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사생활 - 우리는 모두, 단어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제임스 W. 페니베이커 지음, 김아영 옮김 / 사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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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정을 바깥으로 표현해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감정들은 입밖으로 내는 순간 더 진해지지만, 어떤 감정들은 입밖으로 내는 순간 그 크기가 작아지고 따라서 내 속도 편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감정을 입밖으로 내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그들이 말을 했으면, 싶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들을 더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내 경력으로 말하자면 초기에는 건강, 감정, 트라우마 경험의 특징등을 연구했다. 그러다 1980년대 초반, 나는 우연히 발견한 사실에 마음이 끌렸다. 지독한 트라우마 경험을 혼자서만 간직하는 사람들은 그 경험을 드러내 놓고 말하는 사람들에 비해 건강상의 문제가 훨신 많았던 것이다. 비밀을 간직하는 것이 왜 그리 해로울까? 더 중요한 질문을 하자면, 강렬한 감정을 수반하는 비밀을 터놓는 사람들은 더 건강해지는 것일까? 나와 제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금세 알게 되었다. 답은 <그렇다> 였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하루 15분에서 20분 정도씩 사나흘 연속으로 자신의 트라우마 경험에 대해 글로 써보라는 실험을 시작했다. 그 결과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해 글을 쓴 사람들은 아무런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 주제에 대해 글을 써야 했던 사람들에 비해 건강이 호전되었음이 증명되었다. 이후의 연구들에서는 감정을 표출하는 표현적 글쓰기expressive writing 가 면역 기능을 높이고, 혈압을 낮추며, 우울한 감정을 줄이는 한편 평소의 기분도 더 나아지게 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최초의 글쓰기 실험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 전역에서 2백 건 이상의 비슷한 실험이 수행되었다. 연구 결과는 그리 대단치 않을 때도 많지만, 감정의 격변을 <언어의 변환>하는 단순한 과정은 신체적 및 정신적 건강과 꾸준히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p.26)




내가 이토록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언제나 말과 글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다. 나는 계속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므로, 앞으로도 이렇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겠구나. 실제로 나는 아주 많은 감정을 글을 쓰면서 다스리곤 한다. 분노도 슬픔도 기쁨도 행복도, 뭐든 글로 쓰는 것이 내게는 좋고 편하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책의 내용이 막 어렵다거나 한 것은 아닌데, 우선적으로 이 책은 '영어로 읽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은거다. 번역된 채로 이 글이 원래 전하던 바를, 다른 문학작품이 그러한것보다, 완벽히 전달하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싶은 거다. 원서로 읽으면 뭔가 더 와닿지 않았을까 했던 것. 또한 사람들의 단어(내용어와 기능어)를 연구해서 그 사람에 대해 파악한다는 것은 의미있고 중요한 일로 보이지만, 그것은 그저 우리가 추측하는 것에 비해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일뿐 완전한 방법도 아니며, 매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라는 식으로 되어서 흐음, 하고 약간 갸웃하게 되는 것이다. 


그건그렇고, 아니, 이 세상에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말과 글을 계속해서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거기에 흥미를 가지고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넘나 신기하고... 이 세상은 내가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어서 굴러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전에 고래를 연구했던 박사에 대한 책을 읽으며 느꼈던 것처럼, 내가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누군가는 꽤 흥미를 갖는다는 거,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지 않은가.



이 책에서 이메일을 연구하고 단어와 말, 트윗을 연구하는 이 심리학자 덕에, 나는 이메일로 언어를 연구한다던 레오(그래, 바로 그 레오!) 생각이 났고, 덕분에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다시 읽게 되었다. 이 새벽 세시 얘기는 몹시 길어질 것 같으므로 따로 페이퍼를 작성하기로 한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요, 당신 남자예요 여자예요?" 독자 여러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진는 말아요." 라고 시작하는 문장 치고 듣는 사람에게 좋게 끝날 수 있는 문장이 있을까? 브리타니는 자기가 못되게 굴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예고한 것이다. (p.89)





일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상사가 내 밑에 직원에게 늘상 하는 얘기가 "기분나쁘게 듣지 마, 나는 속에 품지는 않아, 금세 잊어버려" 였단다. 그러면서 그 직원은 내게 하소연 했더랬다. '아니, 자기는 꽁하고 있지 않는다면서 나한테도 그러라고 잔소리 실컷 하는데, 제가 목석이에요?" 하는 거였다. 저 말 너무 웃기지 않나.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마, 라니. 어디다대고 명령질이야 ㅋㅋㅋㅋㅋㅋ 내 기분을 왜 니가 컨트럴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겁나 어처구니 없는 말이다. 하하하하하. 저 말 딱 듣는데 그 상사 생각 넘나 났고..... 아 싫어...


무릇 상사들이란 그래야하는걸까..싫어야 하는걸까...그런데 나도 상사..이지.....인생 뭘까?



