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친밀한 폭력 - 여성주의와 가정 폭력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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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조금은 나 자신에 대해 안다. 그래서 배우를 감히 단 한 번도 동경해본 적이 없다. 세상에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이 있는 법이다. -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p.73



정희진은 자신의 다른 책, 《혼자서 본 영화》에서, 온 몸으로 예술을 표현하는 한 배우에 대해 얘기하며 자신은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안다고 썼다. 나 역시 마찬가지. 나는 감히 정희진처럼 글을 쓸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아, 세상에 절대로 안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정희진처럼 글을 쓰는 일이겠구나' 싶었다. 이 논문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을 검열한다. 내가 혹시 '연구자'인 나의 입장으로 선악을 가르려고하진 않았나,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편을 들지 않나, 증언자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건 아닌가, 반복해서 고통을 듣다 보니 고통에 무뎌지는 건 아닌가, 를 끝없이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논문'이며 '연구서'여도 일단 쓰는 사람이 '나'인 이상, 나의 생각과 주관 경험 느낌 사상등이 반영되지 않을 수 없을텐데, 그걸 미리 인지하고 그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너무 인상적이었던 거다. 사람은 누구나 객관적일 수도 없고 객관성을 유지할 수도 없다. 그 '객관'이라는 것도, 내가 살아온 삶 위에 놓여진 것이므로, 다른 사람들에겐 주관적일 수밖에 없을 터. 이미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계속 한 걸음 뒤로 떨어져서 내가 뭔가 잘못하는 건 없는지, 놓치는 건 없는지를 세심하게 생각하는 게 너무 대단하게 느껴지는 거다. 내가 감히 '리틀 정희진' 이라든가 '또 하나의 정희진' 이라든가 하는 걸 꿈꿔본 적도 없지만, 정말이지, 감히 바란 적도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백 년을 책을 읽고 공부해도 정희진처럼 될 순 없겠구나' 싶었다. 나 역시, 정희진과 그나마 비슷한 점이 있다면, '아주 조금은 나 자신에 대해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희진이 결론에서도 밝히듯이, '아내 폭력'이 가족안의 문제, 가족이라는 사적인 영역에서의 문제로 다루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연구서이자 입문서이다. '남편'과 '아내'가 아니라면, 그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폭력이, 남편이기 때문에 그리고 아내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작년에 한창 '경찰이라니 가해자인줄' 해시태그 운동이 일었었는데, 정희진이 이 책에서 보여주는 숱한 사례에서도 여지없이 경찰은 가해자와 한 편이 된다. 남편과 아내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가족이라는 그 사적 영역 내에서 일어난 것이고, 그러므로 그들이 해결해야 할 일인 것이다. 경찰은 신고하는 아내에게 '알아서 잘 해결하라'고 말을 한다. 아니면 '더 맞고 피 터져서 오든지' 라고 말한다. 그래야만 그것을 폭력으로 인정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아내라는 역할을 잘 수행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아내를 때려야 하므로, 그래서 가정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하고, 아내는 그런 남편의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에 자꾸 맞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편이 아내를 '때려서' 가정이 파괴된다면, 그건 원인제공을 한 '아내' 탓이라는 것.








이 책을 읽는 건 그래서 힘들다. 그렇게나 많은 여자들이 '아내'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폭력에 노출되는데, 그런데 그 많은 아내들이 '내가 참으면..' 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다. 오히려 아내를 때린 남자들은 자신들이 폭력을 썼다고 생각하질 않는다. 자신들이 그러는 건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었으므로. 그것이 폭력일 리 없다는 것. 이 과정에서 어떤 아내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해서 도움을 못받거나 혹은 여기저기 도와달라 손을 내미는데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친정이든 시댁이든 니가 참으라, 하라는 대로 해라, 라고 하고 경찰이나 상담사도 아내 스스로 이겨내고 참고 극복하라고 얘기한다. '구타'로 이혼한다면 세상에 이혼 안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며 이혼을 말리는 거다.






