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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없는 페미니즘 - 메갈리아부터 워마드까지
김익명 외 지음 / 이프북스(IFBOOKS) / 2018년 3월
평점 :
내가 메르스 갤러리 사이트에 처음 들어가봤을 때 놀란 건 그 미러링 표현들 때문이었다. 그러고보니 많은 남성들로부터 글로 혹은 말로 늘 들어왔던 것들을 여자들이 거기서 되돌려주고 있었다. 와, 이렇게도 할 수 있네? 그때의 통쾌함은 말할 수가 없다. 그리고 다시 들어가봤을 때는 익명의 여자들이 그곳에서 자신의 성폭행 피해를 얘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했었다가, 그것이 자신의 잘못인줄로만 알고 숨겨왔다가, 그곳에서 비로소 익명의 여성들로부터 '네 잘못이 아니다', '가해자가 나쁜놈이다'라는 말을 듣고 위로 받고 있었다. 나는 메갈이 하는 일은 미러링이지만, 미러링 이전에 그동안 억압받았던 여자들의 편에서 여자들의 이야기를 하는 곳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정기적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곳에 회원가입을 한 것도 아니어서, 나는 숱한 사람들이 같은 익명으로 글을 쓰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댓글을 단 유저들이 모두 'ㅇㅇ' 란 닉네임을 달고 있었던 것. 그런데 이 책을 읽고서야 그것이 이름에서 올 수 있는 권위에 기대지 않기 위함임을 알았다. 그러니까 나처럼 '다락방' 이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면 결국 나에게 친한 사람이 생길 것이고, 혹여 내가 파워블로거라도 되면 나에게 말하기도 힘들어질텐데, 모두가 다같이 똑같은 닉네임을 사용하면 그걸 방지할 수 있는 거였다. 아니, 이 사람들, 이런 것까지 다 생각하고 있었구나...
처음에 나는 이 게시판 재미있네, 후련하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말을 해, 라는 생각을 갖고 있긴 했지만 내가 그곳에 속해있거나 한 건 아니고 몇 번 들어가본 게 다 였으므로 '아니 나는 메갈회원 아닌데?'라고 말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숱한 남자들이 이제 '너 메갈이냐?'를 혐오 발언으로 쓰며 여자를 나누기 시작했다. 마치 김치녀와 된장녀를 만들어낸 것처럼, 개념녀를 만들어낸것처럼, 그렇게 여자를 또 나누고 있었다. 김치녀를 만들어내면 많은 사람들이 '나는 아닌데?'를 증명하려 하고, 개념녀를 만들어내면 '아, 나는 개념녀가 되어야겠다'가 되어버린다. 그런참에 메갈을 낙인찍어 버리면 또 여자들 내에서 메갈인 여자와 아닌 여자로 나뉘게 되고, 그렇다면 나는 메갈이 되지 말아야지, 하고 생겨버리게 되는 거다. 나는 이 남자들 특유의 낙인 찍기, 여자를 후려치기 하는 것에 반대했고, 그러므로 그 뒤로 '내가 메갈이다' 라고 말하고 다녔다. 내가 메갈이다. 그래, 뭐 어쩔래?
그렇게 말하고 다니면서도 실상 나는 메갈이 그동안 해온 일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잘 모르고 있었다. 소라넷을 없애려고 시도하고 노력한 게 메갈이라는 것은 알았고, 미러링으로 남자들한테 맞받아친 게 메갈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의 타임라인을 보니, 아주 많이 내가 모르고 넘어갔던 것들 중에 메갈 활동들이 있더라. 이들은 정말이지 전투력을 최고 게이지로 상승시켜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여성혐오를 뿌리뽑기 위해 활동해오고 있었다. 그 표현의 과격함으로 누군가는 굳이 그 사이트에 들어가서 캡쳐를 해오고, 얘네가 이렇게 못됐다!! 하고 기사화 하기도 했지만, 실상 그들이 하지 않은 것에 그들이 한것처럼 낙인 찍힌 것도 있었고, 거기에 대해서는 정정되지 않기도 했다. 소라넷과 몰래카메라를 뿌리 뽑으려하고 임신중단 합법화를 위해 시위를 했던 그들인데, 그들은 '여자일베'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있었다.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했던 건, 여러차례 얘기했지만, '최명희'의 [혼불] 때문이었다. 그전까지는 별 관심이 없었고, 나야말로 페미니스트는 사랑받지 못한 여자들이고 과격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혼불을 읽다가 여자들이 처한 입장이 너무 말도 안되고 어처구니가 없는 거다. 야, 이거 너무 부조리하고 불공평하고 억울한데... 내가 이 억울함을 어떻게 달래야 하지? 이거 왜 이런거야? 어떻게 해야 돼?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는데?? 하고 생각해서 '페미니즘이 답을 주지 않을까' 하고 시작하게 된거다. 아니나다를까, 나는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페미니즘적인 삶을 살았었다는 걸 알게됐고, 내가 가진 편견이나 고정관념 역시 이 사회가 내게 강압적으로 주입한 것이란 걸 알게됐다. 부끄럽게도 성매매에 대해 '그렇게 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했다가, '당사자가 아니면 말할 수 없지 않나'로 생각하게 됐다가, 이제는 확실하게 '성매매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됐으며 그것은 노동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볼수록 내 생각은 변하게 됐고, 그 잘못된 것을 파고 들어가다보면 거기엔 여성혐오가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성매매는, 노동이 될 수 없었다. 세상 어느 노동이 나이들고 경력이 쌓일수록 노동가가 적어지고 내쳐지는가. 성매매는 성노동이 아닌 성착취였다. 나는 포주와 성구매자만 처벌하는 노르딕 모델을 도입해달라는 청원에 동참했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할수록 내가 과거에 얼마나 무지하고 또한 혐오발언에 힘을 실어줬었는지를 깨닫게 됐다. 부끄러운 발언들과 행동들이 수시로 튀어나와 나를 괴롭혔지만, 그렇다고 후회와 반성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나는 여성혐오를 없애자고 말하는 이들의 편에 서서 그들과 연대하고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고 싶다. 