신디의 발견에 따르면 다이어트 성공을 가장 잘 예측하는 지표는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 참여 여부다. 요컨대 다른 사람들과 메시지나 게시물을 더 많이 주고받을수록 살 빼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글을 쓴 사람들은 음식과 다이어트에 대해서만 글을 쓴 사람에 비해 훨씬 성공적으로 살을 뺐다. (p.198-199)



위의 문장대로라면, 아아, 나는 지금 모델을 하고 있어야 하지 않나......?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인지적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인지적 단어는 다양한 사고 과정을 나타내는 단어로서 통찰력을 보여주는 단어(이해하다, 알다, 생각하다), 인과적 사고를 나타내는 단어(왜냐하면, 이유, 근거), 이와 관련 있는 여러 차원들의 단어를 포함한다. 여자들이 이러한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은 여자는 남자보다 합리적이지 못하고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없다고 믿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뺨을 후려갈기는 셈이다. (p.248)



후훗. 아리스토텔레스의 뺨을 후려갈겼다!




서로의 지위를 판단하는 행동은 영어를 사용하는 대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사실 훨씬 더 간단한 잣대로 지위를 가늠하는 사회도 있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사회적 서열을 판단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가 나이다. 나이가 같으면 그 다음에는 재산이나 수입으로 파난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서로의 생활에 관해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일이 흔하다. 서양에서는 이런 행동이 무례하다고 여겨질 수 있다. 한 예로, 나는 치ㅗ근 한국에 다녀오는 길에 나와 나이가 얼추 비슷해 보이는 한국 남자 옆에 앉았다. 비행기가 이륙한지 10분 정도 지나자 그는 내 나이를 물으면서 말문을 텄다. 우리가 정확히 같은 나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그는 내 연간 수입이 얼마인지 물었다. 내가 대답하자 그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만 말했다. "뭐 둘 다 비슷하네요." 아마 그가 나보다 수입이 훨씬 높은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후 나와 대화하면서 더 편안하게 느낀듯했다. (p.90-91)

수치스럽거나 자신의 평판을 해칠 수 있는 사건은 오랫동안 비밀에 부쳐질 때가 많다. 나는 이것을 일찍이 발견하고, 17세 이전에 트라우마가 될 만한 성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묻는 항목을 설문지에 넣었다. 수천 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여자의 경우 22퍼센트, 남자의 경우 11퍼센트가 그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충격적인 점은 이렇게 답한 집단이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 비해 건강 상태가 훨신 나빴다는 사실이다. 이후 수행된 연구들에 따르면 문제는 그런 성적인 트라우마가 거의 모두 비밀이라는 점에 있었다. 어떤 유형의 사건이든 사람들이 혼자서만 알고 있는 일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해로울 가능성이 높았다.
중요한 감정적 격변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에 어긋나는 일이다. 우리는 감정적 사건을 겪으면 대화를 나누고 싶어진다. (p.199-200)

감정은 단순히 사건에 대한 반응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다양한 감정들은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다른 사람들에게 반응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감정은 사람들을 가까워지게 하거나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사회적이다. 감정은 다른 사람들의 동기, 목표, 의도에 대한 의미 있는 신호이기도 하다. 기능어와 감정 상태는 긴밀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감정은 우리가 세상을 다르게 생각하게 하고, 기능어는 이런 생각의 변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p.201)

생각과 감정의 관계는 여러 세기 동안 철학과 심리학에서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은 논리와 감정도 근본적으로 다른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17세기 학자 데카르트는 한 발 더 나아가 감정이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초기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 역시 감정과 열정이 어떻게 판단을 흐리는지 강조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근본적인 감정의 문제들이 성격과 행동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우리는 감정과 이성에 대해 매우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뇌과학에서 발견된 점들 덕분이기도 하다. 이런 새로운 관점을 가장 설득력 있게 대변하는 사람 중 하나는 안토니오 R. 다마지오다. 다마지오는 전두엽이 손상된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써온 신경과학자다. 전두엽은 원시적인 감정 담당 영역과 추상적 논리 및 언어와 관련된 영역에서 보내는 정보를 통합한다. 이 통합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일어나므로 감정과 생각을 뚜렷하게 구별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p.201-202)

즉 감정은 생각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 장의 핵심 메시지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에 감정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우리의 감정은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생각은 우리가 기능어를 사용하는 방식에 반영된다. 한 발 더 나아가, 기능어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p.202)

글쓰기와 말하기에서 나타나는 형식성은 중요한 문제들과 관련이 있다. 형식적 사고를 주로 하는 사람들은 지위와 권력에 관심이 더 많고 자기반성적인 경향이 낮은 편이다. 이들은 덜 형식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에 비해 음주와 흡연을 적게 하고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지만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덜 정직한 경향도 있다. 또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글쓰기과 말하기 스타일이 즉각적인 쪽에서 형식적인 쪽으로 변한다. (p.213)

분석적 사고는 그 사람이 인지적으로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하거나 글을 쓸 때 구별을 하는 사람은 대학에서 더 높은 성적을 받고, 더 정직한 경향이 있으며, 새로운 경험을 열린 태도로 대한다. 이들은 또한 분석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낮은 사람에 비해 글을 더 많이 읽고 자기 자신을 더 복합적인 관점으로 본다. (p.214-215)