그렇게 '참자'고 생각하고 '내가 더 잘해보자'고 결심하던 여자들이 끝내 여성단체를 찾게되는 데는, 그러니까 남편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데에는, 자식들의 영향이 컸다.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가 아니라, 폭력 남편의 많은 수가 자식들을 성적으로도 학대했던 것. 차마 여기에 쓰고 싶지도 않지만, 갓난 아기를 상대로도 그런 짓들을 하는데, 그걸 보게된 아내가 '아, 더 있으면 안되겠구나, 지금도 이러는데 아이가 크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하게 되어서 남편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것.



그나마 한국에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된 건, 이렇게 밖으로 드러내려는 증언자 여자들과 여성주의 진영의 노력, 여성 운동의 국제 연대의 성과였다. 이마저도 안됐으면 어떻게 됐을지...


남편이 아내를 '가르치기 위해서' 폭력을 휘두른다는 인식이 너무 퍼져있고, 그래서 아내는 '내가 잘하면 된다'라고 생각하게 되어서 이 아내폭력이 계속해 반복되지만, '이혼하기 싫다'는 아내들의 생각도 폭력 남편으로부터 탈출하지 못하게 했다. 이건 생활능력이 없는 여자뿐만 아니라, 자기가 돈을 더 잘벌고 있어도 그러했는데, 이혼하는 여자가 되는 게 싫었던 것. 그것은 사회가 이혼한 여자에 대한 인식이 안좋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자라는 아이에게 '이혼한 가정의 아이'라는 걸 낙인처럼 찍어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니 아내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사회적 의식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이혼이 흠도 아니지만(흠이어서도 안됐고), 내가 '맞으면서'까지 이 가정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아이에게도 '맞고 참고 사는 엄마' 보다는, '혼자서도 행복한 엄마'쪽이 훨씬 안정적이니까. 때리고 맞고 소리지르고 울고 하는 공간이, 단순히 부모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안락한 가정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이 부모가 다 있으므로 괜찮은 것이 되는걸까. 우리는 아내를 단순히 '남편의 아내' 가족구성원에서 가족을 지켜야하는 사람으로 볼 게 아니라, 한 개인으로 봐야하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가 한 '개인으로서' '같이' 가족을 만들고 또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아내를 한 개인으로 볼 수 없다면, 아내의 주어진 역할을 잘 이끌어주기 위해 남편의 가르침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남자들이여, 부디, 결혼하지 마시라. 가족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한 사람 이상의 삶을 지옥으로 이끌지 말고, 사회를 쓰레기통으로도 만들지 말길 바란다.



이 같은 연구 결과로 볼 때 여성의 사회적 정체성과 역할을 가족 구성원으로만 한정하여, 여성을 사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현재의 가족 제도에서는 '아내 폭력'이 근절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아내 폭력' 문제를 둘러싸고 여성의 권리가 가족의 유지와 갈등하는 상황 자체가 현재의 가족이 여성에게 억압적임을 보여준다. '아내 폭력'의 발생, 수용, 해석, 대응은 가족 제도를 중심으로 성별화되어 있다. 여성의 아내 역할 수행 여부가 남편에 의해 폭력의 이유가 된다는 사실은 여성의 가족 내 성 역할이 여성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따라서 '아내 폭력' 해결 방식에서 가족 구조의 성 차별성을 문제화하지 않는 가족 가치에 대한 강조는 오히려 문제의 원인을 강화하는 것으로 '아내 폭력'의 사회적 대책이 되기 어렵다. (p.248)



'아내 폭력'이 가족 유지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개인의 인권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하는 이유는, 가족을 기반으로 하는 성별 제도(gender system)가 여성이 보편적인 인간으로서 권리를 갖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인권은 정치적 투쟁의 결과라는 과정의 의미로 생각되기보다는 선언적 진실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즉 한국 사회에서 인권은 관념적으로 긍정적, 진보적 가치로 간주되지만, 여성 인권처럼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한국 사ㅇ회의 주류 가치인 가족주의와 경합할 대는 사소하고 부차적인 것이 된다. 이러한 문화적 상황이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이유이다. 이처럼 성 차별 사회에서는 '모든 인간은 폭력당하지 않을 권리를 포함하여 인간으로서 권리를 가진다'는 인권 개념이 모순적인 명제가 되어버린다. (p.248-249)






