로 오염돼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버지 양호익이 예수상을 부수어 오염을 몰아내고 마을에 건강함을 불러왔듯이 춘단도 거대한 코끼리 상을 무너뜨림으로 모든 것을 바로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은 가슴 아프고 그러면서 따뜻하다. 영일과 수탉 닭터의 이야기, 영일과 춘단이 서울에 올라와 터미널에서 본, 구경나온 사람이 백인데 아무도 그 원인을 알지 못하는 인질극에 대한 뉴스 이야기도 따지고 보면 생명력 가득한 자연과 누구도 알 수 없는 요지경 세상에 대한 비유일 것이다. 이미 세상을 떠난 작가의 재능이 너무 아깝다.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며 재미있고 따뜻하고 그러면서 가슴 아프고 생각할 것들을 뒤에 많이 남기는 이야기들을 더 써주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다. 나를 오염시키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쓸모와 건재함을 과시하고 싶은 욕심에 흔들리던 때였다. 진짜 나를 가리고 있는 내 안에 있는 거대한 코끼리 상을 무너뜨려도 좋은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이 책 덕분에 알게 되었다. 하늘에 있는 작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 그란디 엄메여, 만약에 그 교수 선생 말이 옳다고 치면, 엄메도 큰오빠랑 작은오빠랑 나랑 춘애랑 준수한테 착취당한 거요? 엄메도 엄메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한테 옷이랑 신발이랑 다 빼앗기고 벌거숭이가 된 거요? 그라믄 나도 도둑이고 강도인 거요? 아이고, 나는 모르것네.참말로 복잡하구만.
.....근디 엄메요, 그냥 나는 미안허네. 착취고 뭐고를 떠나서 엄메한테 그냥 미안허네.
오늘은 말이 길어졌지라. 그냥 하는 말이오. 120~121쪽

소장의 무례한 언동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다른데서 청소일하는 사람 이야기를 들으니 아예 이름 대신 개, 소, 돼지, 말이라고 부르며 때리는 소장도 있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이 사람은 아직까지 욕은 하 하지 않는가. 때리지만 않는다면 욕을 듣는대도 한 귀로 넘기면 될 일이지. 험한 말 좀 듣는다고 뭐가 닳는 것도 아닌데..... 갑작스럽게 궁지에 내몰라 자신의 처지에 어떻게든 위로하기 위해 11퍼센트가 삭감된 임금을 이해해보고, 버릇없는 소장을 이해해보고, 자신이 개 소 돼지라고 욕을 듣는 상황까지 이해해보려던 미화원들은 어느덧 얼마 남지 않은 인격까지 다 버리고 진창인 밑바닥을 향해 스스로 몸을 던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208쪽

학교에서 미화원들이란 보이지 않을수록 좋은 존재였다. 무난한 소장, 까다로운 소장, 김종래 같은 소장, 어떤 소장이 오든 미화원들이 지켜야 할 기본강령은 깨끗한 시설 유지와 최대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일하는 것이었다. 236쪽

춘단은 물어보고 싶었다. 어제까지 저 그림자 속에 놓여 있던 그 많은 팻말은 어디로 갔는지, 천명의 서명을 받는다던 공책은 누가 가져갔는지, 이곳을 떠나선 갈 데가 없다고 외치던 사람들은 어디로 떠났는지, 그러나 대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70쪽

사람의 운명이란 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하룻밤만의 생각으로 내리는 결정일까. 아니면 먼훗날, 소중한 무언가를 지킬 수 없는 순간에 맞닥뜨리게 되면, 부모도 모르게, 형제도 모르게, 친구도 모르게 자신의 발목을 자르고 스스로 뛰어내리겠다고 신에게만 조용히 고백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오래된 결심일까. 만약 그런 것이라면 삶에 미련을 가지도록 달콤한 말들로 꾀어보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얼굴이 상해 보인다, 무슨 고민이 있느냐, 다 괜찮아질 것이다, 정도의 서툰 걱정이 무슨 위안이 될 수 있을까. 그 깊고 차가운 물 앞에 섰을 때는 이미 이 밤이 나의 마지막 밤이라고 결정지어놓은 것일 텐데. 284~285쪽

그러나 소장은 진실을 알면서도 그것과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진실을 눈앞에 펼쳐놓고 보여줘도 똑바로 볼 의지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 고집 센 무지 앞에서는 황금 들녘이 황무지로 둔갑하고 찢어진 모자를 쓴 허수아비가 경찰관 노릇을 하는 것 아닌가. 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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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리 작가의 책을 <다윈 영의 악의 기원>, <합체>에 이어 <맨홀>을 읽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한 번 더 읽고 난 다음이었다. 1948년에 발표된 일본 작가의 소설 <인간 실격>2012년에 출간된 한국작가의 소설 <맨홀>은 그 주제가 비슷하게 닿아있다. (<맨홀>은 2012년에 책이 나왔고, 2017년에 표지를 갈아입고 새로 나왔다.) 인간의 난해함, 삶의 부조리, 가식적이고 이중적인 세상, 주인공은 세상과 겉돌고, 괴로워하고, 안간힘을 쓴다.