두 사람이 서로의 언어 스타일에 얼마나 빨리 적응할 수 있는지 알아내기는 어렵다. 앞서 살펴보았듯 낯선 사람과 대화할 때 이 적응은 보통 몇 초 안에 일어난다. 이때 두 사람은 상대방의 형식성, 명확성, 감성적인 정도, 사고방식에 맞추어 즉시 적응한다. 두 사람 모두 어떤 대명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즉 그녀, 그,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따라간다. 대화라는 공이 계속 굴러가게 하려면 둘 다 주제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사실 둘 중 한 명이나 둘 다 순간적으로 한눈을 팔거나 이상하게 행동하기 시작한다면(거짓말 등) 상대방은 대화를 계속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p.312)

한편 <우리>라는 단어는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한 연구에서는 심부전증 환자들을 배우자와 함께 인터뷰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비롯하여 여러 질문들에 대답했다. "두 분이 심장병을 극복해 오시면서 제일 잘한 일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배우자가 이 질문들에 답할 때 <우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 사람일수록 6개월 후 환자의 상태가 더 좋아졌다. 배우자가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환자의 건강 문제를 부부가 함께 전념해야 할 공통의 문제로 보았다는 의미였다. 부부가 병을 극복하려고 함께 노력하는 경우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 (p.318)

아마 우리는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넘치도록 행복하게 하거나, 미친 듯이 화나게 하거나, 깊은 슬픔에 빠지게 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이대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그 사람의 이름은 뺀 채 그 사람을 가리키는 다양한 대명사를 넣어 말할 때가 많다. 따라서 말하는 사람이 한 친구에 대해 생각하면서 말하고 있다면 3인칭 단수 대명사를 높은 비율로 사용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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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에게 간다
    from 마지막 키스 2017-05-29 11:05 
    우리는 미래에 대해 알 수 없다. 내가 언제 누구를 만나 어떤 상황이 될지 알 수 없고, 내가 당장 내일 무슨 책을 읽을 지도 알 수 없다. 나는 제임스 W. 페니베이커의 《단어의 사생활》을 읽다가, 심리학자인 저자가 언어에 대해 연구한 책을 읽다가, 아아, 언어를 연구한다고 했던, 내가 오래전에 사랑에 빠진 남자, '레오'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마침 그냥 가볍게 훑어볼까, 하고 출근길에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들고 나왔는데, 가만있자
  2. 내가 얼마나 당신의 일기를 읽고싶은지,
    from 마지막 키스 2018-11-07 09:21 
    나는 자주 일기를 쓴다. 매일 쓰진 않아도 언제나 글을 쓰는 편에 속한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과 느낌은 이 곳에 쓰지만, 책과 상관이 없는 사적인 것은 네이버 블로그에 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사적인 내용,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좀 더 깊은 속내에 대해서는 늘상 가방 안에 넣고 다니는 다이어리에 쓴다. (이것이 나의 다이어리들...)기록은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있다. 내 경우엔 그렇다. 이 책, '서민'의 《밥보다 일기》에서도 일기의 중요성을
 
 
 
흔한 자매 뚝딱뚝딱 누리책 13
조아나 에스트렐라 지음, 민찬기 옮김 / 그림책공작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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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는데 괜히 눈물이나고 여동생 생각 너무 나서, 다 읽은 책을 여동생에게 보내려다가, 이렇게 엽서를 썼다.




여동생에게.

이거 읽는데 괜히 눈물이 나.

사랑해.

네가 내 동생이어서 감사하고

내가 너의 언니라는 게 너무 행복해.


2017년 5월 24일

너의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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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7-05-24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뭔데뭔데. 이 리뷰 때문에 저 책이 너무 궁금해요!!

다락방 2017-05-24 14:04   좋아요 1 | URL
응 그냥 평범한 어린 자매 이야기인데, 진짜 별 거 없는데 막 짠하네.
괜히 타미 화니 생각도 나고...
 
어린이책 읽는 법 - 남녀노소 누구나 땅콩문고
김소영 지음 / 유유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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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읽어서 학교생활이 재미없어졌다면 독서가 생활의 질을 떨어뜨린 셈이다. 게임을 하고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은 요즘 어린이의 생활에서 일부분일 뿐 잘못이 아니다. 그런 어린이도 얼마든지 책을 좋아할 수 있다. (p.24)



아빠는 내게 자주 말씀하셨다. 보통 책을 좋아해서 책을 많이 읽는다면 술을 마시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너는 맨날 술을 마시면서 책을 좋아할 수 있냐, 그거 너무 신기하다, 고. 아니, 아빠는 술도 안마시고 책도 안읽으면서 뭘 내가 신기해... 아빠에게 술과 책은 같이가기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는가 본데, 우리의 작가 김소영 님은 자신의 책에서 게임을 하고 연예인을 좋아하고 그래도, 얼마든지 책을 좋아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크- 그러니까 여기에 어른을 대입하자면, 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책을 좋아할 수 있다, 뭐 이런 거 아니겠는가. 술과 책, 만세! 내가 여태 살아보니, 책과 술만한 게 없더라. 내가 책과 술과 남자를 사랑했지만, 남자란 언제든 왔다 가는 것..... 그러나 책과 술은 변함없이 내 곁에 있어!! 