증언자를 구하기는 ‘너무‘ 쉬웠다. 연구자 주변에 ‘아내 폭력‘ 경험자나 그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피해 여성, 가해 남성들 모두 학력·직업·계층·종교·연령에 상관없이 거의 전 계층을 망라했으며 피해자, 가해자 중에는 전문직은 물론 ‘심지어‘ 여성 운동가, 사회 운동가도 있었다. (p.52)

하지만 폭력을 극복하는 과정이 폭력을 당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면, 사람들은 그냥 그 상태에 머물려 할 것이다. 나는 피해 여성들의 ‘말하는(말해야 하는) 고통‘을 지켜보면서, 사회를 현재 그대로 두려는 보수주의자의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하게 되었다. 인간 생활의 어두운 문제(惡)를 ‘들추어내어‘ 연구하고 개선하려는 노력 자체가 악은 아닐까, 악을 파급하는 것은 아닐까, 악이 되기 쉬운 것은 아닐까? 폭력 문제를 연구한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연구자인 나도 폭력에 연루되고 접촉함으로써 부정의(injustice)한 상황에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증언자들의 고통은 청자(聽者)의 경험 밖에 있으므로 타인의 고통을 다루는 연주자, 여성 운동가는 그들의 고통을 타자화하기 쉽다. 이것이 바로 악이다. (p.57)

증언자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이야기가 부정되고 의심받았기 때문에 나의 사소한 태도에도 금세 상처받았다. 그들은 비난받는 데 너무나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그들의 입장에 충분히 동의하고 공감하는데도 그들은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열심히 설명하고 연구자를 설득했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 대부분의 증언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완전히 믿어주고 분노 표현을 격려하고 자신의 행동에 ‘혐의‘를 두지 않는 청자를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폭력당하는 아내에게는 제일 처음 자기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태도가 이후 그녀의 대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성이 폭력당한 경험이 수치심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녀가 ‘맞을 짓‘을 했거나 늦은 밤거리를 혼자 걸어다녀서가 아니다. 그것은 남성 중심 사회가 강요하고, 희망하는 해석 체계의 산물일 뿐이다. (p.61)

사례의 폭력 남편들은 자신의 남자다움을 위해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돈을 벌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본 연구의 50사례 49명의 남편 중 약 40퍼센트인 19사례가 무직이었다. 직업이 있다 해도 부인과 함께 자영업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 아내 혼자 일했다. 이 문제로 아내가 불만스러워하거나 항의하면 남편은 폭력으로 대응한다. 이는 현대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근본 원리인 성별 ‘분업‘ 논리가 실제로는 분업이 아니라 협박과 강제 속에서 여성의 이중 노동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여성은 세계 공식 노동력의 3분의 1, 비공식 노동력의 5분의 4를 담당하면서, 전 세계 수입의 10퍼센트만을 받으며 세계 재산의 1퍼센트만을 소유한다.) (p.158)

남편과 아내의 폭력 행사는 그들이 각자 다르게 처해 있는 가족 내외의 권력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남편과 아내의 폭력은 서로 다른 이유와 의미를 지닌다. 남편은 ‘내가 하라는 대로 하라‘고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지만 아내는 ‘이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며 ‘폭력‘을 행사한다. (p.230)

법정, 경찰서, 가족 앞에서 남편은 폭력 행위를 사과함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가족의 유지를 위해 노력했는가를 증명한다. 그러한 노력을 아내가 인정하지 않으면 남편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가정 파탄‘의 책임은 여성에게 돌아온다. 남편의 폭력 행위가 가족 유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용서 여부가 가족 유지를 결정한다. 이는 ‘아내 폭력‘ 정도로는 가정이 해체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 즉 아내가 맞고 사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뜻한다. 가족의 유지를 위해 남편에게 요구되는 책임 수준은 ‘때리고 사과‘하는 것이지만, 아내에게 요구되는 책임 수준은 ‘맞고 남편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p.234)

결국 여기서 나는 ‘아내 폭력‘을 여성 인권 침해가 아니라 가족 해체의 문제로 인식하는 기존의 시각에 도전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여성의 정체성을 사회적 개인이 아니라 아내, 어머니 등 가족 구성원으로서만 규정하는 한국 사회 구조가 어떻게 ‘아내 폭력‘을 발생시키고, 해석, 대응, 재생산하는지를 가족 내 성 역할 규범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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