초반에는 대부분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다정하게 그들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다 답이 없다는 걸 알았다. 애시당초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한테 다정하게 이천번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화를 내면 다정하게 말하라 하고 다정하게 말하면 논리나 근거를 가져오라고 헛소리를 한다. 그간 아주 오래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똑똑하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었는데, 최근에야 나는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논리와 팩트, 이성과 객관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남자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얘기를 할 땐 한없이 감정적으로 흥분해서는 냉정한 사고를 하지 못한다. 자, 그 일이 왜 일어났을까? 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그들은 하지 못한다. 세상 멍청하다는 걸 세상 논리적이란 허울로 감추고 있었다. 그렇게 교수가 되고 감독이 되고.... 그렇게 멍청한데 권력을 쥐고 있었다. 이런 세상이 문제가 터지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는 모든 직업에 여성들을 균등하게 뽑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 생각에 더 힘을 실어주게 됐다. 그렇지 않다면 남자들끼리 봐주고 밀어주는 이 행태는 계속될 것이다. 지금은 이 행태를 고발하고 체제를 바꾸자고 말하는 모든 여성들의 편에 서서 그들과 연대하고 힘을 실어주고 싶다.
최근에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쉴라 제프리스'의 [래디컬 페미니즘] 책을 번역 출간한다고 텀블벅을 열었을 때,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발언했던 남자페미들이 광광대던 걸 봤다. 그 책을 왜 번역하냐, 그 책은 묻힌 책이다, 그 책이 얼마나 나쁜책인데... 라면서 텀블벅 자체를 훼방 놓으려고 했다. 나는 여기에서 또 깊은 빡침이 왔는데, 왜 어떤 책이 나쁜 책이고 아닌지를 자기들이 알려주려고 하는걸까? 나도 한 사람의 독자이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어떤 책을 읽었는데 싫다면, 그때는 싫다고 얘기할 것이다. 그리고 좋다면 좋다고 얘기할 것이고. 대체 다른 여자들을 뭐라고 생각하길래 '니가 읽을 책은 내가 정해준다'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그러면서도 자기가 페미라고 얘기한다. 최근에는 윤김지영 쌤의 [헬페미니스트 선언] 책을 팔지 말라고 출판사에 압박을 넣어서 그 책이 절판된 상태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출판사를 통해 새로 나올 예정이라는데, 어떤 책을 읽을지 말지 정해주려는 태도는, 정말이지 맨스플레인 중에서도 개같고 더러운 맨스플레인 아닌가. 왜 다른 사람들이 독자로서 판단을 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왜 그 능력은 자기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지, 정말 멍청해도 너무 멍청한 게 아닌가. 다른 사람의 주체성을 인정할 줄도 모르면서 무슨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다니는 걸까. 어떤 남자들은 페미니스트를 벌레보듯 하고, 어떤 남자들은 여자에게 인기 끌기 위한 껍데기로 쓴다. 그리고 어떤 남자들은 감별사를 자처한다. '너는 진짜 페미가 아니야' 그걸 자기가 어떻게 알고 판단하는걸까?
나는 이 땅에서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 계속 살고 있다. 여학생이었고 여직장인이고 지금은 여자상사이다. 내가 겪은 삶을 토대로 그리고 내 주변 여자들의 삶을 토대로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페미니즘을 실천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역시 이 땅에서 살아온 다른 여자들과 연대하며 서로 힘을 주고 받고 지칠 때는 잠시 쉬라고 쉴 틈을 내어주며, 그렇게 페미니즘을 실천할 것이다. 내가 하는 페미니즘에는 누군가의 감별도 필요없고 인정도 필요없다. 나는 같이 갈 나의 동료들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안에는 이미 적극적으로 싸우는 여자들이 있었다. 모두 다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어서 인상깊었는데, 그중에서 한 명은 악플러 남자들을 일일이 고소하는 에너지를 보였다. 나 역시 긴 온라인 생활을 하며 악플을 받아보지 않은 게 아닌데, 그 때 대응하는 것 만으로도 진빠지는 일이다. 그런데 그녀는 일일이 고소하고 자기 앞에서 그 악플을 실제로 읽게 했고 반성문을 받아냈다. 그 과정은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었을 텐데, 그녀는 그 일을 기필코, 기어코 해내고야 말았다. 그녀가 그렇게 힘들게 이 과정을 겪어냈기 때문에, 아마 그들중에 어떤 사람들은 '야, 잘못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해서 악플달기를 멈칫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분명 그녀가 한 것은 큰 용기이고 큰 에너지였으며 큰 의미를 가진 일이었다. 이제야 뒤늦게 이 책을 읽고 알게되어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이 책에 실린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계속 싸우고 있는 탁수정씨에게도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