라고 쓰면 '어린이책' 읽는 법, 이라는 책에 너무 불손한...감상인가...... (잠깐 시무룩)



책은 뭘까?


최근 3주간 나는 몹시도 우울했다.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쳐있었다. 뭐가 먼저 찾아왔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지쳐 몸이 지치게 된건지, 몸이 지쳐 마음이 지치게 된건지. 어쨌든 우울한 채로 한 2-3주를 지냈는데, 놀랍게도 이 책은 내 마음이 회복되는 데 도움을 줬다. 이 책이 대체 뭘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책은 좋은 치료법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정말 뭘 한 건지 모르겠다. 끝까지 다 읽어도 나에게 '기운내'라고 말하는 게 아닌데,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 쓰여진 평범한 문장들이 나를 위로하는걸까. 그러니까 내가 위로 받은 문장에는 이런 게 있다.



"그래도 『안 돼, 데이빗!』이랑 『괴물 그루팔로』는 추억으로 간직하기로 했어요."

'이 책만은 버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 어린이와 책의 관계가 새로워진다. 이때 책이 갖는 특별한 의미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런 책은 '명예의 전당'에 꽂아둔다. 책꽂이의 한두 칸을 비워 제일 좋아하는 책만 진열하는 것이다. (p.55)



여기 어디에 특별함이 있단 말인가. 어떤 특별한 단어가 없는데, 나는 이 부분이 진짜 너무 좋은 거다. 그러니까 내가 어쩌면 '나만의 명예의 전당'같은 걸 이미 갖고 있는 어른이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도 그런 책장 한 칸이 있는데,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러니까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어린이라도, 자신이 특별히 아끼는 책이 있고, 그렇게 책과의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가며 자신의 명예의 전당에 꽂아둔다는 것이, 이상하게 마음에 위안이 되는 거다. 한창 우울해있을 때 이 부분을 읽는데 괜히 마음이 막 좋아져가지고, 아아, 이 책...뭐지, 내게 뭘한거지? 하게 된거다.



김소영 작가는 책의 처음에서, 부러 책의 문체를 건조하게 썼다고 했다. '어린이와 관련된 말과 글이 '어린' 취급을 받는 것이 싫어서(p.11)' 라면서. 읽을 때 그 건조함이 이 책을 재미없게 만들면 어떡하지, 읽기전부터 고민했는데, 아아, 바보 같은 고민이었다. 그동안 블로그에서 봐온 글에 비하면 확실히 건조한 문체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재미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 따뜻해!! 


자, 그리고 내가 주저앉아서 울고 싶었던 부분은 이런 부분이었다.



어린이도 청소년도 어른도 그림책 읽는 즐거움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읽어서 즐겁다면 읽자. 말이 난 김에 짧게나마 꼭 강조하고 싶은데, 어린이가 초등학생이 되었어도 '읽어주는 것'은 여전히 좋다. 원한다면 어린이의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까지나 읽어 주자. 듣기도 독서의 한 방법이다. (p.77-78)



엄마는 내게 책을 읽어줬었다고 하지만 나는 기억이 1도 나지 않고, 내가 기억을 가졌을 때부터는 누가 내게 책을 읽어준 기억이 없다. 3년 전이었나, 연애할 때 애인이 새벽 세시를 읽어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진짜 여러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왔더랬다. 애인이란 넘나 좋은 것. 책을 읽어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자, 다시 돌아가서, 책을 읽어주는 건, 진짜, 정말이지, 너무 좋은 것 같은데, 내게 그런 경험 너무 없고.... 어제 쓴 포틀랜드 책 리뷰에 포틀랜드 농장 가서 농장주의 아들과 연애 하라는 댓글 있었는데...아아, 농장주의 아들이라면 정말이지 건강할테고, 볕에 그을렸을테고, 여유로울 테고, 밤마다 포치에서 술을 마시면서 나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에는 같이 침대에 누워 나에게 책을 읽어주면..... 아아, 애인은 또 있을 때는 있는대로 좋고 그런 것이야....


이런 문장은 또 '어린이책 읽는 법' 같은 책의 리뷰에 쓰면 안되는 것이겠지? (시무룩..)


아무튼지간에 나에게도 책을 읽어주는 것이 아주 좋은 독서 방법이라고 저자가 말해줘서 뭔가 씐나는 기분이 되었던 거다. 아주 그냥 기회만 생겨봐라, 내가 책을 읽어달라고 조르겠어! 누구한테? 농장주의 젊은 아들한테!!!

음..그러면 원서로 읽어주려나?????

음.......그러면 내가 어떻게 알지?

아, 그림책 읽어달라고 하면 되겠다!

앗. 그럼 그림을 봐야 되나..

음..그건 닥치면 쇼부를 치도록 하자.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잖아..