 

다른 게 있다면 <인간 실격> 요조의 방황의 원인이 타고난 예민한 감각 혹은 천재성과 같은 선천적인 것이라면 <맨홀>의 이름조차 갖지 못한 주인공 ''의 방황은 아버지의 가정폭력과 학대라는 분명한 원인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악마같은 아버지를 세상 사람들은 16명의 생명을 구한 자랑스런 소방관이라며 경의를 표할 때나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누나와 엄마가 아버지에 대한 '용서'를 말할 때 주인공 ''가 느껴야 하는 역겨움과 분노가 너무 실감나게 다가온다. <맨홀>의 주인공, 이제 겨우 고등학생인 ''의 불행과 비교하면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의 불행은 가볍게 느껴진다. 내가 천재성의 비극에 대해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언제나 인간관계란 것에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무엇이든 하나라도 틀어져 버리면 그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끝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집에서는 관계랄 수도 없는 학대를 당하면서 밖에서는 완전하고 순결무구한 것만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나의 속마음을 눈치 빠른 누군가에게 들킨 것 같으면, 나는 바로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하며 그 녀석과의 관계를 끊어 버렸다. 그러고는 역시 혼자가 편하다고 자위했다. <맨홀> 201

 

<인간 실격>의 요조는 학교 따위 우습게 여기고 스스로 그만두다시피 하지만 <맨홀>''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올까봐 전전긍긍하며 자랐고, 학교에 다니지 못해서 아무것도 못 하는 구제 불능 낙오자가 될까봐 겁을 먹었고, 학교에 못 가게 될까봐 두려워서 지옥 같은 집을 뛰쳐나오지도 못한다. 누군가 자기의 불행을 알아차릴까봐 친구들 사이로 스며들지도 못한다. 마음 속에 타오르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거세어질수록 ''를 삼켜버릴 깊고 어두운 구멍도 더 짙고 선명해진다.

 

이제는 내 정체를 완벽하게 은폐할 수 있나 보다 하고 마음을 놓으려는 참에 저는 실로 불의에 등 뒤에서 칼을 맞았습니다. ...... (중략)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았습니다. 일부러 실패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도 아닌 다케이치한테 간파당하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온 세상이 일순간에 지옥의 업화에 휩싸여 불타오르는 것을 눈앞에 보는 듯 하여 왁 하고 소리치면서 발광할 것 같은 기핵을 필사적으로 억눌렀습니다.

그때부터 계속된 나날의 불안과 공포.

<인간 실격>, 31~32

 

그에 비해 <인간 실격>의 요조는 '익살'이라는 나름의 비법을 연마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는다. 호감을 얻는다고 해서 요조가 느끼는 삶의 비관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다케이치에게 자신의 '익살'이 거짓이라는 걸 들키고는 내면에 품고 있는 인간에 대한 공포가 탄로날까봐 노심초사한다.

 

<인간 실격>은 누구나 갖고 있는 내면의 고민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 <맨홀>처럼 가정폭력이나 학대 같은 분명하고 심각한 원인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아가면서 떠안게 되는 어쩔 수 없는 고민들. 아무리 해도 알 수 없는 한 길 사람 속이라든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맑게 드러나지 않는 세상, 오리무중 뿌연 안개로 가려진 것 같은 애매모호한 진실 같은 것들, 나이를 먹고 오래 살아도 풀 수 없는 삶의 난해함과 인간관계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들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두 책이 비슷한 주제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인간 실격>은 좀 더 보편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 같고, <맨홀>은 좀 더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스토리를 통해 주제에 접근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읽은 박지리 작가의 책들 중에서 <맨홀>이 가장 무겁고 어두웠다. 가정폭력의 깊은 상처를 가졌다 하더라도 자라나는 청소년 고등학생의 이야기니까 마지막 어디쯤에 작가가 주인공 ''가 이 지독한 상처를 이겨낸다는 희망의 암시라도 마련해 두었을지 모른다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인간 실격>도 그렇고 <맨홀>도 그렇고, 현실은 가혹하고 차디차고 광폭하고 허위와 허세에 가득 차있고, 역겹다고 말할 뿐이다.

 

연이어 어둡고 쓸쓸하고 아픈 책을 읽었더니 우울해진다. 더구나 <문라이트>라는 영화를 봤는데, , 이 영화도 마음이 힘들었다. 세상엔 왜 이렇게 아픈 이야기들이 많은 걸까.




 

게다가 세월호 4주기다. 문학동네에서는 <눈먼 자들의 국가> e-book을 무료로 대여 중이다. 오늘 낮에 태블릿에 다운받아서 맨 첫 글, 김애란 작가가 쓴 꼭지를 읽었다. 읽으면서, 왜 이렇게 글을 잘 쓴 거야, 이씨, 너무 잘 써서 그날 느꼈던 감정들이 다 결을 세우고 일어나잖아. 했다. 더 이상 읽기가 어려워서, 그 다음 글로 차마 넘어가지 못했다. 아침에 마음을 단단히 하고 다시 읽어야겠다.




 

그 다음엔 좀 따뜻하고 희망적인 책을 읽어야겠다. 안 그러면 무기력해져서 우울로 빠져버릴 것만 같다. 박지리 작가의 다른 책 <양춘단 대학 탐방기>가 테이블 위에 대기 중인데, 표지 분위기도 밝고 (코믹하고), 앞에 몇 쪽을 읽어본 바로는 묵직하고 어두운 느낌은 아니다.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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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8-04-16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페이퍼를 보니 저도 맨홀을 읽고 싶은데 꼭같은 크기로 ‘읽지말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눈먼자들의 국가는 다운 받으러 가야겠어요.

섬사이 2018-04-18 00:03   좋아요 0 | URL
너무 아픈 이야기를 읽으면 마음이 힘들어요.
허구의 이야기라는 걸 알면서도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이고,
거짓말 같은 비극들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걸 수차례 목도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봐요.
<눈먼 자들의 국가>는 조금씩 읽고 있는데,
세상에 넘쳐나는 아픈 이야기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그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