그렇지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어.....




나는 어린이가 동화책을 읽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공감 능력 키우기'를 든다. 어린이에게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한 이유는 따로 섦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남을 도울 때뿐만 아니라,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데도 '공감'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필요하다는 점을 새삼 짚고 싶다. (p.100)



나는 이 세상 대부분의 문제들이 공감능력 부족 때문에 생긴다고 보는 사람이다. 그 문제들 모두에 공감을 대입해보면 쉽게 풀리는 것들이 많은 거다. 공감능력이 '능력'이라기 보다는 필수적인 삶의 태도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인데, 그러기 위해 독서는 충분한 수단이 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작가의 저 말에 깊이 동의를 하고, 조금 더 덧붙이자면, '마사 누스바움'이 그랬던것처럼, 책을 읽고 공감능력을 키우면 '너그러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나를 봐라, 책 많이 읽고 공감능력 열나 캡짱이니까 막 개구리가 되어보고 그러지 않나. 개구리도 되었다가, 빵도 되었다가...나는 오늘 아침 출근길에, 에스컬레이터 손잡이에 붙어 있던 달팽이도 되었었다!! 아아, 이 넓은 세상, 어딘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딘가...하는 달팽이의 마음이 되었다고! 이렇게나 내가 너그러운 건, 다 공감능력 때문이고, 그것은 독서가 내게 준 것!!! 



이 책은 어린이가 어떻게 책을 읽으면 좋을지 방향 설정과 방법에 대한 유익한 길잡이가 된다. 그러므로 '내 아이에게 어떻게 책을 읽혀야 할까, 어떤 책을 읽혀야 할까' 하는 것이 도무지 답이 안나오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읽어야 할 책이다. 또한 어른에게도 마찬가지. 책을 읽는 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른다면, 이 책이 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책을 가까이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든든한 친구가 된다. 이 책에서는 내가 책을 읽으면서 하는 그 모든 행위들이,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 독서행위에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책을 사랑한다면, 책읽기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그 방법이 맞다!!! 그러니까 이 책은, 종합하자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는 어른과 이미 책을 좋아하는 어른 모두에게 유익한 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왜그랬는지, 어디서 그런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 무엇을 한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위로가 돼!!! 



이 작은 책 한 권이 힘이 세다.




(어린이책 리뷰를 너무 성인여자 모드로 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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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9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1-04-29 13:19   좋아요 0 | URL
김소영 작가의 책은 무엇을 고르시든 후회하지 않으실겁니다!!

독서괭 2023-12-11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ㅋㅋㅋㅋㅋㅋ 이 책 예전에 읽고 지인 줬는데 다시 살까 해서 들어왔다가 다락방님 리뷰 보고 반가웠는데 ㅋㅋㅋ 어린이책 읽는 법 리뷰가 이래도 되는 건가요 ㅋㅋㅋㅋㅋ 아 너무 웃겨요🤣🤣🤣

다락방 2023-12-11 08:23   좋아요 1 | URL
으하하하 덕분에 저도 오래된 리뷰를 다시 읽었네요. 투비에 옮겨야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살아보고 싶다면, 포틀랜드 - 풍요로운 자연과 세련된 도시의 삶이 공존하는 곳 포틀랜드 라이프 스토리
이영래 지음 / 모요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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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몇 장을 읽었을 때는 어쩐지 글 타입이 나랑 맞지 않는 것 같아 사진만 후루룩 넘겨봐야지 싶었는데, 읽다보니 점점 빠져들게 됐다. 빠져들었다기 보다는 사실 흥분됐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데, 와, 읽기 시작하면서 내내 얼마나 포틀랜드에 가보고 싶어졌는지, 수시로 비행기표를 검색해봤다. 같이 가고 싶다는 친구는 결혼준비 때문에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했고, 그래서 나는 '혼자 가자' 생각하게 되었는데, 비행기야 그렇다쳐도, 호텔비를 어떻게 감당하나, 생각하니 지금 머리가 아프다... (집에 가면서 로또를 사볼까...)


이게 단순히 포틀랜드 여행기였으면 나에게 크게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저자는 책 제목에서처럼 포틀랜드에서 '살고' 있다. 포틀랜드가 고향인 남자와 함께. 여자는 일본을 자주 드나들었었고 호주로 유학갈 준비중이었다가 한국에 와있던 미국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하면서 포틀랜드로 건너가게 된 것. 저자는 시종일관 삶에 대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라서 포틀랜드의 삶에도 잘 적응하는데, 그걸 보는게 대단하고 또 감히 내가 대견하게 느꼈다. 컴플레인을 잘 거는 성격답게 아닌 건 아니라고 그자리에서 말하면서 자신의 유리한 위치를 가져가는 건, 파머스 마켓에서 베리를 팔 때 최정점을 찍었는데, 읽으면서 몇 번이나, 내가 이 저자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이 사람만큼 할 수 없을거다, 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녀는 남편과 사랑하며 잘 지내는것처럼 시댁 식구들과도 즐거이 잘 지내고 있다. 낯선 곳에서 적응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잘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게 책장을 넘길수록 더 신났다. 게다가 남편이 맛집 찾아다니는 거 좋아해서 리스트 만들고 아내를 데려가는 거 너무 좋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포틀랜드에 살게 되면서 포틀랜드에 익숙해지고, 또 가끔은 여행자의 시선으로 포틀랜드를 보려는 저자는 삶에 있어서 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사람 사귀는 것도 좋아하고, '내가 여기에서 무슨 일을 해볼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도 진짜 대단하고... 하고 싶은 건 반드시 하고야 말겠다는 사람인 것 같아서, 이런 저자라면 어디에 데려다놔도 잘 지내지 않을까. 포틀랜드에서 사람들과 까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숙박시설등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적응해 나가는 일상을 그려내길래, 아아, 그야말로 라이프 스토리구나 싶었는데, 끝에 가서는 숙박시설과 레스토랑등의 목록표도 만들어 두었으니, 오호라, 여행갈 때 들고가도 좋을 책이 되었다. 덕분에 큰 도움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자꾸만 아, 가고싶다, 가고싶다, 하면서 가슴이 뛰었다. 무엇보다 서울의 절반정도 되는 크기에 인구는 서울의 15프로라고 하니, 아아, 뭔가 아침에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고 어슬렁어슬렁 거리기 딱 좋은 곳일 것 같아. 이곳 특유의 슬로라이프를 내가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또 여행할 때 특유의 조증이 발생하니까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작은 도시를 구석구석 누비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다. 결혼하고 포틀랜드로 넘어가 남편이 데려갔다던 버거빌 이라는 버거집에 가서 버거도 먹고싶고... (  ")




저자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데 남편은 맥주를 아주아주아주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남편을 아주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아,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좋은 장면이었다. 내 눈앞에서도 그 장면이 그려지는 듯해서.



그가 유일하게 애지중지하는 맥주들을 꺼내 들고 나오는 시간이 있었다. 오후 5~6시. 그의 아버지가 농장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뒷마당의 포치에 앉아 저 멀리 들리는 기차 소리와 새소리만이 존재하는 평화로운 순간을 담배 한 모금으로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존은 언제나 맥주 한 병과 글라스 두 개를 들고 나와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함께 그 순간을 맞았다. 

(중략)

'저렇게 맥주 한 잔, 초콜릿 하나를 아버지와 나눠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삶을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 내 남편, 내 아이의 아빠가 된다면…….'

나는 그를 이해하려고 되지도 않는 노력을 하거나 시간이 지나면 저놈의 술을 끊게 해야지!라는 상상 같은 건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그 역시 내가 싫어한다고 해서 일부러 그의 취미를 포기하거나 포기하는 척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년 가까이 그의 맥주 사랑과 홈브루잉 취미생활을 지켜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취미를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p.205-206)




아아, 하루 일과가 끝나고 포치에서의 다정한 술 한 잔은 나의 오랜 로망이 아니던가. 여기엔 내가 바라는 모든게 다 있다. 다정한 사람과 이야기, 여유로운 분위기, 술.

술...

술.....

내가 진짜 포치에서 술 마시고 싶다고 글을 몇 번이나 썼는지!!!!



그리고 그런 광경을 바라보며 아, 저 남자 좋다...라고 생각하는 여자라니..........실로 애정이 뿜뿜하는 장면이 아닌가!




포틀랜드의 파머스 마켓에서 잼도 사보고,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빵도 사서 여유롭게 빵에다 잼을 슥슥 발라 먹고 싶다. 느즈막히 책 한 권 들고 나가 맛있다는 커피집에도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책도 보고. 그리고 기분 내키는 대로 이곳저곳 걸으면, 아아, 얼마나 좋을까. 읽는 내내 정말이지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어.... 베트남 국수여행 책 다음으로 나를 흥분시키고 말았다. 너무 좋아서, 막, 뭐할까, 이러면서 메모하면서 읽었다. 가게 되면 여기가서 이것도 먹어보고 이것도 마셔봐야지! 동네는 어디가 좋을까? 막 혼자 걷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그러다보니, 포스트잇을 여러군데 붙였다. 포틀랜드를 꼭 가보고 싶다던 친구가 있어서, 나중에 그 친구랑 함께 가자고 약속해 두었는데, 그 전에 나는 좀 미리 다녀와야겠다. 게다가 나의 다정한 오빠가 내가 포틀랜드에 오면 스테이크를 사주겠다고 했어.... 


내 영혼은 이미 거기에 가있다. 여기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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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05-23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이 없어지려고 하네요, 영혼이. ㅜㅜ
포틀랜드 예전에 다녀왔었는데... 정감가는 곳이었어요. Saturday market도 좋았고. 아. 다시 가고 싶어욧!

다락방 2017-05-23 17:19   좋아요 1 | URL
비연님은 다녀오셨군요! 아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아무데나 막 돌아다니고 싶어요. 아아, 그렇지만 비용을 생각하니 잠깐 주춤하게 됩니다. 그래도 가고 싶으면 가야겠죠? 하하하하하

비연 2017-05-23 18:37   좋아요 0 | URL
그럼요 그럼요~ 가고 싶으면 가는 걸로. 비용은.... 어디선가 언제인가 메꿔지리라 믿으며 ㅡ.ㅡ;;

다락방 2017-05-24 08:09   좋아요 0 | URL
좀 저렴한 호텔을 알아보고 아무래도 떠나야겠어요...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계속 생각났거든요. 불끈!

transient-guest 2017-05-24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레건 주가 전체적으로 아름답죠. 저도 아주 어릴 때 가봤는데, 포틀랜드도 그렇고 유진도 그렇고 아주 예쁘다고 해요.ㅎㅎ 가서 멋진 농장주의 아들과 사랑에 빠져 눌러앉으실지도..ㅎㅎㅎ 포치에서 맥주와...등등...

다락방 2017-05-24 08:00   좋아요 1 | URL
아..... 멋진 농장주의 아들.....아아....포치에서 맥주.....멋진 농장주의 아들을 돈도 많고 볕에 그을려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겠죠....농장에서 일하니 근육질의 단단한 몸.............일것이고, 아름다운 곳에서 살았으니 마음도 여유로울 것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아 환상속의 남자네요. 네, 제가 포틀랜드로 가겠습니다. 멋진 농장주와 사랑에 빠져 포틀랜드에 눌러 살도록 하겠습니다. 아아 너무 멋져서 인생이 황홀해질 것 같아요..
>.<

웽스북스 2017-05-24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킨포크 스타일의 원조가 포틀랜드라고 들었는데, 역시 킨포크를 좋아하시던 다락방님은 이 책도 좋아하시는군요! ^^

다락방 2017-05-24 10:0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웽님. 여기에서 킨포크 본사 찾아가서 직원들 만나고 인터뷰 하는 것도 나와요. 이 저자도 킨포크를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후훗.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이다혜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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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디 웨스트'는 자신의 책, 《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에서 '어떤 면에서 보면 페미니즘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우리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달아가는 기나긴 과정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라고 말한 바 있다. 나 역시 이문장에 동의하는 바,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나를 '사랑'했던 건 아니라는 사실을,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깨달았다. 그것을 미워한다고 표현하진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혹독하게 깨달았달까.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생각하고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라면 최대한 수용범위를 넓혀 상대를 받아들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 스스로 타인을 사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생각하고, 그래서 여태 많은 사람들-특히 '남자'란 성별을 가진 사람들'-을, '어?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사랑해왔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내게는 '건드려서는 안될' 부분, '허락할 수 없는' 부분이 생겨버렸고, 그걸 건드린 사람에 대해서라면 아쉽게도 등을 돌리고 말았다. 내가 그토록 사랑한 사람인데, 하고 수시로 상대를 그리워하지만, 그러나 '그는 내게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는 거였어' 하며, 상황을 떠올리고 다시 고개를 젓는다. 그러니 린디 웨스트의 말처럼, 페미니즘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우리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일 것이다.



이 과정을 이다혜 기자 역시 거쳤던 것 같고, 지금도 그러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다혜 기자와 내가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든 것을 깨닫고, 또 우리의 연배가 비슷하며, 우리가 페미니즘을 받아들이고 그동안의 자신의 말과 행동을 뼈저리게 반성한다는 것 역시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페미니짐은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나를 미워한다는 걸 깨닫는 과정임과 동시에, 내가 얼마나 과거에 무지했는지, 또 지금도 여전히 어느 면에서 부족한지를 자꾸 들여다보려 노력하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잘못된 말과 행동들을 했었는지 돌아보며 가슴 아파하는 그 과정을, 이다혜 기자 역시 겪어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알고난 뒤에는 알기 전과 같을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는 결코 몰랐던 때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내가 보는 세상, 즉 내가 보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개그 프로그램,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책까지, 내 모든 시선은 그전과 같을 수가 없다. 이다혜 기자 역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니만큼, 어떤 책에서 무엇이 불편했는지, 자신이 그동안 사랑해온 책들이 어떤 시선을 가졌는지, 그리고 지금 자신이 읽는 책들이 어떤지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읽기를 함께 하고 싶으며 또 깊이 응원하게 된다. 나는 여기에 대해서, 내가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 좋다고 생각했던 책들을 지금 '다시' 읽게 되면, 그렇다면 어떤 다른 감상을 갖게 될까. 하나의 책이 읽을 때마다 다른 감상을 준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페미니즘을 알기 전과 후에 그 감상은 결을 달리하지 않나. 나는 그래서 예전에 읽었던 좋았던 책을 다시 만났을 때 크게 실망하거나 화가 나진 않을까 걱정되어 다시 펼쳐보지 말자, 고 생각하게 되는 책들이 있다(존 쿳시의 추락을 읽으면 나는 이제 어떤걸 느끼게 될까?). 물론, 그 다른 감상이 기대되어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 있고(어슐리 르귄의 책이 그렇다).


이다혜 기자의 이 책을 읽어보니 나와 비슷한 후회, 나와 비슷한 깨달음, 나와 비슷한 슬픔을 겪어왔는데, 그렇다면 아마도 나와 비슷한 걱정을 가지고 있진 않을까. 계기는 모두 달랐지만 나와 비슷한 시기에 페미니스트를 선언하며 페미니즘 속으로 들어간 많은 사람들이 이다혜 기자의 이 책을 읽으면 모두들 저마다의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 우리가 그간 생각하고 느낀 것을 정리해준 책이라 보면 이 책에 대한 적합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는 참으로 딱 맞는 제목이라 하겠다. 그러나,



내용과 별개로 책 한 권을 두고 적잖이 실망하기도 했다. 일단 사이즈가 너무 작다. 내가 생각한 노멀한 책의 사이즈보다 작고, 책을 넘겨보면 행간도 넓고 글자도 크다. 그래서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글자가 적다. 빠른 시간 내에 후딱 읽힌다. 후딱 읽히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아니, 이 정도 분량으로 내다니 좀 너무하잖아?? 하는 기분이 되어버리는 거다. 이정도 분량으로 내기 보다는, 이 정도 분량에 곱하기 3은 해서 책 한권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그런 기분. 그 점이 실망스러워서 별은 3.5로 주고 싶은데, 아아, 알라딘에는 별점 반 개가 표시 되지 않으므로, 후하게 넷을 주기로 한다.


사이즈를 비교하고 있는 책은 마침 내 책상 위에 놓여있던 '로런 그로프'의 《운명과 분노》 이다.







마지막으로, '가스라이팅'의 유래를 알게 된 건 이 책을 읽고난 후의 가장 큰 수확이다.




조지 큐커 감독이 연출한 <가스등>(1944)의 주인공 폴라(잉그리드 버그먼)는 유명한 성악가의 조카로, 그로부터 큰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녀다. 그레고리(샤를 부아예)는 폴라의 유산을 노리고 접근한 뒤 집에 숨겨진 보석을 찾아내려고 한다. 그레고리가 다락방을 뒤지기 위해 불을 켜면 그 때문에 폴라의 방에 있는 가스등 불빛이 흐릿해진다. 폴라가 그레고리에게 이유 없이 흐릿해지는 가스등에 대해 말을 꺼내면, 그레고리는 그녀가 미쳤기 때문에 환각을 본다고 말한다. 남편에게서 히스테리와 신경쇠약을 지속적으로 지적받은 폴라는 실제로도 무기력증에 빠진다.

로빈 스턴은 『가스등 이펙트』라는 책에서 이런 심리를 분석한 적 있는데, '가스라이팅' 혹은 '가스등 이펙트'는 상대를 심리적으로 조종하는 가해자와의 관계를 다룬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인정받고자 하는 소방이 잘못된 상대를 만나 빚는 비극으로, 일과 관련해서는 지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조차 자신을 하찮게 취급하는 배우자나 애인, 직장 상사나 부모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영화 <가스등>에 비유해 설명한다. 나의 의견을 기분으로 받아들이는 상대와 대화하기란 쉽지 않다. 큰 그림을 보지 그래? 생리 중이야? 왜 그렇게 예민해? 남들은 괜찮다는데. 대화를 꺼냈다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대화를 접어본 적 있다면, 가스라이팅이라는 것의 두려움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래서 일차적이고 궁극적인 해결책은 그런 상대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이성적인 비판을 가장한, 반복적이고 집요한 공격을 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지 않도록 조심하라. 만난 뒤 집에 돌아오면서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비판하는 시간을 길게 갖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기분이 어디서 비롯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 당신의 판단을 오랫동안 불신하지 않았는지. 상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당신이 끌려 다녀온 건 아닌지.

가스라이팅의 가장 대단한 부분이라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게 만든다는 것이다. 보통 상황 조작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분명히 어두워지는 가스등을 정신적인 불안정 때문이라고 몰아가는 식이다. (p.256-258)



덧붙이자면, '분명히 어두워지는 가스등을 정신적인 불안정 때문이라고 몰아가는 식'이라는 문장을 읽노라니,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영원히 사랑해》가 생각난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같은, 세상 달콤한 책을 쓴 작가가, 글쎄, 《영원히 사랑해》같은 책도 썼다니깐?


또 덧붙이자면, 내 기분이 나쁘거나 내가 화가 나 있을 때 상대로부터 '생리중이야?' 라는 말을 듣는 것만큼 빡치는 게 없다. 내 기분을 '생리중이기 때문'이라고 탓해버리면, 내 화는 불필요하며 부조리하며 무의미한 것이 되는 게 아닌가. 나는 화가 나야할 상황이라서, 기분이 나쁜 상황에 맞닥뜨려서 기분이 나쁜 거다. 내가 나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지금 생리중이라 예민해졌나' 돌아볼 순 있지만, 자기에게 화냈다고 섣부르게 '생리중이야?' 라고 묻는 건, 무조건 참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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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7-05-2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받아보고 가격에 깜놀. 가성비랄까.. 너무한듯.

다락방 2017-05-22 11:04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좀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